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아는 미디어아트
‘21세기의 물감’ 미디어아트 ①
국내에서 백남준의 예술로 이름을 알리며 대중들에게 다가온 미디어아트가 보다 많은 관(람)객들에게 노크를 하고 있다.
미디어아트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대중매체를 미술에 도입한, 이름 그대로 ‘매체예술’로 불리곤 한다. 매체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종류도 변모해왔다. 백남준이 활동했던 시대에는 TV였고, 지금의 작가들이 활동하는 시기에는 TV를 넘어선 무한한 이미지와 영상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다.
미디어아트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대중매체를 미술에 도입한, 이름 그대로 ‘매체예술’로 불리곤 한다. 매체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종류도 변모해왔다. 백남준이 활동했던 시대에는 TV였고, 지금의 작가들이 활동하는 시기에는 TV를 넘어선 무한한 이미지와 영상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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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남준의 '삼원소' ⓒ백남준 스튜디오 |
세계사적으로 봤을 때 미디어아트는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 이후 대중매체의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며 더욱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본 예술의 특성상 경계를 가로지르는 특정한 범주가 없다는 점에서, 여기에는 거리미술과 사운드아트 등이 모두 포괄된다.
초기 미디어아트 작품들은 대중화와 산업화의 중심에 선 대중매체를 활용하면서 대중매체를 통해 권력이 집중되고 여론이 조작되는 사회현상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았다. 백남준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바로 그러한 작품이며, 이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빅브러더가 그렇듯이 TV를 권력 집중화 수단으로 사용하는 기득권에 대한 조소처럼 해석됐다.
미디어아트, 인터랙션의 예술
미디어아트에 대해 관심이 있어 이책 저책 찾아본 사람이라면 대부분의 관련 서적들이 미디어아티스트의 작품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그만큼 미디어아트의 범주가 하나의 경계 안에서 설명할 수 있는 틀을 벗어났음을 의미한다. 또 그것이 바로 미디어아트다.
백남준 시대에는 TV라는 미디어가 가장 압도적이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TV를 대체하는 다양한 미디어가 존재하고 있으며, 그 다양성이 증가할수록 이를 이용한 작가들의 작품세계도 더욱 다양하게 포진될 것이다.
현대 미디어아트의 기본을 이루는 개념은 바로 ‘디지털’이다. 이는 시대의 흐름과 맥을 같이하는데, 우리 사회의 매체 대부분이 디지털로 존재하므로 미디어아티스트들의 작품 역시 디지털의 개념을 도입하게 된 것이다.
아날로그 방식에서 디지털 방식으로의 변화는 작가들의 작품세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선형이 아닌 비선형 방식의 구현이 가능해지면서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세계를 관람객과 아주 빠른 시간 안에 교류할 수 있게 됐다. 이것이 바로 인터랙티브(interactive)로, 이는 전통예술과 비교할 때 미디어아트가 지닌 특성 중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부분이다.
관람객과의 소통을 통해 작품이 의미를 갖는다는 것은 관람객이 없는 미디어아트 작품은 ‘미완성’ 상태라고 역추론 할 수 있다. 관람객에 의해 비로소 작품이 완결된다는 의미다. 이는 같은 작품일지라도 관객 개개인에 따라 다른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것으로 상호작용의 특성을 지닌 미디어아트의 가장 대표적 모습이다.
미디어아트는 또한 비결정적 특성을 갖는다. 같은 입력을 넣어도 그 결과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대목에는 다소의 이견이 있다. 미디어아트가 이미 기술의 틀 안에 존재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다. 박영욱 교수는 자신의 책 <미디어아트는 X예술이다>를 통해 “미디어아트는 테크놀로지에 바탕을 둔다는 점에서 기술결정론에서 벗어날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갖게 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미디어아트의 상호작용은 다양한 형태로 구현된다. 관람객이 앞에 서 있으면 나이와 성별 등을 인식해 맞춤형 동영상 콘텐츠를 제공한다든가, 관람객의 손동작에 따라 꽃이 피거나 물고기가 떼를 지어 움직이는 것이다. 또한 테이블에 그림을 그리면 눈앞에 그림의 형체가 나타나는 등 많은 미디어아트 작품들이 관람객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오감을 자극하다
미디어아트의 또 한 가지 특징을 언급하자면 회화 작품이 시각에만 자극을 준 것과 달리 사람의 감각 전부에 자극을 가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아날로그 방식과 디지털 방식의 가장 큰 차이이기도 하다. 아날로그 미디어에서 디지털 미디어로의 전환은 많은 영역에서 보다 다양한 변화를 일으켰다. 그중 하나가 감각 자극의 다변화로 시각과 청각을 넘어 촉각, 후각, 미각 등 사람의 신경계통이 느낄 수 있는 모든 면을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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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아바타'의 한 장면. 4D를 이용해 관람객들의 감각을 자극했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
정동암 교수는 자신의 책 <미디어 아트, 디지털의 유혹>에서 “미디어아트는 오감의 감각을 요한다”고 언급했다. 새로운 예술은 그것에 필요한 숨겨진 감각을 일깨우고 인간의 감각 비율 혹은 감각 균형을 바꾼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미디어가 통합된 메시지를 쏟아내는 동안 우리의 감각도 통합적으로 발전한다. 이른바 멀티미디어 인간이 탄생한다”며 “미디어가 쏟아내는 문자와 이미지와 소리는 우리 지각과 순환하며 끊임없이 우리를 변모시킨다”고 이야기한다.
사물을 보고 받아들이는 과정의 지각 재편이 일어나는 것이다. 사실 이는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나올 다양한 분석 중 하나와 거의 흡사하다. 모든 감각을 동원해 작품을 인식하는 것이다. 가장 쉽게는 영화를 예로 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영화가 미디어아트와 완전히 일치하는 장르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미디어아트가 영화적 상상과 기법에 닮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비유도 크게 어긋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동안 2차원적인 영화를 즐겼던 사람들은 이제 3D 영화로 보다 입체적인 영상을 접할 수 있게 됐다. 한 예로 2009년 최동훈 감독의 작품 <전우치>는 4D로 관객들과 만났다. 이는 기존 3D 영화를 넘어 움직이는 의자와 호스를 통해 물까지 ‘발사’하며 관객들의 다양한 감각을 자극하고자 했다. 뿐만 아니라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아바타> 역시 4D로 출시, 바람과 향기와 진동, 수증기 등을 동원해 보다 실제 같은 영화로 관객들과 조우했다.
미디어아트의 감각과 관련해, 정동암 교수는 자신의 책에서 “미디어 예술은 새로운 감각을 지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일깨운다. 작품을 보고 듣고 만지는 것은 숨겨진 지각의 본모습을 깨닫는 과정”이라고 언급했다. 미디어아트 작품을 통해 인간이 작품 혹은 현상을 지각하는 과정이 더욱 본질에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가상현실을 파악할 수 있으며 리얼리티의 시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디지털 코드의 등장은 리얼리티의 전조를 알려주는 서막이 아니었던가.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 시대에, 많은 작가들은 더 많은 상상을 꿈꾸고 있다. 자신의 작품세계를 매개하는 미디어의 ‘능력’이 신장했으니 상상했던 것들을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 역시 확대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면, 더욱 새롭고 상상력 저편의 새로움을 구현한 작품만이 관객의 공감 혹은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과제 아닌 과제 역시 떠안게 된 셈이다. 이미 자극의 포화상태에 찬 관객의 공명을 울리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게 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한마디를 덧붙인다. “미디어아트는 확실히 현대인들의 오감의 감각 다발을 모아 쥐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 표현할지 그것에 대한 방법론은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 무엇을 어떻게 작동하게 할지 그것은 전적으로 예술가의 몫이다”라고.
앞으로 구현되는 미디어아트의 경계는 더욱 확장될 것이다. 이미 ‘필름메이커’라는 이름으로 작가들은 감독자와 예술가의 중간 위치에서 역할하고 있다. 어찌 보면 미디어아트는 이름 그대로 매개체만을 정의할 수 있을 뿐, 그 어떤 방식과 방향도 정의내릴 수 없는 장르인지도 모른다. 앞으로 더 다양한, 그리고 새로운 미디어아트의 미래를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2012.08.21 ⓒ ScienceTim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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