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25일 화요일

SF에 등장한 양심적인 과학자 상(像)

SF에 등장한 양심적인 과학자 상(像)

SF관광가이드: 미치광이 과학자(4)

 
SF 관광가이드 자신의 발명으로 말미암아 뜻하지 않게 사람들이 고통 받는 현실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과학자를 다룬 작품으로는 C. M. 콘블러스(Kornbluth)의 단편 <자정의 제단 The Altar at Midnight; 1952년>이 짧지만 인상적이다. 우주로켓엔진 개발자 프랜시스 보먼 박사(Doctor Francis Bowman)는 자신이 개발한 엔진이 우주비행사들에게 심각한 후유증을 일으킴을 알고 괴로워한다. 이 소설에서 우주비행사들은 얼굴에 붉은 혈관이 도드라지는 바람에 사교생활은 물론이고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겪는다.
▲ 자신의 발명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고통 받는 사람들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과학자를 다룬 C. M. 콘블러스의 과학소설 <자정의 제단; 1952년>. ⓒLibriVox

D. G. 콤튼(Compton)의 <강철악어 The Steel Crocodile; 1970년>에서는 유럽공동체 정부의 비밀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연구소에 신규 채용된 과학자가 살인사건에 연루되면서 그 이면에 가려진 음모가 서서히 드러난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회의 모순과 불의에 맞서 행동하는 과학자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렉 베어(Greg Bear)의 <다윈의 라디오 Darwin's Radio; 1999년>와 김지훈의 장편 <더미; 2010년>가 좋은 예다.

<다윈의 라디오>는 쉐바(SHEVA)라 명명된 '인간 내생적 RNA 종양 바이러스' 탓에 온 세상의 아기들이 연이어 사산된다는 설정이 이야기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곧 DNA 변형이 일어나 살아남는 아기들도 생겨난다. 문제는 새로 태어난 아기들이 얼핏 기형아 같지만 실은 인류가 비약적인 진화의 도약 단계에 다다랐음을 보여주는 징표였다는 사실이다. 패닉에 사로잡힌 정부는 기형아들을 격리수용 내지 말살하려 획책하지만 일부 과학자들은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기존의 사회적 지위를 내던진다.

<더미>에서는 대립구도가 다국적 기업과 양심적인 과학자 개인으로 옮겨간다. 여기서 과학자들을 총알받이로 내세워 시장을 주무르는 배후세력은 정부와 군산복합체마저 끈끈한 로비로 농락하는 다국적 제약기업이다. 일명 ‘레인보 아미노산’이라 불리는 비만 바이러스를 사료에 포함시켜 가축을 단기간에 몇 배의 덩치로 키울 수 있게 된 근미래, 얼핏 식량증산으로 지구촌은 한결 행복해진 듯 보인다. 그러나 동일 성분이 급기야 인간이 먹는 온갖 식품에 맛을 내는 식품첨가제로 쓰이게 되자 이것을 직접 섭취하는 바람에 뚱보가 된 인간들이 세상에 넘쳐난다. (이야기의 설정상 레인보 아미노산으로 살이 찐 가축을 먹으면 상관없지만 직접 사람이 이러한 성분이 든 식품을 주기적으로 섭취하면 바로바로 체내에 축적되면서 가축과 마찬가지로 고도비만이 되기 때문이다.)

주인공 ‘나’는 이 신물질의 개발자로서 이 사태를 원래대로 되돌리기 위한 연구에 다시 뛰어들기 위해 부득불 다국적 제약기업 중 하나와 손을 잡는다. 하지만 그는 불안해한다. 오히려 애초 의도와 달리 자신이 다국적 제약기업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그 경계가 모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과학기술의 개발에는 천재적인 기량을 지녔으나 정작 원만한 대인관계에는 익숙지 못한 과학자가 경계심을 풀고 바깥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이야기도 나왔다. 씨어도어 스터전(Theodore Sturgeon)의 단편 <느린 조각상 Slow Sculpture; 1970년>은 세상과의 소통에 실패하고 상처 입은 천재 발명가가 우연히 한 젊은 여성의 유방암을 신기술로 치료해주는 과정에서 세상을 향해 닫았던 마음의 문을 다시 여는 감동적인 이야기다.
치료해준 여인의 이름조차 묻지 않은 채 내쫓으며 어떻게 자신이 그런 치료 장비를 갖고 있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어느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말라고 협박까지 덧붙이는 이 기인에게 낙이라고는 과수원에서 분재를 가꾸는 일 뿐이다. 이 과학자가 왜 바깥 사회와 담을 쌓게 된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 몇 년 전 그는 공해는 줄이고 연비는 늘려주는 차량용 배기장치를 개발해 큰 부자가 되었다. 자신의 아이디어가 사업적으로 성공한 결과가 아니었다. 대신 자동차 제조사들과 정유사들이 그의 발명품이 시장에 출시되지 못하게 입막음 대가로 지불한 보상금 덕이었다.

이 은둔형 과학자는 이외에도 유용한 발명을 많이 했건만 도무지 사회가 이것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에 분개한다. 여인은 그에게 인류 또한 분재처럼 다뤄야 한다, 무조건 받아들이라고 강권할 것이 아니라 절로 받아들이게 보듬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 이야기의 끝에서 과학자는 여인에게 이름을 묻는다. 이제 그는 세상과 다시 흔쾌히 대화할 준비가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20세기 중반 이후 모든 작가들이 과학자들에게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니다. 미치광이 과학자에 대한 악몽은 원자폭탄과 복제인간, 사이버테러 그리고 환경파괴 등 첨단 과학기술이 문명사회에 미치는 고질적인 문제가 엄존하는 한 말끔히 씻어내기 쉽지 않다.

이러한 원인은 과학지식을 적재적소에서 입수하기 어려운 대중의 근거 없는 오해와 공포에서 기인한 바도 있지만 과학자들의 도덕적 책무 역시 회피할 수 있는 사안이 결코 아니다. 일부 작가들이 신랄하게 비판하듯 누가 뭐래도 위험천만한 과학기술 개발의 1차적 책임은 과학자들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영화로도 제작된 피터 조지(Peter George)의 장편소설 <적색경보 Red Alert; 1958년>1)에 나오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Dr. Strangelove)와 컷 보네것 2세(Kurt Vonnegut)의 <고양이 요람 Cat's Cradle; 1963년>에서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펠릭스 호니커(Felix Hoenikker)가 전형적이다. 과학기술을 신봉하는 두 사람은 원자탄과 아이스나인 같은 세상의 종말을 가져올 궁극의 파멸무기에 대해 어떠한 감상주의에도 빠지지 않는다.
▲ 과학기술이 인류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질 수록 대중은 과학기술이 잘못 사용될 경우에 대한 불안감을 말끔히 떨쳐내기 어렵다. 이러한 불안감은 과학자에 대한 신뢰와 불신이라는 이율배반적인 이미지를 형성한다. 위 사진은 소설 <적색경보>를 원작으로 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Dr. Strangelove>에 등장하는 사이코 과학자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Hawk Films

결론적으로 이제까지 출간된 과학소설들에서 묘사된 과학자 상들을 분류해보면, 개인적인 이유이건 특정 체제나 집단에 충성해서이건 간에 제 정신이 아닌 인물로 그려지는 쪽이 고귀한 이상과 동기부여를 중시하는 쪽보다 훨씬 많다. 특히 최근 들어 유전공학의 눈부신 발달은 1950~60년대 많은 우려를 낳은 원자탄처럼 영화와 소설에서 과학자들을 악마의 대변인으로 부각시키기 좋은 빌미를 제공했다.

대중문화 속에서 과학자 상이 이처럼 불온하게 그려지는 까닭을 과학자 입장에서 무조건 억울하다고만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닐 것이다. 저명한 과학자일 뿐 아니라 인류문명의 내일을 걱정해온 사상가 프리먼 다이슨의 다음과 같은 결의야말로 과학자에 대한 대중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개선하기위한 1차적인 출발점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과학자도 인간이다. 지식에는 책임이 따르기에 과학자는 공적인 일에 참여한다. 과학자는 스스로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최선을 다해 싸운다. 과학자도 <실락원>의 저자 밀턴처럼 실패하기도 한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는가?"
--- 프리먼 다이슨2)

☞ 주요 추천작품 (국내 소개작은 밑줄 표시):

▶ <구름 The Clouds; 기원전 423년>3) / Aristophanes (희곡)
<걸리버 여행기 Gulliver's Travels; 1726년>4) / Jonathan Swift
<프랑켄슈타인 또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 1818년> / Mary Shelley
<라파치니의 딸 Rappaccini's Daughter; 1844년>5) / Nathanial Hawthorn
<지킬 박사와 하이드 Jekyll and Hyde; 1886년> / Robert Louis Stevenson
<모로 박사의 섬 The Island of Dr. Moreau; 1896년> / H. G. Wells
▶ <모리슨의 기계 Morrison's Machine; 1900년>6) / J. S. Fletcher
<메트로폴리스 Metropolis; 1927년> / 극장용 영화
<투명인간The Invisible Man; 1933년> / H. G. Wells
<페센덴의 세계들 Fessenden's Worlds; 1937년> / Edmond Hamilton
▶ <사이클롭스 박사 Dr. Cyclops; 1940년>
<모렐의 발명 La invención de Morel; 1940년> / Adolfo Bioy Casares
<소우주의 신 Microcosmic God; 1941년>(단편)7) / Theodore Sturgeon
▶ <자정의 제단 The Altar at Midnight; 1952년>(단편) / C. M. Kornbluth
<불새 Hi no Tori(Phoenix), 1956~1989년>의“부활”편 (만화)
▶ <적색경보 Red Alert; 1958년> / Peter George
▶ <누구? Who?; 1958년> / Algis Budrys
<고양이 요람 Cat's Cradle; 1963년> / Kurt Vonnegut
▶ <달의 정원 Garden on the Moon; 1965년> / Pierre Boulle
▶ <느린 조각상 Slow Sculpture; 1970년>(단편) / Theodore Sturgeon
▶ <강철악어 The Steel Crocodile; 1970년> / D. G. Compton
▶ <그라운드 제로 맨 Ground Zero Man; 1971년> / Bob Shaw
▶ <창세기 기계 The Genesis Machine; 1978년> / James P. Hogan
<플라이 The Fly; 1958년, 1986년> / 극장용 영화
<다윈의 라디오 Darwin's Radio; 1999년> / Greg Bear
<더미; 2010년> / 김지훈
1) 이 소설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에 의해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또는 어떻게 해서 나는 걱정을 멈추고 원자폭탄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는가 Dr. Strangelove: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 1963년>라는 제목의 영화로 제작된 바 있다.

2) 프리먼 다이슨 지음, 김희봉 옮김, 프리먼 다이슨: 20세기를 말하다(Disturbing The Universe), 사이언스북스, 2009년, 17쪽

3) 아리스토파네스의 동시대 철학자인 소크라테스를 사악한 과학자로 그려낸 희곡으로,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하늘의 기상을 조절하는 기괴한 장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대중을 기만하는 인물로 나온다.

4) 라퓨타 편의 라가도(Lagado) 아카데미는 무분별하고 광적인 실험광들의 어리석음을 비꼬기 위해 도입되었다.

5) 이 단편은 1998년 민음사에서 펴낸 <나사니엘 호손 단편선>에 수록되었다.

6) SF평론가 존 클루트에 따르면, 이 장편은 과학적 창조성의 과정을 광기의 한 유형으로 상세한 분석한 예다.

7) 이 단편은 2010년 오멜라스에서 펴낸 <에스에프 명예의 전당>에 수록되었다.

고장원 | sfko@naver.com

저작권자 2012.12.2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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