2012년 9월 24일 월요일

디지털 시대의 주홍글씨

디지털 시대의 주홍글씨

완전기억의 시대, '잊혀질 권리' 화두로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한 럭비 선수는 페이스북에 인종차별적인 내용의 글을 올려 팀에서 방출되는 사건이 발생했었다. 그들에게는 별것 아닐 수 있는 일상적인 SNS 활동이 직장까지 잃게 만드는 대형사고가 돼 버린 것.

비슷한 사례가 또 있다. 중국계 미국 여성인 미미 브루스터. 스탠퍼드 대학에서 MBA 과정을 수료한 후, 한 의류업체에 채용에 응시했다. 마침 중국 진출을 준비하던 회사는 그녀를 반겼다. 하지만 기업의 한 관계자가 구글을 통해 그녀를 뒷조사하며, 그녀가 한때 반세계화 시위에 가담했었고 중국 반체제 인사 탄압에 항의했던 이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결국 채용은 취소됐다.
▲ 웹 발달이 기억의 문신으로 작용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최근 기업이 SNS 등으로 취업 희망자의 성향을 파악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 취업 정보회사인 캐리어빌더는 2009년 기업의 인사담당자 2천6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인사담당자의 45%가 SNS로 취업 희망자의 성향을 파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이들 중 3분의 1이 약간 넘는 수치인 35%가 SNS 때문에 채용 심사에서 탈락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웹 발달이 기억의 문신으로 작용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기업뿐만 아니라 누구나 쉽게 정보를 알아낼 수 있어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현대판 주홍글씨가 되고 있는 셈이다. 디지털 시대 ‘잊혀질 권리’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이유이다.

망각의 시대에서 완전 기억의 시대로
인쇄매체 시대에는 과거의 기사로 인해 피해를 입더라도 한시적이었다. 원래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어서, 떠들썩했던 사건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린다. 하지만 이제는 완전기억의 시대로 향하고 있다. 인터넷 사용이 일상화되고 검색엔진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이제는 필요에 따라 아주 오래된 정보를 끄집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연동형 정보 서비스가 증가하면서 언제 어디서나 개인 정보와 감성을 타인과 공유하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결국 자신의 정보마저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시대가 돼버린 것이다.

쇤베르거는 그의 저서 ‘잊혀질 권리’에서 디지털 기억의 시대를 실시간 감시건물인 ‘원형감옥’으로 비유하면서 새로운 권력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한 대안을 두 가지 제시했다. 첫째는 ‘디지털 금욕주의’이다. 개인들 모두 자발적으로 디지털 기기를 덜 사용해 본인의 정보가 공유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을 말한다. 둘째는 ‘정보만료일’ 제도 도입이다. 디지털기기에 정보만료일 코드를 포함하고 사용자들이 디지털 정보를 저장할 때 스스로 정보 수명 만료일을 지정해 자동적으로 폐기되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제안은 법적으로 강제할 방법도 없고, 구체적인 규범적 문제를 명확하게 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문제점이 있다.

‘잊혀질 권리’에 관한 서비스 산업 등장

대안 제시 노력이 이뤄지고는 있다. 먼저 정부의 노력이다. 가장 적극적인 노력을 보이고 있는 곳은 유럽연합(EU)이다. 지난 1월 유럽위원회는 ‘잊혀질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유럽정보보호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이용자는 자신과 관련된 인터넷 데이터를 공공기관과 서비스 사업자에게 요구할 수 있다. 만약 합법적 근거 없이 거부하게 된다면 거액의 벌금을 내야한다.
▲ 쇤베르거는 그의 저서 ‘잊혀질 권리’에서 디지털 기억의 시대를 실시간 감시건물인 ‘원형감옥’으로 비유하면서 새로운 권력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iini0318
‘잊혀질 권리’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개인정보 삭제나 평판관리 대행업체가 그것이다. 영국의 ‘평판24’는 개인정보를 삭제해 평판을 관리해준다. ‘레퓨테이션닷컴’은 평판을 관리해주는 ‘마이레퓨테이션’을 제공하고 있다.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어떤 정보를 얼마나 검색하는지를 알려주는 서비스이다. SNS 관계확대를 방지하는 서비스도 등장했다. ‘어보이드’라는 사이트에 접속하면 위치기반 서비스를 바탕으로 회피하고자 하는 사람을 걸러낸다. ‘웹 2.0 슈어사이드 머신’은 자살기계라는 이름에 걸맞게 SNS와 연결된 친구들과의 관계를 모두 끊고, 사용자의 이름, 사진 암호를 모두 교체하여 사용자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도록 만든다. 인터넷 인생을 마감해주는 디지털 장이사 업체도 활동하고 있다. ‘라이프슈어드 닷컴’은 회원들이 사후 자신의 인터넷 계정을 어떻게 처리할지 유언을 남긴다. 그리고 회원 사망이 정부에 신고 되면 운영진은 회원이 생전에 요청한 대로 인터넷에서의 모든 흔적을 삭제해주는 일을 대행한다.

‘잊혀질 권리’는 사회적 문제와 충돌 현상이 나타나
‘잊혀질 권리’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2009년 독일에서 범죄자들이 위키피디아를 상대로 자신들의 이름을 삭제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한 일이다. 2011년 초에도 스페인에서 소송을 진행 중인 당사자가 구글에 자신에게 불리하게 게재된 뉴스기사 링크 삭제를 요청하는 일이 발생했다. 대중들의 알 권리와 충돌하고 있는 셈이다.

굳이 외국사례를 들지 않아도 된다. 요즘 늘어나는 성범죄. 특히 어린이 성범죄가 사회문제로 크게 부각되는 상황에서 이들이 ‘잊혀질 권리’를 이용해 정보 삭제를 요청하는 현상이 나올 수 있다. 사회문제를 고발하는 일이 힘들어질 수 있다. 설사 그렇게 되더라도 후손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울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친일인명사전도 한 일례이다. 후손들이 ‘잊혀질 권리’를 내세워 폐기 소송을 내게 되면 우리는 역사를 재조명하는 일을 할 수 없다.

‘완전한 기억’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웹 발달의 결과물이다. 분명 득과 실은 존재한다.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하는 시점이다. 사회적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김연희 객원기자 | iini0318@hanmail.net

저작권자 2012.09.2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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