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8일 수요일

예술을 프로그래밍하다

예술을 프로그래밍하다

미니멀리즘과 알고리즘 아트, 태싯그룹


최근 예술 분야에서도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적극 도입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단지 표현 도구로써 이용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와 융합해 새로운 시각과 재미를 관객들에게 선사하고 있다.

'태싯그룹’의 작품은 ‘오디오-비디오’아트

태싯그룹(Tacit Group) 역시 테크놀로지를 이용하는 대표적인 ‘오디오-비주얼’아트 그룹 이다. 21세기 새로운 예술을 만든다는 비전을 갖고 장재호, 가재발, N2를 중심으로 지난 2008년에 결성됐다. 주로 디지털테크놀로지에서 얻은 예술적 영감을 멀티미디어 공연, 인터랙티브 설치,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이용하여 그들의 작품세계를 구체화시키고 있다.

태싯그룹은 결성 초기부터 많은 활동을 해왔다. 그 중에서도 쌈지스페이스 10주년 기념 공연, 백남준 아트센터 오버뮤직페스티벌 공연, 공간 500호 기념 공연, 두산아트센터에서의 단독공연 등은 독특할 뿐만 아니라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융합한 새로운 공연이었다.
▲ Game Over ⓒ태싯그룹

한국예술대학교 교수이자 멤버인 장재호 씨는 “태싯그룹은 우리 주변에서 놓치기 쉬운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재료들이 가진 예술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아이디어화해 대중들과 공유하는 그룹”이라고 설명했다.

태싯그룹이 대중들과 소통하고 싶은 것은 그들의 작품을 통해 관객들과 창조의 가치를 고민하는 것. 그래서 태싯그룹의 공연은 무릎은 ‘탁’치게 하는 기발함이 있다.

2010년 서울아트마켓은 해외진출 목적의 우수한 한국공연예술작품인 ‘팸스 초이스(PAMS Choice)'에 태싯그룹을 선정했는데, 이는 그들의 독특한 실험정신을 높이 산 결과였다. 또한 2011년에는 45년 역사의 덴마크 종합예술제 ‘오르후스 페스티벌(Aarhus Festuge)’에 초대돼 오프닝 공연을 하기도 했다.

미니멀리즘과 알고리즘 아트를 기반으로 작품 활동
태싯그룹의 작품 기반은 ‘미니멀리즘’과 ‘알고리즘 아트’이다. 미니멀리즘(minimalism)은 말 그대로 최소한도의, 최소의 의미로 작품을 단순화하고, 최소화된 모습을 지향한다. 이는 변화의 모습과 과정을 관객들이 더 크게 볼 수 있도록 하는 데 유용하다.

‘알고리즘아트(algorithmic Art)’의 경우에는 컴퓨터에서 사용되고 있는 문제해결을 위한 절차나 방법인 알고리즘을 이용한 예술인데, 창작가가 시스템을 만드는 예술이라고 보면 된다.

미니멀리즘과 알고리즘 아트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특징이다. 창작가는 작품의 결과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떤 중간 시스템을 만드는 역할만을 할 뿐이다. 최종 결과물은 만들어진 중간 시스템에 의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쉽게 설명하면 ‘풍경소리’ 같다. 처마 밑의 풍경은 아주 단순한 하나의 물건이지만 바람의 세기와 방향에 따라 소리와 느낌은 제각각 다르다. 여기서 창작가가 하는 일은 바로 풍경을 만드는 것뿐이다. 바람 따라 나는 풍경의 소리는 풍경이라는 시스템에 의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태싯그룹의 작품도 이와 같다. 시스템을 만들 뿐 공연 결과물을 만들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들의 공연은 주제만 같을 뿐 결과물은 매일 다르다. 대표작인 '훈민정악'과 'Game Over'를 보면 그들의 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

훈민정악은 한글의 기하학적인 형태와 우리말의 의성어 표기가 소리와 잘 어울리는 작품으로 평론가들과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한글의 원리를 이용한 작품으로 자음과 모음이 각각의 다른 소리로 프로그래밍 됐다. 그래서 공연 당일 연주자가 어떤 단어를 타이핑하느냐에 따라 관객들에게 다른 음색을 들려주게 된다.

즉 ‘안녕하세요’와 ‘재미있나요’는 음색이 다른 셈이다. 물론 타이핑 되는 글과 모양은 단순하면서도 재미있는 영상으로 관객들에게 보여진다. 또한 한글을 발음할 때 나는 자음과 모음의 소리를 악보로 만들었기 때문에 눈을 감고도 무슨 글을 타이핑했는지 짐작할 수도 있다.
▲ 태싯그룹 멤버들( N2, 가재발, 장재호) ⓒ태싯그룹
‘Game over'에서는 테트리스 게임을 작품화했다. 여러 공연자가 관객들 앞에서 테트리스 게임을 하는 모습이 영상으로 비춰진다. 테트리스 블록의 높이와 모양이 하나의 악보가 돼 연주된다. 그래서 높이와 모양에 따라 음악이 제각각 달라진다. 이 작품은 관객들에게 마치 스스로 게임을 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공연 공감대가 높기로도 유명하다.

장재호 씨는 “이런 방식은 예상치 못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매력은 있지만 매우 실험적이고 자칫 난해해질 수 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래서 “관객들의 이해와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한글’이나 ‘테트리스’와 같은 대중적 요소를 차용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반응이 좋은 이유는 ‘의외성’ 때문

테크놀로지에 익숙한 현대인들은 과거에 비해 더 재미있고 독특한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예상치 못한 곳에 사용되는 테크놀로지를 보면 더욱 환호하고 열광한다. 태싯그룹의 대중적 인기에도 바로 이런 ‘의외성’이 한몫하고 있다. 우리가 매일 쓰는 컴퓨터에서 창조적인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이를 통해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형태의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 매력으로 어필되고 있는 셈. 이는 태싯그룹 공연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이 항상 폭발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쉽게도 한동안 태싯그룹의 공연을 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11월과 12월에 뉴욕 링커센터와 시카고 현대미술관 공연을 계기로 당분간 해외공연에 매진할 계획이기 때문. 장재호 씨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얻은 영감을 작품에 담아내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면서 “새로운 작품이 완성되면 곧바로 다시 국내 공연을 준비할 것”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김연희 객원기자 | iini0318@hanmail.net

저작권자 2012.08.0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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