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26일 화요일

친환경 그래핀 대량생산기술 개발

친환경 그래핀 대량생산기술 개발

[인터뷰] 백종범 UNIST 친환경에너지공학부 교수

 
지구상에 존재하는 화석연료는 그 매장량이 점차 고갈되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인류가 의존할 수 있는 대체에너지 개발에 많은 과학자들이 매달리고 있다. 또한 기존 화석연료를 대체하면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연료는 연구자들이 개발해야 할 핵심 기술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이런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그래핀을 친환경적으로 대량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울산과학기술대(UNIST) 백종범 교수 연구팀이 백금을 대체할 수 있는 성능의 그래핀 촉매개발 연구에 성과를 거둔 것이다. 해당 연구에 대해 백종범 교수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래핀, 친환경적으로 대량생산
이 연구의 핵심은 그 양이 무궁무진한 수소를 연료로 하는 전지, 즉 연료전지의 핵심 부품인 고가의 양극소재 백금을 대체할 수 있는 그래핀 촉매를 개발했다는 점이다.
▲ 백종범 UNIST 친환경에너지공학부 교수 ⓒUNIST

그래핀은 흑연의 표면층을 한 겹만 떼어낸 탄소나노물질로, 높은 전기전도성과 전하 이동도를 갖고 있어 향후 응용 가능성이 높아 꿈의 신소재로 불리고 있다. 흑연에서 추출하는 과정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진행하는가에 따라 물질을 생산하는 경쟁력도 높아지는 만큼, 이는 그동안 많은 과학자들의 연구대상이었다.

백종범 교수팀은 쇠구슬을 이용해 흑연을 고속분쇄, 그래핀을 친환경적으로 대량생산할 수 있는 공정을 개발했다. 이렇게 생산된 그래핀은 고가의 백금촉매를 대체할 수 있는 만큼 연료전지와 금속공기전지 등의 개발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백금은 현존하는 촉매 중 성능이 가장 뛰어난 물질로, 연료전지에 사용될 경우 높은 효율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매장량이 제한적이라는 점과 제조비용 역시 매우 고가이기 때문에 상업적으로 사용하는 데 걸림돌이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점은 시간이 지나면서 불순물에 의해 활성이 저하된다는 점이다. 백금은 불순물에 의해 피독되는데, 이에 따라 촉매 활성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때문에 장시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이와 같은 문제점으로 철과 니켈, 구리 등 값싼 금속으로 대체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촉매활성이 낮다는 한계로 인해 그마저 여의치 않았다.

백 교수팀은 쇠구슬을 이용해 흑연을 고속분쇄할 때 흑연이 주위물질과 반응하면서 수소 등이 가장자리에 부착되는 원리에 주목했다. 비교적 간단한 기계화학적인 방법을 통해 복잡하고 유독한 기존 산화환원방식의 단점을 극복해낸 것이다. 기존 산화환원 방식의 경우 흑연을 강산과 강한 부식성 산화제를 이용해 산화시킨 후 초음파로 분쇄해 이를 다시 환원시켜야 했기 때문에 그 과정이 매우 복잡했다.

“볼밀(ball mill, 시멘트를 섞는 레미콘원리와 유사함)이라는 장치에서 흑연분쇄 과정을 진행했다. 볼밀 장치 속에는 쇠구슬을 담는 통이 지구와 같이 공전과 자전을 동시에 하며 회전한다. 장치 속에 흑연과 쇠구슬과 붙이고자 하는 기체를 넣고 고속 회전을 하면 큰 입자의 흑연이 부서지면서 기체와 반응해 가장자리가 기능화되는데, 이러한 원리를 이용해 기술을 개발하게 됐다.”

운동 중 얻은 아이디어로 연구 몰입
백종범 교수팀의 이번 연구를 통해 만들어진 그래핀은 백금촉매를 대체할 만한 우수한 산소환원능력과 안전성이 입증돼 주목을 받고 있다. 활성화된 그래핀을 연료전지에 적용한 결과 산소환원력은 백금과 비슷하고, 안정성이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더불어 연구팀이 개발한 가장자리가 선택적으로 기능화된 그래핀을 산소환원전극 재료로 사용할 경우 연료전지셀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높은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됐다.
▲ 고속분쇄를 통한 EFGnPs 형성 메커니즘 모식도. 분쇄된 흑연이 주변의 물질과 반응하여 기능화된 그래핀이 형성되고 있다. ⓒ한국연구재단

사실 차세대 상업용 친환경에너지원으로는 연료전지의 전망이 가장 밝지만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상업화까지 걸리는 시간은 다소 지체되고 있다. 백 교수는 “이러한 어려움으로 인해 화석연료가 고갈되고 친환경 대체에너지의 상업화를 갈망하고 있는 지금 시점에 에너지를 생산하지 못하고 단지 저장만 할 수 있는 이차전지가 호랑이 없는 산 속에서 왕노릇을 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차세대 에너지원인 연료전지를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 문제점이 해결돼야 한다. 먼저 고분자 분리막 문제다. 미국 듀폰(du Pont)사의 네피온(Nafion)이 연료전지의 양극과 음극을 분리해주는 상업화된 고분자 분리막을 개발했으나 전지온도가 80도를 넘으면 작동이 중지되기 때문에 해당 문제의 해결이 필요하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여름에 자동차 온도가 올라가면 자동적으로 시동이 끊기게 될 것이다. 나머지 두 개는 수소 저장문제와 백금촉매 대체 소재 개발이다.

“연료로 사용되는 수소의 저장문제도 해결해야 할 사항이다. 수소는 분자가 매우 작아 어떤 통에 넣어도 새어 나오게 된다. 한 예로 풍선에 공기를 불어 넣으면 며칠 후 빠지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중 수소가 가장 빨리 빠지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용기에나 수소를 저장할 수는 없다. 사고 발생 시 폭발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표면적이 넓은 고체표면에 흡착시켜 놓아야 안전하므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표면적이 매우 넓은 다공성 소재 개발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상태다.”

마지막으로 고가의 백금촉매를 대체할 소재 개발인데, 백 교수팀의 연구는 이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백 교수는 이번 연구를 어떤 계기에 의해 시작하게 됐을까. 이 물음에 백 교수는 “화학자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이야기했다. 평소 모든 세상만물을 화학구조로 보는 습관으로 인해 이번 연구도 시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일례로 나는 커피를 마실 때 벤젠고리가 몇 개인 화합물이 이 컵 속에 들어 있는지 생각한다. 커피 맛은 다소 떨어지겠지만 (웃음) 내가 화학자라서 그런지 세상의 모든 만물을 화학구조로 보게 된다. 이처럼 이번 연구 역시 우연치 않은 물음으로부터 시작됐다. 최근 건강이 좋지 않아 헬스장에서 운동을 시작했는데, 운동을 하던중 문득 ‘수많은 탄소 원자가 넓은 평면에 연결된 거대 화합물이 흑연이라면, 그 화학적 결합 고리들을 물리적으로 끊으면 주변에 있는 가스와 반응을 할까’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다. 그리고 직접 해봤다. 매우 잘 되더라. 그렇게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

현상에 대한 물음을 갖고 직접 실험을 통해 확인한 백 교수는 자신이 발견한 결과에 매우 흥분, 학생들과 바로 실험에 들어갔다. 설렘을 가득 안고 3개월 동안 학생들과 밤낮으로 실험하고 데이터를 정리해 논문을 썼다. 이후 지난해 미국과학한림원회보(PNAS)에 보고하게 되면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백 교수의 연구에 대해 다룬 언론의 기사만 국내외 약 100건에 달할 정도였다.

“볼밀을 사용한 방법은 매우 간단해 많은 분야에서 수백 년 동안 물질을 섞을 때 일반적으로 이용됐다. 그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팀이 발표하기 전에는 누구도 알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발표하게 된 것이다. PNAS 논문은 볼밀의 원리를 규명한 것이고 이번 연구 결과는 그 후속으로 상업적으로 응용할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 외에도 볼밀을 이용해 더 흥미있는 일들이 진행되고 있다. 추후 또 다른 연구결과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다.”

이번 연구는 비싼 백금을 대체할 만한 성능을 지닌 촉매를 개발, 연료전지의 3대 문제점 중 하나를 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태양전지에 적용해도 백금보다 성능이 좋은 것으로 확인되며 화석연료 자동차 배기통과 석유화학공장, 연료전지, 태양전지 등 백금을 촉매로 사용하는 분야에서 고가의 백금촉매를 훨씬 우수한 성능으로 대체해 산업에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번 연구와 관련, 백종범 교수는 과학에 매진하는 전공 학생들에게 열정과 주인의식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모든 훌륭한 연구결과에는 열정과 주인의식이 있었다. 좋은 연구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잠자리에 누워서도 그 일에 대한 생각으로 날이 밝아 다음날이 빨리 오길 기다리는 마음으로 잠을 설치는 설렘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학생들은 그러한 설렘이 다소 부족해 보일 때가 있다. 과학의 길로 본격적으로 들어서는 대학원 과정을 시작했다면, 연구에 전력을 기울이는 열정을 불붙이길 바란다. 그렇게 한다면 추후 훌륭한 과학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번 연구에 대한 호평과 관련해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앞으로의 여정이 남아 있음을 암시했다. 볼밀이라는, 단순해 보이지만 양파처럼 벗길수록 그 속을 알 수 없는 장치에 대해 후속연구를 진행해 더욱 성능이 개선된 재료를 개발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세계 최고의 기술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백 교수의 모습에서 미래 대한민국의 과학을 엿볼 수 있었다.


황정은 객원기자 | hjuun@naver.com

저작권자 2013.02.2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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