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16일 일요일

미치광이 과학자의 다양한 유형들

미치광이 과학자의 다양한 유형들

SF관광가이드: 미치광이 과학자 (2)

 
SF 관광가이드 미치광이 과학자 유형 가운데에는 단독으로 엽기적인 행각을 벌이는 대신 부조리하고 사악한 체제질서에 철저히 봉사하고 기생하는, 한 마디로 권모술수에 영합하는 타입도 있다.

조나단 스위프트(Jonathan Swift)의 <걸리버 여행기 Gulliver's Travels; 1726년> 3부 '라퓨타' 편에 등장하는 과학자들은 표면상으로는 순수학문에만 몰두하는 척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시류에 영합하고 체제에 봉사하기 위해 곡학아세(曲學阿世)를 주저하지 않는다. 과학자들에 대한 이 같은 우스꽝스러운 풍자는 영국 조폐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아일랜드에서 유통되는 영국 동전의 동 함유량 기준미달을 합리화한 아이작 뉴튼을 꼬집은 것이라 한다.

20세기 들어서는 프리츠 랑(Fritz Lang) 감독의 독일 표현주의 영화 <메트로폴리스 Metropolis; 1927년>에 나오는 괴짜 발명가 로트왕(Rotwang)이 바로 이러한 기준에 부합한다. 로트왕은 지하세계의 노동자들이 마리아라는 여성을 중심으로 대동단결하는 사태를 막으라는 지상세계 지도자의 지시에 따라 여성형 안드로이드의 모습을 마리아로 만들어 노동운동의 혼란을 획책한다. 이 영화는 권력자의 의지에 영합하여 자신의 재능을 소모하는 부도덕한 과학자상을 인상적으로 보여주었다.
▲ 영화 <메트로폴리스>에 나오는 괴짜 발명가 로트왕(Rotwang)은 사악한 체제에 기생하는, 권모술수형 과학자 상의 고전적인 전형이 되었다. ⓒUFA

과학소설과 SF 콘텐츠에서, 미치광이 과학자는 진짜로 머리가 돌아버렸든, 아니면 괴짜이든 그도 아니면 덤벙대며 실수만 연발하건 간에 자신의 구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일반 과학자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준의 기술과 발명을 해낸다. 대개 미치광이 과학자들은 스스로가 하느님 노릇을 대체하려는 얼토당토않은 과욕을 부리다가 자멸한다.

에드먼드 해밀튼(Edmond Hamilton)의 <페센덴의 세계 Fessenden's Worlds; 1937년>가 전형적인 예다. 여기서는 작은 연구실 창고에다 미니 은하계를 만들어낸 과학자 페센덴이 등장한다. 그는 천체망원경으로 인공 은하계 안을 들여다보며 항성들과 행성들에 외부조작을 가해 거기 사는 지적 생명체들을 괴롭히다가 끝내 파멸을 맞이한다.
▲ 영화 <사이클롭스 박사 Dr. Cyclops; 1940년>에서는 방사선으로 동물을 축소시키는 장치를 개발한 한 과학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이들을 핍박하다가 끝내 죽음을 당하고 만다. 악당 과학자는 패배하고만다는 공식에 충실한 작품. ⓒParamount Pictures

이보다 몇 년 후 개봉된 할리웃 영화 <사이클롭스 박사 Dr. Cyclops; 1940년>에서는 역청우라늄석에서 뽑아낸 방사선으로 동물을 아주 작게 축소시키는 장치를 개발한 알렉산더 토켈 박사(Dr. Alexander Thorkel)가 페센덴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발명품으로 악행을 저지르다 죽음을 당한다. 이외에도 <악마의 하이웨이 The Devil's Highway; 1932년>의 먼스커 박사(Dr. Munsker) 같은 과학자 출신 수퍼 악당들이 1930~1940년대 할리우드 영화들에 꾸준히 얼굴을 비추었다.

그렇다고 제정신이 아닌 과학자들이라 해서 죄다 악당은 아니다. 어떤 인물들은 애니메이션 <덱스터의 실험실 Dexter's Laboratory; 1996~2003년>의 덱스터와 <백 투 더 퓨처 Back to the Future; 1985년>의 브라운 박사("Doc" Brown)처럼 주인공이거나 적어도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로 나오기도 한다. 심지어 씨어도어 스터전(Theodore Sturgeon)의 단편소설 <소우주의 신 Microcosmic God; 1941년>에 등장하는 과학자는 전통적인 선악의 기준으로는 판단이 모호한 캐릭터라는 점에서 이채를 띤다.

키더라는 이름의 이 재간꾼은 자기 머리로는 더 이상 혁신적인 발명을 생각해내기 어려워지자 유전자공학을 이용해 인간보다 성장이 20배 빠르고 수명도 1/20인 미니 인간들을 실험실에서 배양한다. 이 미니인간들은 인류문명의 발달 속도보다 수십 배 빨리 발전을 거듭하여 이내 놀라운 고도문명을 이룬다. 덕분에 실험실 밖의 과학자는 미니 인간들이 만들어낸 발명들 중 일부를 바깥세상에 맞게 실용화하여 떼돈을 번다.
▲ 미국 작가 씨어도어 스터전의 단편소설 <소우주의 신>에 등장하는 괴짜 과학자는 전통적인 선악의 기준으로는 판단이 모호한 캐릭터라는 점에서 이채를 띤다. ⓒMacfadden Books

이토록 지적인 미니 인간들을 고속 진화시키는 과정에서 키더는 비인간적이다 못해 인간의 탈을 쓰고는 할 수 없는 잔혹한 만행을 거침없이 저지른다. 예를 들면 미니인간들의 지적 능력을 끌어올린다는 취지 아래 급격한 환경변화, 그것도 혹독한 변화를 그들의 거주환경에 일으킨다. 유독한 기체를 대기에 섞거나 기온을 급강하시키고 또는 허리케인이 거주지를 강타하게 하기도 한다. 설상가상으로 각종 전염병까지 돌게 한다.

이는 그들이 떼죽음 당하는 과정에서 살아남으려 만들어낸 백신을 바깥세상에다 팔아먹기 위해서다. 그 결과 미니인류들은 툭하면 총원의 반절 이상이 죽어나간다. 키더는 새로운 발명품이 필요할 때마다 실험실 세계의 거주조건을 극단적으로 바꿔 그들의 머리 속에서 아이디어를 얻어내려 한다.

반면 키더는 자신이 머무는 섬에 이주해온 외부인들이 자신을 배후 조종하는 탐욕스런 기업가의 음모에 희생되지 않도록 살신성인하는 면모도 보인다. 미니인간들에게서 원하는 정보와 노하우를 얻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그가 자신이 속한 세계의 보통 사람들을 위해서는 인류애의 전도사마냥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1)어쨌거나 <소우주의 신>에 등장하는 과학자는 <페센덴의 세계>처럼 마냥 이기적인 미치광이가 아니라 <우주의 종달새 호 The Skylark of Space; 1946~1966년>의 주인공 시튼과 일정한 공통분모를 지닌다, 물론 시튼처럼 일관되게 착한 인물은 아니지만.

의도가 사악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미치광이 과학자들의 한 가지 분명한 공통점은 자신들이 관심을 지닌 분야의 연구에 정진을 거듭하여 통상기준을 훌쩍 뛰어넘는 괴상한 발명품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미치광이 과학자들은 좀비 군단을 만드는 등 과학의 경계를 넘어서는 짓을 서슴지 않는데, 그 동기는 심심풀이에서부터 여성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집을 청소하기 위해 나아가서는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서 등 다양하다. 미치광이 과학자들에게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특징 내지 습성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 자신의 연구성과나 발명품이 사회에 미칠 파장이나 윤리적 측면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 H. G. 웰즈의 <모로박사의 섬 The Island of Dr. Moreau; 1896년> 및 영화 <플라이 The Fly; 1958년, 1986년>에서 보듯이, 자연을 우습게 갖고 놀면서 마치 자신이 하느님인양 군다.
▲ 영화 <젊은 프랑켄슈타인 Young Frankenstein; 1974년>에서처럼 광기에 사로잡힌 과학자는 실험 중 클라이맥스에 이르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말을 연신 지껄이다 기괴한 웃음을 터뜨리곤 한다. 이처럼 영화에서는 소설에서 다듬지 못한 미치광이 과학자 상에 대한 나름의 표현양식을 개발해냈다. ⓒGruskoff/Venture Films

- 간혹 넋이 나간 사람처럼 행동하다가 돌연 미친 듯이 웃어제낀다. 영화 <젊은 프랑켄슈타인 Young Frankenstein; 1974년>2)에서 진 와일더(Gene Wilder)가 연기한 젊은 프랑켄슈타인 박사처럼, 실험 중 클라이맥스에 도달하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말을 연신 지껄인다.

- 통상적인 대인관계를 거의 맺지 못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주류 사회에서 밀려난 은자일 수도 있다. 이러한 소외는 복수심으로 돌변하여 언제고 대단한 발명을 통해 정통파 과학자들의 콧대를 눌러버리겠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 <투명인간>에서 보듯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보통 사람들은 멍청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긴다.

- 출생시 또는 과거에 일어난 사건으로 말미암아 신체적 결함이 있다.

- 영어권 작품에서는 미치광이 과학자들이 독일이나 동유럽의 액센트로 발음한다.3)

- 조수가 있을 경우 인격적으로 모욕적인 대접을 하며 온갖 궂은 일을 시킨다. 예를 들어 실험에 쓸 시체를 훔쳐오거나 살아 있는 사람을 유괴해오는 것은 조수의 임무이다.
1) 이 얼마나 앞뒤 맞지 않는 도덕률인가. 마치 흑인 노예들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상류 백인사회를 유지하려던 근대미국사회와 근본적으로 무엇이 다른가? 작가가 만일 이 단편에서 인간 못지않은 지력을 가진 존재들이라면 이들을 인간으로 대우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하는 식의 문제의식으로 파고들었다면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을 것이다, 올라프 스태플든의 <시리우스>처럼.

2) 멜 브룩스(Mel Brooks)가 연출한 코미디 영화

3) 이러한 선입견은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서 앨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처럼 나찌의 탄압을 피해서 제 발로 미국에 오거나 베르너 폰 브라운(Wernher von Braun)처럼 나찌에 협력했다가 패전 후 포로로서 미국에 끌려온 독일과 동유럽 과학자들이 많은 현상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외에도 19세기말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처럼 동유럽에서 이민 온 과학자들과 블라디미르 즈워리킨(Vladimir Zworykin)처럼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혼란을 피해 건너온 러시아 과학자들처럼 20세기 전후의 미국에는 외국계 과학자들의 이주가 러시를 이루었다.

고장원 SF칼럼니스트 | sfko@naver.com

저작권자 2012.12.1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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