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1일 수요일

기술편재 시대, 미디어아트 좌표 찾기

기술편재 시대, 미디어아트 좌표 찾기

경기도미술관 명사초청 강의 열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학벌주의가 심해 예술을 전공한 학생들은 사회에 진출할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대학 간 교류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상위 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실력이 좋은 학생, 그렇지 못한 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실력이 떨어지는 학생이라는 평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시기였죠. 이런 선입견을 없애고자 교육자로서의 책임을 갖고 시작하게 된 프로젝트가 바로 공장 미술제입니다.”

창동 샘표공장에서 열린 ‘공장 미술제’(2000). 공장 미술제는 교류가 끊겼던 미술대학간 대화의 창구를 열고 신진작가 발굴을 위해 기획됐다. 미술제 기획자이자 총감독을 맡았던 유진상 교수(계원예대)는 학벌주의에 밀려 상대적으로 사회 진출의 장벽에 가로막혔던 전문대학 예술학부 학생들에게 작가로서의 꿈을 키워주고자 공장 미술제를 마련했다고 회상했다. 유 교수는 공장제를 시작으로 2012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총감독을 역임하는 등 국내 미디어아트 전시의 최전선에서 참신하고 다양한 패러다임을 주도해왔다.
▲ 유진상 교수가 공장미술제를 통해 국내 미술대학의 인식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사례를 들어가며 청중들에게 소개해줬다. ⓒ경기도미술관

지난 16일 유진상 교수는 경기도미술관(관장 최효준)을 찾았다. 미술관에서 연중 기획으로 마련한 ‘명사초청 특강’에 초청된 것. 경기도미술관은 경기창작센터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해 입주작가전을 열고, 경기아트프로젝트를 주최하는 등 전시기획 및 세미나의 활발한 움직임으로 2012년 한 해 동안 도민과의 소통에 큰 성과를 보였다.

동시대 미술, 기술변화에 민감해야
유 교수는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과학기술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삶의 일부이자 문화로 자연스럽게 녹아든 과학기술의 변화에 예술계에서도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동시대 미술(Contemporary Art)의 전제로 미디어를 대하는 삶의 형식과 몰입을 언급했다. 유 교수에 따르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기술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삶의 형식으로 받아들인다는 것.

유 교수는 오늘날 사회를 ‘과학기술로 점철된 사회’라고 규정한다. 그는 제레미 리프킨의 '3차 산업혁명'이라는 책을 소개하며 앞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개인이 소유하던 재산이 공공재 형태의 공유하는 방식으로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유진상 총감독
개인이 거대한 자원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유지비용이 필요한데, 이를 개인이 부담하는 것은 낭비라는 판단에서다. 유 교수는 미래사회는 더 이상 ‘개인 소유’가 아닌 ‘공유’, ‘공공재’에 투자하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SNS의 발달로 ‘즉각 민주주의’가 됐으며 국민들의 관심이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다양하게 분산되는 쪽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짧게는 2~3년 단위로 동시대 미술이 급변하는 가운데 세상은 더욱 빠른 속도로 새로운 것들을 요구하고 있고, 인간의 삶의 형식을 바꿔놓고 있다. 동시에 변화무쌍한 과학기술의 변화에 종속된 우리의 삶도 어떻게 달라질지 예측할 수 없다. 유 교수는 “렌즈 하나만 착용하면 눈앞에 스크린이 펼쳐지고, 동공의 움직임만으로 스케치가 가능한 시대가 왔다”며 “실제로 2012 서울국제미디어아트 비엔날레에 아이트래킹(Eye-Traking) 방식을 이용한 ‘시선추적기술 2011’(작가 세이코 미카미)이 전시됐다”고 설명했다.

과학기술 시대에서 미디어아트 좌표찾기
동시대 미술은 급박하게 변하는 세상의 속도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을까. 유 교수는 “미디어아트가 동시대 미술로 인정받지 못하고 구획돼 각각 독립적인 영역으로 분류되고 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미디어아트가 동시대미술이 되기에 무리가 있다는 간접적인 힌트는 과학기술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이 둘의 관계를 되묻게 한다.

이날 강의에서 유 교수가 청중들과 함께 고민해보고 싶었던 것은 ‘동시대 미술과 미디어아트를 어떻게 관계 지을 것인가’에 관한 문제였다. 동시대 미술은 시대를 예술적으로 반영한다면서 과학기술에 관한 담론을 형성하기 꺼려하니 넌센스에 부딪힌 것.

유 교수는 “미디어아트 분야에서는 굉장히 훌륭한 아티스트이지만 동시대 미술 영역에서는 이 아티스트의 존재감이 없다. 유명한 미술 비평가들조차 대부분 미디어아트를 다루지 않는다”며 미디어아트의 현 주소를 짚었다.

물론 풀어야 할 숙제도 안고 있다. 유 교수는 "서랍 속에 뿌옇게 먼지 앉은 비디오 파일을 재맥락화해 어떻게 그 작품을 재조명할 것인지 전시기획에 대한 고민이 있다"고 밝혔다. 한 번의 전시로 잊혀져가는 수많은 미디어아트 작품을 새로운 방식으로 크고 작은 담론을 형성시키는 것이 전시기획자들의 역할인 것이다.
▲ 지난 2012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에 출품된 세이코미키미의 '시선추적기술2011'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이제는 관객도 단순히 기술과 융합된 예술에는 관심을 돌리지 않는다. 때문에 미디어아트는 기술과 예술이 정직하게 융합해서는 안 되는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다. 유 교수는 융복합(Convergence) 예술을 뛰어넘어 동시대 미술에 대한 적절한 비판이 담긴 메시지가 작품 속에 담겨 있을 필요가 있다고 봤다. 너무 정직한 미디어아트는 과학관에나 전시될 법한 수준에 못 미친다는 것.

유 교수는 이번 서울미디어아트 비엔날레 준비를 위해 세계 유수의 현장을 직접 탐방하면서 “결국 이 시대의 기술 창의성은 개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기업처럼 모두가 협동(cooperative)해 만들어낸 결과”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미디어아트의 대표적인 기관인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 미디어융합 기술연구소(MIT Media Lab)는 연구원들이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다른 영역 간 접점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즉, 학문의 경계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있다.

과학기술이 편재하는 오늘날의 시대정신을 말하는 미디어아트는 과학기술 변화에 재빠르게 대응하며 예술성을 구축해 나가야 하는 궁극적인 과제를 안고 있다. 이날 명사특강에 초빙된 유 교수는 다양한 사례와 학문적 소개를 통해 대중들에게 그 사유를 던져줬다.


손은혜 객원기자 | iamseh@naver.com

저작권자 2012.11.2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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