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3일 수요일

인류 최초 포경 역사를 품은 암각화

인류 최초 포경 역사를 품은 암각화

울산 반구대 암각화 보존대책 행보 빨라져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 보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박 대통령이 반구대 암각화의 보존 문제를 직접 챙기고 있으며, 조만간 국무총리실에서 관계 기관들을 소집해 회의를 열 예정이라는 것.

또한 최초의 여성 문화재청장으로 지난달 18일 취임한 변영섭 청장은 그날 취임사를 통해 울산 반구대 암각화 보존대책 마련을 위한 전담팀을 꾸리겠다고 밝혔다. 특히 변 신임 청장은 자신의 새 명함에도 반구대 암각화 탁본을 새겨 넣는 등 암각화의 보존대책 추진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대체 울산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는 어떤 문화재이기에 이처럼 주목 받는 것일까. 그에 대해 상세히 알아보기 위해 시간을 42년 전의 상황으로 되돌려 본다.
▲ 사연댐으로 인해 침수와 노출을 반복하고 있는 반구대 암각화의 보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연합뉴스

1970년 12월 울산 천전리에서 신석기 시대의 암각화인 천전리각석(국보 제147호)을 발견한 문명대 교수(동국대 명예교수)는 다음해 역사학회에서 학술발표를 한 후 동료 학자들에게 현장을 직접 보여주기 위해 다시 그곳으로 답사를 갔다. 그때가 1971년 12월 24일.

함께 내려온 이는 고고미술사학 전문인 이융조 교수와 한국고대사 전문인 김정배 교수였다. 그들은 천전리 현장을 답사한 후 밤늦은 시간까지 토론을 이어갔는데, 그때 간식을 내오던 숙소 관리인에게서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다.

계곡 아래쪽으로 가면 천전리 암각화보다 훨씬 많은 그림이 그려져 있는 바위가 있다는 것. 천전리각석을 조사하던 중 동네 사람들로부터 아래 계곡에 비슷한 바위 그림이 있다는 말을 이미 들은 바 있는 문 교수는 일행과 함께 날이 밝자마자 그곳으로 찾아갔다.

크리스마스 아침, 수천년 만에 드디어 관련 전문가들에게 모습을 드러낸 대곡천 계곡의 반구대 암각화는 절반 정도만 물 밖으로 나와 있었다. 거기엔 춤추는 사람과 거북이, 고래 등의 그림이 쪼기 기법으로 그려져 있었다. 나무 하러 왔다가 반구대 암각화 그늘 아래에서 낮잠을 자곤 했다는 동네 사람들은 물속에 잠긴 쪽에 그림이 더 많았다고 전했다.

세 명의 사학자들은 그 암각화가 적어도 철기시대 이상의 연대에 제작된 것임을 직감하고는 사진을 찍고 탁본을 뜨기 시작했다.

고래, 호랑이 등 총 296점의 그림이 새겨져
1965년 사연댐 건설 이후 매년 7~8개월을 물에 잠긴 채 있다가 그때서야 처음 발견돼 세상에 알려진 반구대 암각화는 육지동물과 바다동물을 한꺼번에 포괄하고 있는 유일한 경우이다.

울산 태화강 상류인 사연댐 위쪽 해발 52.5~56.5m에 위치한 가로 약 6m, 세로 약 3m의 반반한 바위면에는 고래, 개, 늑대, 호랑이, 사슴, 멧돼지, 곰, 토끼, 여우, 거북, 물고기, 사람 등의 형상과 고래잡이 모습, 배와 어부의 모습, 사냥하는 광경 등 총 296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제작연대는 아직 논란이 있지만 기원전 6000년이나 3000년경으로 추정되며, 특히 인류의 고래잡이 역사를 최초로 증명하는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암각화에는 작살을 들고서 고래를 겨누는 사람, 작살에 찔린 고래, 고래를 끌고 가는 배를 비롯해 창과 그물로 6종류의 고래를 잡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서양의 경우 이런 도구를 고래잡이에 활용한 시기는 그보다 훨씬 늦은 9세기부터라서 한반도가 세계 포경(捕鯨) 문화의 기원임을 알려주는 증거가 된다. 이 그림이 그려진 당시엔 고래 사냥으로 이름난 에스키모인이나 노르웨이인, 북아메리카 인디언과 바스크인 등도 모두 그런 도구를 사용할 엄두조차 낼 수 없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최영호 한국해군사관학교 교수가 쓴 ‘한국 해양문화의 정립 방안’이란 글에 의하면 반구대 암각화에서 주목할 점은 수많은 형태의 그림들이 모두 균형감을 지니고 있다는 점과 포획된 동물들이 균등하게 나누어져 있다는 점 등의 2가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균형감을 갖고 있다는 것은 원시인들이 생각한 기하학적 미 의식으로 해석할 수 있고, 포획한 고래를 사람 수대로 똑같이 나눈 그림은 노동과 분배의 정의가 선사시대에 그대로 실천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처럼 우리 문화재의 맏형 격인 반구대 암각화가 침수와 노출의 반복으로 인해 점차 훼손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1995년 국보로 지정된 이후 울산시는 2003년 암각화 보존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연구조사 용역을 의뢰해 차수벽 설치 방안을 문화재청에 건의했다.

그러나 차수벽이 암각화 주변 경관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그 안은 논란만 낳은 채 무산되고 말았다. 이후 지금까지 약 10년 동안 사연댐 수위를 암각화 침수 수위 이하로 낮추자는 문화재청 및 학계 등의 주장과 생태제방을 쌓자는 울산시의 주장이 팽팽히 맞선 채 결론이 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10년 동안 결론이 나지 않고 있는 보존 방법
울산시가 사연댐의 수위 조절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식수난 때문이다. 댐의 수위를 낮출 경우 6만 톤의 물이 줄어들어 울산 시민의 식수가 부족해진다. 지난 2009년 정부가 사연댐 수위를 낮출 경우 모자라는 물을 경북 운문댐에서 끌어와서 충당하자는 안을 내놓았지만, 경북 주민의 반대와 경제성이 낮다는 이유로 성사되지 못했다.

또한 울산시는 수위를 낮출 경우 물 흐름이 빨라져 암각화 훼손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수리모형 실험결과를 제시하며, 암석 풍화 방지, 암각화면 보호 등에서 생태제방이 최적의 보존 방안이라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은 제방 공사를 할 때 생기는 진동이 암각화에 충격을 줄 수 있으며, 제방에 쓰일 토사 채취, 공사 차량 진출입도로 건설 등으로 주변 환경이 훼손된다는 이유에서 생태제방을 반대하고 있다. 생태제방이 수평으로 움직이는 공기의 이동을 막아 암각화에 습기와 이끼가 낄 수 있다는 우려도 또 하나의 반대 이유다.

문화재청은 지난 2009년 1월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암각화 등을 포함한 대곡천 일대를 ‘울산 대곡천 암각화군’으로 묶어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등록 신청을 했다. 앞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기 위해서는 암각화의 원형 보존을 위한 대책을 비롯해 주변 경관 보호가 필요하다는 점이 문화재청을 더욱 분주하게 만들고 있다.

더구나 2011년에 행해진 울산대 반구대 암각화 유적보존연구소의 정밀 분석결과에 의하면, 2000년 이후 반구대 암각화의 훼손 속도가 그 전보다 2배나 빨라지고 있다고 한다. 이는 사연댐으로 인해 암각화가 물에 잠겼다 나왔다를 되풀이하면서 발생한 동결-융해 반복현상 때문이라는 게 연구소 측의 분석이다.

어떤 방식으로 결론이 날지는 모르지만, 이번의 반구대 암각화 보존대책 추진에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도 이 같은 이유들 때문일 것이다.

이성규 객원편집위원 | 2noel@paran.com

저작권자 2013.04.0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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