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링 100주년의 화학적 거세 논란
서진환 사건 이후 대상 확대 논의
사이언스타임즈
라운지 지난 7월 2일 스페인 말라가에서는 매우 특별한 연주회가 열렸다.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그날 연주한 곡들은 ‘이아모스’가
작곡한 작품이었다. 이아모스는 사람이 아니라 클래식 음악을 작곡하기 위해 스페인 말라가 대학 연구팀이 개발한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그 연주회는 영국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였다. 이처럼 튜링 탄생 100주년을 맞아 지금 세계 곳곳에서 컴퓨터공학과 관련된 컨퍼런스와 특별전 등이 열리고 있다.
영국 과학자들이 주도하는 ‘튜링 100주년 기념사업회’가 세계 18개국에서 기념행사를 열고 있으며, 특히 그가 몸담은 케임브리지대학과 맨체스터대학을 중심으로 기념 열기가 뜨겁다.
그 연주회는 영국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였다. 이처럼 튜링 탄생 100주년을 맞아 지금 세계 곳곳에서 컴퓨터공학과 관련된 컨퍼런스와 특별전 등이 열리고 있다.
영국 과학자들이 주도하는 ‘튜링 100주년 기념사업회’가 세계 18개국에서 기념행사를 열고 있으며, 특히 그가 몸담은 케임브리지대학과 맨체스터대학을 중심으로 기념 열기가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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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부 성폭행 살인범 서진환이 현장검증에 응하고 있다. ⓒ연합뉴스 |
앨런 튜링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암호통신기 ‘에니그마’의 암호과 과정을 역추적할 수 있는 ‘봄베’라는 암호해독기를 개발했으며, 세계 최초의 연산 컴퓨터인 ‘콜로서스’를 만들었다.
흔히 ‘에니악’을 세계 최초의 컴퓨터로 알고 있는데, 사실은 튜링이 만든 콜로서스가 그보다 2년 먼저 개발된 것. 그러나 콜로서스는 군 작전에서의 암호 해독이란 비밀스런 임무 때문에 세계 최초의 컴퓨터란 영예를 얻지 못했다.
무엇보다 튜링의 가장 큰 업적은 현대 컴퓨터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인 ‘범용성’을 컴퓨터에 최초로 부여한 튜링머신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튜링머신이란 실제 기계가 아니라 수학 원리로 구성된 가상 기계인데, 튜링이 제안한 이 튜링머신 덕분에 프로그램 내장 방식의 현대 컴퓨터 원형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튜링 탄생 100주년을 바로 앞둔 작년 12월부터 온라인에서는 전 세계 네티즌들 사이에서 앨런 튜링에 대한 60년 전의 법원 판결을 사면하라는 전자사면청원서가 확산돼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도대체 일밖에 몰랐던 천재 수학자가 무슨 죄를 지었던 걸까.
화학적 거세를 택한 튜링의 비극
튜링은 42세 때인 1954년 6월 7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청산가리 음독으로 인한 자살로 알려져 있다. 그가 그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는 네티즌들이 사면 청원을 한 60년 전의 판결 때문이다.
당시 튜링은 남자를 사랑하는 동성애 성향을 지니고 있었는데, 1952년 동성애자 파트너가 자신의 집에서 도둑질한 것을 경찰에 신고하면서 동성애자임이 들통 나고 말았다. 그 당시엔 동성애자들을 대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아주 엄격할 때여서 법원에서는 튜링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고, 그는 구금형 대신 여성 호르몬 주사를 맞는 화학적 거세형을 선택했다.
그런데 지속적으로 투입된 여성 호르몬은 그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발기 불능과 중추 신경계 손상을 비롯해 젖가슴까지 부풀어 올랐던 것. 그 같은 신체 변화를 참을 수 없었던 튜링은 결국 죽음을 택하고 말았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화학적 거세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서진환이 성폭행 전력으로 전자발찌를 착용한 상태에서 주택에 침입해 주부를 살해한 사건이 발생한 이후 성범죄자에 대한 화학적 거세 방안이 다시 적극적으로 논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7월 ‘성폭력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화학적 거세가 법적으로 가능하다. 지난 5월 아동성폭행범에게 약물치료 3년이 내려지면서 첫 대상자가 나왔으며, 최근엔 성도착증 판정을 받은 30대 남성을 상대로 검찰이 화학적 거세를 법원에 청구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다시 화학적 거세가 도마에 오른 것은 현행 법률의 경우 16세 미만의 아동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19세 이상 성도착증 환자 및 재발 위험성이 있는 성폭행자, 2회 이상 아동 대상 성범죄자 등으로 대상이 한정돼 있을 뿐더러 상습 성폭행자라도 스스로 충동을 억제할 수 없다는 의학적 진단이 필수여야 하는 등 요건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와 국회 등에서는 화학적 거세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여론도 화학적 거세를 지지하는 쪽으로 기운다.
최근 한 취업포털이 직장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10명 중 9명이 우리나라의 성범죄 처벌 및 방지책이 느슨하다는 의견을 보였다. 또 한 포털회사가 지난 5월에 내려진 법무부의 아동성폭행범에 대한 화학적 거세 집행에 대한 찬반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72%가 당연한 처벌이라며 화학적 거세에 대해 긍정적 입장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화학적 거세를 반대하는 여론도 있어
화학적 거세란 남성 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이 나오는 고환을 자르는 물리적 거세와 달리 화학약물을 투입해 성충동을 억제하는 치료법이다.
대개 시상하부에서 뇌하수체를 거쳐 테스토스테론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끊거나 성선자극호르몬을 투입해 테스토스테론을 일시적으로 과도하게 분비하도록 해 이에 놀란 뇌하수체가 테스토스테론 분비를 막는 방법을 사용한다. 또 튜링의 경우처럼 여성 호르몬을 투입해 남성 호르몬 분비를 억제하는 방법도 사용된다.
성범죄 방지책으로서 화학적 거세가 주목받는 이유는 효과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미국 오리건주에서 가석방된 성범죄자 134명 가운데 약물 치료를 받은 사람의 경우 재범자가 없었지만, 화학적 거세에 불응한 성범죄자의 재범률은 20%에 가까운 것으로 조사됐다.
독일에서도 화학적 거세를 받은 성범죄 전과자의 경우 성범죄 재범률이 3%에 그친 반면 받지 않은 성범죄자들의 경우 46%가 다시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연구결과가 나온 바 있다.
하지만 화학적 거세를 반대하는 여론도 만만찮다. 성선자극호르몬을 투입할 경우 안면홍조, 골다공증과 같은 부작용을 겪을 수 있으며, 지속적인 여성 호르몬의 투입은 가슴을 나오게 하고 목소리가 얇아지는 등의 신체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튜링의 사례를 보더라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사항이다.
또 화학적 거세의 효과는 치료가 진행되는 동안에만 지속될 뿐이고 주사를 맞지 않으면 원래대로 복구된다는 문제점이 있다. 게다가 상당수의 성범죄는 스스로에 대한 불만이나 소외감의 표출로 인해 일어나므로 화학적 거세를 통해 성욕을 억제하더라도 성범죄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즉, 현재 화학적 거세는 인권과 강력한 재범 방지책이라는 두 가지 가치의 충돌 속에서 논란을 빚고 있는 셈이다.
배리 쿠퍼 '튜링 100주년 기념사업회장'은 튜링을 가리켜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법과 행하는 방법을 바꿔 놓은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만큼 튜링은 뛰어난 과학자였으며,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업적을 남겼다.
만약 튜링이 그렇게 죽지 않았다면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매우 새로운 개념의 화학적 거세법을 내놓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저작권자 2012.08.30 ⓒ ScienceTim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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