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4일 월요일

꿈의 물질, 그래핀의 비밀을 풀다

꿈의 물질, 그래핀의 비밀을 풀다

[인터뷰] 김근수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 박사

 
꿈의 물질로 불리는 그래핀. 철보다 훨씬 단단하면서도 쉽게 휘어지고 구리보다 전기가 잘 통해 온 세계가 집중하는 새로운 물질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기존 실리콘 반도체 소자의 핵심 특성인 밴드갭이 존재하지 않아 반도체 소자로의 응용에는 제약이 있었다.

이런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반도체 핵심특성인 터널링 다이오드 효과를 그래핀에서 발견해 더 작고 빠른 전자소자 개발이 앞당겨질 것으로 보인다. 두 개의 층을 이룬 그래핀 속으로 전자가 빠른 속도로 투과하는 터널링 다이오드 효과를 규명, 그래핀의 초고속 소자로서의 응용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다.

터널링 다이오드 효과를 발견하다
▲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 김근수 박사 ⓒ김근수
김근수 박사는 “터널링 다이오드 효과의 발견은 그래핀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종류의 전자소자를 가능케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핀의 성질에 대해 “매력적”이라고 언급한 김 박사는 “그래핀이 갖고 있는 장점으로 인해 많은 연구자들이 물질을 활용해 전자소자를 만들고 싶어 했지만 밴드갭이 존재하지 않아 어려움이 있었다”고 전했다.

도체는 밴드갭이 존재하지 않아 전기가 잘 통하는 물질을, 부도체란 밴드갭이 커서 전기가 거의 흐르지 않는 물질을 말한다. 밴드갭의 크기가 적당히 작아 도체와 부도체의 중간 정도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반도체인데, 그러한 특징 덕분에 전기가 흐르고 흐르지 않고를 쉽게 조절할 수 있는 것이다. 김 박사는 “그래핀은 밴드갭이 없어서 전기가 잘 흐르나, 흐르는 것을 차단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그래핀으로 전자소자를 만들기 어려워 과학자들은 자연스럽게 밴드갭이 없어도 소자로 활용할 수 있는 기존 반도체의 다른 특성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중 하나가 바로 터널링 다이오드 효과다. 다시 말해 터널링 다이오드 효과는 밴드갭이 없어도 그래핀을 특정 전자소자에 활용할 수 있는 기존 반도체 소자의 핵심특성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이번 연구는 ‘그래핀’과 기존 반도체 소자의 핵심기술 가운데 하나인 터널링 다이오드 효과를 접목시킨 것이다. 기판 위에 그래핀을 두 층으로 성장시킨 후 수직으로 전기장을 걸어주고 뾰족한 나노탐침을 이용해 그래핀을 투과하는 전기신호를 조사, 터널링 다이오드 효과의 대표적인 특성인 부저항을 확인함으로써 그래핀의 고속소자로서의 응용가능성을 확인했다.

“기판 위에 이층 그래핀을 성장 시킨 후 수직방향의 전기장을 걸어 줄 경우, 이층 그래핀에 전자 분극이 발생해 전자 상태가 터널링 다이오드 효과에 알맞게 변화하게 된다. 초고진공 상태에서 이러한 이층 그래핀 위에 뾰족한 탐침을 약 1나노미터 간격으로 떨어뜨려 놓고 탐침과 그래핀 사이를 터널링하는 전기 신호를 관찰해 부저항이 나타남을 확인했다. 부저항은 전압이 상승할 때 전류는 오히려 감소하는 특이한 현상으로, 바로 터널링 다이오드 효과의 대표적인 특징에 해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본 실험 결과는 수직 전기장이 걸린 이층 그래핀을 적층시켜 그래핀 기반의 터널링 다이오드 효과를 구현할 수 있다는 비교적 간단하고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기판 위에 두 층의 그래핀을 성장시키고 전기장을 수직방향으로 걸어준 이유는 부저항의 원리와 관련이 있다. 두 층의 그래핀에 수직 방향의 전기장을 걸어주면 전자는 한쪽 층에 쏠리게 되고, 부저항을 유도하기에 적합한 전자상태(전자밀도 상의 극점)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이 현상은 단층 그래핀에서는 불가능하다.

이번 연구가 학계의 많은 관심을 받는 이유는 보다 현실적인 방법을 제시한 데 있다. 2005년 발견된 그래핀은 발견 이후 그 성질로 인해 전 세계 과학자로부터 단기간에 집중적인 관심을 받아왔고, 이론 연구도 활발해 ‘그래핀에 터널링 다이오드 효과를 유도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실험연구에 앞서 다양한 연구들이 있었다.

“이러한 이론 연구에서는 그래핀의 전자 상태를 터널링 다이오드 효과에 알맞게 변형시키기 위해 주로 그래핀에 평면 방향으로 구조적 변형을 유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예를 들면 그래핀을 좁게 잘라내어 나노리본 형태로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적 변형은 극도로 얇은 그래핀의 두께를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때문에 우리 연구팀은 평면 방향이 아닌 수직 방향으로 그래핀을 쌓아 올리는 방법에 주목했고, 이는 그래핀에 터널링 다이오드 효과를 유도하는 데 현실적으로 더 적합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타지에서의 연구생활? 많이 외로웠죠”
▲ 기판 위에 그래핀을 성장시키고 초고진공 상태에서 원자단위의 뾰족한 탐침을 미세하게 움직이면서 터널링 전기 신호를 관찰한다. ⓒ한국연구재단

김 박사가 이번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와도 맥을 같이 한다. 학위과정을 시작한 2005년은 그래핀 물질이 최초로 세상에 보고됐던 시기로, 그는 그래핀과 유사한 단층 원자막의 전자물성을 학위 연구주제로 다룬 만큼 그래핀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학위를 받은 2010년에는 그래핀의 기본적인 물성은 이미 잘 알려지게 됐고, 이때부터는 그래핀을 전자 소자로 활용하기 위해 기존 반도체 기술을 그래핀에 접목하는 것이 중요한 연구의 흐름이 되었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졸업 후 로렌스버클리연구소로 해외연수를 떠나게 됐고 그래핀 소자 구현을 위해 반도체 핵심 특성을 접목하는 연구도 시작했다.”

개발된 기술의 장점은 무엇보다 쉽고 간단하다는 점에 있다. 이를 이용할 경우 이미 보유하고 있는 다른 기술을 그래핀에 접목하는 데도 유리하며, 이번 연구로 밝혀 낸 그래핀의 터널링 다이오드 효과를 유도하는 메커니즘은 일반적으로 다양한 물질에도 적용될 수 있다.

“그래핀을 이용하면 기존 반도체보다 성능이 우수하면서 더 작은 크기의 전자소자를 만들 수 있다. 때문에 앞으로 전자 소자의 크기가 작아지면 결국 사람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전자 제품들의 크기가 더욱 작아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래핀은 투명하고 쉽게 휘어지는 성질을 갖기 때문에, 투명한 전자 제품 혹은 말아서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전자 제품을 실현해 내는 데에도 유용할 것이다. 이러한 특징들이 바로 기존 반도체 물질과는 확실하게 구별되는 그래핀의 장점에 해당한다.”

올해로 만 서른의 젊은 과학자가 일군 이번 연구성과는 많은 관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렇다면 연구 과정 중 겪은 어려움은 없었을까. 김근수 박사는 타지에서 혼자 적응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포스닥 과정으로 처음 미국에 연수를 갔을 때는 생활적인 측면에서도 힘든 점이 참 많았다. 보통 박사를 마치고 해외 포스닥 연수를 가는 경우에는 결혼을 하고 가족과 함께 떠나는 게 일반적인데, 나의 경우 박사 졸업이 조금 빨랐을 뿐 아니라 졸업 후 곧장 미국으로 나가게 되어, 초기 정착 시절을 늘 혼자 헤쳐가야 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처음 미국에 도착해 집을 구했을 때 ‘잠이라도 잘 자자’라는 생각에 큰 침대를 사서 조립하는 도중, 순간 외로운 마음이 울컥 들었을 때다. (웃음)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외로움 덕에 연구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뿐만이 아니다. 연구 과정에서도 크고 작은 어려움은 있었다. 김 박사는 “주사터널링현미경을 이용해 그래핀에서 부저항의 발견까지는 비교적 순조로웠지만, 메커니즘에 존재하는 몇 가지 가능성을 명확히 밝혀내기 위해 부저항의 공간적 분포를 원자 수준의 분해능으로 측정할 필요가 있었는데, 이는 기술적으로 매우 어려운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특히 주사터널링현미경은 탐침의 상태에 매우 민감한데, 탐침의 상태는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보통 1~2달 정도 실험을 하면 그 가운데 좋은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 시간은 많아야 3~4일 정도다. 이런 기회가 한 번 오면 밤새 실험에 집중해야 한다. 특히 조용하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없는 밤이나 새벽이 유리했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큰 부담이 됐다.”

김 박사는 그래핀이 처음 발견된 2005년 당시만 해도 극한의 원자 수준의 물질이 차세대 전자소자로 활용될 수 있다는 의견은 불가능으로 여겨졌다고 언급했다. “나 역시 당시에는 먼지보다 작은 원자 수준의 물질이 과연 세상에 작은 도움이나마 될 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8년이 지난 지금 그때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것들이 하나 둘 씩 실현 가능한 것이 됐고 ‘원자 수준의 물질’이 ‘나노’를 넘어 첨단의 상징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거대한 흐름 속에 하나의 의미 있는 발걸음이란 측면에서 이번 연구의 의의와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이번 연구는 그래핀을 기반으로 한 전자소자의 구현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는 곧 초소형․·초고속 전자소자의 가능성을 말하는 것으로 기존 반도체의 터널링 다이오드 효과는 메모리와 증폭기, 고주파 진동기 등에 널리 활용됐다. 따라서 그래핀 반도체 소자에도 유사한 파급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게 김 박사의 설명이다.

김 박사의 이번 연구는 ‘학문후속세대양성사업’에 선정돼 3천만 원의 연구지원금을 받아 진행된 것이다. 그는 “갑자기 통장에 큰 돈이 생겨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난다. (웃음) 이 연구비가 국민들의 세금으로 모아진 것인 만큼 낭비하지 않고 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언급했다. 아직 미국에서 연수중인 김 박사는 앞으로 한국에 기반을 두고 원자수준의 물질, 나노물질을 연구하는 전문가로서 학계와 사람들에게 보탬이 되는 연구 활동을 하고 싶다며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황정은 객원기자 | hjuun@naver.com

저작권자 2013.02.0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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