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12일 금요일

신종조류독감 H7N9 등장과 사스의 추억

신종조류독감 H7N9 등장과 사스의 추억

일러스트가 있는 과학에세이 24

 
 
 
일러스트가 있는 과학에세이
지난 3월 31일 중국에서 H7N9이라는 새로운 독감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례가 3건 보고되면서 인류는 또 다시 신종 전염병의 대유행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단 지금까지 추세를 보면 지난 2009년 신종플루처럼 폭발적인 전염성을 보이는 것 같지는 않다. 대신 병원성은 훨씬 큰 것 같아 4월 11일 현재 보고된 환자 38명 가운데 10명이 사망해 치사율이 26%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H7N9가 확산된다면 그 충격은 신종플루를 훨씬 능가할 것이다. 물론 전문가들은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흥미로운 사실은 이번 H7N9의 등장은 1997년 조류독감 바이러스 H5N1이 나타났을 때보다는 10년 전인 2003년 사스(SARS) 바이러스가 출현했을 때의 상황을 연상시킨다는 점이다. H5N1의 경우 새들에게도 치명적이었기 때문에 수많은 새들이 폐사했고 따라서 오히려 감염경로를 더 잘 파악할 수 있어 사람 사이의 감염을 조기 차단할 수 있었다. 역시 사람에게 치명적이었음에도 당시 감염자 18명, 사망자 6명으로 사태가 마무리됐다. 물론 그 뒤로도 H5N1 바이러스는 간헐적으로 사람을 공격했고, 지금까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보고된 환자 622명의 환자 가운에 무려 60%인 371명이 사망했다.

▲ 지난 3월 31일 첫 환자가 보고된 이래 4월 11일 현재 환자가 38명으로 늘었고 이 가운데 8명이 사망했다(지도는 환자 수 24명, 사망자 수 8명일 때의 상황). 환자 수에 비해 발견 지역이 넓어 독감의 확산이 우려된다. 지도에서 주황색은 환자이고 검은색은 사망자다. ⓒ네이처

감염된 새들은 증상 없어
반면 8개월 동안 8천100여명을 감염시켜 774명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사라진 사스는 2002년 11월 16일 첫 환자가 보고된 이후에도 한 동안 사람들이 전혀 눈치 채지 못했고, 세계보건기구(WHO) 베이징 사무소는 2003년 2월 10일에서야 중국 광동에 “이상한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다음날 광동성 당국은 305명이 감염돼 5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고 이후 싱가포르와 캐나다에서도 환자가 보고되기 시작했다.

사태가 심상치 않게 전개되자 WHO는 3월 15일 이 신종 전염병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의 머리글자인 사스(SARS)라고 명명해 사람들의 불안감을 조금이라도 낮추려고 노력했다(원인을 모르는 상태에서 병명도 없었으므로). 당시 이 이름을 지은 사람은 ‘타임’의 과학기자 출신으로 WHO의 홍보팀에서 일하고 있던 딕 톰슨이다.

3월 24일 과학자들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사스의 원인이라는 실마리를 찾았고, 4월 16일에서야 WHO는 변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사스를 일으켰다고 공식 발표했다. 원래 코로나바이러스는 감기를 일으키는 정도였기 때문에 이 발표는 굉장한 충격이었다. 그 뒤 사스 코로나바이러스가 어디서 왔는가에 대한 추적조사가 계속됐고 식용으로 포획된 야생동물인 오소리와 너구리, 사향고향이에서 바이러스를 검출했다. 그리고 2005년 중국관박쥐가 사스 바이러스의 출발지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중국 당국의 은폐로 조기 차단의 기회를 놓치기는 했지만 사스는 WHO가 신종 전염병에 대처하는 능력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 이번에 H7N9이 보고된 뒤에 바이러스에 대한 분석과 전파경로가 놀라운 속도로 밝혀지고 있는 이유다. 물론 아직까지는 풀어야할 미스터리가 더 많지만.

H7N9 바이러스가 같은 조류독감바이러스인 H5N1보다 오히려 사스바이러스를 연상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매개체인 동물에서는 별다른 증상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상당히 우려스러운 현상으로 철새나 가금류의 이동으로 바이러스가 광범위하게 전파돼도 이를 알아차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60억 마리나 되는 중국의 가금류를 하나하나 검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보고된 환자는 38명뿐이지만 지리적 분포를 보면 상당히 넓게 퍼져있음을 알 수 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H7N9바이러스의 사람 사이의 감염은 보고되지 않고 있다. 만일 사람 사이의 감염이 일어나기 시작한다면 엄청난 치사율을 볼 때 전대미문의 충격이 될 것이다. 실제로 사스바이러스의 진화과정을 보면 이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당시 야생동물을 거래하는 사람들의 혈청을 조사하자 55명 가운데 12명이 사스바이러스에 대한 항체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런데 이들은 사스 같은 심각한 호흡기 질환을 앓은 경험이 없었다고 한다. 결국 이렇게 인체에 감염된 상태에서 사스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사람 사이의 감염 능력을 획득했고 병원성도 생겼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실제 사스바이러스의 게놈을 면밀히 조사한 결과 캡슐 표면의 S단백질에서 아미노산 두 개가 바뀌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스바이러스는 S단백질이 폐의 상피세포 표면에 있는 ACE2 단백질을 인식해 달라붙어 세포 안으로 들어오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환자에서 분리한 사스바이러스의 S단백질은 동물의 사스바이러스 S단백질에서 아미노산 두 개가 바뀌면서 ACE2단백질에 대한 결합력이 무려 1000배나 높아졌던 것. 따라서 H7N9도 사람 사이의 감염 능력을 획득하기 위해(물론 바이러스가 그런 의도를 갖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돌연변이가 일어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 H7N9 바이러스의 게놈을 분석한 결과 3가지 조류독감바이러스가 숙주(조류)에서 모자이크돼 나온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H7에 돌연변이가 생겨 사람에게 감염하는 능력을 획득한 것으로 보인다. H7N9바이러스에 감염된 조류가 증상이 보이지 않는 것도 특이한 점인데, 이는 바이러스 확산의 위험요인이다. ⓒ강석기

3가지 조류독감바이러스에서 기원한 듯
현재 과학자들은 도대체 H7N9 바이러스가 어디서 왔는가를 규명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시장에서 수거한 비둘기에서 H7N9 바이러스를 검출했고 그 게놈을 분석한 결과 사람에 감염한 H7N9 바이러스와 염기서열이 매우 비슷하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그렇다고 조류에서 직접 사람으로 감염됐다고 단정할 단계는 아니다. 환자 가운데는 새와 접촉한 적이 전혀 없다고 보고한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H7N9바이러스와 관련해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지난번 신종플루바이러스도 그랬지만 여러 독감바이러스가 숙주의 몸 안에서 재조합돼 탄생한 모자이크 바이러스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즉 H7N9의 게놈을 분석한 결과 3가지 조류독감바이러스가 아마도 동시 감염된 새의 몸 안에서 뒤섞이면서 나타난 변종으로 보인다. 독감바이러스는 게놈이 8조각으로 나뉘어 있고(마치 사람 게놈이 46개의 염색체로 이뤄져 있는 것처럼) 유전자 11개가 흩어져 있다. 결국 H7N9의 게놈 8조각이 세 가지 바이러스에서 왔다는 말이다.

WHO중국국립인플루엔자센터의 발표에 따르면 게놈 데이터를 비교분석한 결과 이번 H7N9바이러스의 조상 바이러스로는 H9N2바이러스, H11N9바이러스, H7N3바이러스라고 한다. 즉 H7N9바이러스의 내부단백질들의 유전자 염기서열은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보고된 H9N2 조류독감바이러스의 유전자 염기서열과 비슷하다. H7N9바이러스의 유형을 결정한 표면단백질 가운데 하나인 N단백질 유전자(N9)의 염기서열은 우리나라(2011년), 중국(2010년), 체코(2005년)에서 발견된 H11N9 조류독감바이러스의 N단백질 유전자의 염기서열과 비슷하다. 감염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표면단백질인 H7단백질의 유전자는 중국에서 발견된 H7N3 조류독감바이러스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결국 H7N9바이러스는 조류독감바이러스들끼리 유전자를 제공해 만들어낸 모자이크인데, 아마도 H7단백질이 돌연변이를 통해 드물게나마 사람세포에 침투하는 능력을 확보했을 것이고 H9N2 바이러스에서 유래한 내부단백질이 강한 병원성을 보이는데 기여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인체의 면역계는 이들과 접한 경험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정확한 발병 메커니즘이 나오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갑작스런 등장과 강한 병원성으로 인류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사스 바이러스는 774명을 희생시켰지만 다행히 8개월 만에 완전히 진압됐다. 여기에는 보건당국의 체계적인 대응이 큰 역할을 했지만 사스바이러스가 독감바이러스와는 달리 감염 뒤 7~10일 이전에는 증상을 보이지 않아 환자가 입원하기 전에 기침이나 분비물로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번 H7N9바이러스가 과연 1997년 H5N1바이러스처럼 제한적일지(이미 그 수준은 넘어선 것 같지만), 사스바이러스 정도의 피해를 입힐지 아니면 100년 전 스페인독감바이러스처럼 대파국을 초래할지는 보건당국의 대처능력에 영향을 받겠지만 바이러스의 변신능력도 큰 변수일 것이다. 부디 H7단백질 유전자가 사람 사이에서 강한 전염성을 띠는 방향으로 추가 돌연변이를 일으키지는 않기를 바랄 뿐이다.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 kangsukki@gmail.com

저작권자 2013.04.1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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