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1일 수요일

연구비 따내려면 같은 층 사용하라

연구비 따내려면 같은 층 사용하라

같은 층, 같은 건물에서 협업 늘어

 

▲ 같은 건물에 같은 층을 사용하는 연구자들은 협업 가능성이 최대 57퍼센트나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ScienceTimes
같은 건물에 입주하면 협업이 활발해져 더 많은 연구비를 따내는 것으로 밝혀졌다. 같은 층까지 사용하면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미국 미시건대 연구진은 최근 ‘두 건물 이야기: 혁신에 있어서 사회공간의 중요성(A Tale of Two Buildings: Socio-Spatial Significance in Innovation)’이라는 보고서를 펴내 효율적인 협업에 대한 과학기술계의 오랜 비결을 소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같은 건물에 입주한 연구자들은 다른 건물을 사용하는 연구자들에 비해 협업 가능성이 33퍼센트나 높았다. 같은 층까지 사용하면 이 격차는 57퍼센트까지 벌어진다. 협업이 활발해질수록 연구개발의 수준이 높아져 자금 지원을 받을 가능성도 올라간다.

일상에서 자주 만나는 ‘수동적 접촉’이 중요해
1950년 미국 미시건대 사회학연구소(ISR)의 레온 페스팅어(Leon Festinger) 연구원은 거주 장소와 인간관계의 상관성을 연구해 ‘비공식 집단에서의 사회적 압박(Social pressures in informal groups)’이라는 서적으로 출간했다. ‘비공식 집단’이란 특정 목적이 없어도 친밀감으로 인해 자발적으로 생겨난 집단을 가리킨다.
▲ 건물 내 입주자들의 협업 가능성을 조사하는 데 사용된 미시건대 노스캠퍼스 연구복합동(NCRC) ⓒUniversity of Michigan
페스팅어는 이 책에서 기숙사라는 공통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끼리 우정이 싹트고 발전해나가는 현상을 묘사하고 그 과정을 기술했다. 특히 같은 공간을 사용해서 어쩔 수 없이 여러 번 마주치게 되는 ‘수동적 접촉(passive contact)’이 인간관계의 핵심요소라고 보았다. 의도적으로 찾아가서 만나는 사람보다는 일상생활이나 업무 중에 늘상 마주치는 사람들과 더 큰 친밀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최근 미시건대 사회학과의 제이슨 오언스미스(Jason Owen-Smith) 교수는 2년에 걸친 장기적 관찰과 연구를 통해 페스팅어의 가설을 추적했다. 노스캠퍼스 연구복합동(NCRC), 알프레드 타우브먼 생의학연구동(BSRB), 종합암센터(CCC) 등 미시건대 내 3개 건물에 입주한 172명의 연구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도 진행했다.

그러자 일상생활의 반복적인 이동경로와 인간관계 간의 유사성이 드러났다. 같은 건물에 입주한 연구원들은 수동적 접촉이 늘어난 덕분에 새로운 협업 과제를 구성할 확률이 33퍼센트나 높았다. 같은 층에 입주한 연구원끼리는 다른 층을 사용하는 연구원보다 협업 가능성이 22퍼센트 더 높았다. 다른 건물에서 근무하는 연구원과는 57퍼센트나 차이가 났다.

일상 이동경로 겹칠수록 연구비 수주 가능성 높아져
오언스미스 교수는 한국인 황용하 연구원의 도움을 받아 ‘구역 중첩(zone overlap)’이라는 개념으로 공간 분석을 실시했다. 특정 면적을 일정한 간격으로 구분한 후 사람들의 이동경로가 얼마나 겹치는지를 살피는 방식이다.
▲ 황색과 청색 선으로 그려진 두 연구자의 이동경로를 구역중첩 방식으로 분석한 모습. ⓒUniversity of Michigan

분석 결과, 두 연구자의 일상 이동경로가 100피트(약 30미터) 가량 겹칠 때마다 새로운 협업 과제를 구성할 확률이 19~20퍼센트 증가했다. 게다가 외부에서 연구비 지원을 따낼 확률도 21~30퍼센트 높아졌다.

한 연구자의 일상 이동경로가 다른 연구자가 근무하는 사무실의 출입문 앞을 지나는지 살피는 ‘도어패싱(door passing)’ 분석에서도 유의미한 결과가 나타났다. 문 앞을 지나면 그만큼 우연히 마주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연구를 진행한 오언스미스 교수는 미시건대 발표자료를 통해 “건물 내에서 실험실, 사무실, 화장실, 엘리베이터를 오가는 연구원 두 명의 일상 이동거리가 얼마나 겹치는지 살피는 것만으로도 페스팅어의 가설이 옳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밝혔다.

직접 얼굴 맞댈 기회 많아질수록 연구자에게 유리해

보고서는 다섯 가지의 새로운 사실도 밝혀냈다. 첫째, 같은 건물에 입주해 같은 층을 사용하는 것은 협업 과제 구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둘째, 건물 내에서 과학자들의 공간 사용이 겹칠수록 새로운 협업 과제를 구성하고 외부 연구비 지원을 따낼 가능성도 현저히 높아진다.

셋째, 길이와 넓이 등 건물 내부 공간의 물리적 요소는 협업 형성에 영향을 끼친다. 넷째, 이동경로가 크게 겹치지 않지만 우발적인 접촉이 자주 일어나는 그룹일수록 공간 근접성으로 이득을 본다. 이와 반대로 자주 회의를 열면서도 전자기기를 통해 연락을 주고받는 그룹은 공간 근접성에 의한 이득이 적다. 다섯째, 공식적인 협업뿐만 아니라 비공식적인 상호작용 방식과 친밀감까지도 연구자들의 이동경로에 영향을 미친다.

동일한 공간을 사용함으로써 자주 마주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미리 정해진 회의보다는 예정에 없던 즉흥적인 만남이 잦아야만 협업 효과가 커진다는 의미다. 또한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가 아닌 직접 만나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할수록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연구를 지원한 스티븐 포레스트(Stephen Forrest) 미시건대 연구부총장은 “활발한 학제 연구로 최신 과학 분야의 융합을 촉진하려면 과학자 간의 직접 접촉을 장려해야 한다”고 연구의 의의를 설명했다.



임동욱 객원기자 | im.dong.uk@gmail.com

저작권자 2012.11.2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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