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18일 일요일

SF 메뉴판엔 어떤 요리들이 담겼을까?

SF 메뉴판엔 어떤 요리들이 담겼을까?

다채로워진 SF의 하위장르 세계들

 
SF 관광가이드 소설과 영화, 뮤지컬, 만화, 애니메이션 그리고 컴퓨터 게임 등 매체 유형에 상관없이 그 안에 담긴 이야기 형식은 저마다 고유한 아이덴터티를 지닌 특정한 '장르'로 구분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장르라 하면 그 속성상 1회성에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비슷한 패턴을 반복하는 미학 형식상의 틀로 정의된다. 소설의 예를 들어보자. 되풀이되는 패턴에 익숙해지면 우리는 공포소설에서부터 모험소설, 환상소설, 연애소설, 무협소설, 추리소설(범죄소설), 의학스릴러, 역사소설 그리고 스파이소설 등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내러티브 형식들을 한눈에 판별할 수 있지 않은가. 과학소설(Science Fiction)을 비롯한 다양한 SF 콘텐츠 또한 이러한 장르 패러다임에 충실한 텍스트 형식을 취한다.

흥미로운 점은 장르의 울타리 구분법이 예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하나의 장르인 듯한 SF 안에도 따지고 보면 각양각색의 작은 울타리들이 오밀조밀하게 들어서 있다. 이는 과학소설이 태생적으로 과학의 다양한 분야와 주제에 관심을 갖고 변주되어왔기 때문이며, 아울러 이 문학 장르의 현대적 효시로 꼽히는 메리 쉘리(Mary Shelley)의 <프랑켄슈타인 Frankenstein; 1818년>이 출간된 이래 근 200년 동안 그리 짧지 않은 장르 역사의 생성발전 과정에서 시대정신과 호응하며 돋아난 곁가지들이 자연스레 늘어난 까닭이다. 한 마디로 과학소설 장르는 다시 잘게 쪼개진 각론(各論)들의 총화(總和)이다.
▲ 현대 과학소설의 효시로 꼽히는 <프랑켄슈타인>은 '재생인간'과 '미치광이 과학자'라는 하위장르로 다시 상세구분될 수 있다. 위 이미지는 다국적 광고회사 TBWA가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창조한 괴물을 소재로 하여 제작한 광고물. 자동차에 순정부품을 사용하지 않으면 차가 추해진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TBWA

다만 그 분류기준의 객관성을 담보하기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어차피 문학의 잔가지를 헤아리는 일이다 보니 작가와 독자의 취향이나 가치관에 따라 얼마든지 임의 구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SF의 하위 장르들 간에 경계가 모호해지거나 일부 영역이 서로 겹치기 일쑤이다.

하지만 이는 과학소설의 정의 및 과학소설과 환상소설의 경계 그리고 하드SF와 소프트SF의 경계를 논할 때도 늘 불거지는 문제 아니던가. 지나치게 근본주의적인 시각으로는 아무 것도 남아나지 않는다. 더구나 하위 장르를 논하는 궁극의 목적은 이 장르문학을 갈기갈기 찢으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와 정반대다. 그것은 하위 장르들에 대한 이해의 총합을 통해 그 전체상인 과학소설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려는 데 있다. 일종의 귀납법을 과학소설을 이해하는 데 적용하는 셈이다.

따라서 이제부터 차례로 소개하는 과학소설의 하위 장르들은 절대적인 불변의 잣대라기보다는 필자가 해외 과학소설계의 평론가들과 작가들 그리고 팬덤에서 통용되는 패러다임들을 임의로 선별 수용하여 재분류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관점의 차이에 따라 여기에 소개하는 하위 장르들이 얼마든지 더 세분화되거나 혹은 반대로 더 큰 항목으로 한데 묶일 수 있다는 뜻이다. 심지어 새로운 항목을 더 추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은 독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과학소설은 현대 산업문명과 문학이 함께 빚어낸 역사적 산물인 까닭에 이 장르문학의 하위 장르들은 끊임없이 생성, 발전, 분화되고 있으며 고착되는 법이 없다. 관심 범주들은 끝없이 늘어나며 깊이를 더하고 있다. 일례로 컴퓨터나 인공지능이 본격 개발되기 이전에 씌어진 과학소설을 양자역학과 나노 단위의 생명공학이 갈수록 우리 삶으로 스며들어오는 현실·미래를 반영한 최근의 과학소설과 맞비교할 수야 없지 않겠는가.

인간의 문명과 과학이 결합하여 새로운 삶의 유형을 낳을 때마다 이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는 과학소설의 곁가지는 하나둘씩 늘어나기 마련이다. 앞으로 필자가 안내할 SF 하위 범주들의 다채로운 여정에 혹여 만족하지 못하는 독자가 있다면, 적어도 여기서 제시되는 과학소설의 하위 장르별 정보를 디딤돌 삼아 자신만의 고유한 하위 장르 분류체계를 새로 세워보는 것도 흥미로우리라.

이번 여정에서 오해의 소지가 없었으면 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어떤 작품 하나가 반드시 어떤 하위 장르 하나에만 절대적으로 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개개의 과학소설들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 환경에다 인류사회와 우주를 포괄하는 비전을 녹여 넣으며 그 화학작용이 일어나는 과정을 저마다의 시선으로 중계한다.

따라서 작품의 길이를 막론하고 하나의 소설 안에서 인간과 로봇의 갈등이 주요한 모티브로 부각되는가 하면 양자의 사이에 전혀 다른 이해관계를 지닌 외계인들이 느닷없이 밀고 들어올 수도 있다. 어쩌면 그 인간은 유전공학의 도움을 받아 급격한 진화를 이룬 존재일지 모른다. 게다가 삼자가 갈등을 봉합하기도 전에 외계의 바이러스나 혜성 따위가 온 세상을 들쑤셔 놓을 가능성도 있다. 다시 말해 하나의 텍스트 안에 SF의 여러 하위 장르들(또는 주제와 주요한 소재들)이 함께 변주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하위 장르의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는 앞서 언급했듯이 무엇보다 2세기가 다 되어가는 현대 과학소설의 방대한 커버리지를 유기적이고 짜임새 있게 조망할 수 있도록 찬찬히 도와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류작업에는 두 가지 이점이 있다. 하나는 명분을 세워주고 다른 하나는 실속을 채워준다.

명분부터 살펴보자. 누누이 말하지만 구분된 하위 장르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개별 하위 장르들이 저마다 과학에 뿌리를 둔 탄생배경과 그것들이 사회와 부대끼며 진화해온 과정을 되돌아보는 동시에, 하나의 하위 장르가 여타 하위 장르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그리고 과학소설이란 큰 울타리 안에서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돌아보는 일은 이 장르문학 전반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한 마디로 과학소설의 올록볼록한 요철을 파악하는 지형도로서 하위 장르 구분이 유용하다는 말이다.

실속도 이에 못지않다. 누차 강조했듯 하나의 작품이 (또는 작가가) 하나의 하위 장르만 고집하란 법은 없다. 그러나 어차피 수십 개가 넘는 하위 장르를 균등 분할하여 하나의 작품에 녹여 넣지 않는 이상, 개별 작품마다 작가가 추구하는 메시지를 가장 잘 떠받쳐줄 특정한 하위 장르 틀이 자연스레 부각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분류법 그리고 그에 따른 추천작품 목록이 독자들에게 무슨 쓸모가 있을까?

우선 과학소설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 쓸모가 있다. 과학소설 하면 우주선이나 외계인 정도만 떠올리는 초보독자의 경우, 백화점 나열식으로 온갖 유형의 과학소설을 읽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필자의 SF 가이드가 효율적인 입문서로서 고민과 시간을 덜어줄 수 있다. 일단 하위 장르들의 정의를 개략적이나마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동네의 추천 작품부터 읽어나가면 되니 말이다. 과학소설을 간간이 읽지만 아직 열혈독자라 할 수 없는 이에게도 유용하다. 그동안 특정 하위 장르가 과학소설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여겼거나, 읽어본 적도 없으면서 자신은 흥미 없어 할 유형이 뻔하다고 지레 단정해버린 독자라면 이번 기회에 그에 대한 답을 금방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해외원서 독파를 불사하는 과학소설의 고수라 해도 적잖은 도움이 된다. 특별히 과학소설을 업으로 삼는 이가 아니라면 매년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국내외 작품들을 대략 꿰기조차 힘에 부친다. 벌써 십여 년이 지난 2000년 기준으로 따져 봐도 미국에서만 한 해 동안 출간된 과학소설 종수가 무려 2천종에 달한다.1) 이는 1972년 300종에 비해 6.67배 증가한 수치다. 일본에서는 2010년 6월 현재 하야가와 출판사에서 그동안 펴낸 SF총서가 해외 번역물은 1천764권, 일본 순수 창작물은 1천1권에 이르렀다.2)
▲ 일본의 경우 2010년 6월 현재 하야가와 출판사에서만 그동안 펴낸 SF총서가 해외 번역물은 1764권, 일본 순수 창작물은 1001권에 이르렀다. (자료원: 고장원, 국내 창작과학소설의 미래 또는 고민, 한국과학창의재단 주최 제21회 융합카페 발표자료, 2010년 7월, 18쪽) ⓒefremov

그런데 잠깐! 이 많은 작품들을 다 읽어야 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미국의 인기 과학소설 작가 씨어도어 스터전(Theodore Sturgeon)의 말마따나 다른 예술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과학소설의 90%는 그다지 돌아볼 가치가 없는 이른바 ‘쓰레기’ 아닌가? 위에서 언급했듯 매년 엄청난 양의 과학소설들이 해외에서 출간되는 상황에서 우수작들만 걸러낸다 해도 그 수가 결코 만만치 않다.

스터전의 잣대를 적용해도 일정 품질(!) 이상의 읽을 만한 과학소설들이 전 세계에서 족히 1만권은 넘을 것이다. 솔직히 필자 역시 이번 연재에서 언급되는 수많은 추천작들을 일일이 다 읽지는 못했다. 능력도 능력이거니와 개인의 가용시간이 무한정하지는 않은 탓이다. 대신 이미 해당 작품들을 읽고 추천해준 해외 평론가들과 작가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이 또한 다 받아들이자니 차고 넘친다. 한도 끝도 없이 추천작을 산처럼 쌓아놓아서야 누가 감히 읽을 엄두를 내겠는가?

해서 필자 나름의 현실적인 기준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일단 하위 장르를 소개할 때 해당 범주의 대표작은 되도록 꼭 포함시키려 신경 썼다. 대표작의 기준은 해당 하위 장르의 대표성과 문학성, 과학소설 역사에서의 위상 그리고 대중적 인지도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했다. 그러나 필자가 아무리 여러 데이터와 문헌을 참고했다 해도 한 개인의 임의적인 조합에서 비롯된 기준인 이상 완전할 수야 없을 터이다. 매 하위 장르의 효시가 되거나 초기 고전에 속하는 작품은 설사 국내에 번역 소개된 예가 없어도 관련문헌을 찾아 최대한 반영하려 했다. 이는 각 하위 장르의 역사성을 고려한 조치다.

다만 국내에 번역 소개된 작품들 중에는 다소 미흡한 수준이라 해도 본문에서 인용하고 글의 말미에 붙는 추천작품목록에도 수록한 예가 적지 않다. 이는 아직까지 국내 출판시장에서 과학소설 작품의 다양한 취사선택이 쉽지 않은 여건을 십분 감안한 선택이다. 그러나 문학적 수준과는 별개로 정의(定義)상 과학소설이라 보기 애매하거나 영화가 원전인 소설(tie-in)은 제외했다. 다만 과학환상소설(Science Fantasy)과 고딕환상소설(Gothic Science Fiction) 그리고 뉴 위어드(New Weird)처럼 과학소설에 환상소설적인 요소를 일부러 수용함으로서 탄생한 일부 하위 장르들의 경우에는 예외로 하였다.
▲ 뉴 위어드(New Weird)처럼 과학소설에 환상소설적인 요소를 일부러 수용한 일부 하위 장르들도 이번 연재에 포함시켰다. 위 책은 Ann & Jeff VanderMeer 부부가 편집한 뉴위어드 계열의 작품선집 <뉴위어드>. 2008년 1월 출간되었다. ⓒTachyon Publications

국내외를 불문하고 단행본 장편이 아닌 작품들은 지면의 한계로 많이 배려하기 어려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읽어봤으면 싶은 중단편들은 일부나마 추천목록에 포함시켰다. 특히 하위 장르별 대표작과 초기 고전들 중에서 국내에 번역 소개된 작품들은 능력 미치는 한 빠짐없이 수록하고자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천목록에서 필자의 좁은 식견으로 말미암아 누락된 걸작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SF 가이드의 연재 목적은 작품들의 질적(문학적) 품평보다는 다양한 장르별로 고유한 분위기를 잘 살린 작품들을 폭넓게 소개하는데 있기에 일부 걸작들의 누락이 있더라도 독자 제위께서 용서해주시리라 믿는다.

다음은 이제부터 연재할 과학소설의 각 하위 장르 목차다. (하위 장르별 추천목록에 수록된 작품들의 출간연도는 잡지 게재가 아니라 단행본으로 발간된 해를 기준으로 삼았다. 단, 단행본 발행년도를 알기 어려울 때에는 잡지에 처음 게재된 해를 참고했다.)

- 우주여행 Space Travel
- 스페이스 오페라 Space Opera
- 외계인 침공 Alien Invasion
- 최초의 접촉 First Contact
- 대재앙 이후의 이야기 Post Holocaust Tales
- 평행세계 Parallel Worlds
- 대체세계 & 대체역사 Alternate Worlds or Alternate History (What If?)
- 시간여행(타임머신) Time Travel
- 타임슬립 Time Slip
- 초인, 돌연변이 그리고 ESP Superhuman(Mutant) or Extra Sensory Perception
- 공간이동 Teleportation or Transporter
- 종교와 신화적 원형의 모티프 Religious and Mythic Motifs
- 유토피아 Utopia
- 디스토피아 Distopia
- 로봇 Robot / 앤드로이드 Android / 사이보그 Cyborg
- 인공지능 Artificial Intelligence
- 복제인간 Clone / 재생인간 / 도플갱어 Doppelganger
- 사이버펑크 Cyberbunk / 가상현실 Virtual Reality
- 스팀펑크 Steampunk
- 바이오펑크 Biopunk
- 미래사 Future History
- 외계행성의 식민화 Human Colonization/Conquest of Other Worlds
- 테라포밍 Terraforming
- 팬트로피 Pantropy
- 행성간 로맨스 Planetary Romance
- 에디소네이드 Edisonade
- 미치광이 과학자 Mad Scientist
- 잃어버린 세계 Lost Worlds
- 선사시대 소설 Prehistoric fiction
- 머나먼 미래 또는 죽어가는 지구 Far Future or The Dying Earth
- 군사 과학소설 Military Science Fiction
- 페미니즘 과학소설 Feminism Science Fiction
- 성과 에로티시즘 Sex in Science Fiction
- 리버테어리언 과학소설 Libertarian Science Fiction
- 고딕 과학소설 Gothic Science Fiction
- 과학환상소설 Science Fantasy
- 뉴 위어드 New Weird
- 기억의 전이 Brain Scan or Memory Scan
- 지성화 Uplifted Men and Animals
- 특이점 과학소설 Singularity Science Fiction
- 과학소설과 환상소설, 어떻게 다른가?
- 하드SF와 소프트SF, 어떻게 다른가?
- [결론] SF DNA: 과학소설, 네 정체를 밝혀보자!
1) James Gunn, The Science of Science Fiction Writing, Scarecrow Press, 2000, p.viii
2) 고장원, “국내 창작과학소설의 미래 또는 고민”, 과학창의재단 주최 SF융합카페 토론회 발제자료, 2010년 7월, 18쪽

고장원 SF칼럼니스트 | sfko@naver.com

저작권자 2012.11.1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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