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5일 금요일

맘대로 붙였다 떼는 스티커형 소자

맘대로 붙였다 떼는 스티커형 소자

[인터뷰] 고흥조 광주과학기술원 신소재공학부 교수

 
 
미래생활을 담은 SF영화를 보면 둥그렇게 말리는 디스플레이부터 옷처럼 입을 수 있거나 여기저기 부착하는 컴퓨터가 등장한다. 이처럼 영화에서나 가능했던 기술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현실화되었다.

고흥조 광주과학기술원(GIST) 신소재공학부 교수 연구진은 어디든 쉽게 붙였다 뗐다 반복 가능한 ‘스티커형 전자소자’를 개발했다.

이번 연구는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추진하는 중견연구자지원사업과 GIST 특화연구지원을 받아 진행되었다. 또한 재료과학 분야의 권위지 ‘첨단기능성물질(Advanced Functional Materials)’의 3월20일자 표지논문으로 게재됐다.
▲ 고흥조 광주과학기술원(GIST) 신소재공학부 교수 ⓒGIST

피부·요철 등 곡면 어디든 붙일 수 있어
고 교수 연구진이 개발한 스티커형 전자소자는 종이나 피부처럼 요철이 있는 곡면에도 마음대로 붙이고 뗄 수 있다. 사용자에 의지에 따라 자유로운 탈부착이 가능한 전자소자는 태양전지, 배터리, 의료·환경 모니터링 센서 등 다양한 분야에 응용될 수 있다.

스티커형 전자소자는 어떤 원리에 의해 개발된 것일까. 연구진은 전자소자를 머리카락의 1/10 두께로 제작해 다른 기판으로 옮길 수 있는 기술을 만들었다. 이렇게 완성된 소자를 일반 스티커로 옮기면 기능성 전자소자를 원하는 부위에 마음껏 탈부착할 수 있게 된다.

“고유연성을 갖는 초박막 소자는 두께가 얇기 때문에 직접 공정이 매우 어렵습니다. 먼저 보조기판 위에 제작한 후에 전사인쇄를 실시하는 공정이 필요하죠. 이 때 보조기판과 소자를 제작하고자 하는 초박막 기판 사이 계면의 접착력을 조절해야 합니다. 소자를 제작하는 과정에서는 안전성을 위해 접착력을 강하게 유지해야 하고 전사인쇄 과정에서는 쉽게 옮길 수 있도록 약하게 유지시켜야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접착력 조절을 위해 널리 사용하는 방법은 실리콘 산화막(SiO2)과 금속, 고분자 등 다양한 물질을 희생층으로 도입해 소자를 제작하고 이 희생층을 식각용액(etchant)으로 제거해 전사인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방식은 희생층을 제거할 때 접착력을 완전히 잃어 정렬도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받침대 등으로 일정 부분의 초박막 기판을 붙잡을 경우 희생층 제거 과정에서 기판이 부분적으로 뜨거나 주름지는 현상이 발생해 소자 제작이 어려워진다.

“기존 실리콘 산화막이나 금속 희생층의 경우에는 식각용액으로 불산(HF) 등 강산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소자를 먼저 제작하고 희생층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손상이 가해져 인체에 해롭다는 단점이 있었죠. 우리 연구진은 기존의 단점을 보완하는 초박막 기판의 전사인쇄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덕분에 더욱 안정적이고 높은 유연성을 갖는 전기전자소자 제작이 가능해졌습니다.”

‘희생층’이란 아주 얇은 초박막 기판 위에 소자를 만들 때 단단히 붙잡아주는 실리콘 보조기판이다. 기판이 얇을수록 다루기가 어려워 그 위에 소자를 만드는 작업도 난이도가 올라간다. 초박막 기판 위에 소자를 구축하려면 단단히 붙잡아 주는 도구가 필요하다.

“실리콘 보조기판 위에 초박막 기판을 바로 제작하면 두 기판 사이의 접착력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일이 불가능합니다. 두 기판사이의 접착력을 필요에 따라 강하게 혹은 약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기술이 필수적이죠. 예를 들어 소자를 제작할 때에는 강하게 유지하다가 다른 곳으로 옮길 때에는 약하게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보조기판 위에 희생층을 도입하고 그 위에 초박막 기판을 형성시켜 소자를 제작하면 접착력이 강해 안정적인 소자 제작을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소자를 다 만들고 난 후 희생층을 제거하는 과정을 통해 접착력을 약하게 만들어 줄 수 있어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일도 쉬워지죠.”
▲ 스티커형 산화아연 박막 트랜지스터 소자들을 종이, 펜, 손 등, 휴대폰 액정에 붙인 사진 ⓒ한국연구재단

두꺼운 기판을 머리카락 1/10 굵기로 대체
스티커형 전자소자가 탄생하려면 여러 단계를 거친다. 우선 A4 용지보다 10배 얇은 초박막 기판 위에서도 안정적인 소자 공정이 가능해야 한다. 요철구조를 갖는 실리콘 보조기판 상에 물에 녹일 수 있는 고분자 희생층을 도포하는 것이 핵심이다.

기판으로 사용할 고분자를 그 위에 코팅해 12마이크로미터 정도로 얇게 형성시킨다. 해당 기판은 다른 곳으로 쉽게 옮길 수 있어야 하므로 접착력을 약화시킨다.

“형성된 보조기판 위에 고분자 희생층을 섭씨 50도의 물에서 녹입니다. 이후 수분을 말리는 과정에서 고분자 희생층의 잔여물이 보조기판의 요철구조 안과 근처에 남으면 끈끈한 풀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보조기판과 초박막 기판 사이에 약한 접착력이 유지되는 것이죠. 최종적으로 약한 접착력만이 남기 때문에 스티커 등 접착력을 가진 기판을 이용해 안정적으로 옮길 수 있게 됩니다.”

연구진은 소자가 성공적으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초박막 고분자 기판 위에 산화아연 박막트랜지스터를 제작했다. 이를 플라스틱, 종이, 스티커, 볼펜 등에 100% 전사 인쇄해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초박막 고분자 기판 위에 물에 녹는 희생층을 도입해 보조기판과의 접착력 조절을 성공한 데 있습니다. 우리 연구진은 비가 온 뒤 하수구에 흙이나 낙엽들이 몰리는 현상에 착안해 요철 구조를 갖는 기판 위에 고분자 희생층을 코팅했죠.

소자 제작 시에는 강한 접착력으로 초박막 기판을 붙잡고 전사인쇄 시에는 희생층이 물에 녹아 대부분이 없어집니다. 이후 건조과정에서 잔여물이 요철 구조 주위에 몰려 적당한 접착력을 가지게 함으로써 소자제작과 인쇄공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었습니다.”

안정적이면서 유연한 소자에 대한 고 교수의 끝없는 고민이 성공적인 연구결과를 낳았다. 연구를 시작한 계기도 기존의 딱딱한 전자소자가 가진 안전성을 그대로 이어가되 유연한 소자를 만드는 방법을 찾는 중에 있었다.

“유연하면서도 안정적인 소자에 대한 고민은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이디어와 신념 덕분에 연구를 진행했지만 어려움도 물론 있었죠. 기존 연구와는 다른 기술과 물질을 사용했기 때문에 세세한 조건들을 최적화하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최대한 과학적으로 정량화시켜 보여주기 위해 지금도 다양한 실험을 설계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기술은 뛰어난 기판 유연성 덕분에 롤에 기판을 감았다 풀 수 있게 해준다. 두루마리처럼 말린 얇은 기판에 연속적으로 인쇄가 가능한 롤투롤 공정에도 적용이 가능해 차세대 디스플레이 프린팅 기술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고 교수의 설명이다.

“직접적인 공정이 어려운 곳에서도 심미성을 유지한 채 전자소자 기능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이 장점입니다. 스티커형 디스플레이, 에너지 전환 소자, 의료·환경 모니터링 센서 등에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대면적 전자소자 개발에도 응용이 가능해 실용화 가능성도 높다고 보여집니다.”

고 교수는 앞으로 스티커형 디스플레이와 인체적합형 센서 등 여러 응용사례를 만들어 실용화 할 계획이다.


황정은 객원기자 | hjuun@naver.com

저작권자 2013.04.0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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