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0일 목요일

유화물감을 도입한 최초의 화가

유화물감을 도입한 최초의 화가

안토넬로 다 메시나 ‘서재의 성 예로니모’

 
불포화 지방산은 녹는점이 낮아 상온에서는 액체를 유지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불포화가 가교 역할을 해 단단한 막이 형성된다. 이를 이용한 것이 유화물감이다. 북유럽 화가 반 에이크에 의해 발명된 유화물감으로 화가들은 사물을 정교하게 묘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유화물감이 처음으로 발명됐을 당시 효과를 확신하지 못했던 대부분의 화가들은 여전히 달걀 노란자를 이용해 템페라로 그림을 그렸다. 모험을 하기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서 최초로 반 에이크가 완성한 페인팅 기법을 도입해 사물을 세밀하게 묘사한 화가가 바로 메시나다. (반 에이크가 완성한 유화 기법이란 페이팅 오일로 얇고 투명하게 덧칠 한 다음 그 위에 세밀하게 묘사하는 방식이다.)
▲ <서재의 성 예로니모>-1475년, 참나무 목판에 유채, 런던 내셔널 갤러리

메시나는 유화 기법을 도입해 '서재의 성 예로니모'를 완성시켰다. 유화기법을 도입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작품의 뛰어난 세부 묘사가 이를 증명한다.

성인 예로니모는 4~5세기에 활동했던 인물로, 그리스어, 히브리어, 라틴어를 통달했을 정도로 학식이 뛰어났다. 366년에 세례를 받은 예로니모는 교황 디마수스 1세의 특별 비서관으로 일하던 중 교황의 지시로 히브리 성서를 라틴어로 번역하는 일을 맡았다. 그 이후 예로니모가 번역한 불가타 번역본은 수세기 동안 가톨릭교회에서 공식 성경으로 사용됐다.

작품 속의 성 예로니모는 수도원에 있는 개인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다. 옆에 있는 책장 상단에는 금박으로 장식된 책이 꽂혀져 있으며 하단에는 펼쳐진 책과 상자 그리고 도자기가 놓여 있다.

예로니모가 앉아 있는 뒤쪽 긴 의자에 추기경의 붉은색 모자가 놓여 있으며 서재 입구에는 자고새와 공작새가 앉아 있다. 멀리 수도원 창으로 보이는 바깥 하늘에는 새들이 날고 있다.

예로니모가 입고 있는 붉은색 옷은 추기경을 의미하지만, 당시 추기경이라는 직함은 없었다. 중세 때 특별 보좌관을 추기경으로 잘못 해석해서 발생한 일이다. 읽고 있는 책은 예로니모의 주석서와 번역한 성서다.

하단의 자고새는 진리를, 공작새는 불멸을 상징한다. 자고새는 어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고 해서 진리를, 공작새는 몸체가 부패하지 않는다는 믿음에서 불멸을 상징한다. 정밀하게 묘사된 자고새와 공작새가 메시나의 유화기법 도입을 의미하고 있다.

화면 오른쪽 건물 기둥 사이 어두운 복도에 사자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다. '황금 전설'에 따르면 예로니모가 베들레헴 수도원에서 생활하고 있을 때, 사자 한 마리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나타났다고 한다.

그는 수사들을 시켜 사자의 발을 씻기고 발에 박힌 가시를 빼 주라고 지시했고, 사자는 그 이후 항상 예로니모와 동행했다. 이 작품에서 사자는 성인 예로니모를 상징하는 동물로 야성을 극복하는 힘을 나타낸다.

안토넬로 다 메시나(1430~1479)는 성서의 내용을 충실하게 묘사하면서도 고향의 정서를 녹여냈다. 건물은 원근법을 보여주기 위해 후기 고딕 양식으로 그렸지만 바닥의 타일은 시칠리아에 살던 스페인 이주민들이 사용했던 것이다.

메시나는 유화기법뿐만 아니라 네덜란드 화가들이 주로 쓰던 수학적인 정밀함에 기초한 원근법을 사용해 이 작품을 제작했는데,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건축물 대부분을 그림자로 처리했으며 건축물 상단에 창문을 배치함으로서 빛이 주변 공간을 비추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박희숙 서양화가, 미술칼럼니스트

저작권자 2012.09.20 ⓒ ScienceTimes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