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25일 월요일

한국 BEST SF작가 10인, 김영래(3)

한국 BEST SF작가 10인, 김영래(3)

과학소설에 담겨진 종교의 모습



한국SF를 찾아서 김영래의 <씨앗>에서는 환경문제 뿐 아니라 종교 자체의 본질과 역할에 관한 논의도 주요한 테마다. 과학소설에서 불교 소재를 찾기는 쉽지 않지만, <씨앗>은 일견 재한 캐나다 작가 고드 셀라(Gord Sellar)의 단편 <보살들 The Bodhisattvas>과 사뭇 대조적인 승려 상(像)을 보여준다.

<보살들>에서는 대재앙의 홀로코스트 이후 살아남은 이들이 금욕적인 불교 승려조직으로 사회를 재구성해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는 안정된 사회시스템을 구축하려 한다. 그 결과 이 사회의 승려들은 상당히 금욕적이고 진지한 태도를 잃지 않으며 때로 너무 심각해서 탈이다.

반면 <씨앗>에서 그려지는 승려들은 실생활에서 철학 사상에 이르기까지 융통성이 많은데다 공(空)의 미학이 몸에 배어있다. 특히 여덟 살짜리 사미승인 주인공이 속세와 경내를 넘나들며 느끼는 아노미는 불교적 선(禪)의 의미를 독자들이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해준다.

요약하면 불교의 이미지가 고드 셀라의 작품에서는 대재앙 이후의 사회를 지탱해줄 유일한 이데올로기로 이상화되지만, 김영래의 작품에서는 그냥 매일 들이마시는 공기와 다름없는 일상과 구분되지 않는다. 겨우 두 작가의 사례만으로 동서양 불교관의 차이로까지 비약할 필요는 없겠지만, 남의 문화이냐 우리 문화이냐의 차이가 동일 소재의 적용에도 불구하고 사뭇 다른 맛이 나게 하는 주 요인이 될 수도 있으리라.
▲ 김영래의 <씨앗>에서는 환경문제 뿐 아니라 종교 자체의 본질과 역할에 관한 논의도 주요한 테마다. ⓒefremov


심지어 <씨앗>에서는 현대의 불교계가 당면한 세속화의 위기를 냉정하게 진단함으로서 진정한 종교가 나아가야 할 길을 설파한다.

“여러분은 흡사 기왓장이나 돌을 갈고 닦아 보배거울을 만들려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서까래를 올리고 기왓장 뒤에 자기 이름을 적고 석등을 세운다고 해서 발원이 가능하고 원력이 더 깊어진다고 생각하십니까?”
--- 전각을 새로 짓고 석등과 탑을 세우자는 극성스런 신도들의 청에 대한 탄현 스님의 답변 중에서, <씨앗>, 민음사, 2003년,77쪽

작가는 탄해 스님이란 캐릭터의 입을 빌려 종교적 구원은 불교를 통해서만 이뤄지는 단일창구가 아니라고 그 가능성을 넓게 열어 놓는다. 한 마디로 탄해 스님은 종교의 배타성을 거부한다. 기독교는 물론이거니와 고대 신비주의와 연금술 그리고 동서양 신화까지 그가 관심을 두지 않는 대상은 없다. 그에게 종교란 고인 물이 아니라 끝없이 변화하되 진보나 개혁이 아니라 근원에 얼굴을 비춰보는 것이다.

스님은 <리그베다>에 나오는 “진리는 하나지만 성인은 거기에 여러 다른 이름을 주었다.”라는 구절을 좋아하셨다. 또한 스님은 인도 성자 라마크리슈나의 말에 빗대 다음과 같이 말하곤 하셨다.

“신성이라는 아이스크림을 가로 먹든 모로 먹든, 녹여 먹든 덥석 깨물어먹든 무슨 상관인가. 아이스크림은 맛있는 것을.”
--- 주인공 (사미승 야카)의 회상, <씨앗>, 민음사, 2003년,76쪽

이러한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십자가는 생명의 나무가 되고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는 나무 십자가에 매달린 대지의 주님이신 나무, 즉 우주나무가 된다. 어차피 기독교든 불교든 이슬람교든 또 그 어떤 종교이든 태초에는 한 그루의 나무밖에 없었으니까. 작가는 이렇게 화통한 종교관을 지녀야 비로소 지구촌 전반의 위기는 도외시하고 눈앞의 잇속 계산에만 몰두하는 속인들을 바른 자리로 되돌리는 정신적 지주가 되리라 본 것일까?

책을 덮고 나니 과학소설 독자 입장에서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다. 오랜 세월 언어를 탁마해온 순문학작가답게 정제된 단어구사와 서두름 없이 분위기가 절로 무르익도록 우려내는 전개는 나무랄 데가 없지만, 사이사이 플롯의 진행 리듬을 거스를 만치 직설적이고 교훈적인 설교가 자주 장시간 끼어들어 독자의 몰입을 저해한다.

엄연히 소설인 이상 작가가 전달하고픈 메시지를 날 것 그대로 자꾸 노출하기보다는 극화된 드라마 속에 자연스레 녹여 넣는 편이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씨앗>의 주인공 화자는 다큐멘터리 나레이터 같은 논조로 일관하는 바람에 작가의 올곧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니라 흡사 교양강좌나 토론회에 참석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작가가 내심 철학소설 내지 사색소설을 지향한다면 모를까 환경문제를 대중의 화두로 떠오르게 하고 싶었다면 보다 드라마적인 구성이 강화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이상의 논의를 정리하면 김영래는 지혜로운 작가라는 결론이 나온다. 순문학작가답게 그는 무엇을 잘 할 수 있고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 꿰뚫고 있다. 어설프게 과학소설의 클리세를 모방하거나 어영부영 변주하는 꼼수는 과감히 내던져버렸다. 대신 작가가 자신 있는 분야, 즉 생태과학에 관한 한 전문가 뺨치는 전문지식으로 소설의 품격을 끌어올린다. 덕분에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과학문화재단이 한국소설가협회에 집필을 의뢰하여 펴낸 <우주항공소설 시리즈>처럼 과학소설 팬덤에서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되는 대신 일반독자층은 물론 일부 과학소설 독자들의 진지한 주목을 받았다.

어차피 김영래가 장르 과학소설을 쓰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으리라. 하지만 뜻이 있으면 통한다 하지 않던가. 그의 진정성은 과학소설계 일각에도 전해졌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이러한 반향이 작가에게 다시 되먹임 되어 일반 독자들 뿐 아니라 과학소설 독자들도 전보다 더욱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한층 완성도 높은 생태학적 과학소설을 만나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 주요 작품
<숲의 왕; 2000년>
<씨앗; 2003년>
고장원 SF칼럼니스트 | sfko@naver.com

저작권자 2012.06.2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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