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가해학생을 위한 힐링
통합예술적 치유, 문제를 해답으로
경기도 광주시 소재 ‘보람의 집’에 11명의 학생이 모였다. “청소년 힐링캠프”에 참가하기 위한 것.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주최하고, 한국과학창의재단과 서강대학교가 주관하는 이 캠프는 청소년기에 겪는 좌절을 회복하고 학교생활의 원만한 적응을 돕기 위해 기획됐으며, 특별히 통합 예술적 관점을 갖고 청소년 힐링을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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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월 13일부터 3박 4일간 진행된 청소년 힐링캠프. 중학교에 다니는 학교폭력 가해자를 대상으로 한 이번 캠프는 문학, 미술, 음악, 연기등 통합예술적으로 접근해 아이들의 몸과 마음 열기를 시도했다. ⓒ손은혜 |
캠프에 참가한 이들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로부터 출석정지 등 여러 번 징계 수준의 조치를 받은 경험이 있는 가해학생들로, 학교 교사와 부모 그리고 본인도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다. 캠프 1기로 선발된 11명의 앳된 아이들은 이번 캠프를 통해 세상을 향해 몸과 마음을 활짝 열어보기로 마음먹었다. 3박 4일간의 일정은 그렇게 시작됐다.
우리에게 자유를 허하라!
캠프 내 분위기는 상당히 자유로웠다. 하고 싶은 것을 말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된다. 단, 타인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는 안 되며, 자리 정돈하기 등 기본적인 규칙만 지킨다면 마음껏 자유를 누리는 데 있어 문제는 없었다.
힐링캠프는 마지막 날에 단막극 하나를 완성시킨다는 목표 아래 다양한 예술프로그램이 시간별로 주어졌으며, 이 프로그램은 각각의 단편적인 수업이 아닌 캠프 기간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예술을 지향하고 있다.
음악, 미술, 문학, 연극(연기)은 모두 단만극에 적용될 수 있는 요소이며, 통합적으로 예술프로그램을 운영하면 결과가 누적됨에 따라 하나의 작품을 쉽게 완성시킬 수 있어 더욱 효과적이다. 예술 활동은 세상을 비뚤게 바라봤던 아이들의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줬다.
조별로 진행된 연극 제작은 자율적으로 운영됐다. 주제를 선택하는 것, 그에 걸맞은 캐릭터 설정과 대본 구성, 함께 모여 연기 연습을 하는 것까지 캠프장에 모인 11명의 공동작품이었다. 자신의 삶을 연극대본으로 맞춰보면서 아이들도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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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으로 긍정적인 것들을 표현해보라는 미션을 수행한 아이들 ⓒ손은혜 |
미술 치료 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제일 행복했던 기억이 뭐니?”
“병원이요. 병원에 가면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잖아요.”
긍정을 의미하는 어떤 것이든 그려보자는 선생님의 제안에 아이들은 외설적인 단어들만 줄줄이 나열했다. 진지한 분위기가 어색했던지 바닥에 등을 대고 발라당 누워 선생님을 쳐다보지 않는 아이들, 하나같이 따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멋드러진 캔버스 위에 끝내 작품을 완성하고선 서로의 작품에 이런 저런 평을 하며 분위기를 밝게 만드는 모습은 여느 장난끼 많은 아이들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부모도 힐링이 필요해
캠프 셋째 날, 학생들의 학부모들이 하나둘씩 모였다. 이번 캠프는 학생뿐만 아니라 보호자도 함께 캠프에 참여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아이들과의 소통문제를 전문가와 상담하는 시간을 마련해 주목을 받았다.
학부모 입소 첫날, 학교에서 강도 높은 징계까지 받은 자녀를 둔 입장에서 학부모들의 표정이 밝을 리 만무했다. 캠프장에서 하룻밤을 자녀와 함께 보내고, 마지막날 오전에는 학부모들만 한자리에 모였다.
김재근(수원북중 청소년 상담교사) 강사와 김윤수(사회통합치유센터장) 강사가 캠프장을 방문해 서로 소탈하게 속내를 털어놓는 시간을 가졌다. 부모들도 청소년 상담가와 함께 고민을 서로 공유하고, 자녀와 소통하는 법을 나누면서 엉켜버린 자녀와의 관계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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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예술극장. 이 곳은 3박 4일간 보람의 집을 비롯해 아이들이 캠프 활동을 했던 주요 공간을 제공했다. ⓒ전형석 |
"아이들을 문책하지 마세요. 묻지도 따지지도 마세요. 한 번은 저의 아들이 고등학생 때 담배를 피워서 담임 선생님께 불려간 적이 있습니다. 담임 선생님을 뵙고 아들을 찾으러 갔을까요? 아닙니다. 저는 선생님만 뵙고 그냥 돌아왔어요. 아들이 수업 후 집에 와도 흡연문제로 담임 선생님을 만나고 왔다는 얘기는 일절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평소처럼 지내는 거죠. 시간이 지나고 아들이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을 때 넌지시 물어봤죠. 아직도 담배를 피우냐고. 아들이 그러더군요. 끊었다고, 이제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김윤수 강사)
김재근 강사는 청소년을 힘이 약한 검투사에 비교했다. 교사와 본인은 원형경기장에 놓인 두 명의 검투사로,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은 교실 내 많은 친구들이라는 것.
힘이 쎈 검투사(교사)가 찌를 때마다 힘이 약한 본인은 거세게 반항하지 않을 경우 관중들 앞에서 창피함을 당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수많은 관중들 앞에서 초라해지기 싫기 때문에 더욱 거센 말과 행동을 하며 비뚤어진다는 논리다.
이어서 김재근 강사는 "내 마음을 타인이 100퍼센트 공감해 줄 수 없음을 아이들에게 인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타인은 내가 원하는 것과 똑같은 감정을 느낄 수 없다는 것. 그는 "서로 다름을 인정할 때, 행동의 변화가 점점 일어난다는 역설을 부모들이 경험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학교폭력 가해학생을 위한 힐링 프로그램은 크게 4단계로 구성된다. ▲1단계 참가학생 특성파악 ▲2단계 입소형 캠프 운영 ▲3단계 추수지도 및 심리행동변화 모니터링 ▲4단계 심화캠프.
11명의 1기 캠프참가자는 벌써 두 번째 단계를 마무리지었다. 이들은 11월에 추수지도 및 대학생 연계 멘토 활동을 경험하게 되며, 내년 1월에는 큰 연극무대 위에서 최종 발표회를 가질 예정이다.
예술프로그램 진행을 맡고 있는 이동일 서강대 교수는 "학교폭력 가해자를 대상으로 진행된 캠프는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에 최대한 조심히, 또 자유롭게 아이들을 존중하며 진행됐다. 아이들의 행동변화를 위해 심리검사, 예술적 치유활동 개발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수고를 해주고 있다"며 1년간 운영되는 캠프를 매번 영상으로 제작해 정형화된 매뉴얼을 만들 계획이라고 전했다.
저작권자 2012.09.18 ⓒ ScienceTim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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