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14일 수요일

민간요법, 신물질 발견의 나침반

민간요법, 신물질 발견의 나침반

부작용 없는 항당뇨제 발견

 
인류는 오래 전부터 질병 치료 목적으로 동식물 등의 천연 자원을 이용해 왔으며, 이렇게 전해져온 민간요법은 현대 과학에서 의약학적 신물질 발견의 원천이 되곤 했다. 인류가 발견한 최고의 3대 명약 중 하나로 꼽히는 아스피린이 그 대표적인 사례에 속한다.

해열진통제로서 전 세계인의 가정상비약으로 사랑받고 있는 아스피린은 버드나무 껍질에서 추출되는 살리실산배당체를 화학적으로 약간 변형한 것이다. 그런데 버드나무 껍질은 예로부터 염증과 통증을 완화하는 민간약으로 동서양에서 널리 이용되어 왔다.

그런데 최근 전통 민간요법에서 사용되어온 식물이 부작용 등 그동안의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신물질의 발견으로 이어지고 있어 화제다.

미국 농무부의 연구기관인 농업연구청(Agricultural Research Service) 소속 과학자들은 최근 모기 등의 해충 저지에 효과적인 식물 유래 화합물을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그 식물은 다름 아닌 ‘자트로파 쿠르카스(Jatropha curcas)’로서, 이 식물의 종자유는 인도와 아프리카 등지에서 벌레를 쫓을 때 램프에서 태우던 민속요법으로 흔히 사용되었다.
▲ 자트로파에서 모기 등의 해충 저지에 효과적인 식물 유래 화합물이 발견됐다. ⓒmorgueFile free photo
곤충 기피 화합물의 발견에 미국 과학자들이 이처럼 흥분하는 데엔 이유가 있다. 세계 각지로 군대를 파견하는 미군의 입장에서 말라리아를 비롯한 다양한 풍토병을 전파하는 모기는 또 하나의 중요한 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2003년 리베리아 임무에 투입된 225명의 미 해병대 중 80명이 말라리아에 걸린 적이 있는데, 당시 해충 방제에 쓸 만한 살충제가 거의 없어 어려움을 겪은 경험이 있다. 따라서 곤충 방제를 위한 임무는 국방부에서 매주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이후 군대를 곤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DWFP’ 연구 프로그램이 이행되었고, 농무부와 국방부, 대학, 산업계 등이 강력한 네트워크를 형성해 많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

연구진은 자트로파 쿠르카스를 태울 때 나오는 연기에서 모기 기피 효과가 있는 수많은 활성 화합물을 발견했다. 그중에는 유리지방산들과 트리글리세라이드(triglycerides)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지방산이 곤충을 쫓아내는 데 효과가 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지만 트리글리세라이드가 모기 기피 활성을 갖는다는 사실을 발견한 건 처음이다.

연구진은 자트로파와 비슷한 화합물들이 들어 있는 빵나무 열매도 해충 저지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두 식물의 활성성분들을 조합해서 보다 효과적인 곤충기피제를 만들기 위해 연구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감초 뿌리에서 항당뇨병 천연물질 발견
‘약방에 감초’라는 속담도 있듯이 감초는 고대부터 전통 방식의 치료에 두루 이용되어 왔다. 진해·거담이나 소화성궤양을 억제하는 데 사용되는데, 실제로 감초에는 기도와 소화기계의 장애를 완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여러 가지 물질들이 함유돼 있다.

그런데 독일 막스플랑크 분자유전학연구소의 연구팀은 지난 4월 감초 뿌리에서 항당뇨병 효과를 지닌 천연물질을 발견했다. 아모르프루틴이라는 물질이 바로 그것인데, 단순한 화학구조를 지닌 이 물질은 감초 뿌리뿐만 아니라 미국, 캐나다, 멕시코에 자생하는 족제비싸리의 열매에도 함유되어 있다. 아모르프루틴(amorfrutin)이라는 명칭은 족제비싸리(Amorpha fruticosa)의 이름을 딴 것이다.

연구진이 아모르프루틴류 화합물을 당뇨병에 걸린 생쥐에게 주사한 결과, 혈당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항염증 효과까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과도한 지방 영양식 때문에 흔히 유발되는 지방간도 예방해주는 것으로 밝혀졌다.
▲ 전통 민간요법에서 사용되어온 식물에서 부작용 없는 신물질이 잇달아 발견되고 있다. ⓒmorgueFile free photo
연구진에 의하면, 감초가 건강에 이로운 효과를 지니는 것은 아모르프루틴 분자들이 세포핵 속의 ‘PPARγ’라는 수용체에 직접 결합한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PPARγ는 세포의 지방과 포도당 대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아모르프루틴 분자가 결합하면 혈장 내의 어떤 지방산들과 포도당 농도를 줄이는 여러 유전자를 활성화시켜 포도당 수준이 저하되면서 성인 당뇨병의 주원인인 인슐린 저항성 발달을 예방하게 된다는 것.

PPARγ 수용체에 영향은 주는 약물은 이미 시장에 나와 있다. 그러나 효과가 제한되어 있고 체중 증가나 심혈관 문제 같은 부작용도 일으키는 것이 단점이다. 이에 비해 아모르프루틴류는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 큰 부작용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감초를 직접 먹거나 우려서 먹을 경우 거기에 함유된 아모르프루틴의 농도가 너무 낮아서 효과를 내기는 어렵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현재 연구진은 감초 등의 식물에서 충분한 농도로 아모르프루틴을 얻어내기 위해 특별한 추출 공정을 개발해 산업적 규모의 생산을 준비하고 있다. 아모르프루틴이 의약품으로 개발되기 위해선 당뇨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말라리아 치료 성분의 새 합성법 개발
한편, 민간요법 식물에서 찾은 천연약물의 새로운 합성법이 개발돼 더욱 저렴한 비용으로 말라리아를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현재 말라리아 치료의 초석이 되는 성분인 아르테미시닌(artemisinin)은 전통 중국 의학에서 수백년 동안 사용되어 온 개똥쑥이라는 식물에 의해 천연적으로 생성된다.

1972년 개똥쑥에서 이 성분을 분리해내는 데 성공한 투유유(Tu Youyou)라는 약학자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제약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래스커의학연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개똥쑥에 포함된 아르테미시닌은 국소량에 불과하며, 아르테미시닌을 실험실에서 합성하는 데도 비용이 많이 든다. 이로 인해 우수한 치료제가 개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르테미시닌의 제한된 공급체계와 비싼 비용 때문에 수많은 후진국 주민들이 말라리아로 인해 목숨을 잃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독일 막스플랑크 콜로이드 인터페이스 연구소의 연구팀이 개똥쑥에 풍부하게 함유된 아르테미시닌의 유사물질을 아르테미시닌으로 전환시키는 방법을 개발했다. 아르테미시닌의 유사물질이란 그 전구물질인 아르테미시닌산(artemisinic acid)이다. 개똥쑥에 함유된 아르테미시닌산의 양은 아르테미시닌보다 10배 정도 많은 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르테미시닌산은 아르테미시닌 생산에 이용되지 못하고 폐기되어야 하는 신세였다.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는 아르테미시닌산을 아르테미시닌으로 전환하는 것이 채산성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개발한 연속적 전환방식을 이용할 경우 난항을 겪고 있는 아르테미시닌의 대량 생산에 돌파구를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이성규 객원편집위원 | 2noel@paran.com

저작권자 2012.11.1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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