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6일 목요일

농업에 부는 새로운 패러다임

농업에 부는 새로운 패러다임

분자육종, 분자농업 주목 받아

 
사이언스타임즈 라운지 약 1만년 전 지금의 터키 지역인 카라카닥 산 근처에는 인류의 역사를 바꿔놓은 한 명의 천재가 살고 있었다. 여성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 천재는 식물들이 자라서 열매를 맺고, 봄이면 다시 싹을 틔우는 현상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러다 생명이 움트는 비밀이 바로 씨앗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인류 최초로 씨앗을 심고 가꾸는 실험을 시작했다. 그 천재로 말미암아 인류는 더 이상 곡식과 열매를 찾아서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지 않게 됐고, 먹고도 남을 정도의 식량을 생산하는 ‘부 창출 시스템’을 개발하게 됐다.

그 후 신석기인들은 키우던 작물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다음해 종자로 쓰기 위해 먹지 않고 남겨 뒀다. 그것이 바로 더 우수한 품종을 만들어내는 육종(育種)의 시초였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육종기술도 덩달아 발달해 지난 200여 년간 인류는 거의 모든 작물의 토지 생산성을 5배 이상 증가시켰다.
▲ 최근 식물공장을 통해 생태계 교란 문제가 해결되면서 분자농업이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국립농업과학원의 식물공장에서 재배되고 있는 상추와 딸기. ⓒ연합뉴스

그런데 최근엔 일일이 교배하지 않고도 새로운 품종을 개발할 수 있는 ‘분자육종’이 등장했다. 한 품종이 가지는 장점 유전자를 유전공학과 분자표지 기술로 다른 품종에 삽입해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예를 들면 국산 고추는 역병에 약한 것이 흠인데, 선천적으로 역병에 강한 멕시코산 고추의 특정 유전자를 찾아내 역병에 강한 새로운 품종의 고추를 만들어내는 경우이다. 실제로 지난 2009년 국내의 한 중소기업은 이 기술을 개발해 네덜란드의 다국적 종자회사에 수출한 적이 있다.

분자육종을 이용하면 질병에 강한 품종은 물론 사막 같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재배할 수 있는 신품종 작물의 개발이 가능하다. 또 바이오에탄올의 원료인 녹말이 더 많이 함유된 밀이나 옥수수 등을 개발할 수 있다. 따라서 분자육종은 현 인류의 고민인 식량부족 문제와 에너지 고갈 위기의 해결책으로 떠오르고 있다.

식물을 의약품 생산공장으로 활용
분자육종과 더불어 농업의 새 트렌드로 주목 받고 있는 것이 ‘분자농업’이다. 분자농업이란 유전자조작을 통해 의학적으로 유용한 고부가가치 단백질과 산업적 가치가 있는 효소 등의 재조합 단백질 및 이차대사산물을 식물에서 대량 생산하는 산업을 말한다. 즉, 식물을 고부가가치의 의약품 생산공장으로 활용하는 셈이다.

기존 농업의 경우 작물 자체를 재배하는 데 반해 분자농업은 특정물질 재배에 그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이다. 또 기존의 유전자변형농산물(GMO)은 식물 자체의 생산성 및 기능성을 높인 데 반해, 분자농업은 식물을 이용해 다른 물질을 생산하는 개념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특정 단백질이나 백신 등의 유용물질을 생산하려면 미생물이나 동물세포를 배양하기 위한 대규모 공정투자가 필요하지만, 분자농업의 경우에는 유전자가 조작된 식물세포로부터 보다 저렴하게 원하는 물질들을 생산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진단시약의 일종인 아비딘(Avidin)의 경우 옥수수에서 생산하는 것이 계란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에 비해 생산단가가 10분의 1이나 절감된다.

또한 미생물이나 동물세포는 의약품 등의 생산과정에서 병원균 및 독성물질 오염의 문제가 있지만, 식물을 이용하는 분자농업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하지만 유전자조작 식물이 재배 과정에서 생태계에 퍼질 경우 생태계 교란 등의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산업화 사례는 미미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최근 도심이나 건물에서 재배하는 개념인 밀폐형 LED 식물공장을 통해 유전자조작 식물의 외부 유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산업화를 위한 활발한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는 주로 바이오의약품 생산에 활용되고 있으나 향후 화장품, 효소, 비타민 등 다양한 물질 생산에 적용할 수 있어 농가의 새로운 소득 창출을 기대할 수 있는 산업이다. 유럽연합 보고서에 의하면 2025년 분자농업 세계시장 규모가 약 100조 원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2025년 세계시장 규모 100조원
분자농업은 선진국에서도 비교적 최근에 연구가 시작돼 기술격차가 그리 크지 않은데, 국내에서도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 농림수산식품부의 ‘2012년도 농림수산식품 연구개발공모사업’에 전라북도기업인 ㈜엔비엠을 주관으로 하는 컨소시엄이 제출한 ‘분자농업의 산업기반 모델 구축 및 실증’ 과제가 최종 선정됐다는 것.

이 과제는 미래 핵심산업으로 부각되고 있는 분자농업의 산업기반 모델 구축 및 실증을 위한 테스트 베드를 확보하는 과제로, 5년간 국비 30억원을 포함하여 총 42억5천만원의 예산이 투자될 예정이라고 한다.

1937년 스탈린이 연해주 지역에 살고 있던 고려인들을 예고도 없이 중앙아시아의 허허벌판으로 강제이주 시켰을 때, 그들은 세간도 제대로 챙길 수 없었던 상황에서 곡식의 씨앗만은 가져갔다. 그 후 그들은 그 씨앗으로 불모지를 일궈 10년 내에 옥토로 만들었다.

과거 구소련에서는 근면하게 일한 사람에게 노력영웅 등의 칭호를 내려주는 제도가 있었는데, 구소련 전체를 통틀어 약 1천200명가량의 노력영웅이 배출됐다. 그런데 그중 750명이 고려인이었다는 사실은 우리 민족의 농업 기술력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거기에다 현재 세계적인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는 우리의 바이오기술 수준을 감안할 때 좁은 국토의 자원이 적은 우리나라에 분자농업과 분자육종 같은 농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또 하나의 좋은 기회임이 분명하다.


이성규 객원편집위원 | 2noel@paran.com

저작권자 2012.09.0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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