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8일 화요일

그들은 무엇을 생각하며 지낼까?

그들은 무엇을 생각하며 지낼까?

다중살인마의 심리를 해부한다(3)

 
반사회적 인격장애자(사이코 패스)들은 소위 말하는 미친 사람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지나칠 정도로 이성적이라서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 다만 다른 사람의 고통에 무감각하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이성, 철면피다. 그야말로 후흑(厚黑)이다.

반사회적 인격장애자, 배트맨 영화의 조커와 닮아
그들은 배트맨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와 비슷하다. 아니, 그들은 조커를 닮고 싶어한다. 영화를 통해 보여지는 의상과 과장된 언어만 제외하면 말이다.

이 영화는 고담(Gotham)시에서 조커가 백주대낮에 갱단이 소유하고 있는 은행을 털면서 시작된다. 치밀한 계획 하에 자신이 고용한 건달들을 차례차례 죽인 조커는 혼자서 모든 돈을 챙긴 채 유유히 사라져 버린다.
▲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로 활약하고 있는 배우 히스 레저의 모습 ⓒ위키피디아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주인공 배트맨은 정의를 위해 싸우는 영웅인 동시에 한편으론 법의 테두리 안에서 그는 합법적인 심판 기관이 아니기에 자기 스스로의 판단으로 범죄자를 심판하는 행위를 결코 정당화하지 못하는, 양면성을 가진 어둠의 기사이다.

‘다크 나이트’에서 절대적 악을 상징하는 조커는 선을 수호하는 배트맨으로 인해 탄생한 자다. 법의 테두리가 악으로부터 선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등장한 배트맨은 이것이 더 강한 악을 불러온다는 세상의 아이러니를 설명해 준다.

사이코 패스는 재미로, 정신병 환자는 고통을 끝내려고 살인
심한 정신병 환자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자와 다르다.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는 재미로 살인을 행한다. 그러나 정신병 환자는 자신의 고통을 끝내려 살인을 저지른다. 이들의 괴로움은 겉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대부분 알 수가 있다.

뉴스위크의 보도에 따르면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동사건의 주인공 조승희의 추락과정은 상세히 나타난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중학교 2학년 사이, 살인관념을 갖게 된다. 병적일 정도의 수줍음과 고립에서부터 기숙사 여학생 스토킹에 이르기까지, 10여 페이지에 달하는 여러 가지 추락과정이 나열돼 있다.

영문학을 전공한 조승희는 문학창작 시간에 기괴하고 분노에 찬 희곡을 썼다. 그러나 그는 교수와 학생들에게 희곡에 대한 설명을 거부했다. 총기 난동사건 이후, 이른바 '캠퍼스 학살' 예고편이라고 할 수 있는 희곡이 발견됐다.

조승희가 작성한 희곡 중에서는 ‘리처드 맥비프(Richard McBeef)’, ‘브라운스톤씨(Mr. Brownstone)’ 등이 있었다. 이 희곡은 태반이 욕설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상대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악을 쓰는 내용이 많았다.

"내가 당신 같은 대머리 뚱보 변태 계부한테 추행 당할 줄 알아? 당신은 우리 엄마 바지 속에 들어가려고 우리 아빠를 살해했고, 그걸 은폐했어." "엉덩이에 리모컨을 확 쑤셔 박아 줄까 보다! 아니, 당신은 그럴 가치도 없어. 리모컨은 5달러짜리란 말이야." ‘리처드 맥비프'에서 13세 소년 존이 계부에게 한 말이다.

버지니아 공대 영문과에서 조승희를 지도한 니키 지오반니(Giovanni) 교수와 루신다 로이(Roy) 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조승희는 다른 학생과 교수들에게 두려움을 줬다"고 말했다.

"하루는 수강생 70명 중 7명이 결석해서, 학생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다들 '조승희가 겁나서 못 나오겠다'고 했다"라는 증언도 나왔다. 로이 교수는 조승희에게 상담을 받도록 권했지만, 조승희는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을 뿐 실제로 상담을 받지는 않았다고 한다.

속을 알 수 없는 ‘물음표 학생’
조승희는 학생들이 말을 걸어도 묵묵부답이어서 학교 내에서 속을 알 길 없는 '물음표 학생'이었다. 출석부에 이름 대신 물음표를 적어 넣는 바람에 '물음표 학생'으로 통했다는 후문도 있다. 그는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야구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시선 마주치기를 거부하며, 항상 입을 굳게 다물고 다녔다.

다른 학생들과 방을 공유하는 대학 기숙사 하퍼 홀에서 살았는데 조승희는 무슨 말을 걸어도 '응'이나 '아니'와 같이 한 단어로만 답했으며 거의 혼자 저녁을 먹었다고 한다. 사건 당일 아침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무표정했다고 한다.

조승희는 주변사람과 교류가 거의 없는 외톨이여서 수사기관과 학교당국은 그와 관련한 정보를 찾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같은 학교의 한국 학생들도 이구동성으로 "그는 한국 학생들의 모임에 거의 나오지 않았다. 그가 누구인지 잘 모른다"고 말해 상당히 고립된 생활을 해왔음을 시사했다.

그는 억눌린 자살욕구를 가졌다. 성격장애와 살인범에 대한 전문가인 마이클 스톤(Michael Stone) 박사는 이렇게 분석했다. "모욕 당하고, 굴욕을 느끼고, 화가 나는데, 대화의 기술도 모자란 사람이 극단에 몰리면 자살 시도에서 살인 시도로 옮겨 가게 된다. 총격사건 범인들의 궁극적 목표는 자살이다.”

그는 또한 '스승'을 찾으려고 했다. 조승희는 컬럼바인 총기 난사사건의 범인들을 ‘순교자’라고 표현했다. 그는 죽음 이후 자신의 생각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궁극적 승리'로 여겼다. 그는 영웅적인 과시욕도 있었다. 사건 당시 탄창이 주렁주렁 달린 조끼를 입고 있었다. 그가 직접 NBC에 보낸 사진에서 그는 야전용 나이프를 목에 갖다 대거나 망치를 들고 있었다.

너무나 침착하고 조직적인 범행
조승희는 전문킬러처럼 행동했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엄청난 양의 총탄을 퍼부으면서도 감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시종 침착하게 범행을 진행했다.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와 "안녕, 잘 지냈니?"라고 인사했으며 심지어 "미소를 띠고 있었다"라는 증언도 많았다. 그는 정신병 환자이면서도 매우 조직적이고 계산적으로 행동했다. 뭘 하고 싶은지 너무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사건 당시 수사기관은 치정에 의한 살인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서 한 여성을 스토킹할 정도로 좋아했는데, 프로포즈를 거절당하자 홧김에 난사한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이 판단은 착오였다. 그는 세상을 증오했다.

"너 때문에 이 일을 저질렀다" 여기에서 ‘너’는 여자친구가 아니라 세상이었다. 그는 메르세데스 벤츠 고급 승용차, 금 목걸이, 보드카 등을 언급하며 쾌락주의에 빠진 사람들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버지니아대 상담심리학자 듀이 코넬은 "이들은 자신이 상상한 타인의 모습과 실제 모습, 자신이 원하는 대우와 실제 받는 대우의 차이 같은 것을 통해 계속해서 우울감과 분노를 증폭시킨다. 결국, 자신과 타인, 세상을 한번에 끝장내려 하는 심리 상태에 빠진다"라고 분석했다.


김형근 객원기자 | hgkim54@naver.com

저작권자 2012.09.1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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