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17일 금요일

‘표준’을 만드는 게 뭐죠?

“여러분, 옛날 조선시대에 암행어사가 왜 놋쇠로 만든 자를 갖고 다녔을까요?”
“마을마다 단위가 다를 수 있으니까 그걸 맞춰보려고요!”
“세금을 걷는 사람이 표준대로 걷는지 아닌지 알아보려고요”

비가 오락가락 하던 지난 8월 13일, 표준연구원에서는 조선시대 자의 역할에 대해 묻는 선생님의 질문에 참가 학생들이 저마다 손을 들며 대답을 하기 바빴다. 궂은 날씨에도 과학의 꿈을 안고 주니어닥터 강의에 참가한 학생들은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설명해주는 ‘표준 놀이’에 이미 흠뻑 빠져 있었다.
▲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진행한 수업에 많은 학생들이 참여했다. ⓒ황정은

표준과학연구원은 이름 그대로 표준을 연구하고 보급하는 기관이다. 길이와 무게, 부피 등에 대해 표준이 되는 단위를 연구하는 것이다. 이곳을 처음 찾는 학생들은 표준을 연구한다는 것에 대해 궁금증을 표하기도 한다. 생물을 연구한다든지, 약을 연구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표준을 연구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날 강의를 진행한 강혜영 연구원은 학생들에게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기관’으로 이해하면 더욱 쉽게 다가올 것”이라며 “우리는 보통 어떤 사물을 정확하게 봤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뇌가 종종 속는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이것을 바로 착시현상이라고 한다. 착시현상으로 인해 사물의 길이에 오차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단위가 존재하고 있으며, 이런 애매한 단위들을 정확하게 통일시켜주는 것이 바로 표준연구원이 하는 일”이라고 전했다.

표준은 현대뿐 아니라 역사 속에서 이미 다양하게 존재해왔다. 고대 이집트에는 ‘큐빗’이라는 단위로 사물의 길이를 측정, 이를 통해 피라미드를 정교하게 만들 수 있었다. 큐빗은 왕의 팔을 기준으로 만들어진다. 팔꿈치에서 가운데 손가락 끝까지의 길이를 기준으로 하는데, 이는 대략 17~21인치에 해당한다.

큐빗에 대해 강 연구원은 “하지만 이렇게 왕의 팔을 기준으로 단위를 만들다 보니 왕이 바뀌면 큐빗의 단위도 바뀌고, 자의 길이도 바뀌어 결국은 피라미드 크기도 바뀌게 될 수밖에 없다”며 고대 이집트 단위의 한계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멀게는 중국의 측경기와 조선 세종대왕 시대의 측우기와 해시계 등을, 가깝게는 지금의 음주 측정기와 속도 측정기 등을 예로 들어 측정과 단위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면서 학생들에게 표준의 개념을 심어줬다.

또한 사소해 보이지만 단위를 기록할 때 대문자와 소문자 중 무엇으로 써야 하는지를 언급하며 학생들이 놓치기 쉬운 부분까지 세세하게 짚어줬다.

물시계 만들어요
강의 이후에는 학생들의 흥미를 돋우는 물시계를 만드는 시간을 가졌다. 물시계는 물을 용매로 이용해 제작하는 것으로 학생들은 실습에 들어가기 전 전지의 원리부터 설명을 듣기 시작했다.

먼저 학생들이 알아야 할 원리는 ‘전지’에 대한 것이었다. 시계가 작동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시계 밥으로 불리는, 일명 건전지에 있으므로 이의 작동 원리를 아는 것이 막연한 실습보다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전지란 전지 내부에 들어 있는 화학물질의 화학에너지를 전기화학적 ‘산화-환원’ 반응에 의해 전기에너지로 변환하는 장치를 말한다. 음극으로 불리는 마이너스 극에서는 전자를 내보내면서 스스로 산화되는데, 이는 산화반응으로 불리곤 한다.

▲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진행한 수업에 참여한 한 학생이 물시계를 만들고 있다. ⓒ황정은
이때 생성된 전자는 외부 기구를 거쳐 양극, 즉 플러스극으로 이동하게 된다. 양극은 전자를 받아 자신은 환원되는 물질로 역할하며 양이온을 함께 받게 된다.

그렇다면 초기의 전지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볼타 전지와 다니엘 전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는데, 볼타 전지는 세계 최초의 전지로 1차전지라고 불린다. 한 번 쓰면 다시 충전할 수 없는 일회용 전지로, 음극에는 아연판이 양극에는 구리판이 있어 아연판의 전자가 구리판으로 이동하면서 수소이온에 전자를 제공해 수소기체가 발생한다. 시간이 지나면 기체가 포화상태가 돼 분극현상으로 전압이 낮아지게 된다.

다니엘 전지는 2차전지로, 음극에는 아연판이 양극에는 구리판이 있으며 염다리를 통해 전자를 주고받아 아연과 구리의 이온이 직접적 교류가 없어 분극현상이 발생하지 않으므로 재충전해 사용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강 연구원은 “마이너스 극인 아연판이 녹으면서 전자가 이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1차 전지의 경우 이것이 다 녹으면 다시 사용할 수가 없는 것”이라며 “아연판이 완전히 녹기 전에 이동한 전자가 수소이온과 붙어서 수소 기체로 올라가는데 한계가 있다. 수소 기체가 모두 가로막으면 더 이상 전기가 흐르지 않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날 강의를 들은 김강연(학익초, 6년) 학생은 “지난 번 학교 시험 때 미터(m)를 대문자로 적었다가 오답으로 처리돼서 왜 그런가 했는데, 오늘 그 이유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며 “조선시대의 암행어사가 갖고 다니던 자도 책에서 봤는데 오늘 다시 듣게 되니 반가웠다. 여러 가지로 모두 재미있었다”고 전했다.

자녀와 함께 온 배은영(유성구 상대동) 학부모는 “중학교 1학년 아이와 함께 왔는데 아이가 매우 재미있어 한다. 학부모인 내가 듣기에도 너무 어렵지도, 쉽지도 않게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강의가 이뤄져 매우 만족스럽다”고 언급했다.

이날 강의를 진행한 강혜영 연구원은 “학생도 그렇지만 함께 오는 학부모님들도 표준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자녀와 함께 온 부모님들께서도 강의를 들은 후 유익했다고 말하시는 분들이 더러 계시다”며 “현재 학생들은 초등학교 4학년부터 단위에 대해 많이 배운다. 따라서 이번 강의는 ‘여러 가지 단위가 있으니 지금부터 잘 지켰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시작하게 됐다”고 강의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어 강 연구원은 “강의에는 단위별로 만들기 과정이 있는데 이번에는 시간단위와 초단위로 시계 만들기를 진행했다. 하지만 시계만 아는 것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전지를 통해 산화방법까지 알 수 있도록 했다. 학생들 입장에서 재미와 지식을 모두 얻어갈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전했다.

이날 학생들은 국제표준의 중요성과 그것을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도록 시계를 만드는 시간까지 함께 가졌다. 시계 만들기를 모두 완성한 한 학생은 “시계가 작동하는 것을 보니 정말 신기하다. 앞으로 나도 커서 이렇게 훌륭한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수줍게 말했다. 강의를 통해 미래의 꿈을 발견하는 학생들이 더욱 많이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황정은 객원기자 | hjuun@naver.com

저작권자 2012.08.1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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