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2일 토요일

사람은 마흔앓이, 오랑우탄은 서른앓이?

사람은 마흔앓이, 오랑우탄은 서른앓이?

일러스트가 있는 과학에세이 14

 
일러스트가 있는 과학에세이 “최종 목적지를 알지 못하는 항해자에게는 순풍이 불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 세네카
▲ 최근 출간돼 화제가 되고 있는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 크리스토프 포레의 ‘마흔앓이’. 칼 융의 자기실현의 관점에서 중년의 위기를 해석했다. ⓒ강석기
최근 번역 출간된 프랑스의 신경정신과 전문의 크리스토프 포레의 책 ‘마흔앓이’가 화제다. 젊음을 뒤로 하고 사십대에 접어드는 사람들이 겪는 심리적 어려움, 즉 ‘중년의 위기’를 스위스의 심리학자 칼 융의 분석심리학을 활용해 해석한 이 책은 중년의 위기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사실 원서의 제목을 직역하면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다!(Maintenant ou jamais!)’ 정도일 텐데 출판사가 그럴듯한 제목을 뽑은 것 같다. 다만 요즘 유행하는 ‘…앓이’라는 표현은 어떤 대상에 대한 열에 들뜬 짝사랑을 의미하는데(예를 들어 드라마 ‘착한남자’와 영화 ‘늑대소년’의 주인공 송중기에 대한 ‘중기앓이’처럼) ‘마흔앓이’의 앓이는 글자그대로 중년에 겪는 마음고생을 뜻한다.

1965년 등장한 ‘중년의 위기’
‘마흔앓이’보다 좀 더 학술적인(!) 용어인 ‘중년의 위기(midlife crisis)’는 1965년 캐나다의 심리학자 엘리엇 자크가 ‘정신분석국제저널’에 ‘죽음과 중년의 위기(Death and the Midlife Crisis)’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면서 처음 사용됐다. 즉 사람들이 40~50대에 들어선 어느 순간 자신이 언젠가는 죽을 존재이고 그 날이 머지않았음을(인생의 반환점을 돌았으므로) 깨달으면서 느끼는 실존의 위기라는 것이다.

그 뒤 ‘중년의 위기’라는 말은 대중에게도 크게 어필해 일상용어가 됐고 중년에 들어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심리상태를 ‘중년의 위기’라고 자가진단하기에 이르렀다. ‘마흔앓이’에서 저자 크리스토프 포레는 이와는 다른 관점에서 ‘중년의 위기’를 바라본다. 즉 많은 사람들이 중년에 접어들며 겪게 되는 심리적 혼란은 단순히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자기실현에 대한 갈망이 표면으로 드러난 상태라는 것.

즉, 인생전반기(태어나서 40세까지) 우리 삶은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과정이고 따라서 외부 지향적이라는 것. 젊은이들은 칼 융이 말한 ‘페르소나(persona, 가면)’ 즉 타인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에 신경쓰며 거기에 충실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페르소나 밑에 가려진 그 사람의 또 다른 본질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모습을 드러낼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 그 때가 바로 중년이라는 말이다.

즉 ‘처음에는 무의식이었던 자기를 의식하는 것’이 중년의 과제이고 그 과정의 혼란이 ‘중년의 위기’로 나타난다. 따라서 중년의 위기는 단순한 위기가 아니라 차후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즉 자기실현을 이루게 하는 원동력으로 볼 수 있고, 저자는 책에서 그런 방향으로 중년의 삶을 이끌어나가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중년의 위기’는 이렇게 명쾌하게 분석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1990년대 행복심리학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면서 연구자들은 흥미로운 패턴을 발견한다. 즉 삶에서 느끼는 행복도가 나이에 따라 차이가 나는데 공교롭게도 중년일 때가 가장 낮다는 것. 행복도는 나이가 들수록 서서히 낮아지다가 중년에 최저점을 지나 그 뒤에는 오히려 서서히 올라간다. 영어 알파벳 ‘U’가 연상되는 곡선을 그린다는 말이다.

이런 패턴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설이 나왔다. 먼저 행복한 사람이 오래 산다는 가설. 한 개인으로 보면 나이가 들수록 행복감이 서서히 떨어지지만 상대적으로 자신이 더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빨리 죽으므로 그래프 상으로는 노년이 더 행복한 것으로 보인다는 말이다. 다른 가설은 중년이 불행한 건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할 거라는 걸 처음 깨닫는 시기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즉 자기 능력의 한계를 깨닫는 시기인데 나이가 들수록 포기를 하므로 오히려 불행감은 줄어든다는 것. 한편 재정적인 어려움이 가잘 큰 시기가 중년이기 때문에 불행하다는 가설도 있다. 자녀에게 들어갈 돈도 많고 노후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다양한 가설에도 불구하고 중년의 위기, 즉 행복감이 U자를 그리는 이유는 아직 불분명하다.
ⓒ강석기

그런데 최근 사람과 가까운 대형 유인원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침팬지와 오랑우탄도 나이에 따라 행복도가 U자형 곡선을 그린다는 것. 최저점의 나이는 30살 전후로 사람으로 치면 45~50세에 해당한다. 침팬지와 오랑우탄도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는 셈이다. 감성적 용어로 표현하면 ‘서른앓이’라고 해야 할까.

영국과 미국, 일본 등 다국적 연구팀은 동물원과 연구소 등에 살고 있는 침팬지와 오랑우탄을 대상으로 행복도 조사를 했다. 물론 동물들에게 직접 행복한 지 물어본 건 아니고 사육사나 연구자처럼 동물을 오랫동안 돌보면서 그 특성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다. 동물의 기분이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현재 사회적 상황에서 얼마나 즐거움을 느끼나? 목표를 성취하는데 얼마나 성공적인가? 지난 1주일동안 얼마나 행복해 보였나? 이런 질문에 대해 7점 척도로 대답했다.
▲ 대형 유인원의 나이에 따른 행복도 곡선. 사람에서 45~50세에 해당하는 서른 살 전후에서 행복도(세로축)가 최저임을 알 수 있다. ⓒPNAS

이렇게 해서 침팬지 336마리와 오랑우탄 172마리에 대한 행복도 조사 데이터를 얻었다. 나이 분포는 2개월에서 56살까지 다양했다. 그런데 나이에 따라 행복도 그래프를 그리자 사람의 경우처럼 ‘U’자 형 곡선이 나온 것. 따라서 ‘중년의 위기’의 위기는 사람과 이들 대형 유인원의 공통조상 시절부터 있어왔던 특징일지 모른다. 이에 대한 이유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연구자들은 몇 가지 설명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앞의 사람의 경우처럼 행복할수록 오래살기 때문이라는 가설이다. 실제 2011년 오랑우탄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 그렇다는 게 밝혀졌다. 다음으로 사람과 침팬지, 오랑우탄 공통으로 뇌에서 행복감에 관여하는 부분의 구조가 나이에 따라 변화하면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가설이다. 다음으로는 이 세 종 모두 나이가 들수록 정서를 조절할 수 있는 행동을 지향한다는 것. 즉 좀 더 긍정적인 정서를 이끌어낼 수 있는 상황이나 집단, 목표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U자형 행복도 곡선이 사람만의 특성은 아니라는 건 그 기원에 최소한 부분적으로 다른 대형 유인원과 공유하는 생물학적 원인이 있음을 시사한다. 자신이 마흔앓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딘가 다른 곳에서 나의 친척들도 서른앓이를 겪고 있음을 떠올린다면 약간이나마 힘이 되지 않을까.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 kangsukki@gmail.com

저작권자 2013.02.0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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