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18일 화요일

인터넷, ‘창살 없는 감옥'인가?

인터넷, ‘창살 없는 감옥'인가?

모두가 檢事, 모두가 혐의자인 사회

 
경찰국가(police state)란 17~18세기의 유럽 절대전제군주국가를 지칭하는 말이다.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면에서 국가 권력이 전제적(專制的)으로 행사된다. 당연히 자유와 권리는 법적 보장을 받을 수 없으며 감시 속에서 살아야 한다.

20세기 정보혁명의 산물인 인터넷이 이처럼 우리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을 감시하고 가장 중요한 프라이버시라는 개인의 사생활까지 침해한다면 우리는 참다운 자유민주주의국가에 산다고 할 수 있을까? 경찰의 감시 대신 인터넷이라는 ‘창살 없는 감옥’에 감금당해 있는 것이 아닐까?

정보기관의 최고수장도 인터넷에 노출
지난 11월 전쟁영웅에서 졸지에 ‘불륜남’으로 낙인 찍혀 미국중앙정부(CIA) 국장직에서 사임한 데이비드 퍼트레이스(David Petraeus) 스캔들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우리에게 뭔가 찜찜하고 개운치 못한 뒷맛을 남긴다.

적어도 공직자에게만큼은 강도 높은 도덕과 윤리를 강요하는 미국사회에서 불륜이라는 죄의 대가는 결코 만만할 수는 없다. ‘부적절한 관계’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섹스스캔들로 공직에서 도중 하차하는 선례는 수 없이 많다. 심지어 국가의 최고 권력자까지도 말이다.

퍼트레이스의 사임이 꺼림직한 여운을 남기는 것은 그가 문무를 겸비한 이라크 전쟁의 영웅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물론 이라크 전쟁 당시 공수부대 지휘를 맡아 이라크를 함락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뿐만이 아니다. 중부군 사령관으로 이라크 치안상황을 개선시키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지주민들과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민심을 얻어 주민들부터도 영웅이라는 칭호를 얻을 정도였다. 뛰어난 군사전략가이자 스타 군인으로 평가 받았으며 언론 대응에도 능숙해 대선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도 높았다.

이메일 流彈에 맞으면 누구나 맥 없이 쓰러져
문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어떻게 해서 비밀과 보안을 가장 중요시하는 CIA 수장의 개인적인 정보가 그렇게 쉽게 인터넷에 노출될 수 있었는가 하는 문제다. 다른 하나는 그가 겪은 시련처럼 인터넷의 가십(gossip) 하나가 우리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대단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다.

퍼트레이스 스캔들이 시시콜콜한 개인적인 사건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하찮은 사건도 때에 따라서 언젠가는 커다란 괴물로 변해 우리를 공격할 수도 있다는 우려다. 현대문명의 이기(利器)라는 인터넷 등에 올라타고 우리에게 돌진해 올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퍼트레이어스는 급조폭발물, 알카에다, 그 외 여러 가지 정치적 돌발변수 속에서 굴하지 않고 강직하고 용감한 최고의 지휘관이었다. 그러나 이번 스캔들은 이러한 세계 최강의 전사도 이메일이라는 유탄(流彈)에 맞으면 맥 없이 쓰러진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우리는 과연 인터넷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무리 성인군자라도 비밀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아무리 철옹성에 감추어둔 비밀이라 해도 인터넷 앞에서는 힘 없이 무너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누군가에 이메일을 보내고 나서 후회해 본적이 있다. 그게 자신의 사생활에 관한 것도 될 수 있고 남을 비방하는 내용도 될 수 있다. 굳이 그러한 내용을 보낼 필요가 없는데 괜히 보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그 당시 후회로만 끝나지 않는다 점이다.

SMS에 올린 글 40년 후 부메랑이 되어 날아와
특히 10대들은 아무런 내용의 글이나 동영상을 소셜미디어 사이트(SMS)에 올리는 버릇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읽거나 본다. 그러나 그들은 10년 후 20년 후, 아니 30년 후나 40년 후 그것이 다시 부메랑이 되어 자신들을 괴롭힐 것이라는 생각을 결코 하지 않는다. 누구나 가차 없이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할 수 있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누구나 어떤 사람에게든 망신을 줄 수 있다. 그리고 그 오점은 세계 곳곳 어디에든 간에 수 세대에 걸쳐 남는다. 아니 영원히 남을 수 있을 수도 있다.

이제 디지털 미디어가 제리 샌더스키(Jerry Sandusky)나 지미 새빌(Jimmy Saville 1926~2011)과 같은 저질스러운 범죄자들을 노출시켜 체포하거나 끄집어낼 수 있고, 또 망신을 줄 수 있다는 인식은 별 우리에게 위안이 되지 않는다.
▲ 사람들은 이미 인터넷이라는 깊은 늪에 빠져 있다. 그곳을 빠져나오기가 점점 어려운 상황이 되고 있다. ⓒmorguefile free photo
샌더스키는 미국의 전 펜실베이니아 대학 미식 축구팀 코치로 10대 아동 10명을 1996년부터 15년 간이나 성폭행했다. 지난 10월 법원은 올해 68세인 그에게 징역 30년에서 최고 60년을 구형했다. 사실상 종신형으로 미국판 도가니 사건이다.

지미 새빌(1926∼2011년)은 40여 년 동안 영국 공영방송 BBC의 간판 진행자였다. 그는 자선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서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다. 유쾌하면서도 다소 괴짜스러운 이미지와 유머감각으로 정평 났던 그는 국민MC였다. 그러나 그가 사망한 후 방송 중에 10대 여학생을 더듬는 영상이 36년 만에 공개돼 영국을 충격 속으로 몰아 넣었다.

스캔들에는 법의 기능 작동하지 않아
문제가 터졌을 때 심판을 하는 것은 법이다. 이러한 사법제도에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있다. 죄질에 따라 처벌수위를 조절한다. 그리고 무고한 사람들을 보호한다. 그러나 오늘날 스캔들에는 법의 그러한 기능은 전혀 먹혀 들어가지 않는다. 유죄냐, 무죄냐의 구별은 없다. 행운과 불행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최근 소아성애(pedophilia, 어린 아이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는 성적 도착증의 일종) 스캔들이 영국을 강타했다. 은퇴한 보수당 회계담당자 매컬핀경은 아동학대혐의로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잃었다. 소문은 허위로 밝혀졌지만 트위터라는 쓰나미가 휩쓸고 간 뒤의 이야기다.

그는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이탈리아 남부에서 정원을 가꾸며 행복하게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 주변 세상이 무너져 버렸다”고 참담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트위터 이용자 1만 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실추된 명예를 되찾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인터넷 속에서 우리 모두는 혐의자를 기소하는 검사(檢事)다. 우리 모두가 검사가 기소하는 혐의자다. 이러한 경찰국가에서 우리고 살고 있다. 가장 현대적인 기술이 우리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며 우리를 악담(惡談)으로 가득 찬 원시시대로 되돌려 놓고 있다.

생존규칙 제 1호, 가십에서 쾌감을 느끼지 말라
우리는 또한 경찰국가의 가족연좌제(緣坐制) 시대로 돌아갔다. 언론은 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당사자 가족들의 뒤를 캔다. 아마 앞으로 미래세대는 집안의 불운을 저주하며 계속 안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개방된 지금의 사회는 발전된 디지털 기술로 인해 증폭된 루머와 풍자로 서서히 자멸의 길을 걷는 것처럼 보인다. 아직까지는 독재적인 지도자까지 스캔들로 파멸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가까운 장래에 그럴듯한 루머와 풍자가 만들어낸 스캔들로 우리의 정치도 위협받을 것으로 보인다.

트위터 이용자는 대체로 정보원의 확인에 신경 쓰지 않는다. 인터넷 사회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생존규칙 1호는 적어도 가십이 주는 쾌감에 멀리할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가십은 결코 개인적인 오락이 아니다. 거기에는 실제로 피해자가 존재한다. 우리의 생존이 위태로워진 상황에서 적어도 이 규칙만은 지켜야만 한다.

당신이 나를 혐의자로 몰아 구속하는 검사가 되고, 나 또한 당신을 혐의자로 몰아 구속하는 검사가 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면 20세기가 낳은 최고 과학적 선물인 인터넷은 그야말로 우리의 생존권을 빼앗는 저주로 변할지도 모른다.


김형근 객원기자 | hgkim54@naver.com

저작권자 2012.12.1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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