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국으로 보는 팔도(八道)기행
지역마다 달라, 제주는 떡국전통 없어
설날은 순 우리 말이다. 한자로는 원일(元日), 세수(歲首), 연시(年始), 연두(年頭)라고도 한다. 한자 그대로 모두 한 해의 첫날을 의미한다.
따라서 설이란 묵은 해를 떨쳐 버리고 새해를 맞는 날이라는 뜻이다. 그러면 순수 우리 말인 ‘설’이라는 단어는 어디에서 유래된 된 말일까? 설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
한 살 먹는다고 해서 ‘설’?
하나는 '한 살 나이를 더 먹는다'에서의 '살'에서 왔다고 한다. 곧 '살'이 '설'로 된 것인데, '머리'가 '마리’(짐승이나 물고기, 곤충을 세는 단위)에서 왔다는 사실을 근거로 이렇게 유추하는 것이다.
언어학에는 모음교체(母音交替)라는 말이 있다. 상반된 두 모음이 서로 바뀌어 의미 분화를 주는 것. 모음 ㅏ가 ㅓ로 바뀌어 뜻이 분화하는 것처럼 말이다. 갓이 겉, 맛이 멋으로 변한 것도 같은 이치다.
다른 견해도 있다. ‘장이 선다’ 와 같이 쓰이는 ‘서다’의 '서'에서 왔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니 한 해를 새로 세운다는 뜻이 된다. 예를 들어 새해부터는 담배나 술을 끊겠다던지, 운동을 시작하겠다던지 등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설다(제대로 익지 않다)', '낯설다,' '설 어둠(해가 진 뒤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은 어둑어둑한 때)'과 같은 ‘설'에서 왔다는 견해도 있다. 새로운 해가 시작되니 아직은 완전하지 않아 익숙하지 않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한 살 더 먹는 것이 섧다해서 ‘설’? 낯설어서 ‘설’?
설날을 신일(愼日)이라고도 한다. 한자 뜻 그대로 해석하자면 삼가고 조심해야 하는 날이라는 의미다. '삼가다' 또는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는 뜻의 옛말 '섧다'에서 왔다는 견해도 있다. 이날은 새해 첫날이기 때문에 경거망동하지 말고 조심해야 할 낯선 날이라는 의미다. 오늘날 섧다는 ‘슬프다’는 의미다. 따라서 한 살 더 먹는다는 것이 서글프다는 해석도 된다.
설득력 있는 이야기로 들린다. 또 다른 명절인 추석과 비교하면 말이다. 추석은 일종의 축제일이다. 풍성한 가을 수확 뒤에 오는 기쁜 마음으로 즐기는 일종의 파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설날은 축제일이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설은 오히려 가을의 풍성한 수확을 기원하는 날이기 때문에 경건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해야 한다는 주장에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설은 새해 새날이 시작되는 날이기 때문에 몸가짐에 그릇됨이 없도록 조심하는 날이라는 의미가 될 수 있다.
떡국, 무병장수와 재물을 기원
그러면 설날 아침에는 왜 떡국을 먹는가? 아마 “새해의 시작인 만큼 엄숙하고 청결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떡국을 먹기 시작했을 것이다. 떡국에 들어가는 가래떡은 무병장수와 풍요를 기원했고, 썬 떡의 둥근 모양은 화폐를 형상화하여 재물도 많이 들어오길 바래는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설이란 묵은 해를 떨쳐 버리고 새해를 맞는 날이라는 뜻이다. 그러면 순수 우리 말인 ‘설’이라는 단어는 어디에서 유래된 된 말일까? 설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
한 살 먹는다고 해서 ‘설’?
하나는 '한 살 나이를 더 먹는다'에서의 '살'에서 왔다고 한다. 곧 '살'이 '설'로 된 것인데, '머리'가 '마리’(짐승이나 물고기, 곤충을 세는 단위)에서 왔다는 사실을 근거로 이렇게 유추하는 것이다.
언어학에는 모음교체(母音交替)라는 말이 있다. 상반된 두 모음이 서로 바뀌어 의미 분화를 주는 것. 모음 ㅏ가 ㅓ로 바뀌어 뜻이 분화하는 것처럼 말이다. 갓이 겉, 맛이 멋으로 변한 것도 같은 이치다.
다른 견해도 있다. ‘장이 선다’ 와 같이 쓰이는 ‘서다’의 '서'에서 왔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니 한 해를 새로 세운다는 뜻이 된다. 예를 들어 새해부터는 담배나 술을 끊겠다던지, 운동을 시작하겠다던지 등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설다(제대로 익지 않다)', '낯설다,' '설 어둠(해가 진 뒤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은 어둑어둑한 때)'과 같은 ‘설'에서 왔다는 견해도 있다. 새로운 해가 시작되니 아직은 완전하지 않아 익숙하지 않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한 살 더 먹는 것이 섧다해서 ‘설’? 낯설어서 ‘설’?
설날을 신일(愼日)이라고도 한다. 한자 뜻 그대로 해석하자면 삼가고 조심해야 하는 날이라는 의미다. '삼가다' 또는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는 뜻의 옛말 '섧다'에서 왔다는 견해도 있다. 이날은 새해 첫날이기 때문에 경거망동하지 말고 조심해야 할 낯선 날이라는 의미다. 오늘날 섧다는 ‘슬프다’는 의미다. 따라서 한 살 더 먹는다는 것이 서글프다는 해석도 된다.
설득력 있는 이야기로 들린다. 또 다른 명절인 추석과 비교하면 말이다. 추석은 일종의 축제일이다. 풍성한 가을 수확 뒤에 오는 기쁜 마음으로 즐기는 일종의 파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설날은 축제일이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설은 오히려 가을의 풍성한 수확을 기원하는 날이기 때문에 경건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해야 한다는 주장에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설은 새해 새날이 시작되는 날이기 때문에 몸가짐에 그릇됨이 없도록 조심하는 날이라는 의미가 될 수 있다.
떡국, 무병장수와 재물을 기원
그러면 설날 아침에는 왜 떡국을 먹는가? 아마 “새해의 시작인 만큼 엄숙하고 청결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떡국을 먹기 시작했을 것이다. 떡국에 들어가는 가래떡은 무병장수와 풍요를 기원했고, 썬 떡의 둥근 모양은 화폐를 형상화하여 재물도 많이 들어오길 바래는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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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떡국은 백의민족인 우리의 전통으로 상고시대부터 내려왔다. |
떡국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가장 독특한 우리 고유의 전통음식이다. 설 대표 음식인 떡국은 ‘떡을 넣고 끓여낸 탕’이라고 해서 ‘병탕(餠湯)’, 혹은 ‘병갱(餠羹)’으로도 불렸으며 이 음식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고 해 ‘첨세병(添歲餠)’이라고도 했다.
그러면 우리 조상들은 언제부터 떡국을 먹었을까? 떡국의 역사에 대해 정확히 나와 있는 문헌은 없다. 조선시대 세시풍속을 담은 '열량세시기(1819)'와 '동국세시기(1849)'에는 제례음식으로 없어서는 안 될 음식으로 떡국을 꼽고 있다. 정조차례(正朝茶禮, 정조는 설 아침을 뜻하는 말임)와 세찬(歲饌, 세배하러 온 손님을 위한 음식) )으로 꼭 필요한 음식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백의민족의 전통으로 상고시대부터 유래
일제시대에 사학자이자 문인으로 활동했던 최남선이 쓴 '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에 따르면 설날에 떡국을 먹는 풍속은 아주 오래 된 것으로 상고시대(上古時代)부터 유래되었다고 한다. 원시 종교적 사상에서 깨끗한 흰 떡으로 끓인 떡국을 먹게 된 것으로 떡을 주식(主食)으로 하던 우리 민족의 관습이 지속된 것이라는 내용이다.
'조선상식문답'은 1937년 1월 30일부터 9월 22일까지 160회에 걸쳐 매일신보에 연재되었던 글을 1946년 6월 동명사(東明社)라는 출판사에서 펴낸 글이다. 조선의 역사, 사회, 문화 등의 상식을 알기 쉽게 문답식으로 풀이했다.
일본의 설(正月)은 양력 1월 1일이다. 메이지 유신 이전에는 음력 1월1일이었다. 이날 일본 사람들도 조니(雑煮)라고 하는 떡국을 먹는다. 우리의 떡국과는 달리 찰떡을 사용하며, 국물도 간장이나 된장을 사용한다. 집에서 차례는 지내지 않고, 대신 신사(神祀)에 가서 참배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꼭 같은 떡국이면서 지역마다 좀 색다르다. 지역특성에 따라 각기 다른 재료와 떡 모양새가 다르다. 끓이는 방법도 다르다. 그러면 각 지역마다 떡국이 어떻게 서로 다른지 떡국으로 만나보는 팔도기행(八道紀行)을 떠나보자.
우선 충청, 전라, 경상 삼도는 농작물이 풍부한 만큼 떡국도 다양하게 발달했다. 바다와 인접한 지역에서는 풍부한 해산물을 활용해 소박하면서도 푸짐한 떡국을 끓였다. 반면 함경, 평안, 황해도는 떡국 대신 만두를 먹었다. 쌀 농사를 짓기 힘든 만큼 떡이 귀했기 때문.
남과 북이 만나는 경기도와 강원도에서는 만두에 떡을 합친 떡만두국을 먹었다. 설날 아침상 풍경은 팔도팔색(八道八色)이다. 그러나 그 안에 깃든 정성은 모두 매한가지다.
꿩 대신 닭?
전라도 꿩떡국: 육수를 낼 때 보통 쇠고기를 사용하지만 가장 으뜸은 꿩고기로 육수를 내는 것이라고 한다. 꿩은 겨울이 되면 먹을 것이 부족해 깊은 산 속에서 민가로 내려온다. 그래서 꿩사냥이 쉬웠다. 꿩을 사냥하기가 점점 어려워지자 닭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제는 꿩떡국이 아니라 닭떡국이 돼버렸다.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바로 여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경상도 굴떡국: 몸에 좋은 굴은 겨울이 제철이다. 해산물이 풍부한 특히 경상남도 지방에서는 굴을 넣어 떡국을 만들었다.
충청도 올갱이 떡국: 논이나 민물가에서 나는 올갱이(다슬기)는 충청도의 전통적인 향토음식이다. 올갱이를 잡아 부침도 해먹는다. 떡국에 올갱이를 넣어 구수한 맛의 떡국을 즐긴다.
그러면 우리 조상들은 언제부터 떡국을 먹었을까? 떡국의 역사에 대해 정확히 나와 있는 문헌은 없다. 조선시대 세시풍속을 담은 '열량세시기(1819)'와 '동국세시기(1849)'에는 제례음식으로 없어서는 안 될 음식으로 떡국을 꼽고 있다. 정조차례(正朝茶禮, 정조는 설 아침을 뜻하는 말임)와 세찬(歲饌, 세배하러 온 손님을 위한 음식) )으로 꼭 필요한 음식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백의민족의 전통으로 상고시대부터 유래
일제시대에 사학자이자 문인으로 활동했던 최남선이 쓴 '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에 따르면 설날에 떡국을 먹는 풍속은 아주 오래 된 것으로 상고시대(上古時代)부터 유래되었다고 한다. 원시 종교적 사상에서 깨끗한 흰 떡으로 끓인 떡국을 먹게 된 것으로 떡을 주식(主食)으로 하던 우리 민족의 관습이 지속된 것이라는 내용이다.
'조선상식문답'은 1937년 1월 30일부터 9월 22일까지 160회에 걸쳐 매일신보에 연재되었던 글을 1946년 6월 동명사(東明社)라는 출판사에서 펴낸 글이다. 조선의 역사, 사회, 문화 등의 상식을 알기 쉽게 문답식으로 풀이했다.
일본의 설(正月)은 양력 1월 1일이다. 메이지 유신 이전에는 음력 1월1일이었다. 이날 일본 사람들도 조니(雑煮)라고 하는 떡국을 먹는다. 우리의 떡국과는 달리 찰떡을 사용하며, 국물도 간장이나 된장을 사용한다. 집에서 차례는 지내지 않고, 대신 신사(神祀)에 가서 참배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꼭 같은 떡국이면서 지역마다 좀 색다르다. 지역특성에 따라 각기 다른 재료와 떡 모양새가 다르다. 끓이는 방법도 다르다. 그러면 각 지역마다 떡국이 어떻게 서로 다른지 떡국으로 만나보는 팔도기행(八道紀行)을 떠나보자.
우선 충청, 전라, 경상 삼도는 농작물이 풍부한 만큼 떡국도 다양하게 발달했다. 바다와 인접한 지역에서는 풍부한 해산물을 활용해 소박하면서도 푸짐한 떡국을 끓였다. 반면 함경, 평안, 황해도는 떡국 대신 만두를 먹었다. 쌀 농사를 짓기 힘든 만큼 떡이 귀했기 때문.
남과 북이 만나는 경기도와 강원도에서는 만두에 떡을 합친 떡만두국을 먹었다. 설날 아침상 풍경은 팔도팔색(八道八色)이다. 그러나 그 안에 깃든 정성은 모두 매한가지다.
꿩 대신 닭?
전라도 꿩떡국: 육수를 낼 때 보통 쇠고기를 사용하지만 가장 으뜸은 꿩고기로 육수를 내는 것이라고 한다. 꿩은 겨울이 되면 먹을 것이 부족해 깊은 산 속에서 민가로 내려온다. 그래서 꿩사냥이 쉬웠다. 꿩을 사냥하기가 점점 어려워지자 닭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제는 꿩떡국이 아니라 닭떡국이 돼버렸다.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바로 여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경상도 굴떡국: 몸에 좋은 굴은 겨울이 제철이다. 해산물이 풍부한 특히 경상남도 지방에서는 굴을 넣어 떡국을 만들었다.
충청도 올갱이 떡국: 논이나 민물가에서 나는 올갱이(다슬기)는 충청도의 전통적인 향토음식이다. 올갱이를 잡아 부침도 해먹는다. 떡국에 올갱이를 넣어 구수한 맛의 떡국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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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떡국 가운데 가장 특이하게 생긴 조랭이 떡국 ⓒ농촌진흥청 |
개성 조랭이 떡국: 원래 호리병처럼 생긴 조롱(조롱박)은 옷에 달고 다니면 액운을 막아준다고 한다. 또 다른 해석도 있다. 혁명으로 집권한 조선이 들어서면서 고려의 수도인 개성지방 사람들의 원한이 사무쳤다. 그래서 보라는 듯이 목을 조르고 비틀어 만든 것이 조랭이 떡국이라고 한다. 일설에는 이성계를 생각하면서 만들었다고도 한다. 어쨌든 사연이 많은 떡국이다.
강원도 떡만두국: 강원도는 쌀이 별로 나지 않는다. 그래서 떡국에다 보리나 잡곡을 섞어 만든 떡만두국을 만들어 먹는다. 그 이북은 만두국이 떡국을 대신한다. 요즘은 떡만두국 대신 두부떡국이 유행이다. 떡국도 이처럼 진화하고 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제주도에서는 어떤 떡국을 먹을까? 필자가 청소년기까지 보낸 제주도의 설날 아침상에는 떡국이 없었다. 제주도는 쌀이 귀한 지방이다. 그렇다고 만두를 먹지도 않는다. 그저 일반 차례상과 같이 하얀 쌀밥을 차례상에 올린다. 필자의 이야기는 쌀로 떡국을 만드는 풍습이 없다는 것이다.
제주도에서는 쌀밥을 ‘곤밥’이라고 한다. 고운 밥, 하얀 밥이라는 이야기다. 옛날에 이 ‘곤밥’을 먹을 수 있는 기회는 명절 때와 제사 때 밖에 없었다. 그래서 어릴 적에는 명절은 물론이거니와 제사 때는 즐거운 날이었다.
어쨌든 떡국이든, 만두든, 그리고 ‘곤밥’이든 간에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새해 아침을 맞이하려는 경건하고 정성스러운 마음가짐은 어느 지역이나 꼭 같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의 설이 아니겠는가?
저작권자 2013.02.07 ⓒ ScienceTim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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