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1일 수요일

왜, 하필 초파리인가?

왜, 하필 초파리인가?

20세기 유전학의 역사를 바꾼 주역

 
외국이든 국내든 과학적 연구들을 보면 초파리를 대상으로 한 실험연구결과들이 많다. 인간과는 생물학적으로 볼 때는 전혀 다르게 보이는 곤충인 이 미물(微物)이 어떻게 인간을 대신해 임상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실험용으로 생쥐보다 초파리가 더 나아
실험용 생쥐의 경우는 다르다. 우선 인간과 같은 포유류다. 그리고 번식력이 아주 강해 새끼를 많이 난다. 그만큼 많이 활용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쥐의 종류에 따라 다소 다르지만 임신기간이 불과 21일 밖에 안 된다. 그러나 유전공학에서 초파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생쥐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아마 쥐보다 훨씬 ‘효자’다.
▲ 과학자들은 초파리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 유전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초파리는 인간의 짧은 기간의 축소판이다. 유전형질도 아주 비슷하다. ⓒ위키피디아

사람들에게 초파리는 포도껍질이나 오래된 바나나에 꾀어 들어 금방 수가 불어나는 귀찮은 벌레에 불과하다. 그래서 과일에만 몰려든다 하여 초파리를 과실파리(fruit fly)라고도 한다. 이런 쌀알보다도 작은 하찮은 곤충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은 대단하다.

초파리의 이러한 특징들, 즉 몸집이 작고, 수가 금방 불어나며, 그리고 버려지는 값싼 먹이로 키울 수 있다는 점이 생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장점이 되었다. 초파리는 알에서 성충이 되는데 10일이 걸리고, 이후 2-3개월 정도 살다가 죽는다.

인간의 모델, 삶의 짧은 축소판
따라서 사람의 1년이 초파리에게는 하루가 되는 셈이고, 생명체의 수명이 어떻게 결정되고, 어떤 조작으로 수명을 늘릴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과학전문가들에게는 초파리는 대단한 가치를 갖는 실험동물이다. 다시 말해 인간 삶의 짧은 축소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장점들 때문에 초파리는 유전학 연구에서 중요한 도구로 사용돼 왔다. 또한 2000년 3월 초파리 게놈 프로젝트가 완료돼 초파리의 모든 유전정보가 밝혀졌다. 놀랍게도 초파리는 1만4천 개의 유전자를 갖고 있었다. 이는 인간의 유전자 약 2만3천 개의 반이 넘는 수치다.

또한 초파리는 인간의 질병과 관계되는 대부분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이는 유전자를 조작하면 인간의 질병을 흉내내는 모델 초파리들이 만들어져 인간의 질병연구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20세기 유전학 역사에 지대한 공헌
초파리가 과학계에 데뷔한 것은 1900년 하버드대 윌리엄 캐슬 교수의 실험에서였다. 그러나 초파리가 처음으로 실험실 문턱을 넘어선 이 사건은 별 의미가 없었다.

캐슬은 그저 발생학을 전공하는 어떤 학생에게 실험을 하게 할 생명체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초파리가 손쉽게 구할 수 있고 흥미로운 선택처럼 보였기 때문에, 창틀에 포도를 몇 알 놓아두었다가 그 미끼에 걸려든 초파리를 잡아들였을 정도에 불과했다.

초파리 실험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생물의 유전에 관한 개념은 이상한 가설과 전설, 그리고 종교적 미신이 기묘하게 혼합된 것이었다. 그러나 컬럼비아대 토마스 헌트 모건이 현대 유전학의 기초를 세우기 시작하면서 유전학은 아주 빠른 속도로 일관성 있는 논리적인 과학으로 변모해 갔다. 여기에 빠질 수 없던 것이 바로 초파리다.

모건은 초파리에서 유전의 물리적 기초는 세포 속에 들어있는 끈처럼 생긴 염색체 속에 있음을 입증했다. 게다가 각각의 염색체는 기다란 유전지시들의 명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생식이 일어날 때 이것이 재배열되면서 새로운 조합으로 탄생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초파리에서 발견된 이 새로운 사실들은 인간을 포함해 다른 동물들에도 성립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곧 초파리는 모든 유전학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실험동물이 되었다. 1910-1911년만 해도 초파리 실험실은 미국에 다섯 군데, 유럽에 두 군데 밖에 없었다. 그러나 1936-1937년에는 미국에 스물여섯 군데, 유럽은 스무 군데로 급속히 증가했다.

생물학의 기본적인 질문에 해답을 제시
초파리는 생물학의 가장 근본적인 일부 질문에 그 답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보자. 유전자는 어떻게 한 세대와 그 다름 세대를 연결하는가? 난자라는 하나의 세포가 어떻게 수십억 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개체로 성장하는가? 우리는 정보를 어떻게 학습하고 기억하는가? 왜 수컷과 암컷은 늘 교미를 놓고 실랑이를 벌이는가? 왜 우리는 늙어가며, 그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새로운 종은 어떻게 진화하는가? 하는 문제들이다.
▲ 토마스 모건은 초파리 연구를 통해 20세기 유전학에 혁명을 일으켰다. ⓒ위키피디아
20세기 유전학에 일대혁명을 일으킨 모건은 1910년 루디멘터리(rudimentary 덜 성숙된), 트렁케이티드(truncated 끝이 잘린), 미니어처(miniature 소형)의 세 가지 날개 돌연변이를 발견했다. 이 초파리들은 몸 크기는 정상이었다. 그러나 날개가 작고 잘려나간 모양이었다.

또한 몸 색깔이 황갈색이 아니라 올리브색인 돌연변이도 나타났다. 게다가 눈 색깔이 분홍색인 돌연변이도 나타났다. 계속 나타나는 새로운 돌연변이들은 모건에게 유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고, 유전자가 염색체가 어떻게 서로 들어맞는지 자세한 구도를 만들게 해줬다.

알코올에 취하면 인간과 초파리 아주 비슷해
알코올에 취했을 때, 인간에게 나타나는 일부 기괴한 행동은 초파리와 아주 비슷하다. 사람은 처음 행복감에 넘쳐 소란스러워지는 단계다. 초파리는 침착성을 잃고 과잉행동을 보인다. 그 다음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단계인데 초파리는 똑바로 걷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마지막으로 의식을 잃는 상태가 온다. 이 경우 초파리는 시궁창에 처박혀 있거나 포식자의 뱃속에 들어 있기 십상이다. 초파리는 혈중 알코올 농도가 약 0.2%에 이르렀을 때 취하는 경향을 보인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법으로 정해 놓고 있는 운전 가능한 혈중 알코올 농도 0.1%와 비교 해 보면 상당히 재미 있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

초파리가 사람의 질병연구에 활용되는 대표적인 예가 파킨슨병에 대한 연구다. 파킨슨병은 치매 다음으로 많이 발병하는 퇴행성 신경질환으로, 뇌에서 운동신경의 조절을 담당하는 도파민이라는 신경신호전달물질을 분비하는 도파민 신경세포가 죽어가면서 운동능력을 잃게 되는 병이다.

최근 파킨슨 병 연구에 개가를 올려
현재 도파민 신경세포가 죽이면서 줄어드는 도파민을 보충해주는 치료법이 있으나, 도파민 신경세포가 죽어가는 것 자체를 막는 방법이 없어 근본적인 치료가 불가능한 불치병이다. 따라서 근본적인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해 파킨슨병의 원인을 연구한 결과 세포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미토콘드리아의 기능이 떨어지는 것이 도파민 신경세포의 죽음을 촉진하게 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파킨슨병과 미토콘드리아 기능이상을 연결하는 연결고리가 무엇이며, 그 고리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밝히지 못했다. 그러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파킨슨병을 유발시키는 유전자들이 파킨슨병 환자들로부터 발견됐다. 연구자들은 이 유전자들을 생쥐에서 조작하여 파킨슨병의 발병 메커니즘을 밝히려 했으나, 이상하게도 이 생쥐들은 아무런 파킨슨병 증상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파킨슨병 관련 유전자를 초파리에서 조작하자 초파리의 운동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날지 못하고, 기어 올라가는 속도도 떨어지게 됐다. 초파리의 뇌를 조사해본 결과 도파민 신경세포의 수 또한 상당히 감소했다.

사람의 파킨슨병 치료제를 초파리에게 먹이자 회복돼, 사람의 파킨슨병을 거의 완벽하게 흉내 낸 파킨슨병 모델초파리를 만드는데 성공한 것이다. 파킨슨병 모델 초파리를 사용하여 추가적인 실험을 수행했다.

결국 파킨슨병 유전자인 핑크1 (PINK1)이 다른 파킨슨병 유전자인 파킨(parkin)을 조절하여 미토콘드리아를 보호하고, 이들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미토콘드리아가 보호 받지 못해 손상되면서 파킨슨병이 발병하게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김형근 객원기자 | hgkim54@naver.com

저작권자 2012.11.2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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