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14일 수요일

손가락만으로도 앞을 볼 수 있다

손가락만으로도 앞을 볼 수 있다

인간도 설치류 ‘수염 감각’ 가능해

 
눈이 아닌 손가락을 이용해 주변의 물체를 인식하는 방법이 개발됐다. 시력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신개념 보조장치를 만드는 데 있어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쥐가 긴 수염을 초당 8회 가량 앞뒤로 움직여 주변 상황을 감지하는 방식을 인간에게 적용한 실험이 성공을 거두었다. ⓒFlickr.com
이스라엘의 바이츠만 연구소(Weizmann Institute) 소속 생물학자들은 최근 동물의 ‘수염 감각’을 인간에 적용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쥐는 얼굴에 난 긴 수염을 초당 8회씩 앞뒤로 움직이며 주변의 물체 위치를 인지한다. 연구진은 쥐의 수염을 닮은 인공 플라스틱 수염을 사람의 손가락에 붙인 후 앞뒤로 움직이게 해 주변 물체에 대한 정확한 위치정보를 알아내게 했다. 촉각으로 시각을 대체한 것이다.

연구결과는 ‘촉각 인지에 있어 운동과 감각의 일치 현상(Motor-Sensory Confluence in Tactile Perception)’이라는 논문으로 정리돼 학술지 ‘신경과학 저널(the Journal of Neuroscience)’ 최근호에 게재됐다.

눈 가린 채 손가락에 인공 수염 붙이고 위치 파악
대부분의 포유류는 움직임을 이용해 주변 상황을 감지한다. 수염이나 팔을 움직이면 물체에 부딪히게 되는데, 미세한 움직임을 계속하다 보면 감각기관에 자극이 지속적으로 들어온다. 이를 통해 물체의 위치 정보를 세밀한 수준으로 업데이트하는 것이다.

특히 쥐는 얼굴에 난 수염을 초당 8회씩 앞뒤로 흔들면서 위치정보의 정확성을 높인다. 이것은 감각기관이 받아들이는 신호와 운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신호가 동일한 처리과정을 거친다는 증거다.

연구진은 쥐의 수염 감각을 인간에게도 적용했다. 피실험자의 손가락 끝에 30센티미터 길이의 기다란 플라스틱 막대를 부착시켰다. 이 ‘인공 수염’에는 위치와 세기를 측정하는 센서가 연결돼 있다. 피실험자는 눈을 가린 채 의자에 앉아서 양팔을 벌린다. 각 손 끝의 인공 수염이 닿는 거리에 두 개의 막대를 세운다. 손을 움직이면 인공 수염이 막대를 툭툭 건드릴 만한 위치다.
▲ 손가락에 인공 수염을 붙인 피실험자는 미세한 움직임을 통해 감각을 극대화시켜 주변 물체의 정확한 위치를 알아냈다. ⓒJournal of Neuroscience

막대는 피실험자가 양팔을 벌렸을 때를 기준으로 약간 앞뒤로 배치되어 있다. 둘 중 어느 막대가 더 앞에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과제다.

실험 첫 날부터 인공 수염의 정확도는 예상을 넘어섰다. 피실험자는 각 막대의 앞뒤 위치 차이가 8센티미터 정도 밖에 나지 않았음에도 정확히 구별해냈다. 비결은 ‘시간차’였다. 손가락을 앞뒤로 동일하게 움직이면서 어느 막대가 먼저 닿는지를 통해 위치를 알아낸 것이다.

연구에 참여한 아브라함 사이그(Avraham Saig) 박사는 바이츠만 연구소의 발표자료를 통해 “특정 옷감의 감촉을 알아내려면 손가락을 반복적으로 문질러야 한다”며 “마찬가지로 고정된 물체를 보려면 안구가 미세하게 반복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운동신호와 감각신호의 유사성을 지적했다. 감각기관이 아닌 신체를 움직여도 이와 유사한 효과가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운동 신호와 감각 신호는 동일한 처리과정 거친다

연구가 지닌 의미는 둘째 날 진행된 실험에서 더욱 명확하게 드러났다. 이틀 동안 반복 훈련을 거치면서 ‘감각 역치’는 전날 8센티미터에서 3센티미터까지 정교해졌고 일부는 1센티미터 차이도 구별해냈다. 참고로 감각 역치(sensory threshold)란 특정 감각을 느끼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에너지나 자극을 말한다.

또한 수염을 움직이는 속도를 달리하자 역치는 더욱 낮아졌다. 운동 자극의 빈도가 변한 덕분에 감각도 그만큼 예민해진 것이다. 연구진은 피실험자가 촉각을 통해 주변 물체를 정확하게 인지하는 방식과 수준을 정보처리 법칙에 대입시켰고 명확한 통계학 모델로 정리했다. 이를 이용하면 정확한 위치를 알아내는 데 필요한 수염의 움직임 횟수와 빈도를 예측할 수 있다.
▲ 실험 첫째날(점선)과 둘째날(실선)에 걸쳐 반복 훈련을 진행하자 감각이 예민해져 수염과 막대의 접촉 빈도(청색선)와 막대의 위치(적색선)의 상관성을 감지하게 되었다. ⓒJournal of Neuroscience

연구에 참여한 고렌 고든(Goren Gordon) 박사는 “손의 움직임, 손과 막대기의 접촉, 피실험자 자신의 느낌 등 감각 인지에 관여하는 변수들을 정량적 방식으로 계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과값을 인공 감각기관을 장착한 기계장치에 적용시키면 시각장애인들도 촉각을 통해 주변 상황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를 이끈 아모스 아리엘리(Amos Arieli) 교수는 “시각과 촉각을 통합적으로 처리하는 능동감지(active sensing) 장치를 이용하면 영상을 기계적 자극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며 “직관적인 감각 보조장치를 통해 시각장애인들도 손가락만 가지고 앞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신기술 개발에 적극적이다. 바이츠만 연구소가 촉각을 통한 시각 보조장치를 개발 중인 반면, 히브리대학교 산하 이스라엘-캐나다 의학연구소(IMRIC)는 청각으로 주변을 인식하는 헤드폰 장치를 발명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임동욱 객원기자 | im.dong.uk@gmail.com

저작권자 2012.11.1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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