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24일 월요일

특허로 치고받는 기업 간의 전쟁

특허로 치고받는 기업 간의 전쟁

10대 뉴스 (7) 특허괴물과 특허전쟁

 
과학기술계에 있어 2012년은 다른 어느 해보다 빅 이슈가 많았던 해다. 한편에는 세계를 놀라게 한 연구 성과들이 이어졌고, 다른 한편에서는 스마트혁명이 지구촌을 몰아쳤다. 올해는 특히 창의성이 사회적 이슈로 부상한 한 해였다. 그 결과 과학교육 혁신을 위한 논의가 다른 어느 때보다 활발했다. 해를 마감하면서 사이언스타임즈가 나라를 놀라게 한 10대 뉴스를 선정했다. [편집자 註]
2012 10대 뉴스 북유럽 신화에는 ‘트롤(troll)’이라는 이름의 괴물이 등장한다. 흉측하게 생긴 모습에 등에 혹이 나 있으며 말발굽을 손으로 구부릴 정도로 힘이 세다. 판타지 소설이나 영화에도 종종 등장해 공포 분위기를 자아낸다.
▲ 신화 속 괴물 '트롤'의 이름에서 유래한 '특허 괴물'이 세계 곳곳에서 사냥을 시작했다. ⓒFlickr.com
신화 속 트롤이 현대에도 살아남아 세계 각국에서 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실제 괴물이 아니라 ‘특허 괴물(patent troll)’의 이야기다. 제품을 직접 만들지도 않으면서 제품의 특허나 지식재산권만을 사들인 후 무단 사용자에 대해 로열티를 부과하는 식으로 이윤을 취득하는 비제조 특허전문업체(Non Practicing Entity, NPE)를 가리킨다.

특허괴물은 자신이 보유한 특허를 침해한 기업에게 천문학적인 사용료를 요구하며 이를 거부하면 소송을 걸어 공격을 가한다. 1998년 테크서치라는 회사가 인텔을 고소한 예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인터내셔널메타시스템(IMS)으로부터 반도체 관련 특허를 1억 달러에 구매한 후 인텔에게는 5억 달러를 청구했다.

인텔의 담당변호사 피터 데트킨(Peter Detkin)은 기존 표현보다 더 강렬한 ‘특허 괴물’이라는 단어를 탄생시키며 역공을 가했다. 이후 특허괴물과 특허전쟁이라는 표현은 기업의 생존을 위협할 만큼 빈번해졌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2009년에 접어들며 특허관련 분쟁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특허괴물이 이제는 시선을 돌려 아시아 기업의 사냥에 나섰기 때문이다.

특허괴물 막으려 지식재산권 확보에 나서

지난 2005년 ‘인터디지털(InterDigital)’이라는 회사가 휴대폰 제조업체 노키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자사가 보유한 유럽형 이동통신기술(GSM)을 침해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결국 노키아는 2억5천만 달러(우리돈 약 2천700억)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인터디지털은 다른 회사로부터 저렴한 가격에 특허를 사들인 후 타국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거는 ‘특허괴물’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06년에는 삼성전자가 1억3천400만 달러(우리돈 약 1천440억)의 로열티를 지불해야 했고, 이어 LG전자도 2억8천500만 달러(우리돈 약 3천60억)의 합의금을 지불했다. 인터디지털은 2만여 건의 통신 특허를 바탕으로 지금도 매년 3억 달러에 가까운 로열티를 챙긴다. 여러 글로벌 기업들이 매입을 시도했지만 불발에 그쳤다.

각국의 기업들은 특허괴물의 손아귀를 벗어나기 위해 지식재산권 확보에 적극 나섰다. 자체 기술 개발에 나서기도 하고 타사를 공격적으로 인수합병하기도 했다. 구글은 헐값으로 모토로라를 사들여 1만7천여 개의 특허를 손에 넣었다. 애플은 세세한 제품 디자인까지 특허로 등록해 놓을 정도였다. 삼성전자는 2006년부터 2010년까지 1만6천여 건의 미국 특허를 등록했고 2위를 차지했다.

최근에는 기업 간의 특허전쟁으로 발전해
기업의 특허 확보는 결국 ‘특허전쟁(patent war)’으로 이어졌다. 대표적으로는 올해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군 애플과 삼성의 스마트폰과 태블릿 특허분쟁을 꼽을 수 있다. 애플이 스마트폰 ‘아이폰’과 태블릿 ‘아이패드’를 출시한 후 구글이 안드로이드(Android) 운영체제를 내놓았다. 삼성전자는 이를 기반으로 ‘갤럭시’ 스마트폰과 태블릿 시리즈를 생산했다.

운영체제뿐만 아니라 디자인과 포장까지 유사하다고 여긴 애플은 결국 2011년 4월 15일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에 ‘디자인특허 침해 혐의’로 삼성전자를 고소했다.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21일 삼성은 서울 중앙지방법원에 ‘통신특허 침해 혐의’로 애플을 고소하고, 27일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법원에도 맞고소를 신청한다. 6월 24일에는 애플이 서울 중앙지방법원에 ‘특허권 침해 금지와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한다.

▲ 특허괴물을 막으려 지식재산권을 확보하던 기업들의 노력은 결국 특허전쟁으로까지 번졌다. 애플과 삼성의 특허분쟁이 대표적인 예다. ⓒApple
이후 애플과 삼성은 유럽으로 무대를 옮겨 특허 맞소송을 이어갔다. 10월 5일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가 사망함으로써 잠시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는 듯했지만 특허전쟁은 멈추지 않았다. 양사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호주와 일본에서도 판매금지 신청을 제출했다.

결국 해를 넘긴 2012년 4월 17일 미국 캘리포니아 연방법원의 루시 고(Lucy Haeran Koh) 한국계 미국인 판사는 애플과 삼성 양사에게 화해를 명령하고 협상을 통해 소송 규모를 줄이라고 권유했다.

그러나 이미 불붙은 특허전쟁을 멈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7월 24일 애플이 25억 달러(우리돈 약 2조 7천억)라는 천문학적 액수의 손해배상을 요구하자, 삼성과 애플은 수많은 증거를 제출하며 서로를 공격하고 또 반격하고 있다.

양쪽 모두에게 이득 되지 못하는 특허전쟁

특허전쟁에서 승리한 기업에게는 탄탄대로가 보장되는 것일까. 카메라 기술 특허분쟁의 사례를 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폴라로이드는 즉석사진 기술을 도용했다며 코닥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 승리했지만, 독점적 지위에 취해 기술개발을 게을리하다 결국 시장에서 도태되기에 이른다.

게다가 특허전쟁 과정에서 소요되는 비용이 만만치 않고 기업에 대한 소비자들의 시각에도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애플과 삼성도 최근 불필요한 소송을 취하하는 등 분쟁의 규모를 줄이는 상황이다.

그러나 다른 거대기업들도 특허전쟁을 준비하고 있어 내년에도 지적재산권 분쟁은 세계 곳곳에서 끊이지 않고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구글은 모토로라를 인수함으로써 1만7천여 개의 통신관련 특허를 획득했고, 특허 사용료로 1년에 1천만 달러(우리돈 약 108억)를 덜어들이는 통신기업 에릭슨도 최근 삼성전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과도한 비용 지출은 결국 제품 가격을 통해 소비자들의 부담을 키울 뿐이다. 특허괴물을 막으려다 특허전쟁으로 번진 글로벌 기업들의 대격돌이 우려스러운 이유다.

임동욱 객원기자 | im.dong.uk@gmail.com

저작권자 2012.12.2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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