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23일 일요일

환자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나폴레옹

환자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나폴레옹

'자파의 페스트 환자를 방문한 나폴레옹'

 
명화 산책 정치인이나 유명 인사들의 연례행사 중 하나가 고아원, 양로원, 병원 등 사회에서 소외 받는 계층을 찾아가 위로하는 일이다. 유명인들이 연말연시에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불구하고 소외계층을 자주 방문하는 이유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일부 유명인들은 자신의 부와 재능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대중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서 소외받는 곳을 방문하기도 한다.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환자를 방문한 정치인을 그린 작품이 그로(Antoine-Jean Baron de Gros, 1771~1835)의 [자파의 페스트 환자를 방문한 나폴레옹]이다.

나폴레옹 군대는 이집트 원정 초반 시리아 지방을 점령하기 위해 시나이 반도를 건너가면서 자파라는 도시를 공격해 점령한다. 하지만 자파에서 페스트 전염병 때문에 프랑스 군인들이 쓰러지게 된다. 프랑스군 지휘자들은 페스트 환자들을 수용하고자 모스크 사원을 개조해 병원으로 사용했다.
▲ <자파의 페스트 환자를 방문한 나폴레옹>-1804년. 캔버스에 유채, 532*720,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화면 중앙 나폴레옹이 팔을 뻗어 환자의 몸을 만지고 있고 옆에 군인이 나폴레옹의 팔을 잡고 있다. 나폴레옹 뒤에 있는 참모는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가리고 서 있다. 바닥에는 병사들이 쓰러져 있다.

나폴레옹이 환자의 몸을 만지고 있는 것은 병사를 걱정하는 지도자라는 것을 나타내며, 그의 팔을 잡고 있는 군인은 의사로서 페스트에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해 제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부관이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막고 있는 것은 전염병이 옮을까 두려워하는 것을 나타내며 나폴레옹의 행동과 대비되면서 영웅의 이미지를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장군에 등장에도 불구하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병사는 비참한 현실을 나타내며 왼쪽 턱을 고인 채 앉아 있는 환자는 절망을 의미한다. 배경의 돔 형태의 건물은 모스크 사원을 나타낸다.

그로의 이 작품은 실제의 상황을 그린 것이 아니다. 나폴레옹은 자파의 병원을 방문해 페스트 환자의 몸을 만지거나 위로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나폴레옹은 군부대에 페스트가 돌자 시리아 원정을 중단하고 이집트로 후퇴하면서 환자들을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로는 나폴레옹이 자파의 병원을 직접 방문하지는 않았지만 환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하는 나폴레옹을 위해 이 작품을 제작했다. 그는 나폴레옹의 영웅적 이미지를 나타내기 위해 예수 그리스처럼 표현한 것이다.

나폴레옹이 환자의 몸에 손을 대고 있는 행동은 인간미를 마타내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병 환자의 몸에 손을 댄 기적을 암시한다. 즉 나폴레옹은 평범한 지도자가 아니라 인간을 위해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그로가 이 작품에서 나폴레옹의 영웅적 이미지를 잘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종군 화가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당시 화가들은 나폴레옹의 영웅적인 행동을 찬미해야만 했다. 그로는 이 작품으로 1804년 살롱에 데뷔했으며 중군 화가로 공로를 인정받아 나폴렝옹에게 남작의 작위를 받는다. 하지만 그로는 나폴레옹에게 인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작품에 대한 불만과 스승 다비드와의 갈등으로 센 강에 투신한다.

그로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불만이 컸지만 오늘날 그는 고전주의 전통적인 기법을 존중하면서도 명암이 뚜렷한 회화적 효과를 추구해 낭만주의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박희숙 서양화가, 미술칼럼니스트

저작권자 2012.12.2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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