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28일 목요일

속도를 그리다

속도를 그리다

뒤샹 ‘계단을 내려가는 누드 NO.2’



끊임없는 움직임을 보여주는 동영상과 같이 그림으로 움직이는 효과를 나타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림에서는 움직임의 한 순간인 정지된 동작만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화가들이 움직이는 동작을 표현하기 위해 수없이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실패하기에 이른다. 그러던 가운데 20세기 초 연속동작 사진기법(한 장의 인화지 연속적 동작을 기록한 사진)이 등장하자 화가들은 그것을 그림에 도입한다.
▲ <계단을 내려가는 누드 NO. 2>-1912년, 캔버스에 유채, 146*189,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

연속 동작을 그림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작품이 뒤샹의 ‘계단을 내려가는 누드 NO.2’다.

여인이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계단을 내려오는 여인의 다리와 팔은 자동으로 움직이는 기계처럼 표현됐다. 뒤샹은 모델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입체주의(대상을 기하학적으로 재해석해 평면에 그린 미술사조)로 나타냈지만 움직이는 사람을 표현할 때는 미래주의 양식을 따랐다.

미래주의는 1909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미술사조로 과학기술이 급속히 발달하면서 과학의 놀라운 성과에 자극을 받은 화가들이 현대 기계문명을 표현하기 위해 창시한 것이다. 화가들이 기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과학기술 숭배를 노골적으로 부추겼던 당시 사회의 분위기 때문이다.

특히 미래주의 화가들은 속도를 숭배했다. 그들은 속도를, 진부한 과거는 청산하고 미래를 개척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예술가들이 속도에 집착했던 가장 큰 이유는 자동차, 증기기관차 등으로 삶의 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이다.

뒤샹은 이 작품을 제작할 시기에 종교적, 철학적, 윤리적 아이디어를 전달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에 회의를 품었다. 그는 이미지를 전달하려는 전통적인 그림의 기능보다는 인체의 움직임이 그대로 드러나는 사진학적 해부에 관심을 가지면서 ‘계단을 내려가는 누드 NO.2’, ‘잽싼 나체들에 둘러싸인 왕과 왕비’ 등 4점을 제작한다.

뒤샹은 직접 기계를 제작할 정도로 기계광이었으며 기계의 효율성과 엔진의 규칙적인 리듬에 매료돼 기계가 인간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1913년, 뒤샹은 이 작품을 미국 뉴욕의 69연대 병기 창고에서 열린 ‘아모리 쇼’에 출품한다. ‘아모리 쇼’는 미국 회화 조각가 협회의 멤버 25명이 조직한 것으로 유럽의 전위 미술을 소개하기 위한 전시회였다. 당시 미국은 혁신적인 미술을 경험할 기회가 없었다.

뒤샹의 ‘계단을 내려가는 누드 NO.2’가 전시되자마자 보수적인 미국 미술계는 엄청난 비난을 퍼부었다. 아름다움의 상징인 여성을 기계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미국 미술계뿐만 아니라 입체주의 화가들도 움직이는 사람을 표현한 방식을 미래주의로 여겨 뒤샹을 비난했다. 입체주의 화가들은 자신들의 위치가 확고하기를 원했다. 결국 그들은 뒤샹에게 작품을 철수하라고 말한다.

마르셀 뒤샹(1887~1968)은 1910~1912년까지 입체주의에 매료돼 있었지만 입체주의가 지향하는 예술에 대해 전반적으로 회의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뒤샹이 미래주의를 따른 것도 아니다. 뒤샹은 그 사건을 계기로 기성품을 사용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박희숙 서양화가, 미술칼럼니스트

저작권자 2012.06.2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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