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연선택’을 아시나요?
일러스트가 있는 과학에세이 16
일러스트가 있는 과학에세이 최근에는 해외여행 관련 TV프로그램이 꽤 많은 것 같다. 외국에 나갈 일이 별로 없는 필자는 이런 프로그램을 보면서 ‘간접’ 체험을 하는데, 서유럽이나 뉴질랜드 같은 곳의 자연환경을 보면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자로 길이를 잰 뒤 기준이 되는 크기가 안 되면 다시 놓아주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예전에 낚시를 좋아했던 필자로서는 하루에 몇 마리 잡지도 못하면서 기준에 몇 센티미터 모자란다고 선뜻 고기를 다시 놓아주기가 쉽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물론 프로그램에서는 카메라가 지켜보지만) 국민들의 높은 의식 덕분에 이들 선진국의 자연환경이 그처럼 잘 보존돼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이처럼 ‘자제를 하는’ 모습은 취미로 하는 낚시뿐 아니라 어업에서도 마찬가지다. 배의 성능이 좋아지고 물고기를 탐지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방치했다가는 물고기 씨를 말릴 수 있게 되자 선진국을 중심으로 어업 활동을 제한하는 법이 속속 만들어졌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크기 제한이다. 즉 그물망의 간격을 일정한 길이 이상으로 해서 치어들은 빠져나가게 하고 다 자란 물고기만 잡게 한 것이다. 당장은 어획량이 좀 줄겠지만 ‘지속 가능한 어업’을 위해서는 어부들이 감수해야 하는 제한인 것이다.
의도는 좋았지만 뜻밖의 결과로 이어져
과학저널 ‘네이처’ 1월 31일자에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지속 가능한 어업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여겼던 ‘선택어업(selective fishing)’이 촘촘한 그물을 써서 치어까지 잡는 무자비한 어업 방식보다 별로 나을 것도 없으며(물론 어자원 고갈로 이어질 정도의 남획보다는 낫지만)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물고기의 진화에 영향을 미쳐 장기적으로는 어업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을 담은 글이 실렸다. 미국 알리샤패터슨재단의 브렌단 보렐 연구원은 이 글에서 최근 어류학자 사이에 일고 있는 이런 움직임을 소개하고 있다. 최근 선택어업의 부작용에 관한 연구결과가 속속 보고되면서 지난 수십 년 동안 어업정책의 근간이 되어 온 선택어법 패러다임을 이제는 바꿔야 할 때라는 것.
어업이 물고기 진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은 1981년 캐나다의 어류학자 윌리엄 릭커의 연어 연구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의 어부들이 큰 연어만 잡다보니 연어들이 조숙해져 성체의 몸집이 작아졌다는 것. 1990년대 들어 다른 어종에 대해서도 비슷한 사례가 보고됐지만 그 원인이 선택어업 때문이라는데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즉, 기후변화나 환경오염 등이 원인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자제를 하는’ 모습은 취미로 하는 낚시뿐 아니라 어업에서도 마찬가지다. 배의 성능이 좋아지고 물고기를 탐지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방치했다가는 물고기 씨를 말릴 수 있게 되자 선진국을 중심으로 어업 활동을 제한하는 법이 속속 만들어졌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크기 제한이다. 즉 그물망의 간격을 일정한 길이 이상으로 해서 치어들은 빠져나가게 하고 다 자란 물고기만 잡게 한 것이다. 당장은 어획량이 좀 줄겠지만 ‘지속 가능한 어업’을 위해서는 어부들이 감수해야 하는 제한인 것이다.
의도는 좋았지만 뜻밖의 결과로 이어져
과학저널 ‘네이처’ 1월 31일자에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지속 가능한 어업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여겼던 ‘선택어업(selective fishing)’이 촘촘한 그물을 써서 치어까지 잡는 무자비한 어업 방식보다 별로 나을 것도 없으며(물론 어자원 고갈로 이어질 정도의 남획보다는 낫지만)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물고기의 진화에 영향을 미쳐 장기적으로는 어업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을 담은 글이 실렸다. 미국 알리샤패터슨재단의 브렌단 보렐 연구원은 이 글에서 최근 어류학자 사이에 일고 있는 이런 움직임을 소개하고 있다. 최근 선택어업의 부작용에 관한 연구결과가 속속 보고되면서 지난 수십 년 동안 어업정책의 근간이 되어 온 선택어법 패러다임을 이제는 바꿔야 할 때라는 것.
어업이 물고기 진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은 1981년 캐나다의 어류학자 윌리엄 릭커의 연어 연구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의 어부들이 큰 연어만 잡다보니 연어들이 조숙해져 성체의 몸집이 작아졌다는 것. 1990년대 들어 다른 어종에 대해서도 비슷한 사례가 보고됐지만 그 원인이 선택어업 때문이라는데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즉, 기후변화나 환경오염 등이 원인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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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70년 사이 북대서양 대구의 어획량이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크기도 작아졌다. 일정 크기가 넘는 물고기만 잡는 선택어업 정책이 오히려 덩치가 작아지는(따라서 낳는 알 개수도 적은) 방향으로 진화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강석기 |
그러나 2004년 ‘네이처’에 노르웨이 베르겐대 미코 하이노 교수팀의 대구의 크기와 성체가 되는 데 걸리는 시기의 변화에 대한 분석결과가 실리면서 선택어업이 물고기의 진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지난 2009년 미국 몬타나대 생명과학부 프레드 알랜도르프 교수는 ‘미국립과학원회보’에 실린 논문에서 선택어업 같은 사람의 활동이 야생 생물의 진화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부자연선택(unnatural selection)’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는 사람의 개입이 ‘자연선택’에 기초한 다윈의 진화론과 대조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택어업처럼 지속 가능한 어업을 보장할 것 같은 좋은 의도의 정책이 왜 부자연선택으로 불리는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로 이어질까.
먼저 자연 상태의 바다를 생각해보자. 대구나 명태를 보면 알겠지만 이들 물고기는 한 번에 알을 수만 개나 낳는다. 알에서 깨어난 치어 대부분이 성장 과정에서 잡아먹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 가운데 살아남은 강한 녀석들이 짝짓기를 해(물론 체외수정이지만) 종을 이어가는 것이다. 결국 자연계에서는 어리거나 병든 녀석들이 사망률이 높기 마련이다.
그런데 선택어업을 하면 정 반대의 상황이 벌어진다. 즉 작고 어린 녀석들은 그물망을 빠져나가 살아남고 커다란 물고기만 잡히기 때문이다. 어획량이 적다면 자연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겠지만 지금처럼 어자원 고갈에 이르지 않는 범위 내에서 총량을 규제하는 상황에서는 선택어업이 덩치 큰 물고기의 사망률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결국 몸집이 크게 자라고 늦게 성숙하는 유전자를 지닌 물고기들의 비율이 줄어들고 대신 조숙하고 몸집이 작은 경향의 물고기들이 늘어나면서 한 종의 전체적인 조성이 바뀌는 것이다. 실제 북극 대구의 경우 불과 70년 만에 첫 산란을 하는 개체의 몸무게가 3분이 2로 줄어들었고 이는 결국 어획량의 감소로 이어졌다.
사람 앞에서 작아지는 뿔
이런 ‘부자연선택’은 어업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다. 지난 2003년 ‘네이처’에는 나선을 그리는 멋진 뿔은 자랑하는 캐나다 큰뿔양의 뿔 크기가 불과 20여년 만에 평균 25%나 줄어들었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그 원인은 바로 인간의 사냥. 역시 선진국답게 캐나다는 사냥꾼 한 사람이 한 해 사냥할 수 있는 큰뿔양의 마리수를 제한했다. 남획으로 큰뿔양의 씨가 마르는 일을 막기 위한 선의의 조치다. 그러나 이렇게 되자 사냥꾼들은 돈을 많이 받을 수 있는 ‘큰 뿔을 지닌’ 큰뿔양만을 골라 사냥했고 그 결과 20년 만에 큰뿔양이라는 이름이 ‘부자연스러운’ 결과로 이어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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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멋진 뿔을 자랑하는 큰뿔양 수컷의 모습. 사냥 마리수를 제한한 정책을 펴자 사냥꾼들이 뿔이 정말 큰 큰뿔양만 골라잡으면서 20년 만에 평균 뿔 크기가 25%나 줄어드는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났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미국지질조사국 |
이런 현상은 다윈이 발견한 ‘성선택’과 반대되는 결과다. 다윈은 자연선택과 함께 진화의 주요 동력으로 성선택 이론을 제안했는데 숫 큰뿔양의 뿔도 성선택으로 나타난 표현형이기 때문이다. 즉 뿔이 크고 화려할수록 수컷이 더 건강하고 활력이 넘친다는 증거이므로 암컷들이 선호하기 때문에 오랜 세월에 걸쳐 큰뿔양의 뿔은 더 커지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는 것. 그런데 사람들이 선택적인 사냥에 나서면서 불과 20년 만에 성선택에 완전히 반대가 되는 방향의 진화를 이끌어낸 셈이다.
사실 지난 1만 년 사이 인류가 놀라운 발전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건 작물화와 가축화로 인한 정착생활과 여분의 재화 덕분이다. 작물화와 가축화는 사람들이 원하는 특성을 지니는 방향으로 이뤄져 왔다. 작물화 된 벼는 야생벼에 비해서 낟알의 개수도 훨씬 많고 크기도 크다. 또 다 여물어도 흩어지지 않고 붙어 있어 수확하기도 좋다. 젖소 역시 새끼가 없어도 하루에 수십 리터씩 우유를 만들게 진화했다. 심지어 사람이 젖을 짜주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할 정도에 이르렀다.
그러나 어업이나 사냥처럼 야생의 생명체를 이용하는 활동의 경우 나름대로 심사숙고한 방식이 사람들의 원하는 방향과 반대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점차 깨닫고 있다. “치어를 잡지 않으면 어자원 고갈이 일어나지 않겠지, 사냥 마리수를 제한하면 개체수를 유지할 수 있겠지”와 같은 단순한 사고로는 복잡한 생태계의 변화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
그렇다고 선택어업을 포기하고 어부들이 알아서 하라고 방치해야 하는 걸까. 물론 그런 건 아니다. 어자원이 고갈되면 표현형이 변하는 진화가 아니라 멸종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세계자연보전연맹의 가르시아 박사 등 어류학자들은 2012년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제는 ‘선택어업’대신 ‘균형어업(balanced harvesting)’으로 어업정책을 바꿔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즉 어획량과 크기를 규제하는 기존 정책에서 어획량만을 규제하는 정책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
아울러 특정한 종에 선별적인 어업을 지양하고 잡힌 물고기는 다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즉 잡고자 하는 물고기(예를 들어 대구)를 제외한 다른 종(예를 들어 명태)은 놓아주는 게 당연해보이지만 결국 특정 종만을 포획하면 결국 바다 생태계를 교란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양한 물고기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예를 들어 명태를 먹는 나라로 수출하거나 가공식품 원료로 활용)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
앞으로는 TV에서 원리원칙대로 자를 대고 기준에 못 미치는 물고기는 놓아주는 선진국의 낚시꾼 모습을 보더라도 더 이상 감탄하며 부러워할 것 같지는 않다. 자연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이 떠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2013.02.15 ⓒ ScienceTim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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