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속 과학자와 실제 과학자 간의 괴리
SF관광가이드: 미치광이과학자(3)
SF 관광가이드 대개 미치광이 과학자들은 주류 매체(영화, 텔레비전, 소설)에서 허구의 캐릭터로 처음 등장할 때부터 일반 대중 앞에 새로 개발되었거나 개발 중인 과학개념을 소개하는 역할을 맡았다.
예컨대 펄프잡지 시대에 미치광이 과학자들은 달이나 화성 또는 다른 행성을 탐사하기 위해 로켓 우주선을 제작하는 데 열을 올렸다. 2차 대전 무렵 방사능의 존재 및 그 수수께끼 같은 효과가 세간에 널리 알려지자, 이에 발맞추어 허구의 미치광이 과학자들은 원자탄과 방사능으로 구동되는 기계 및 괴물들을 만들어냈다(앞서 언급한 <사이클롭스 박사> 참조). 이제 21세기에 새로이 출현한 미치광이 과학자들은 현재의 유행을 의식하여 나노테크놀로지와 유전공학 같은 쪽으로 진출하고 있다.
2005년 영국에서는 1930년대부터 1980년대 사이에 배급된 공포영화 1천 편을 조사한 바 있다.1) 이 조사에 따르면, 그 영화들 중에서 미치광이 과학자나 그들의 피조물이 설치고 돌아다니는 작품이 무려 30%를 차지한다. 반면 과학자가 (긍정적인 이미지의) 주인공인 작품들은 겨우 11%에 불과했다. 이러한 조사결과는 대중문화 속에서 즐겨 다루는 과학자의 전형성이 어떤 것인가를 알려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이후 과학소설 작가들은 과학자를 과학기술문명의 폐해를 가져온 장본인으로 단순화하는 시각에서 벗어난 작품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과학기술이 위험천만한 길로 나아가는 까닭은 과학자들 탓이 아니라 이를 악용하는 정치가들과 사리분별을 못하는 일반대중의 무능 때문이라고 반박한다.
예컨대 펄프잡지 시대에 미치광이 과학자들은 달이나 화성 또는 다른 행성을 탐사하기 위해 로켓 우주선을 제작하는 데 열을 올렸다. 2차 대전 무렵 방사능의 존재 및 그 수수께끼 같은 효과가 세간에 널리 알려지자, 이에 발맞추어 허구의 미치광이 과학자들은 원자탄과 방사능으로 구동되는 기계 및 괴물들을 만들어냈다(앞서 언급한 <사이클롭스 박사> 참조). 이제 21세기에 새로이 출현한 미치광이 과학자들은 현재의 유행을 의식하여 나노테크놀로지와 유전공학 같은 쪽으로 진출하고 있다.
2005년 영국에서는 1930년대부터 1980년대 사이에 배급된 공포영화 1천 편을 조사한 바 있다.1) 이 조사에 따르면, 그 영화들 중에서 미치광이 과학자나 그들의 피조물이 설치고 돌아다니는 작품이 무려 30%를 차지한다. 반면 과학자가 (긍정적인 이미지의) 주인공인 작품들은 겨우 11%에 불과했다. 이러한 조사결과는 대중문화 속에서 즐겨 다루는 과학자의 전형성이 어떤 것인가를 알려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이후 과학소설 작가들은 과학자를 과학기술문명의 폐해를 가져온 장본인으로 단순화하는 시각에서 벗어난 작품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과학기술이 위험천만한 길로 나아가는 까닭은 과학자들 탓이 아니라 이를 악용하는 정치가들과 사리분별을 못하는 일반대중의 무능 때문이라고 반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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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소설에서 흔히 악당으로 묘사되는 이미지와 달리 현실의 과학자들은 원자폭탄 같은 엄청난 파급효과를 지닌 발명이 인류사회에 미칠 영향을 깊이 우려하였으며, 개발에 참여했던 과학자들조차 재사용에 회의적이었다. 위 사진은 아인슈타인과 논의 중인 원자폭탄의 아버지 오펜하이머. ⓒdefendscience |
단적인 예가 원자폭탄의 개발을 둘러싼 책임공방이다. 1948년 2월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J. 로벗 오펜하이머(Robert Oppenheimer)2)는 원자폭탄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투하로 “물리학자들은 죄를 알게 되었고 이를 잊어버릴 수 없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프리먼 J. 다이슨(Freeman J. Dyson)3)에 따르면 로스앨러모스에서 오펜하이머의 휘하에서 폭탄 개발에 머리를 맞댔던 과학자들 대다수는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세상을 피폐하게 만든 전쟁의 끝을 앞당기기 위해 그야말로 혁명적인 무기를 개발해냈건만 그 효과가 치명적이라 하여 갑자기 개발자들 모두를 유죄로 단정하고 오펜하이머 혼자서만 대중 앞에 나가 죄를 고백하며 흐느끼는 방식이 공정하지 않다고 본 탓이다.4)
대신 원폭 개발에 참여했던 주요 과학자들은 종전 후 핵의 위험성과 그에 따라 필연적으로 고려해야 할 안전한 통제방식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자 애썼다. 그들은 장차 미국 혼자서만 핵무기를 독식할 수 없으리라 보았고 그러한 독식이 온당하다고 보지도 않았다. 따라서 국제기구의 강력한 통제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훗날 오펜하이머가 원폭 제조 비밀을 소련에 유출했다는 스파이 혐의로 고발당해 미의회 청문회에서 곤욕을 치룬 사건은 세상을 좌우할 과학기술의 향방을 결정짓는 일이 결코 과학자들의 손에 달려 있지 않음을 여실히 확인시켜 주었다.
사실 원자 에너지는 폭탄이 아니라 마음먹기에 따라 원자력 발전소로 활용될 수도 있지 않은가. 쓰임새를 선택하는 결정권은 과학자가 아니라 오히려 정부와 국민에게 달려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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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임스 P. 호건의 과학소설 <창세기 기계; 1978년>는 가상의 3차세계대전이 임박한 가운데 군수산업 위주로만 과학기술 관련 투자가 이뤄지다 보니 본의 아니게 상황논리에 밀려 원자폭탄을 개발하게 된 어느 과학자의 부조리한 현실을 그린 장편이다. 이 작품은 2차세계대전 당시 로스앨라모스에 원폭 개발을 위해 차출되었던 과학자 집단의 사례에 대한 작가 나름의 재평가로 볼 수 있다. ⓒBaen Books |
제임스 P. 호건(James P. Hogan)의 과학소설 <창세기 기계 The Genesis Machine; 1978년>는 이처럼 부조리한 상황에 놓인 과학자의 곤경을 그린다. 북미유럽과 러시아가 연대한 북부권과 중국이 아프리카/아랍을 끌어들인 남부권으로 세상이 양분되어 3차 세계대전이 임박한 가운데 거의 모든 과학기술은 신경이 날카로워진 정부의 통제 아래 놓인다. 이제 정부의 관심사는 온통 과학 프로젝트들이 전쟁수행에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 뿐이다. 기초과학 연구자금 따위는 전쟁과 무관하면 한 푼도 지원받지 못하는 형국이다. 젊은 수학자 클리포드(Clifford)는 원래 의도와는 달리 상황논리에 떠밀려 어느덧 정부 투자를 받기 위해 폭탄 개발에 참여하는 신세가 된다.
밥 쇼(Bob Shaw)의 <그라운드 제로 맨 Ground Zero Man; 1971년>5)은 한술 더 뜬다. 루카스 허치맨(Lucas Hutchman)이란 무명 과학자가 자전하는 전자공명 현상을 통해 지구상의 모든 핵폭탄을 사실상 동시에 폭파시킬 수 있는 장비를 개발한다. 기술적 경제적 난관을 딛고 독자적으로 완성하느라 악전고투한 허치맨은 마침내 전 세계 정부들에 이 장비의 존재를 알림으로써 핵전쟁을 억제하고자 한다. 그러나 역탐지를 당한 그는 오히려 그 장비를 쓸 수 없게 되었을 뿐 아니라 종국에 가서는 핵무기를 제거하기는커녕 전자공명에도 영향 받지 않는 신형 핵폭탄들이 개발되는 계기를 제공해준 꼴이 된다.
앨지스 버드리스(Algis Budrys)의 <누구? Who?; 1958년> 또한 과학 측면에서의 이득과 군사보안 간의 갈등을 극명하게 묘사한다. 실제로 1950년대 이래 냉전의 여파로 미국 정부와 군부의 보안단속이 강화되면서 과학자들은 전례 없는 도덕적 딜레마에 놓였으며 과학소설들은 이러한 환경에서 군사적 응용 가능성이 있는 연구와 별개로 순수학문으로서의 과학을 발전시키는 일이 과학자에게 얼마나 버거운 과제인가를 다루었다.
프랑스 작가 삐에르 불(Pierre Boulle)의 <달의 정원 Garden on the Moon; 1965년> 또한 2차대전 막바지에 V2 로켓을 개발하는 와중에도 달로의 우주비행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독일 로켓 과학자들을 묘사한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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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의 <모렐의 발명; 1940년>은 이기적인 과학자의 사악한 욕망을 소재로 하여 일찍이 1940년에 벌써 전자미디어 시대의 기술적 복제가 지닌 허구와 우스꽝스러움을 꿰뚫어 보았다는 점에서 특기할만하다. 당시 우리나라가 식민지 치하에 있지 않았더라면 과학기술은 국가의 강고한 동력이 되었을 것이고 이를 사회문화 속에 반영한 과학소설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큰 성장을 했을 텐데 <모렐의 발명> 같은 작품을 고민할 겨를이 없었던 시대상황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민음사 |
국내에 소개된 영미권 이외의 작품 가운데에는 아르헨티나 작가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Adolfo Bioy Casares)의 <모렐의 발명 La invención de Morel; 1940년>이 인상적이다.6)
사람들의 생전 모습을 촬영하여 현실공간에 입체영상으로 재현하는 기술을 발명한 과학자의 이기적인 애정행각을 그린 이 장편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이 기술이 단지 영상을 홀로그램으로 재현하는 차원이 아니라 피사체의 소리와 촉각, 후각까지 실감하게 해준다는 설정이다.
이로 인해 누명을 쓰고 외딴 무인도로 도망친 주인공 화자는 이러한 내막을 몰라 실제로는 입체 영상일 뿐인 가짜 인간들을 피해 다니느라 애를 먹는다. 설상가상으로 주인공은 집시풍의 한 여인에게 홀딱 반해버린다. 결국 해당 기술의 작동원리를 깨우친 그는 자신의 짝사랑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신의 영상을 기록해서 여인의 주변에 배치한다. 이로써 남들이 보면 두 사람이 원래부터 함께한 연인이었던 것처럼 착각하게 조작된다.
주인공의 이러한 행위는 결국 이 장치를 발명한 과학자 모렐의 이기적인 욕망 충족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점에서 인간의 일방통행적 욕망의 배설과 과학기술의 퇴폐적인 만남을 시사한다. 모렐과 화자의 공통점은 둘 다 정작 여인의 마음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사실이다. 두 사람 모두 모렐이 발명한 장비를 악용하여 저마다의 욕망을 채우는 데만 골몰한다. 작가 카사레스는 일찍이 1940년에 벌써 전자미디어 시대의 기술적 복제가 지닌 허구와 우스꽝스러움을 이기적인 인간의 욕망에 빗대어 꿰뚫어 보았던 것일까?7)
| 1) Christopher Frayling, New Scientist, 24 September 2005. 2) 미국의 이론 물리학자. 2차 세계대전 말기 원자폭탄 개발의 핵심 지도자였으나 종전 후 수소폭탄 제조에 반대했고 한때 공산당에 동조했던 이력 탓에 정부의 비밀취급인가를 취소당하고 모든 자문위원회에서 해임되었다. 3) 영국 태생의 미국 물리학자이자 수학자. 1957~1961년 사이 핵추진 엔진으로 우주비행 하는 오리온 계획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우주에서의 핵무기 사용 금지 조약에 따라 이 계획은 중도 파기되었다. 4) 프리먼 다이슨 지음, 김희봉 옮김, 프리먼 다이슨: 20세기를 말하다(Disturbing The Universe), 사이언스북스, 2009년, 83쪽 5) 이 장편은 1985년 <평화유지기계 The Peace Machine>로 제목이 바뀌어 재간되었다. 6) 이 장편은 1941년 제1회 부에노스아이레스 문학상 수상작이다. 7) 21세기 과학소설 독자의 기준으로 보기에 <모렐의 발명>에 등장하는 과학적인 설정은 현실성을 떠나 아이디어 측면에서도 한참 구닥다리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작품이 아직 텔레비전이 미국에서 대중화되기도 전인 1940년에 남미의 27세 청년에 의해 발표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카사레스의 선구적이고 독창적인 안목에 뒤늦게나마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
저작권자 2012.12.18 ⓒ ScienceTim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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