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4일 토요일

나의 과학적 도전, ‘탈출’에서 시작

나의 과학적 도전, ‘탈출’에서 시작

전 미국 화학회 회장 인터뷰(상)

 
전체 19권이 넘는 방대한 저서 ‘역사의 연구(Study of History)’는 영국의 위대한 역사학자 조셉 아놀드 토인비가 약 40년에 걸쳐 완성한 것으로 전 세계 문명사를 도전과 응전(challenge and response)의 논리로 설명하고 있다.

과학기술 역시 도전과 응전이라는 논리 속에서 진화 발전하며 거대한 문명을 이룩하는데 이바지했다. 따라서 한 과학자의 도전정신은 과학적 산물이라는 문명의 일부를 창출하는데 아주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 과학의 위대한 발견과 발명은 이러한 도전, 그리고 모험 속에서 이루어졌다.
▲ 공산치하 헝가리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파블라스 박사. 그는 과학은 자유민주주의 속에서 꽃을 피울 수가 있다고 굳게 믿는다. ⓒScience Times
과학에 대한 도전정신이라면 미국 화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팔순을 훨씬 넘은 나이인 지금도 우주비행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아틸라 파블라스(Attila Pavlath)도 여기에 뒤지 않는 분명 ‘한 가닥’ 하는 학자임에 틀림 없다.

사이언스타임즈는 최근 서울을 방문한 파블라스 박사를 만났다. 단독 인터뷰에서 생사(生死)를 뛰어 넘은 그의 도전정신을 읽을 수 있었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굳건한 신념, 그리고 학문에 대한 끈질긴 집념이 과연 무엇인지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자유와 학문을 위한 그의 아슬아슬한 ‘탈출기(脫出記)’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한편의 드라마 자체였다. 우선 서울 첫 방문에 대한 느낌과 소감을 시작으로, 그가 어떻게 헝가리 공산치하에서 탈출하게 됐는지에 알아봤다.

다음은 아틸라 파블라스 박사의 인터뷰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한국의 분단현실이 아쉽다. 조금은 다르지만 헝가리도 한국과 비슷한 운명을 겼었다. 물론 헝가리는 이제 자유민주의체제로 전환됐다. 그러나 과거의 화려한 영광은 퇴색하고 말았다.
서울은 처음으로 방문했다. 활기가 있으며 아주 다이내믹한 도시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오랜 역사의 과거와 아주 새로운 풍경의 현대와 아주 잘 어우러지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냉전이 낳은 정치적 아픔이 여전히 존재하는 곳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지금 막 용산에 있는 국립박물관을 관람하고 오는 길이다. 솔직히 난 한국(남한)에 대해 그렇게 깊은 지식은 없다. 다만 분단된 나라이면서도, 그러한 악조건을 잘 해결해 상당한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라는 것을 안다. 자동차, 전자산업은 세계적이라는 것도 안다.

고향인 헝가리는 오스트리아-헝가리라는 합스부르크 제국으로 한 때 영광을 누렸다. 그러나 그러한 영광은 퇴색됐다. 더구나 1,2차 대전을 겪으면서 영토가 사분오열 찢어졌다. 더구나 소련 치하의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사정은 더욱 악화되었다. 냉전의 아픔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엔지니어는 상당히 낮은 계급이었다. 중요한 것은 계급이라기 보다 학문의 영역을 넓힐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래서 생사를 무릅쓰고 ‘탈출’이라는 모험에 도전했다.
2차 대전 후 조국인 헝가리를 비롯해 상당수 동유럽국가들이 공산주의 체제로 돌아섰다. 물론 소련의 영향력 때문이다. 나는 헝가리 부다페스트 기술대학을 나와 헝가리 과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탈출’하기 전까지 모교인 부다페스트 기술대학에서 조교수로 있었다.

그러나 학문활동에 제약을 받았다(그렇다고 그는 유태인이 아니다). 통제를 받았다기보다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 자유롭게 학문에 정진(精進)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그리고 자식 세대에서도 상황은 마찬 가지일 것으로 생각되었다. 결국 헝가리에서 탈출하기로 결심했다. 당시에 아내와 세 살 된 아들이 있었다. 아들이 상당히 걸림돌이 되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결코 없었다.

헝가리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오스트리아다. 오스트리아는 당시 중립국이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로 탈출하면 서방국가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오스트리아 국경에서 헝가리 쪽으로 15km는 일종의 완충지역으로 (우리나라 같으면 민간인 통제구역) 민간인이 접근할 수 없었다. 오스트리아로 탈출을 막기 위해서였다. 적발되면 죽을 수도 있었다.

세 살 된 아기가 큰 걱정이었다. 할 수 없이 꽤나 많은 수면제를 먹였다. 그것이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는 우리를 도와주었다.

1956년 당시 나는 모든 것을 정리했다. 물론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완충지대와 가장 가까이 하고 있는 소도시 소프론(Sopron)이 가장 적합할 것으로 판단했다. 친척이 여기에 살고 있었다. 몇 일 간 기거하면서 탈출 기회를 엿보았다.

사실 15km의 거리를 사람들의 눈을 피해 도주한다는 것은 어려운 노릇이었다. 그것도 야간이라면 더욱 힘든 일이다. 그리고 국경을 접하고 있는 지역은 산도 높고 바위도 많지만 빽빽한 산림이었다. 그리고 방향도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더구나 철 모르는 아기가 소리를 내거나 울기라도 하면 끝장이었다. 그래서 깊은 잠에 빠지도록 수면제를 꽤나 많이 먹였다. 죄스러웠지만 식구 모두가 살기 위한 방법이었다. 다행히도 오스트리아 국경에 이를 때까지 아기는 우리를 도와주었다. 결코 깨지를 않았다. 우리의 탈출은 간신히 성공했고 오스트리아 국경 근처 수용소에서 3개월 동안 머물 수 있었다.

캐나다, 그리고 미국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한 편의 논문 덕이었다. 탈출하면서 모든 것을 버렸지만 그 논문만은 품 안에 간직했다.
미국은 이주하기가 힘든 곳이었다. 아주 명망 있는 학자들을 제외하고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캐나다를 선택했다. 막상 자유를 찾아 정작 캐나다로 이주했지만 살길이 막막했다. 헝가리에서 교수를 했다는 것만으로는 직장을 얻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탈출할 때 잊지 않고 챙긴 것이 있었다. 한 편의 논문이었다. 그 논문은 책으로 출판된 것도 아니다. 다만 국제 공영어로 통할 수 있는 독일어로 번역된 것이다. 난 꾸깃꾸깃한 그 논문 원본을 여러 대학에 제출했다. 다행히도 탈출한 그 해가 가기 전에 캐나다 맥길 대학에서 연구원(research fellow)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1957년은 세계 과학기술자들에게는 아주 특별한 해다.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을 우주로 쏘아 올려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이어 최초의 우주인 유린 가가린이 우주 비행에 성공하자 미국의 자존심이 곤두박질쳤다. 여론의 뭇매를 맞은 당시 케네디 대통령은 세계 과학자들을 미국으로 대거 불러들이는 과감한 과학기술정책을 발표했다.

나도 미국 이민을 신청했으며 허락을 받았다. 처음에 자리를 튼 곳은 캘리포니아 리치몬드에 있는 화학제품회사인 스타우퍼 화학(Stauffer Chemical Co)으로 여기에서 약 10년간 책임연구원으로 일했다.

이후 미국 농무성(USDA)에서 퇴직할 때까지 책임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농업화학분야에서 20년 넘게 일했다. 그리고 120여 편이 넘는 논문을 발표했으며 25개의 특허를 냈다. 방전화학(glow discharge chemistry)과 불소화학도 나의 전공분야다.

수면제를 먹였던 아들은 NASA 협력업체의 물리학자로 있다. 소련 멸망 후 아들과 같이 제일 먼저 ‘탈출로’를 방문했다. 만감이 교차했다.
내가 수면제를 먹였던 아들 조지(George)는 물리학자로 NASA 협력업체에서 근무하고 있다. 화성탐사 우주선이 착륙할 때 광케이블을 이용하여 유도신호를 보내는 작업에 관여하는 일이다. 그와 나는 헝가리가 고향이다. 때로 아들에게 ‘탈출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직접 방문하여 그 ‘15km’을 몸소 걷기도 했다.

딸 그레이스(Grace)가 있다. 아틀란타에 소재한 에모리대에서 약학교수로 있다. 아내는 건강하다. 나의 부친도 그렇고, 자식에 이르기까지 과학기술자 집안이라고 할 수 있다.

학문은 자유가 보장된 민주주의에서 꽃필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지적처럼) 내가 그렇게 도전정신으로 똘똘 뭉쳐 있는 학자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과학적인 산물은 도전과 모험 속에 잉태된다고 생각하다. 비단 과학만이 아니다. 모든 발전과 진보가 도전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계속)


김형근 객원기자 | hgkim54@naver.com

저작권자 2012.11.2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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