平等과 自足을 실천하자
한국연구재단 석학인문강좌
23일 교육과학기술부가 후원하고 한국연구재단이 주최하는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가 광화문 역사박물관 강당에서 진행됐다. 이강수 전 연세대 교수(동양철학)는 <노장사상의 현대사회에서의 意義>라는 주제로 ‘平等과 自足을 통한 아름다운 삶’에 대해 강의했다.
인문학은 인간과 삶에 대한 성찰과 탐구를 근간으로 하는 학문이다.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분야다. 현대인은 인문학을 통해 삶의 이정표를 발견하기도 하고 쉬어갈 수 있는 여유와 위로를 찾기도 한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인문강좌도 이러한 취지에서 출발했다. 평등을 추구하면서 아름다움을 즐길 줄 알아야
<열자(列子)>의 양주(楊朱)편에서 말하기를 “무릇 이 여러 가지 억압은 삶의 의지를 무너뜨리고 학대하는 주범이니, 이들을 제거하고 즐겁게 인생을 마칠 일이로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는 것, 아름다운 색채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 향기를 맡지 못하게 하는 것, 시비(是非)를 말하지 못하게 하는 것, 좋은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하는 것,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 등은 사람의 삶의 의지를 억누르는 것으로 것이다. 사랑은 베푸는 데에는 물론 차등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유가에서는 사랑을 베푸는 데에는 차등이 없을 수 없다고 여긴다. 연장자와 연하자의 차이, 사회적 지위의 차이, 경제적 차이 등이 있다. 사람이 서로 대하는 정감(情感)의 경중(輕重)의 차이가 있다. 이러한 차이와 등급을 고려하여 제정한 것이 바로 예(禮)라는 규범이다. 묵가(墨家)에서는 박애를 주장한다. 묵자(墨子)는 “사람들이 서로 똑 같이 사랑하고 이롭게 하라!”고 주장했다. 이를 겸상애 교상리(兼相愛 交相利)라고 한다. 묵자가 보기에 당시 사회의 가장 큰 피해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전쟁이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쟁탈이었다. 그 원인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은데 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가와 국가, 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가의 중심덕목은 인(仁)이다. 인을 정감적으로 표현하면 그 역시 사랑이다. 유가와 묵가는 다 같이 사랑을 중시하는 셈이다. 그러나 내용면에서 겸애(兼愛)와 인은 차이가 있다. 유학자들은 사랑을 베푸는데 차등이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의 아버지보다 자기 아버지를 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식도 마찬 가지다. 사랑에는 경중(輕重)과 후박(厚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묵자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남의 나라를 자기나라처럼 보고 남의 집안을 자기 집안처럼 보며, 남의 몸을 자기처럼 보아야 한다” 이처럼 묵자는 보편애(普遍愛)를 주장했다. 그는 사랑을 베푸는데 경중후박과 선후를 반대할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사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람은 장유(長幼)와 귀천(貴賤) 없이 모두 하늘의 신하들이다. 획(獲)을 사랑하는 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장(臧)을 사랑하는 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여기서 획(獲)은 여자노예, 그리고 장(臧)은 남자 노예를 뜻한다. 가장 비천한 계급인 노예조차도 평등하고 귀하게 사랑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에 대해 반대편에 서있으면서도 맹자는 묵자에 대해 “정수리부터 발뒤꿈치까지 온몸이 닳아 없어질지라도 천하 사람들을 위하는 일이라면 하고야 마는 사람”이라고 했다. 맹자는 전국시대라는 혼란한 시기에 적극적인 구세주의 사상을 들고 나온 묵자의 겸애사상과 그 실천활동을 아주 높이 평가한 것이다. 묵자의 적극성은 유가보다도 더 대단했다. 그는 치열할 정도로 사랑을 전파하고 다녔다. 철기의 사용으로 생산력이 발전하자, 농민, 수공업자, 상인 등은 그에 힘입어 신흥계급으로 성장했다. 점차 종래의 지배계급이던 씨족 귀족보다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이 시기에 묵자는 신흥계급의 입장에 서서 씨족 귀족의 정치와 지배에 정면으로 대결하면서 그의 사상을 전개했다. 그러나 유학자가 보기에는 문제가 없지도 않다. 맹자는 그 점을 지적하면서 “묵자는 겸애하니 이는 아버지가 없게 하는 일이다”고 꼬집었다. 맹자의 입장에서 보면 나의 아버지와 남의 아버지를 똑 같이 사랑하다 보면 가정이 없어질 것이라고 걱정한 것이다. 자족(自足)할 줄 아는 삶을 살아야
우선 수는 말 그대로 오래 사는 것을 말한다. 부는 부유하고 풍족하게 사는 것이다. 강녕이란 일생 동안 건강하게 사는 것을 말한다. 유호덕이란 덕을 따르며 사는 것으로 이웃이나 다른 사람을 위하여 보람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마지막 고종명은 깨끗한 죽음이다. 여기에서는 객지가 아닌 자기 집에서 편안히 일생을 마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복은 세상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우연성이 담겨 있다. 흔히들 이러한 오복을 누리려면 운이 따라야 한다는 말이다. 현자(賢者)는 우연적인 것보다 자기 노력에 의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을 바란다. 따라서 현자의 복도 따로 있다. 당나라 초기 유학자 공영달(孔穎達)은 “세인이 일컫는 복은 오래 살고 상서로우며, 자기 자신에게 천우신조(天佑神助)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자가 복을 받게 되면 자기 몸 밖의 온갖 일들이 도리에 따르게 된다… 안으로 그의 마음을 다하고, 밖으로 예의를 극진히 하여 안팎이 다 순조로워진다”라고 말했다. 춘추전국시대 중국의 군주들은 광토중민(廣土衆民), 다시 말해서 토지를 넓히고 백성을 많게 하려는 정책을 추구했다. 노자는 이와 반대로 ‘소국과민(小國寡民)’을 주장했다. 중국 원나라 시대의 유학자 오징(吳澄)은 이에 대해 “노자는 쇠미해져 가는 주나라를 다시 태곳적 사회로 돌이키고자 했다… 그들로 하여금 밖을 부러워하지 않게 하고, 안에서 자족(自足)하게 하고자 하였다”고 말했다. <뮤탄트 메시지 Mutant Message>는 뉴욕타임스에 31주 연속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24개국에서 번역출간 되었다. 백인 여의사가 우연히 호주 원주민들과 함께 생활해보고 감동을 받아 문명세계에 전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노자는 “만족할 줄 아는 이는 넉넉하다”고 했다. |
저작권자 2012.06.25 ⓒ ScienceTim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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