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28일 목요일

전자기타 소리가 ‘본능’ 일깨운다

전자기타 소리가 ‘본능’ 일깨운다

자극적인 영상과 결합하면 효과 ↑




현대에 개발된 전자기타는 ‘디스토션(distortion)’이라는 기능 덕분에 록 음악에 자주 쓰인다. 왜곡이라는 뜻을 지닌 이 기능은 소리의 파형을 고의적으로 바꿔놓아 뒤틀리는 듯한 음색을 만든다. 기타 연주자가 조그만 페달을 밟을 때 지직거리는 소리로 바뀌는 것이 디스토션이다.
▲ 1969년 록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는 디스토션 기능을 이용해 미국 국가를 연주함으로써 관중을 흥분시킨 바 있다. ⓒUCLA
전설적인 록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도 디스토션 기능 덕분에 음악사에 이름을 남겼다.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Woodstock Festival)에서 뒤틀린 전자기타 소리로 미국 국가를 연주함으로써 항의의 뜻을 표출했다. 기묘한 소리를 듣자마자 50만 명의 청중들은 흥분 상태로 빠졌다.

뒤틀리고 왜곡된 소리는 왜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것일까. 최근 미국 UCLA 연구진이 디스토션과 감정의 연관성을 밝혀내 화제다. 이들은 42명의 대학원생들을 모아놓고 10초 길이의 음악 샘플을 들려줬다.

디스토션이 가미된 음악을 들은 학생들은 부정적인 느낌이 든다고 대답하면서도 관심이 쏠린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동일한 소리를 평범한 영상과 함께 보여주자 상황이 변했다. 부정적인 느낌은 그대로였지만 흥미는 유발되지 않았다. 자극이나 상황의 변화에 따라 소리의 유발성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연구결과는 ‘음악에 담긴 자극적인 소리는 문맥 의존성 높다(The sound of arousal in music is context-dependent)’는 제목의 논문으로 정리돼 학술지 ‘바이올로지 레터스(Biology Letters)’ 최근호에 게재됐다.

디스토션 섞일수록 관심 높아져

연구를 이끈 대니얼 블럼스타인(Daniel Blumstein) UCLA 생물학 교수는 동물들이 내는 구조요청 신호의 전문가다. 2010년에는 102편의 고전영화 속 배경음악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해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모험, 멜로, 공포, 전쟁 등 4가지 장르에 따라 배경음악의 특징이 다른데, 각자 독특한 소리 처리 기술을 이용해 관객의 감정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드라마 장르의 배경음악은 소리의 주파수가 갑작스럽게 오르내리며 변함으로써 슬픔을 배가시킨다. 이와 반대로 공포영화에서는 여성의 비명소리와 디스토션처럼 왜곡된 소리가 자주 등장한다.

블럼스타인 교수는 음향 전문가들을 모아 새로운 연구를 진행했다. 소리의 특성을 변화시키면 청취자의 감정도 그에 따라 변하는지를 알아내는 실험이다. 영화와 TV의 배경음악을 작곡하는 음악가 피터 케이(Peter Kaye), 그리고 음악가와 녹음 엔지니어로 활동 중인 UCLA 커뮤니케이션학과의 그레그 브라이언트(Greg Bryant) 교수가 동참했다.

이들은 여러 소리를 섞어서 합성하는 신시사이저(synthesizer) 음향장치를 이용해서 10초 분량의 음악 샘플 36가지를 만들어냈다. 초반 5초 동안은 별다른 특징이 없는 평범한 음악이 흐르지만 후반 5초에는 디스토션이 적용된 왜곡된 소리로 변한다. (듣기 : http://bit.ly/LXKEkH) 대조군으로는 10초 전체에 디스토션을 제거한 음악을 마련했다. (듣기 : http://bit.ly/NvV2Xd)

▲ 연구진은 동일한 음악(위)을 평범한 버전(가운데)과 디스토션이 적용된 버전(아래)으로 나누어 피실험자들에게 들려주었다. ⓒBiology Letters

그리고 UCLA 대학원생 42명을 모집해 두 그룹으로 나눈 뒤 음악 샘플을 듣고 ‘자극성(arousal)’과 ‘유발성(valence)’에 대해 점수를 매기도록 했다. 자극성은 감정적으로 자극이 되는지의 여부를 점검하고, 유발성으로는 행복이나 슬픔처럼 감정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를 -5점에서 +5점까지의 점수로 판단했다.

피실험자들은 평범한 음악보다 왜곡된 소리가 더 자극성이 높아 흥미롭고 관심이 간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동시에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한다고 평가했다. 기분이 나쁜데도 관심이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블럼스타인 교수는 UCLA의 발표자료를 통해 “디스토션의 소리 형태가 동물들이 곤경에 처했을 때 내는 구조 요청의 울음소리와 비슷하다”고 분석했다. 왜곡된 소리가 인간에게 내재된 동물성을 끄집어내기 때문에 듣기 좋지는 않지만 본능적으로 관심이 간다는 것이다.

평범한 영상과 결합하면 자극성 줄어

연구진은 또 다른 실험도 연속으로 진행했다. 앞선 실험의 음악 샘플을 그대로 들려주되 영상물을 함께 보여줬다. 영상 속에는 사람들이 걸어가거나 커피를 마시는 등 평온하고 평범한 일상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UCLA 대학원생 중 새로운 피실험자 42명을 모집해 점수를 매기게 했다.

그러자 왜곡된 소리가 담긴 음악 샘플을 듣고도 자극성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부정적인 감정은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상물 때문에 배경음악의 효과가 줄어든 것이다. 논문은 “소리와 영상을 조작해 인간의 감정적인 판단에 영향을 끼치는 원리를 밝힌 최초의 연구”라고 주장했다.

논문의 공저자인 브라이언트 교수는 “흥분 상태를 유발하는 왜곡된 소리도 평범한 영상물과 함께 들려주면 감정적으로 자극을 일으키지 못한다”면서도 “음악에 담긴 감정적인 특징까지 없애지는 못했다”고 분석했다.

또한 “작곡가들은 상세한 원리는 몰라도 어떤 소리가 공포를 유발하는지는 알고 있다”며 진화에 따라 발전된 인간의 심리 성향을 음악을 사용해 자극시킨다고 설명했다. 이전의 실험에서는 다른 동물이 내는 구조 신호의 울음소리를 들은 동물은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피부의 전기 전도율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연구진은 향후 생리학 실험을 통해 사람의 신경 체계에도 동일한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밝혀낼 계획이다.

임동욱 객원기자 | im.dong.uk@gmail.com

저작권자 2012.06.2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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