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BEST SF 작가 10인, 김보영(3)
새로운 세계 창조는 과학소설의 도전
한국SF를 찾아서 김보영의 단편 <땅 밑에>는 과학소설이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 중 하나인 거대 인공구조물에 대한 작가 나름의 변주(變奏)다. 로벗 앤슨 하인라인(Robert Anson Heinlein)의 장편 <우주의 고아들 Orphans of the Sky; 1963년>에 나오는 우주의 거대한 방주, 이른바 ‘세대우주선(Generation Spaceship)’처럼, 김보영의 <땅 밑에>는 실상은 우주공간의 인공거주지이지만 워낙 크기가 거대한 독립 생태계인지라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세계가 천혜의 자연환경이라 여기며 살아온 사람들이 어느 날 진실 앞에서 인식의 전환에 직면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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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대우주선은 너무나 클 경우, 그곳에 사는 후손들이 자신들이 이제껏 인공거주지에 살고 있었다는 자각을 하지 못할 수 있음을 하인라인의 <우주의 고아>가 처음 선보였다. ⓒPanther Books |
이러한 인식의 갭은 주로 선주민들의 지식이 수백 년 혹은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르는 사이 이런저런 이유로 후손에게 올바로 전달되지 못한 까닭에 발생한다. 그 결과 자급자족이 웬만큼 가능한 폐쇄형 인공거주지 안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은 그곳이 세상의 전부인 줄로만 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B급 과학소설 <파피용>도 이러한 범주에 속한다.)
험준한 산을 오르는 등반가들은 아무리 위험이 따라도 “산이 거기에 있기에 나는 간다”는 논리 아닌 논리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듯, <땅 밑에>의 주인공 또한 단지 땅 밑을 내려가고픈 욕망을 병적으로 주체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의 이러한 강박관념에 영향을 주는 신화가 하나 있으니, 땅 저 밑에는 지신(地神)이 존재하며 심지어 그를 본 목격자도 있다는 소문이다.
지하 깊숙한 곳에서 뭔가 초자연적인 것을 만나는 이야기는 폴 F. 에른스트(Paul F. Ernst; 1899~1985)의 중편 <작은 거인 The Microscopic Giants>1) 같은 소설에서 뿐 아니라 남미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 지구 내부로 끝없이 이어진 지하 동굴들이 무수히 존재하며 이것들이 얼키설키 연결되어 있다는 1970~1980년대에 유행했던 일부 탐험가들의 주장을 떠올리게 한다.
지구공동설과 연계된 이 가설에 따르면, 이 동굴들은 단순 천연 동굴이라 보기에는 너무 길고 복잡한 미로가 하염없이 아래로 이어지고 있으며 가로 막고 있는 지하수가 아니라면 정말 지구의 공동(空洞)까지 다다를 수 있다고 한다. 지구 공동의 안쪽 지표(地表)에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인간들이 중심 태양의 빛을 쬐며 살고 있다는 지구공동설에 따르면, 머나먼 고대에는 지구 지각의 안과 밖이 복잡한 동굴들로 연결되어 있었다.2)
여기서 땅 밑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지하 동굴 망(網)이 정말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는 필자의 관심사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작가 김보영이 세대우주선 개념과 위의 지하 동굴 가설을 접목하여 우리의 기존인식이 얼마나 튼실한지 의심해보는, 흥미로운 사고실험을 선보인다는 점이다.
이른바 ‘하강자’라 불리는 지하 동굴 탐사전문가인 주인공은 동료의 만류를 뿌리치고 한없이 지하의 틈새를 찾아 내려가다 우연히 온통 금속으로 벽을 마감한 통로를 발견한다. 며칠 동안 거의 수직으로 내려와야 하는 깊은 땅속에서 고도의 제련기술을 보유한 문명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금속제 유적을 발견한 주인공은 어렸을 적 들은 전설이 그냥 전설만은 아닐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 어렸을 때, 인류가 다른 세계에서 왔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먼 옛날 인류가 전쟁이나 재해를 피해 어딘가에서 이곳으로 이주해왔고 몇 번의 천재지변 이후로 모든 역사를 잊어버렸다는 식의 이야기. --- <땅 밑에>, <얼터너티브 드림>에 수록, 2007년, 121쪽 |
기력이 쇠진해 정신을 잃은 주인공 앞에 마침내 오매불망하던 지신(地神) 또는 지사(地使)로 추정되는 인물이 나타난다. 지신은 아래편 세상의 사정을 묻는다. 왜 그토록 오랫동안 사람들이 방문하지 않았느냐고. 왜 승강기나 탈것 대신 그 먼 길을 걸어 내려오는 수고를 했느냐고.
대체 왜 내가 아래에서 왔다고 말하느냐는 주인공의 물음에 지신은 사실 우주에서 그러한 잣대는 생각하기 나름이라 답한다. 실상을 알고 보면 지신은 이 폐쇄생태계 전체를 실질적으로 수천 년간 묵묵히 총괄해온 중앙컴퓨터가 인격화한 모습이었다. 놀라운 진실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에게 지신은 증거를 보여주겠다며 둘이 있던 공간의 불을 끈다.
그제야 한쪽 벽이 창문이었음을 알게 된다. 생전 처음 보는 광대한 어둠. 그 속에 무수히 많은 별들이 빛을 발한다. 별들 그리고 발 아래 보이는 둥근 지구. 진정한 고향은 바로 저 아래였다. 이윽고 주인공은 이제까지 살아온 세계가 불완전하며 왜 자신이 그토록 아래로 내려오고 싶어했는지 어렴풋이 깨닫는다. 그는 아서 C. 클락(Arthur C. Clarke)의 장편 <도시와 별 The City and the Stars; 1956년>3)의 주인공 앨빈처럼 지하세계와 잊혀진 바깥 세계를 연결해주는 각성장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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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다? 인식의 대전환을 보여주는 김보영의 <땅밑에> ⓒefremov |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올라가(혹은 내려가) 이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겠다고 다짐하는 그의 머리 속에 이제까지 당연하게 여겨온 세계에 대한 올바른 상(像)이 다시 재구성되기 시작한다.
| 망원경이 발명된 뒤 사람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너머로 본 것은 반대편의 지상이었다. 뒤집어진 땅이 우리의 머리 위에 놓여 있었고 사람들이 그곳에 뒤집어져 살고 있었다. 그곳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머리 위에 거꾸로 매달려 살고 있는 우리들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 세상은 위를 향해 곡선을 그리며 휘어져 있고 우리는 그 내벽에 붙어살고 있다는 것을. 하늘이란 단지 땅과 땅 사이에 놓인 텅 빈 공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원기둥 모양이며 가운데 축을 중심으로 4분에 한 번씩 회전한다. 세상이 그렇게 빨리 회전하는 이유를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어쨌든 그 덕분에 사람은 땅에서 떨어지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이다. 지하로 내려갈수록 중력이 커지는 이유도, 회전축으로 멀어져 감에 따라 원심력이 점점 커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의 모습이다. --- <땅 밑에>, <얼터너티브 드림>에 수록, 2007년, 127쪽 |
온전히 지키지 않는 지식은 전설이 되고 신화가 된다. <땅 밑에>는 세대우주선 이야기의 변종으로서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해온 통찰이 근본토대부터 어긋나 있는 부분은 혹시 없는지 묻는다. 만일 그렇다면 당신은 ‘하강자’가 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일반적으로 과학소설에서 높이 평가하는 것 중 하나가 인식의 대전환과 관련된 이야기 플롯이다.
일종의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전환이라 할 만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인간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과학소설은 이와 관련된 문제 제기를 즐기며 이를 위해 작가 특유의 새로운 세계(물리적 시공간)를 창조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예컨대 <땅 밑에>의 주인공은 그 폐쇄공동체의 주민들 가운데 최초로 광대한 우주에 깨알같이 박혀 있는 별들과 지구를 내려다보며 넋이 나간다. 마치 태양이 5개인 세상에서 살다보니 밤이 천 년 만에 단 하루 찾아오는 날, 밤하늘의 총총한 별들을 보고 경악하는 사람들처럼 말이다.(아이작 아시모프의 <전설의 밤 Nightfall> 참조)
과학소설은 개인의 애정행각이나 신기한 모험보다는 세상과 사회를 바라보는 인식의 틀을 수정하거나 심지어는 전면 부정함으로써 변증법적인 새로운 통찰을 끌어낼 때 그 잠재력이 한층 배가되는 문학 장르다. 작가 김보영의 <땅 밑에>는 비록 단편이지만, 신천지의 경이를 발견하는 영예를 남들에게 빼앗기기 싫어하는 프로 탐험가의 내면심리와 경이로운 세계의 발견을 통한 인식의 대전환을 자연스레 맞물리는 데 성공한다.
| 1) 지하 2천 미터 깊이의 구리광산에서 광부들이 60cm 신장의 난장이 지하인간들과 조우한다. 웰즈의 <타임머신>에 등장하는 몰록 종족처럼, 수백만 년 전 인류의 한 갈래가 지하생활에 익숙해진 나머지 진화를 거듭하여 생겨난 이 난장이 종족은 지하의 높은 압력과 열에도 견딜 수 있을 뿐 아니라 흙과 바위를 마치 물속을 헤엄치듯 투과하는 신체를 갖게 된다. 양자는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오랜 세월을 지내왔지만 이제 그 금단의 벽이 허물어진 이상 엎질러진 물을 되담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총알 같은 단단한 물질조차 간단히 지나쳐버리는 특유의 원자배열 구조로 육신을 진화시킨 난장이 종족에게 인류는 무엇으로 대항할 수 있을까? 러브크래프트와는 또 다른 갈래의 공포과학소설을 시도한 에른스트의 <작은 거인>은 섣부른 결말을 내리는 대신 나머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 2) 지구공동설에 따르면 지구 내부는 두께가 약 30여 킬로미터인 지각을 지나면 텅 비어 있으며 현대 물리학에서 핵이 있다고 추정하는 지구 중심에 또 다른 작은 태양이 있다고 주장한다. 3) 핵전쟁을 피해 생존자들이 지하도시에서 페쇄형 자족사회를 이루며 살아온 지 오래된 가운데, 앨빈은 바깥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버리지 못해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탈법까지 해가면서 지상으로 나가는 길을 찾는다. |
저작권자 2012.08.24 ⓒ ScienceTim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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