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12일 화요일

참다운 自我를 찾아서

참다운 自我를 찾아서

한국연구재단 석학인문강좌



9일 교육과학기술부가 후원하고 한국연구재단이 주최하는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에서 이강수 전 연세대 교수(동양철학)는 '노장사상의 현대사회에서의 의의(意義)'라는 주제로 ‘어떻게 참다운 자아를 찾을 것인가’에 대해 강의했다. 강의는 광화문 서울 역사박물관 강당에서 열렸다.

"인간은 원래 이기적이다"
▲ 이강수 전 연세대 동양철학 교수. ⓒScience Times
사람은 물질세계에 육신을 가지고 만물 가운데 하나의 존재자로 태어나 날마다 물질을 쓴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는 사이에 남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한다. 또한 남보다 자기를 더 이롭게 하고자 하는 사적 자아(私的 自我)를 형성하게 된다.

사적 자아는 자기보존을 위해 지식을 이기(利器)로 삼아 공명을 세워 권세를 떨치며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남과 다투고 싸우기도 한다. 그래서 인류사회는 거칠어지고 험악해져서 약육강식의 정글이 된다.

장자는 말하기를 “무릇 인심은 산천(山川)보다 험악하고 하늘을 아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였다. 여기서 말한 인심이란 중인(衆人)의 마음을 일컬는다. ‘중인’은 속인(俗人)이라고도 하는데 오늘날로 말하자면 보통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처럼 사람의 마음은 음험해서 그 속을 알기가 쉽지 않다. 장자의 관점에서 그러한 사람에 대해 살펴보자.

보통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사람은 무궁한 천지 속에 유한한 생명체로 주어졌다. 장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내가 사이에 있는 것은 마치 작은 돌멩이와 조그마한 나무가 큰 산 안에 있는 것과 같으니… 사해가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것을 계산해 보건대 돌멩이의 작은 구멍이 큰 호수 속에 있는 것과 같지 않은가? 중국이 사해 안에 있는 것을 계산해 보건대 싸라기가 큰 창고 안에 있는 것과 같지 않은가? 물(物)의 수를 일컬어 만(萬)이라 하나 사람은 그 가운데 차지할 뿐이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천하는 일체 곡식이 자라는 곳이, 배와 수레가 통행하는 곳이나 사람들은 그 가운데 하나를 차지할 뿐이오. 이러한 사람은 만물과 견주건대 털끝이 말 몸에 있는 것과 같지 않을까?”

이처럼 사람은 천지에 비교하면 조약돌 크기만한 사해 속에, 그 사해에 비교하면 작은 돌멩이의 구멍만한 중국 속에 살고 있으나 중국도 사람만이 사는 곳이 아니라 만물 가운데 하나의 존재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왜소한 존재자일 뿐만 아니라 길지 않은 생명을 부여 받았다. “천지 사이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백구(白鷗)가 조그마한 틈을 지나가는 것과 같다” 백구는 준마(駿馬)라는 말이 있고, 햇빛이라는 의미도 있다. 인생은 순식간이라는 말이다.

이처럼 공간적으로 작디작은 존재로서 극히 짧은 삶을 누려야 하는 사람은 그의 뜻과 상관 없이 생명을 부여 받아 원치 않더라도 살아야 한다. 그리고 의지와 상관 없이 죽어야 한다.

그래서 장자는 “오는 생명을 물리칠 수 없고, 가는 생명을 막을 수 없도다. 아, 슬프도다!”라며 탄식하는 말을 남겼다.

인간의 지식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제한돼 있을 뿐만 아니라 인식능력에도 한계가 있다. 장자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 노장사상은 유교와 불교와 함께 동아시아의 철학과 종교의 중심을 이룬다. 그림은 공자가 어린 부처를 노자에게 드리는 모습이다. 유불선의 조화를 의미하는 작품이다. ⓒ위키피디아
"우물 안 개구리와 더불어 바다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터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름 벌레와 더불어 한겨울의 얼음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시절(時節)에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골구석 선비와 도(道)에 대하여 말할 수 없는 것은 그가 받은 교육에 속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터’란 지식을 이야기한다. 이처럼 사람들은 특정교육에 영향을 받고 시대성과 지역성을 띤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는 옳고 남은 그르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이 참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개관적인 척도를 제시할 수 있을까? 아니다. 장자에 따르면 사람들 사이에 서로 의견이 다를 경우 누구의 의견이 옳고 누구의 의견이 그른지 판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제3의 잣대는 없다. 사람의 인식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참다운 自我를 찾기
그럼 어떻게 하면 우리는 미혹(迷惑)과 미망(迷妄)에서 벗어나 참다운 자아를 찾을 수 있을까? 장자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세속적인 학문으로 심성(心性)을 닦아서 그의 본래 성품을 회복하고자 하며, 세속적인 사려(思慮)로 그의 욕심을 다스리어 그의 밝은 성품을 터득하기를 추구하는 이를 꽉 막힌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노자도 이런 말을 남겼다. “학문을 하는 것은 날마다 더해가고[日益], 도를 추구하는 것은 날마다 덜어간다[日損]” 다시 말해서 세속적인 학문은 많이 하지만 진정한 도를 추구하는 일은 점점 멀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자와 장자는 세속적인 학문으로는 진리를 밝힐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진리를 밝히고 참된 자아를 찾으려면 생각을 바꿔 마음 공부를 해야 한다. 물질이냐? 참된 것이냐? 물질로 향하면 범인(凡人)이오 참된 것으로 향하면 참사람이 될 수 있다.

“행주역수(行舟逆水)하니 부진즉퇴(不進卽退)”라는 말이 있다. 맑고 시원한 물이 샘솟는 원천을 찾고자 하면 흐름을 거슬러 상류 쪽으로 노를 힘껏 저어 올라가야 한다는 말이다. 습성에 휩쓸리지 아니하고 진리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장자는 “성(性)을 닦아 덕(德)을 들이키어 덕이 지극하게 되면 태초(太初)와 같아질 것”라고 하였다. 유학에서 중시하는 예(禮)는 문식(文飾)함이 있다. 노장사상에서 추구하는 본성은 소박하고 순수한 마음의 성향이다.
김형근 객원기자 | hgkim54@naver.com

저작권자 2012.06.1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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