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8일 금요일

백발 노장 황충을 죽인 한 마디

백발 노장 황충을 죽인 한 마디

노인에 대한 잘못된 선입관




사이언스타임즈 라운지 백발을 휘날리며 전장을 누빈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장수 황충은 참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비록 늙었지만 항상 선두에 서서 전장으로 달려나가고, 과감하게 적을 공격하는 용맹스러움은 유비의 장수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었다. 때문에 중국에서는 황충을 노익장의 대명사로 일컫는다.

그런데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 의하면 황충의 노익장도 말년에는 부정적인 선입관을 피하지 못했던 것 같다. 서기 222년 이릉 전투에서 황충은 불리한 군세에도 불구하고 오나라 진지를 공격하는 데 앞장섰다. 그리고 주위에서 만류하는 것도 듣지 않고 적진 깊숙이 공격해 들어가다 어깨에 화살을 맞아 결국 숨을 거둔다.

황충이 그처럼 무모하게 전투에 임한 것은 유비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전투에 나서기 전에 유비가 ‘노인이 나서봤자 소용없다’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황충이 들었던 것. 나중에 유비는 황충이 숨을 거두는 모습을 지켜보며 ‘내가 그런 서운한 말을 해서 그대가 이런 일을 겪고 말았다’며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관들이 잘못된 것임이 최근에 속속 밝혀지고 있다. ⓒ이미지클릭
노인들이 가장 서운해 하는 것은 황충의 사례에서 보듯 나이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관이다. 노인들은 모두 병약하고 보수적이며 희망이나 꿈, 열정이 없을 것이란 생각 등이 그것이다. 이런 부정적인 선입관은 노인들을 더욱 의기소침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런 선입관들이 잘못된 것임이 최근 속속 밝혀지고 있다. 미국 코넬대학교 칼 필머 교수팀이 5년간 65세 이상의 노인 1천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 노인들이 어떤 연령대보다도 과감한 성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흔히 노인들의 경우 현실안주적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심층 인터뷰 결과 노인들은 위험을 감수하며 도전을 즐기고 결단이 빠르며 자아성취 욕구가 강한 것으로 나타난 것. 또 대부분의 노인들이 젊은이들에 대해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라’고 충고하기보다는 ‘정말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라’고 충고하는 것을 보고 연구진마저 놀라고 말았다.

젊은이보다 개인주의 성향 더 강해

우리나라의 노인들을 조사한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몇 년 전 신호창 서강대 교수가 ‘연령대별 인식 차이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 결과, 60대 이상 노인들이 음식값을 각자 계산하는 더치페이를 더 선호하는 등 오히려 젊은 세대보다 개인주의 성향이 더 강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우리나라 노인들은 자신보다 나이 어린 상사를 모시는 것에 대해서도 20대나 30대보다 거부감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들의 경우 삶이 무료해 우울할 것이란 선입관도 실제 조사 결과 전혀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2008년 미국 전역의 18~85세 남녀 34만명을 대상으로 삶의 만족도에 대한 여론조사를 한 결과, 50세 이후부터 행복과 기쁨을 느끼는 빈도가 다시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 것. 반면에 스트레스와 걱정, 분노 등의 감정은 나이를 먹을수록 감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런데 최근 미국 필라델피아대 모넬화학감각연구소에 의하면 노인들에게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불쾌하다고 여기는 것도 노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관에서 비롯됐다는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노인들의 경우 인종이나 종교, 식습관에 관계없이 특유의 냄새가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일본에서는 이런 냄새를 ‘카레이슈’라고 부르는데, 전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인 냄새가 불쾌하다고 느낀다.

모넬화학연구소의 감각신경학자 조한 런드스트롬과 동료 연구원들은 20~30세 젊은이, 45~55세 중년층, 75~95세 노인들을 대상으로 겨드랑이 부분에 흡수가 잘되는 패드를 부착한 티셔츠를 5일 연속으로 입게 했다.

이때 실험대상자 고유의 냄새만이 패드에 배어나오게 하기 위해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냄새가 나지 않는 샴푸와 비누로 샤워를 하게 했으며 흡연 및 음주, 자극적인 음식 섭취를 금지시켰다.

노인 냄새가 불쾌한 것은 선입관 때문

그 후 비흡연자이며 복용하는 약물이 없는 20~30대의 건강한 남녀 41명에게 다양한 연령대의 패드 냄새를 맡게 한 결과, 세 그룹의 연령대 중에서 노인들의 냄새가 가장 덜 강하고 불쾌감이 적었다는 일치된 결론을 얻어냈다. 실험 참가자들이 가장 격하고 불쾌한 냄새가 난다고 지목한 것은 다름 아닌 젊은이와 중년 남성들의 패드였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사람들이 노인 냄새가 좋지 않다고 느끼는 것은 음울한 양로원의 분위기나 답답한 응접실 등 친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오는 선입관 때문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우리 주변을 보면 노년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과 도전의식을 보인 이들이 많다. 문학평론가 이어령 교수의 경우 일흔둘의 나이에 시인으로 데뷔했으며 삼성의 고 이병철 회장은 73세 때 주위의 반대와 비난을 무릅쓰고 반도체 사업에 뛰어드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또 미국의 세미 프로야구단 ‘레드삭스’의 조지 롱 감독은 1996년 90세 때 감독직을 다시 맡아 코치박스에서 불호령을 내려며 팀을 이끌었다.

미국의 평화운동가이자 언론인이었던 노먼 커즌스는 다음과 같은 말로 노인에 대한 잘못된 선입관의 폐해를 지적했다.

“일흔다섯 살이 되는 일 중에서 가장 나쁜 것은 일흔다섯 살로 취급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나쁜 것은 자신을 일흔다섯 살로 여기는 것이다.”
이성규 객원편집위원 | 2noel@paran.com

저작권자 2012.06.0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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