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29일 토요일

“여성인력 확보, 육아 해결 없인 힘들어”

[인터뷰] 기초연 첨단장비개발사업단 원미숙 박사

 
지난 11월 말, 한국연구재단은 ‘제12회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자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뛰어난 업적의 여성과학자를 선정했는데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의 원미숙 박사가 그중의 한 명이다. 국내 여성과학자들의 연구환경을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으며 '진흥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국내 과학자들의 연구환경이 척박하다는 것은 이미 많은 언론을 통해 대중들에게 알려진 바다. 연구의 규모와 기간에 상관없이 성과 위주로 이뤄지는 평가체계와 창의적인 연구활동을 저해하는 연구환경 등은 현직 연구원 대다수가 꼽는 어려움들이다.

게다고 여성과학자들이 체감하는 어려움은 한 수 위다. 연구와 함께 육아를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구는 체력으로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육아와 가사 병행은 여전히 많은 여성과학기술인들에게 넘어서지 못할 난제다.

“슈퍼우먼이 돼야 했죠”

원미숙 박사는 지난 2008년부터 국가 대형연구장비 개발사업인 ‘ECR이온원을 이용한 중소형 입자빔 이용시설 구축’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기초연 중이온가속기사업단이 구축할 대형 중이온가속기 구축의 프로토타입으로 활용가능한 기술이다.
▲ 기초과학지원연구원 원미숙 박사. ⓒSciencETimes

특히 중금속 측정장치는 난분해성 유기물 중 유해 중금속의 수질오염을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원격모니터링 시스템 구축을 위한 분석기로 사용이 간편하고 저렴해 현장적용에 적합한 분석기술로 평가받는다.

다양한 국책 연구에 함께한 원 박사지만 그동안 스스로 슈퍼우먼이 돼야만 했다. 75학번인 그녀가 한창 아이들을 양육하던 시기는 ‘남녀의 가사분담’이라는 개념조차 없었던 때다. 지금은 당시보다 여권이 많이 신장됐지만 그때만 해도 남성중심의 사회문화였던 만큼 일을 하기위해서는 ‘슈퍼우먼’ 마인드가 필수적이었다.

“남성들은 아침에 일어나 씻고 식사 후 출근만 하면 되지만 여성은 아이들까지 챙겨야 하니, 저 역시 동일한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주어진 시간과 환경에서 더욱 열심히 일을 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1993년 기초연에 입사한 이후로 해가 떠 있을 때 퇴근한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오후에 출장이 잡히면 오전에 일찍 출근해 일을 마무리하든지, 출장 후 다시 연구소에 돌아가 일을 하는 등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죠.”

하지만 이렇게 12시간을 꼬박 외부에서 일을 해도, 집에 돌아가면 또 할 일이 남아있었다. 바로 가사였다. 남편과의 가사 분담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았던 점도 있지만, 성장과정부터 책임감을 강조받으며 자란 탓에 그 모든 일을 혼자 감당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에 못지않게 어려웠던 것은 사회 진출 후 여성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 즉 유리천정이었다. 당시만 해도 여성들이 대학이나 연구소에 취업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던 만큼 과학기술계 진입 자체가 높은 벽이었던 셈이다.

“당시만 해도 여성은 아내와 엄마로서의 역할이 강조되던 시절이었어요. 여성으로서 과학기술계에 진출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웠죠. 하지만 이제는 여성대통령도 선출됐으니 향후 여성의 과학기술계 진출에 대한 큰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女, 오피니언리더 기회 주어져야

원미숙 박사가 과학기술계 진출에 집중하게 된 계기는 스스로가 ‘여성과학자’임을 인지하면서다. 다소 의아한 이야기일 수 있으나 1998년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KWSE)에 입회하기 전까지 원 박사는 자신을 다른 남성 연구원과 동일한,연구원으로 여기며 일했다.

때문에 가사와 육아병행의 어려움을 인지할 틈도 없었다. 하지만 KWSE의 멤버가 되면서 자신이 여성과학자라는 점을 자각하게 됐고, 이후로 여성과학자들의 지위향상과 네트워킹, 권익보호 등의 문제에 관심을 돌리게 된 것이다.

“저 자신이 여성과학자이기 때문에 일과 가사의 병행이 어렵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했죠. 그동안 스스로를 연구원의 한 일원으로만 생각했을 뿐, 육아 등의 복지가 필요한 여성이라는 점을 모르고 살았던 거예요. (웃음) 다소 아이러니 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그게 현실이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단체에 입회한 후 여성과학자의 지위가 향상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계에 오피니언 리더로서 여성들의 진출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죠. 또한 국가과학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여성과학기술인의 양성과 사회진출, 나아가 비정규직 여성과학기술인의 고용안정화 방안에도 관심을 갖게 됐고요.”

그녀가 여성과학자로서 겪은 어려움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것은 지역 여성과학자에 대한 편견이었다. 현재 기초연 부산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는 원미숙 박사는 중앙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업무환경으로 인해 적극적인 활동에 제약이 가해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중앙에서 회의 등이 진행되면 이동시간이 길어 하루를 온전히 할애해야 하죠. 제가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회장으로 활동했던 2008~2009년 동안 연 평균 이동거리가 약 10만km 였어요. 길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을 소비했는지 가늠할 수 있죠. 자연히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사회적 활동을 주저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중앙과 지역이 함께하는 과학기술정책을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는 지방 인재들이 적극적으로 과학기술계의 리더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지역의 균형발전을 위한 인재활용의 기본이죠. 더불어 학연, 지연을 따지는 문화도 없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녀는 여성과학기술인의 적극적인 과학기술계 진출을 위해서는 사기진작과 지위향상을 위해 여성이 오피니언리더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 스스로 연구 뿐 아니라 사회활동에도 적극적인 사고를 갖고 활동영역을 넓힐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노령화 사회가 급속히 진행되는 국내 현실을 볼 때 우수과학기술인력의 확보 측면에서도 여성의 과학기술계 진출은 필연적이라는 게 원 박사의 설명이었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및 선진 여성과학기술인들의 노력으로 과학기술계에서 여성의 영역은 많이 넓혀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여성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과학기술계 분야에 진출할 수 있도록 고위직 여성과학기술인 비율을 높이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합니다.

고위직 여성과학기술인의 비율이 높아지면 여성의 위상 강화가 이뤄지고 후배 여성과학자들에게 역할 모델이 되어 차세대 여성과학자들 진출에 동기부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경력단절을 예방하기 위한 육아시설의 확대 보급이 필요해요. 최근 지질자원연구원 및 표준과학연구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직장 내 보육시설 구축은 대단히 좋은 예라고 생각합니다.”

원 박사는 부산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분석화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기초연 첨단장비개발사업단 책임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10년에는 영년직 연구원으로 임명됐다. 대외적으로는 중이온가속기구축사업 추진위원회 위원, 지식경제부 산업기술연구회 이사로 활동 중이다.


황정은 객원기자 | hjuun@naver.com

저작권자 2012.12.2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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