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팡이의 두 얼굴
일러스트가 있는 과학에세이 26
일러스트가 있는 과학에세이 과학저널 ‘네이처’ 1월 31일자에는 약간 걱정스러운 뉴스를 전하는 기사가 실렸다. 중미의 커피재배 국가들이 급격하게 퍼지고 있는 커피녹병(coffee rust) 때문에 당황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감염된 커피나무가 커피녹병에 걸리면 잎이 말라 떨어지고 결국 커피콩이 제대로 열리지 못한다. 나무 자체가 죽지는 않지만 작물로서는 치명적인 병이다. 커피녹병을 일으키는 병원체는 헤밀레이아 바스타트릭스(Hemileia vastatrix)라는 곰팡이다.
이 곰팡이가 문제를 일으킨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50여 년 전인 1869년 실론(지금의 스리랑카)에서 처음으로 커피나무를 초토화시켰고 결국 농부들은 땅을 갈아엎었는데 그 면적이 실론의 커피재배지의 90%가 넘었다. 그리고 대체 작물로 심은 게 바로 차나무. 오늘날 실론티의 명성은 곰팡이 헤밀레이아 덕분인 셈이다!
이 곰팡이가 문제를 일으킨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50여 년 전인 1869년 실론(지금의 스리랑카)에서 처음으로 커피나무를 초토화시켰고 결국 농부들은 땅을 갈아엎었는데 그 면적이 실론의 커피재배지의 90%가 넘었다. 그리고 대체 작물로 심은 게 바로 차나무. 오늘날 실론티의 명성은 곰팡이 헤밀레이아 덕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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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곰팡이에 희생되는 동식물들. 왼쪽부터 항아리곰팡이에 감염된 개구리, 마그나포테 오리지에 감염돼 도열병에 걸린 벼, 지오미세스 데스트럭탄스에 감염된 작은갈색박쥐, 흑녹병균에 감염돼 줄기녹병에 걸린 밀. ⓒ‘네이처’ |
생태계 위협하는 병원성 곰팡이 창궐
지난해 4월 ‘네이처’에는 ‘동물과 식물, 생태계 건강을 위협하는 곰팡이 등장’이라는 리뷰논문이 실려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영국 옥스퍼드대의 식물병리학자 사라 거 교수를 비롯해 영미 5개 기관의 곰팡이 전문가들은 기고한 논문에서 지난 20년 사이 심각한 곰팡이 감염 질환이 급증했으며 이제 생태계를 위협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경고하고 있다.
균류(菌類)라고도 부르는 곰팡이류(fungi)는 세균(細菌)이라고 번역하는 박테리아와 가까운 생명체로 착각하기 쉬운데, 사실 곰팡이는 박테리아보다 사람에 더 가깝다. 핵이 없는 박테리아와는 달리 곰팡이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진핵생물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계통분류학상 곰팡이는 식물보다도 사람에 더 가깝다고 한다. 고기 대신 버섯을 먹으면서 채식을 한다고 하면 적어도 분류학상으로는 틀린 말이다. 곰팡이류는 크게 효모류, 사상균류(mold, 좁은 의미의 곰팡이), 버섯류로 나뉜다.
곰팡이의 공격으로 그로기에 몰린 동물로는 양서류와 박쥐를 들 수 있다. 생태학자들은 1970년대부터 양서류의 수가 줄어들고 있는 현상을 발견했지만 그 원인을 정확히 몰랐다. 그런데 1997년 죽은 개구리의 피부에서 신종 곰팡이를 분리했고 이들이 죽음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항아리곰팡이라고 명명된 이 녀석들은 양서류 피부의 케라틴을 먹고 사는데 논문에 따르면 양서류가 살고 있는 모든 대륙에서 발견되고 있고 감염이 확인된 양서류가 무려 500여종에 이른다. 병원체 한 종이 이렇게 다양한 종을 감염시키는 건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현상이다. 양서류 종 다양성이 풍부한 중미의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40%가 넘는 종이 사라졌다고 한다.
2007년 미국에서는 동굴에서 작은갈색박쥐 수천마리가 죽은채 발견됐는데 주둥이와 귀가 밀가루가 묻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하얀 가루는 알고 보니 지오미세스 데스트럭탄스(Geomyces destructans)라는 곰팡이였다.
‘박쥐흰코증후군(bat white-nose syndrome)’으로 명명된 이 신종질환으로 미국에서는 7종의 박쥐 600만여 마리가 죽었고 이런 추세라면 15년 뒤 미국에서 작은갈색박쥐가 사라질 확률이 99%라고 한다. 박쥐는 해충을 잡아먹을 뿐 아니라 일부 농작물의 수분을 돕기 때문에 미국 농부들이 박쥐에게 얻은 혜택은 연간 4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박쥐의 수난이 박쥐만의 문제는 아닌 이유다.
사실 곰팡이의 피해를 가장 많이 보는 건 식물들. 앞서 소개한 커피뿐 아니라 바나나도 곰팡이 앞에서는 맥을 못춘다. 1950년대 ‘파나마병’이 중남미의 바나나농장을 휩쓸면서 이곳의 주품종이었던 그로미셸은 이 병에 저항성이 있는 품종인 캐번디시로 바뀌었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바나나는 대부분 캐번디시다. 파나마병을 일으킨 병원체 역시 푸사리엄 옥시스포럼(Fusarium oxysporum)이라는 곰팡이다. 그런데 1990년대 들어 캐번디시도 공격할 수 있는 푸사리엄 변종이 아시아에서 등장해 다시 바나나산업을 위협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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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석기 |
그렇다면 왜 새삼스럽게 지금 곰팡이가 창궐하는 것일까. 연구자들은 사람의 활동으로 인한 환경변화를 주범으로 꼽고 있다. 즉 지구 규모의 이동과 교역이 갈수록 활발해지면서 곰팡이의 포자가 쉽게 퍼질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조성됐다고. 게다가 수확량을 높이기 위해 넓은 지역에 유전적으로 동일한 한 가지 작물을 집중해서 심는 농사법이 취약성을 더욱 심화시켰다는 것이다.
곰팡이는 죽어서 탄소를 남긴다
물론 모든 곰팡이가 이렇게 위험한 존재는 아니다. 술을 익게 하고 빵을 부풀게 하는 이스트(효모)도 곰팡이의 일종이고 치즈도 곰팡이가 없으면 안 된다. 그런데 최근 과학저널 ‘사이언스’에는 곰팡이가 자연 생태계의 탄소 수거에 한 몫을 한다는 사실을 밝힌 논문이 실렸다. 식물의 뿌리에 공생하는 곰팡이인 균근균(mycorrhizal fungi)이 그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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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격리하는 데 식물의 바이오매스 이상으로 뿌리에 공생하는 균근균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사이언스’ |
스웨덴 웁살라대 숲균학·식물병리학과 연구진들은 북반구 냉대림의 탄소 저장 메커니즘을 분석한 결과 잎이나 목재 같은 식물의 바이오메스보다 흙속에 있는 균근균의 ‘죽은 바이오메스(necromass)’가 더 많은 탄소를 저장하고 있음을 밝혀냈다. 즉 조사한 숲의 탄소 가운데 50~70%가 균근균의 사체였던 것.
식물이 광합성으로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만든 유기탄소분자는 뿌리를 거쳐 균근균에게 공급된다. 균근균은 흙 속에서 거미줄처럼 균사를 뻗치며 퍼져나가는데 이들이 죽더라도 균사가 바로 분해되지 않고 오랫동안 남아있어 결과적으로 탄소 저장소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논문에 따르면 균사를 이루는 성분인 에르고스테롤이나 키틴 같은 분자가 오래 잔존한다고 한다.
결국 생태계에서 탄소 밸런스를 유지하는 데 균근균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말이다. 이는 낙엽 같은 식물의 바이오메스가 주요 탄소 저장 매체라는 기존 이론을 뒤집는 주장이다. 이번 논문은 스웨덴의 특정 지역의 토양을 분석한 결과이므로 일반화하기는 이르지만, 지난 150년에 걸친 인류의 화석에너지 소비로 급격히 증가한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회수하는 데 땅 속 곰팡이가 한 몫을 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식물이 광합성으로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만든 유기탄소분자는 뿌리를 거쳐 균근균에게 공급된다. 균근균은 흙 속에서 거미줄처럼 균사를 뻗치며 퍼져나가는데 이들이 죽더라도 균사가 바로 분해되지 않고 오랫동안 남아있어 결과적으로 탄소 저장소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논문에 따르면 균사를 이루는 성분인 에르고스테롤이나 키틴 같은 분자가 오래 잔존한다고 한다.
결국 생태계에서 탄소 밸런스를 유지하는 데 균근균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말이다. 이는 낙엽 같은 식물의 바이오메스가 주요 탄소 저장 매체라는 기존 이론을 뒤집는 주장이다. 이번 논문은 스웨덴의 특정 지역의 토양을 분석한 결과이므로 일반화하기는 이르지만, 지난 150년에 걸친 인류의 화석에너지 소비로 급격히 증가한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회수하는 데 땅 속 곰팡이가 한 몫을 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저작권자 2013.04.26 ⓒ ScienceTim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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