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일 화요일

이기적 유전자와 이타적 인간?

이기적 유전자와 이타적 인간?

과학명저 읽기 (1)

 
 
과학명저 읽기 필자가 담당하는 학부 1학년생을 위한 전공탐색 과목으로 ‘철학명저읽기’라는 과목이 있다. 혼자 읽기에는 쉽지 않은 책을 매주 한 권씩 정해 읽고 와서 책에 제시된 다양한 논점을 차근차근 따져보고 토론하는 수업이다. 그 책 중에는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처럼 ‘좁은’ 의미의 철학명저도 있지만 다양한 주제에 대해 현재 시점에서 인류가 축적한 지식의 지평을 보여주는 사회과학 및 자연과학 분야의 책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지난 번에는 인간 사회에서 협력이 어떻게 등장할 수 있는지를 수학적 분석과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활용하여 연구하고 있는 수리생물학자의 책을 읽었다. 수강생들은 이구동성으로 협력에 대한 저자의 논의가 인간 사회의 복잡다단한 상황을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인간에게만 적용될 수 있는 ‘협력’이란 단어를 저자는 동물과 화학 분자에까지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주장은 협력을 그저 무거운 돌 드는 일을 서로 돕는 것처럼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행위로 파악하고 있는 이에겐 생소하고도 낯선 것일 뿐이었다. 도대체 분자가 어떻게 합리적 사고를 한단 말인가? 게다가 분자끼리 서로 ‘도움’을 준다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학생들의 토론을 들으면서 필자는 오늘 소개할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불러온 사회적 논란의 축소판을 보는 듯했다. 이 책은 1976년 초판이 출간되어 ‘이기적 유전자에 의해 지배되는 생존기계로서의 인’간이라는 암울한 이미지를 유행시킨 현대의 과학고전이다.

도킨스는 1989년 출간된 2판에서 이런 비판에 답하기 위해 2개 장을 추가했고, 2006년에는 자신의 책을 둘러싼 그간의 논쟁에 대해 답하는 새 서문이 추가된 출간 30주년 기념판을 내놓았다. 여기서 도킨스는 인간이 이기적 본성을 타고났기에 이타적 행동은 자연의 이치에 어긋난 것이라는 식의 주장을 자기가 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2판에 추가된 장들에서 보다 분명하게 밝히고 있듯이, 도킨스는 인간이 이기적 유전자의 독재에서 벗어나 이타적 행위와 대규모 협력을 통해 지구상의 어떤 동물에게도 가능하지 않았던 문명과 지적 진보를 이룬 유일무이한 생물종이라고 주장한다. 도킨스에 따르면 이런 일이 가능해진 결정적 이유는 우리가 밈(meme)이라는 문화적 유전자를 의식적으로 창안하고 전파함으로써 새로운 차원의 자연선택 메커니즘의 세상을 열었기 때문이다.

생각의 탄생이 우리를 유전자의 수동적 운반기계의 지위로부터 해방시킨 것이다. 게다가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를 가진 개체도 (인간이든 동물이든) 이타적 행동이나 협력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즉 이기적 유전자와 이타적 행동은 양립가능하다는 점을 여러 장에 걸쳐 상술하고 있다. 해밀턴의 규칙으로 유명한 친족선택 이론에 대한 소개와, 무한히 계속되는 (혹은 언제 끝날지 미리 확정되지 않은) 상호작용 상황에서는 되갚음의 원리에 기초한 호혜적 협력이 가능하다는 설명이 그에 해당된다.

더 나아가 자신의 친족 또는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가능성이 높지 않은 사람에게도 친절을 베푸는 인간의 행위 역시 핸디캡 원리나 성선택 등의 메커니즘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설명의 핵심은 이런 ‘자선’ 행위를 베푸는 개체는 자신이 이런 ‘여유’를 부리면서도 여전히 생존할 수 있을 정도로 우수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과시적’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가 당시 진화생물학계에서 유행하고 있던 집단선택 이론을 철저하게 반박하기 위해 쓰여졌다고 고백한다. 그에 의하면 진화의 기본 단위는 유전자이며 유전자 수준의 선택만으로도 이타적 행동이나 협력을 포함한 생물계의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기적 유전자’라는 제목을 출판사에서 제안했으며, 자신은 그 제목이 부정확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책 내용을 보다 포괄적으로 시사하는 ‘불멸의 유전자(The Immortal Gene)’라는 제목을 선택하는 것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고 인정했다. 아예 ‘이기적 유전자’를 가졌음에도 이타적 행위가 가능한 인간을 지칭하는 ‘이타적 운반체(The Altruistic Vehicle)’라는 제목도 고려했다고 술회한다.

도킨스의 해명은 정직해 보인다. 실제로 이기성과 이타성을 책에서 정의된 방식으로 엄밀하게 읽으면 이기적 유전자를 가졌다고 해서 이타적 행동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앞서 소개한 학생들의 토론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런 의미의 이기성과 이타성 개념이 일반 독자에게 익숙한 일상개념과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이다.

유전자는 자신이 이기적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않고도 이기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유전자는 의도를 가질 필요도 없다. 실제로 유전자는 일상적 의미에서 ‘행동’하는 것도 아니다. 유전자의 이기성은 그저 유전자가 다른 유전자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이 그 유전자의 생존과 다음 세대로의 대물림(inheritance)에 유리할 때를 기술하는 ‘개념’에 불과하다.

이타성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유리하지 않는 결과를 낳는 상호작용에 붙인 또 다른 개념일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핵산 덩어리에 불과한 유전자가 ‘이기적’일 수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이타적 행동의 기반을 제공할 수도 있다고 도킨스는 주장한다.

일반인이 보기에 이렇게 낯선 방식으로 이기성이나 이타성의 개념을 사용하는 데는 충분히 타당한 이유가 있다. 이렇게 개념을 확장시킴으로써 우리는 예를 들어, 인간의 협동, 개미의 협력, 그리고 분자의 상승적 상호작용을 하나의 이론틀 안에서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다.

과학적 설명이 지니는 매력과 탁월함은 종종 이와 같은 보편화와 추상화의 가능성에 기반한다. 게다가 도킨스는 자신이 사용한 개념 중 몇몇은 은유라는 언급을 책 어딘가에서 분명히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한 언급은 책이 불러일으키는 ‘충격적’ 메시지에 묻히기 쉽다. 일반 독자만이 아니라 랜돌프 네스와 같은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조차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유전자의 조종을 받으며 수동적으로 그들의 이익에 봉사하는 무기력한 인간의 이미지가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기적 유전자’는 논란의 여지없이 우리 시대의 과학고전이며 수많은 후속 연구에 영감을 준 탁월한 책이다. 그와 동시에 이 책은 과학자들이 과학 분야의 전문 용어를 일반적인 독자를 대상으로 사용할 때 어떤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해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 유익한 책이다.


이상욱(한양대 철학과 교수)

저작권자 2013.04.0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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