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공학으로 물고기인간이 되다!
SF관광가이드/해저도시 이야기(4)
SF 관광가이드 유전공학은 인간의 해저생활에 대해 훨씬 현실적인 가능성을 시사한다. 아가미를 기계적으로 이식한다 해도 일회성의 신체기관 부분이식에 지나지 않지만, 유전공학은 태어날 때부터 유전형질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훨씬 현실적이고 영구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외계 행성 바다의 해저식민지를 배경으로 한 제임스 블리시의 단편 <표면장력 Surface Tension, 1952>이 좋은 예다. 노먼 나잇(Norman Knight)의 <유토피아의 위기 Crisis in Utopia, 1940>에서는 ‘조작된 창조’(tectogenesis)라는 용어가 쓰이는데, 이것은 염색체를 직접적이고 외과적으로 조작하는 유전공학적 조치를 지칭한다.1)
외계 행성 바다의 해저식민지를 배경으로 한 제임스 블리시의 단편 <표면장력 Surface Tension, 1952>이 좋은 예다. 노먼 나잇(Norman Knight)의 <유토피아의 위기 Crisis in Utopia, 1940>에서는 ‘조작된 창조’(tectogenesis)라는 용어가 쓰이는데, 이것은 염색체를 직접적이고 외과적으로 조작하는 유전공학적 조치를 지칭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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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전공학을 이용해 해저생활에 적응하는 인간들을 다룬 이야기. 왼쪽부터 순서대로 제임스 블리시와 노먼 나잇의 공저 <얼굴들의 격류, 1967>, 리 호프만의 <카스트의 동굴들, 1969> 그리고 할 클레멘트의 <정상의 바다, 1973> 표지. ⓒSphere 외 |
이 외에도 수중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생물과 인간의 개조에 유전공학을 적용한 1960~1970년대의 과학소설들로는 제임스 블리시와 노먼 나잇의 공저 <얼굴들의 격류 A Torrent of Faces, 1967>와 고든 R. 딕슨(Gordon R. Dickson)의 <우주의 수영선수들 Space Swimmers, 1967>, 리 호프만(Lee Hoffman)의 <카스트의 동굴들 The Caves of Karst, 1969>, 그리고 할 클레멘트(Hal Clement)의 <정상의 바다 Ocean on Top, 1973> 등이 있다.
과학소설은 과학기술의 발전을 순차적으로 반영하므로, 유전공학적 방법론을 구사한 작품들은 대개 단도직입적으로 외과수술을 적용한 작품들보다는 상대적으로 나중에 발표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들이 반드시 아가미를 수술이나 유전공학으로 인간의 몸에 생겨나게 해야만 인간이 물 속에서 오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할 클레멘트(Hal Clement)의 <정상의 바다>와 할리웃 영화 <심연 Abyss, 1989>, 그리고 피터 와츠(Peter Watts)의 <불가사리 Starfish, 1999>에서는 심해에서 인간이 숨을 쉴 수 있는 특수물질이 개발된다.
<정상의 바다>는 이른바 ‘최초의 접촉’(First Contact)의 바다 버전이다. 접촉의 대상이 외계인이 아니라 오랜 동안 지상의 인류와 격리되어 살아온 심해인(深海人)들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인구과잉과 에너지 자원고갈이 빚어낸 각종 위기에 대처하고자 세상의 정부가 하나로 통일된 근미래, 전력관리부(Power Board)의 한 조사요원이 타이티 섬 인근의 태평양 아래로 잠수구를 타고 내려가 실종된 동료요원들을 찾아 나선다. 전력관리부는 세계정부 산하에서 지구 전역의 전력 에너지를 생산/배급/감시하는 주무부서다. 에너지가 늘 부족하다보니 할당량 이상의 전력을 소모한 곳이 발견되면 해당 부서에서 원인파악을 위해 요원들을 급파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동료들이 실종된 해역의 수심 1,500m 해저에서 조사요원이 난데없이 심해인들을 만나는 데서 급물살을 탄다. 심해인들은 이렇다 할 보호 장비 없이 거의 맨몸으로 깊은 바다 속을 돌아다닌다. 단순하게 생긴 헬멧과 온몸을 감싼 통짜 옷이 전부일 뿐 산소통조차 메지 않았다. 보통 인간이라면 엄청난 수압에 짜부라지고도 남았을 터이다. 심해인들은 물보다 비중이 무거운 액체를 발명해 체액을 대체하고 공기가 아닌 물 속에서 산소를 호흡하는 방법을 찾아낸 덕에 해저에서 일종의 국가를 건설한 지 오래되었다. 덕분에 이제까지 물 밖의 세계에 노출될 일이 없었던 것이다.
심해인들은 지상에서 온 전력관리부 요원에게 양자택일을 강요한다. 하나는 즉시 떠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수술을 받아 그들과 함께 해저에 머무는 것이다. 어차피 자신이 겪은 일을 상부에 보고해 봤자 웃음거리만 되리라 여긴 조사요원은 해저에 머무는 쪽을 택한다. 동시에 그는 상시 전력부족으로 시달리는 물 밖 디스토피아 세계가 깔아놓은 탐지망에 어떻게든 심해인들의 에너지원을 노출시킬 궁리를 한다. 제임스 카메론(James Cameron)이 연출한 영화 <심연>에서도 인간이 심해에서 숨을 쉴 수 있게 개발된 첨단 유동체2)가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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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터 와츠의 장편소설 <불가사리, 1999>에서는 장기간에 걸친 해저탐사를 위해 유전공학적 처치를 받은 탐사요원들이 투입된다. 그 결과 이들은 가공할 수압에 견딜 뿐 아니라 바닷물로 호흡도 할 수 있다. ⓒBruce Jensen |
<불가사리>에서는 2050년 에너지 분야의 한 다국적 대기업이 해저화산 인근의 지열 에너지를 개발하기 위해 심해 생활에 맞게 개조된 인간들을 해저기지로 파견한다. 태평양의 후안 데 후카(Juan de Fuca) 해협 밑바닥은 수면으로부터 0.9km 아래지만 유전공학적 처치를 받은 탐사요원들은 이 가공할 수압에 견딜 뿐 아니라 바닷물로 호흡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요원들의 신체에 몸의 화학성분을 바꿔주는 레트로바이러스 같은 특수효소가 주입되고 아가미 대신 호흡장치가 체내에 이식된다. 이러한 작품들에서 가정한 특수물질은 아직까지는 SF의 소재에 그치고 있으나 관련연구가 계속되고 있으므로 언제인가 실용화되는 날이 오리라 생각된다.
국내에서는 직접 물 속에서 호흡할 수 있는 기능은 없지만 내려갈수록 기하급수로 늘어나는 심해의 수압을 잠수정 안에서 견뎌내게 해주는 특수혈액의 발명을 소재로 한 작품도 나왔다. 박민규의 <깊, 2010>이 바로 그것으로, 여기서는 수심 19,000미터 심해에 사는 해삼의 체액을 걸러주는 돌기모양의 공생동물 체액에서 정제한 대체혈액 R-71로 심해 잠수정 승무원들이 살인적인 고압에 버텨낸다.
승무원들은 잠수정을 타고 해저지진으로 새로 생겨난 수심 19,251미터의 해구에 다가간다.(기존의 마리아나 해구는 수심 11,034미터다.) 그러나 얄궂게도 당도해 보니 그곳은 세계에서 가장 깊은 바닥이 아니었다. 근처에 또 다른 깊은 틈이 발견된 것이다. 승무원들은 망설인다. 더 내려갈까, 말까? 해상관제소에서는 돌아오라는 전문이 빗발친다. 마침내 이들은 잠수정을 움직여 새로 발견한 구멍으로 내려간다. 수심 25,187미터. 세상에서 가장 깊은 해저에 도달한 것이다. 하지만 돌아갈 추력을 잃은 승무원들은 그곳에서 꼼짝달싹 못한 채 압력에 짓눌려 전부가 작은 오렌지 만큼 작아진다.
<깊>은 인간의 자연지배의 한계를 사고실험하는 이야기다. 이제 보통 인간들이 사는 평균기압의 환경에서는 살 수 없게 변해버린 몸으로 이들은 자문(自問)한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인간일까? 잠수정 승무원들의 장렬한 최후를 통해 작가는 이들이 인간, 그것도 진정한 인간이었음을 시사한다. 심해압에 맞게 조절된 몸 때문에 다시는 정상적인 인간들과 한 공간에서 만날 수 없게 된 이 고독한 존재들은 적당히 주어진 임무에 만족하지 않고 미지의 극한을 찾아 끝까지 답을 얻어내려는 노력과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자신들이 인간이었음을 증명한다.
이제까지 열거한 작품들에서 보듯이 과학기술이 발달을 거듭하다 보면 언젠가 인간이 정말 물 속에서 숨을 쉴 수 있는 날이 올까? 사람이 물 속에서 허파로 호흡하지 못하는 이유는 산소가 부족하고 압력이 너무 세기 때문이다. 1960년대 뉴욕주립대 버팔로(SUNY Buffalo)의 과학자 J. 킬스트라(Kylstra)는 소금물에 고압을 가해 산소를 다량 녹여 넣는 방법을 찾아냈다.3)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그는 허파에서 공기를 빼낸 다음 산소가 녹아있는 소금물을 주입했다. 그 결과 생쥐들은 소금물로 숨을 쉴 수 있었으나 이내 이산화탄소 농도가 너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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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6년 미국의 생화학자 리랜드 클락은 플로로카본 용액에 산소를 듬뿍 녹여 넣어 쥐가 그 속에서도 멀쩡하게 호흡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실험을 했다. 그는 오늘날 바이오센서의 아버지로 일컬어진다. ⓒLeland Clark |
1966년 리랜드 클락(Leland Clark)은 소금물 대신 플로로카본(Fluoro-carbon)4) 용액에 산소를 듬뿍 녹여 넣어 동일한 실험을 했다. 그 결과 동물들은 그 용액에서 산소를 흡수하고 대신 이산화탄소를 내뱉었다. 플로로카본 용액의 온도가 낮을수록 쥐의 호흡이 느려져 이산화탄소의 생성을 막아줌으로써 물 속에서 더 오래 살 수 있었다.
플로로카본 용액을 이용한 일련의 실험은 1990년대에도 계속되며 성공률이 높아졌다. 실험대상은 개처럼 비교적 덩치가 큰 동물에게까지 확대되었지만 몸에 심각한 손상을 입은 예는 없었다. 플로로카본은 인체에 흡수되지 않기 때문에 의료 처치중에 환자가 숨쉬게 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 그러나 물이나 액체에 산소를 다량 녹여 넣는 방식은 바다나 강에 적용할 수 없기 때문에 설사 인체에 무해하다 해도 실제 효용가치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훗날 인간의 몸에 아가미를 이식하거나 물 속에서 산소만 걸러내는 체액으로 교환할 수 있게 된다 해도 배아복제를 둘러싼 논쟁과 마찬가지로 인간신체의 임의변형은 윤리적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 1) 이 용어는 노먼 라인과 제임스 블리시가 함께 만들어낸 용어다. 2) 액체와 기체를 합쳐 부르는 용어. 변형이 쉽고 흐르는 성질을 갖고 있으며 형상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특징이 있다. 3) 로이스 그레시와 로버트 와인버그 지음, <수퍼영웅의 과학 The Science of Superheroes>, 한승, 2004년, 111~112쪽 4) 프레온이라고도 하며 탄소에 염소와 불소 원자가 결합된 화합물로 에어컨의 냉매나 에어졸 제품의 분무제 등에 쓰인다. 화학적으로 안정된 물질이라 인체에 무해하나, 강한 자외선을 받으면 분해 되어 염소를 방출한다. 이 염소가 촉매 작용하여 계속 오존과 반응하게 되면 오존층을 파괴된다. 이러한 사실이 밝혀진 이래 프레온 가스의 사용은 제한되고 있다. |
저작권자 2013.02.13 ⓒ ScienceTim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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