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물 속에서 숨쉬는 양서인간의 탄생
SF관광가이드/해저도시 이야기(3)
SF 관광가이드 해저도시를 짓는다면 과연 어떤 모양일까? 1964년 만국박람회에서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의 퓨처라마(Futurama)는 이러한 주거단지가 어떤 모습일지 구체적인 모델을 공개한 바 있다. 당시 이 도시는 단지 플라스틱 돔 안에 세워진다는 차이가 있을 뿐 모양 자체는 지상의 여느 도시와 다를 바 없었다. 과학소설 작가들의 생각도 엇비슷하다. 소설 속의 해저도시라 하면 대개 돔이나 거품처럼 생겼으며 그 안에 마른 공기를 불어넣어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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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다 궤도선(Sea Orbiter)은 2013년 진수 예정인 우주선을 닮은 해양 연구조사선이다. 이 움직이는 연구실은 선체의 일부를 수면 아래 잠기게 하는 형태로 안정성을 유지함으로서 과학자들이 아예 장기간 상주하면서 해양연구를 할 수 있게 해준다. 여기에는 연구시설 뿐 아니라 공구제작실, 거주구역 그리고 다이버들과 잠수함들이 드나들 수 있는 압력 데크가 완비되어 있다. 프랑스 건축가 자끄 루게리(Jacques Rougerie)가 주도한 이 프로젝트에는 해양학자 자끄 삐까(Jacques Piccard)와 우주비행사 장루 크레티앙(Jean-Loup Chretien)이 참여했다. 제작비는 약 5천2백70만 달러. 이 프로젝트는 인류문명이 해양도시 및 해저도시로 나아가는 상징적인 교두보가 될 것이다. 조만간 이런 무대가 과학소설이 아니라 로맨스 소설의 배경이 되지 않을까 싶다. ⓒJacques Rougerie |
해저도시는 입지 선정 또한 무척 중요하다. 화산대나 지진대에 놓일 경우 뜻밖의 화를 자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로저 젤라즈니(Roger Zelazny)의 단편 <루모코 프로젝트 전날 The Eve of Rumoko, 1969>은 인간의 사리사욕이 해저도시를 괴멸시키는 화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소설의 제목 루모코 프로젝트는 지각이 얇은 해저에 구멍을 뚫어 해저화산을 분출시킴으로서 인공 섬을 만들려는 구상을 일컫는다. 이렇게 생긴 섬을 늘어만 가는 인구의 거주지로 전용하려는 취지다.
그러나 뭐든 동전의 양면이 있잖은가. 이 프로젝트를 놓고 이해관계가 충돌한다. 처음에 주인공은 이 프로젝트를 저지하려는 반대세력을 색출해 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하지만 뒤에 가서 정작 문제가 있는 쪽은 자신의 의뢰인이었음을 알아차린다. 루모코 프로젝트로 해저화산을 융기시켜 또 다른 인간 거주지를 만들려다 인근 해저도시 사람들을 몰살시켜 버린 것이다. 희생자들 가운데에는 다름 아닌 주인공의 연인도 포함되어 있다. 이 단편은 아무리 좋은 취지의 정책도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이들에게 운영되면 참혹한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경고한다.
수중에서의 삶을 그린 과학소설들 가운데에는 해저의 플라스틱 돔 안에 정주하는 대신 인간이 직접 물 속에서 호흡하며 살아가는 대안을 고민한 작품들도 적지 않다. 그 효시는 앞서 언급했듯 알렉산더 베리야에프(Alexander Beliaev)의 <물고기인간 The Amphibian, 1928>이다. 이후 작가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이 직접 물 속 호흡을 통해 수중생태계의 새로운 주체가 되어가는 과정을 탐구해왔으니 이제부터 구체적인 사례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인간이 물 속에서 산소를 흡입하자면 근본적으로 물고기처럼 아가미가 필요하다. 요는 이것을 어떠한 방법으로 마련하느냐에 있다. <물고기인간>과 리차드 세틀로(Richard Setlowe)의 <실험 The Experiment, 1980>, 그리고 케네스 벌머(Kenneth Bulmer)의 <해저도시 City Under the Sea, 1957>는 단도직입적으로 외과수술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가장 기본적인 접근방식으로 과학적인 현실성은 떨어진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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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렉산더 베리야에프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제작된 동명영화 <물고기 인간>. 1961년 러시아의 렌필름(LENFILM)이 제작/개봉한 이 영화는 원안대로 라틴아메리카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LENFILM |
<물고기인간>은 어릴 적 어깨 마디뼈 양쪽에 상어의 아가미를 이식받은 한 인디오 젊은이의 이야기다. 인간의 폐와 상어의 아가미를 함께 지닌 그는 수술을 집도한 스페인계 외과 의사인 카디스 박사의 집에 살며 그를 아버지처럼 따른다. 가히 모로 박사2)의 화신이라 할 카디스의 연구실에는 여러 동물의 신체부위를 한 몸뚱이에 조합한 괴물들이 득실거린다.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쌓인 노하우를 인간에게 적용한 결과가 물고기인간이다. 물고기처럼 수중에서도 숨쉬게 된 젊은이는 이 내막을 모르는 인근 바다의 어부들에게 ‘바다의 악마’라 불리며 공포의 대상으로 떠오른다. 그러나 아가미 이식수술은 젊은이에게 양면적인 삶을 강요한다. 인간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뭍에 올라와야 하지만 물 속에 있을 때가 가장 몸의 상태가 좋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아예 물을 오랜 동안 접하지 못하면 물고기인간은 물고기처럼 죽어버리고 만다.
이 소설에 해저도시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지구 표면적의 7/10 이상을 차지하는 바다의 무한한 식량과 자원을 충분히 이용하자면 그에 걸맞게 인간의 몸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카디스 박사의 주장3)은 궁극에 가서 해저에 인간의 영구 주거지를 어떻게 건설할 것이냐는 문제와 맞물리게 된다. 이 장편은 수중생활에 적합한 인간으로의 신체변형이 인체를 과학실험에 동원함으로 유발되는 윤리 도덕적 딜레마에도 일정한 선을 긋는다. 겁쟁이 기질로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으며 인간이 더 나은 내일을 열기 위해서는 아무런 제약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실험>에서는 지적 호기심이 왕성한 과학자가 일종의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어내는 실험에 주안점이 주어지는 대신 폐암에 걸린 환자의 자발적인 선택에 초점이 맞춰진다. 이 환자는 폐를 들어내고 그 자리에 인공아가미를 이식받아 물 속에 얼마든지 있고 싶은 만큼 머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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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케네스 벌머의 장편 <해저도시, 1957>는 아예 해저도시를 무대로 인류의 일부가 외과수술을 통해 새로운 종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다. ⓒBrian Lewis |
<해저도시 City Under the Sea, 1957>는 아예 해저도시를 무대로 인류의 일부가 외과수술을 통해 새로운 종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다.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인구를 감당하기 위해 바다농장까지 광범위하게 경영하는 근미래, 외계행성 탐사에 더 많은 예산을 투자하자는 우주개발파와 지구의 해양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급선무라 보는 해저개발파 간에 알력이 생긴다.4)
이 와중에 해저농장기업의 투자지분을 물려받으려 지구로 돌아온 한 우주비행사가 해저농장의 사업이권 분쟁에 휘말려 갱들에게 곤욕을 치른다. 고심 끝에 그는 경쟁사에게 다시 납치되지 않으려 외과수술을 받는다. 물 속에서 특수 장비 없이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현대판 인어가 된 전직 우주비행사는 물에 적응한 인간들의 독자적 커뮤니티를 위해 심해에 사는 지적 존재들이라면 뭐든 파괴하려드는 정부대표단과 충돌한다. <해저도시>는 <물고기인간>이나 <해저목장>에서와 마찬가지로 해양자원이 향후 인구과잉에 대한 현실적 대안이 되리라 예견한다.
수중호흡을 외계인의 도움을 받아 성취하는 경우도 있다. 피어스 앤써니(Piers Anthony)의 장편 <바다의 삶 Mercycle, 1991>에서는 대체현실로부터 온 선량한 외계인이 유성과 충돌할 운명에 놓인 지구를 구하기 위해 이 임무를 수행할 지구인 다섯 명을 끌어 모은다. 외계인의 앞선 기술은 인간들이 바다 속을 유영하면서 바로 숨을 쉴 수 있게 해준다.
개중에는 외과수술이 아니라 돌연변이로 아가미를 날 때부터 갖고 있었다는 설정을 도입한 작품들도 있다. 이들은 대개 물이 잠긴 아틀란티스 대륙에 살던 주민들의 후손이라는 설정이 양념처럼 가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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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NBC방송국에서 1977~1978년 사이 방영된 TV 연속극 <아틀란티스에서 온 사나이>. 이후 국내에도 수입되어 방영된 바 있다. ⓒHerbert F. Solow |
앞서 언급했듯, 1930~1940년대에 탄생한 만화 캐릭터 서브마리너와 아쿠아맨은 둘 다 아틀란티스인의 후손으로 수중생활과 지상생활의 병행이 가능한 몸을 선천적으로 지녔다. 1970년대 미국 TV 연속드라마 <아틀란티스에서 온 사나이 The Man from Atlantis, 1977>의 주인공도 아틀란티스 혈통으로 물 속 호흡이 자유로울 뿐 아니라 물고기처럼 능숙하게 물살을 가른다. 1990년대 중반에 나온 할리웃 영화 <물의 세계 Waterworld, 1995>의 주인공 케빈 코스트너(Kevin Costner)는 귀 뒤에 아가미가 달려 있어 수중호흡이 가능하며 발에도 물갈퀴가 달려 있는 돌연변이다.
| 1) 인간의 심폐기능과의 조화를 고려하지 않은 채 아가미 조직의 단순이식만으로 물 속 호흡이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2) H. G. 웰즈의 장편 <모로 박사의 섬>에 등장하는 과학자. 모로 박사는 야생동물들을 외과수술과 심리요법을 통해 인간처럼 살게 하려 애쓴다. 수술을 통해 동물을 새로운 종으로 만들어내려 한다는 점에서 카디스 박사와 공통분모가 많다. 3) 불법 인체개조행위로 기소된 카디스 박사는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바다는 지구 겉넓이의 십분의 칠 이상이 됩니다. 더욱이 바다에는 식량과 자원이 무진장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자원과 식량은 현재 아주 약간만 인간에게 이용될 뿐입니다...(중략)... 만약 인간이 물 속에서도 생활할 수 있게 되면 바다의 개발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되어나갈 겁니다.”/ 자료원: 알렉산더 베리야에프 지음, <양서인간>, 아이디어회관, 1970년, 169쪽 4) 이러한 갈등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단편 <튀어 오르는 물 Waterclap; 1970년>에서도 재연된다. 이 단편은 해저와 달 중에서 어느 쪽을 식민화 하는 편이 더 이익인지 고민하는 이야기다. |
저작권자 2013.02.04 ⓒ ScienceTim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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