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12일 수요일

조울증, 창의력과 관계 깊어

조울증, 창의력과 관계 깊어

우울과 행복 경계에서 창의력 나와

 
“There is no great genius without a mixture of madness.(광기가 없는 위대한 천재는 없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말이다.

르네상스시대의 천재 다빈치. 그는 미술뿐만 아니라 과학기술, 그리고 의학과 예술 등 다방면에서 뛰어난, 그야말로 하늘이 내려준 천재였다. 그는 자신이 바라는 인체해부도를 완성하기 위해 공동묘지를 자주 찾았다.
▲ 과학자들은 극도의 우울한 기분에서 극도의 행복한 기분으로 넘어가는 접점에서 창의성이 나온다고 지적한다. ⓒ위키피디아
그는 방금 묻은 시체가 좋았다. 젊은 나이에 죽은 시신(屍身)이면 더 좋았다. 그리고는 시체를 꺼내 짊어지고 집으로 와 해부작업을 시작했다.

다빈치에게 중요한 것은 윤리와 도덕이 아니었다. 인간의 신체가 과연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를 아는 일이었다. 부패한 시체냄새가 집안에 진동했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기색도 없이 이런 작업을 계속했다.

그는 알아주는 화가였다.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부탁도 많았다. 그러나 그는 그림을 그려 번 돈으로 창녀를 샀다. 그리고 몸의 생김새를 깊이 관찰했다. 그에게 여자는 성적 유희의 대상이 아니었다. 아주 정교한 해부도를 만드는 데 도움을 주는 상대였을 뿐이다.

창의성과 정신질환관계 연구결과 계속 나와
창의적이기 때문에 정신질환을 앓는가? 아니면 정신질환이 있기 때문에 창의적인가? 아마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닭이 먼저인가, 알이 먼저인가?”라는 물음으로 답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정신병에 시달리는 사람들 가운데 창의적인 사람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물론 정신병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 히스테리 증상이 있는 창의적인 사람을 정신병 범주에 넣을 것인가? 아니면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가득 찬 다빈치같이 폭발적인 광기(狂氣)가 있는 천재를 정신병 범주에 포함시킬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이견(異見)들이 많다.

창의성의 대가로 인정받고 있는 천재화가 빈센트 반 고흐를 비롯해 버지니아 울프 등 과거와 현재의 많은 천재들과 정신질환과의 연관성이 분명하다는 전문가들의 연구결과가 계속 연이어 나오고 있다.

그 가운데 최신 연구결과가 있다.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KI, Karolinska Institute)는 정신과 진료를 받은 경험이 있는 이들과 그들의 친척 120만 명을 대상으로 한 방대한 연구결과를 통해 정신질환자들 가운데 창의성이 풍부한 사람이 많다고 지적했다.

카롤린스카 의학연구소는 1810년에 설립된 스웨덴의 명문 의과대학 겸 연구기관으로 노벨상 가운데 생리학상은 KI 교수 50명으로 구성된 KI 노벨회의(Nobel Assembly)가 선정해서 수여할 정도로 권위 있는 기관이다.

조울증, 불안증, 자실시도 등 50% 많아
연구팀은 창의성이 특히 많이 필요한 예술가들과 과학자들의 집안에서는 우울증, 불안증세, 알코올 중독, 약물남용, 자폐증, 신경성 식욕부진, 자살 시도 등이 특히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특히 글을 쓰는 작가들 가운데 정신 질환자가 많았다. 이들은 일반인에 비해 자살 시도비율이 50%나 더 높게 나타났다. 또한 무용가, 사진가, 연구원 등 에술가와 전문직업인에서 정신질환자가 많았다.

연구팀은 “그러나 창의적인 전문 직업인이 정말 보통 사람보다 정신질환을 더 앓는지, 아니면 질환 때문에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독특해지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같은 연구결과는 정신질환을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에 대해 재검토하게 한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연구에 참여한 시몬 키야가는 “정신질환과 관련되는 현상을 알 수 있다면 이 질환을 치료하는 데 새로운 접근법을 취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에 대해 정신건강을 위한 민간단체 ‘마인드(Mind)’의 베스 머피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창의적인 분야에 더 끌리게 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낭만적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지능 높은 사람. 조울증 확률 4배 높아
천재와 정신질환과의 관계는 지난 5월 뉴욕의 월드사이언스 페스티벌에서도 제기됐다. 당시 케이 레드필드 제미슨 존스홉킨스 의과대학 심리학자는 스웨덴 연구팀의 연구결과를 인용했다. 16세 청소년 70만 명을 대상으로 지능 테스트를 한 결과 당시 뛰어난 지능을 가진 사람이 평범한 지능을 가진 사람보다 10년 뒤 조울증을 얻게 될 확률이 4배 높았다는 2010년도 연구결과다.

사실 옛날부터 천재는 광기를 지닌 정신이상자라는 이야기가 있어 왔다. 사람들 사이에서 떠돌던 이러한 이야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의 과학적 가설로 자리 잡았다. 천재가 갖고 있는 정신적인 특이한 바탕이나 근본, 다시 말해서 특질(特質)이 바로 천재가 갖고 있는 창의성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천재들은 주로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일반사람들보다도 예민하며 모순적인 행동을 많이 취한다. 바로 이러한 남과 다른 특질이 도리어 천재의 뛰어난 생산활동을 촉진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면 역사 속의 많은 창의적인 천재들은 정신질환을 앓았으며 정신질환은 창의성을 발휘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는 것일까. 단순히 천재들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광적일 정도의 집착, 집중과 같은 성격은 별도로 하고 적어도 신경과학이라는 과학적인 차원에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극단적인 우울과 극단적인 행복감의 경계에서 창의력 생겨
▲ 20세기를 풍미했던 미국의 유명 가수 로즈마리 클루니는 1977년 조울증으로 무대에서 쓰러졌다. 그 후 사람들은 이 증세에 대해 알기 시작했다. ⓒ위키피디아
과학자들은 천재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조울증에 초점을 맞추어 이 문제를 해부하려고 한다. 조울증은 기분 장애의 대표적인 질환 중 하나이다. 기분이 아주 들뜨는 조증(mania)이 나타나기도 하고, 다시 또 기분이 아주 가라앉는 우울증(depression)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양극성 장애(bipolar disorder)라고도 한다.

다시 말해서 아주 기분이 좋고 행복한 생각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도취될 때가 있는가 하면, 다시 반대로 우울한 기분, 불안, 초조함, 절망감과 무기력감을 번갈아 느끼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다. 그러나 그 정도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한 경우다.

과학자들은 바로 극도의 우울함과 극도의 즐거움 사이의 기분변화가 일어날 때를 주목했다. 조울증 환자의 기분이 우울한 상태에서 즐거운 상태로 전환될 때 뇌의 활동이 폭발적으로 활성화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심한 우울증이나 정신분열 상태에서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생기지 않는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무의식적인 정신상태에서 연상이 자유롭게 뇌 안에서 비행할 때, 정신활동의 한 부분으로 떠오를 수 있다.

즉, 생각이 조직화되기 전에 자유롭게 비조직적으로 움직일 수도 있다. 그런 과정은 조증, 우울증, 정신분열증 등의 상태에서 일어나는 상황과 아주 비슷하다. 정신분열증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뇌의 신경연결이 느슨해진 상태이다.

"창의력은 불안전한 정신상태"의 일부인가?
서던캘리포니아 대학 정신의학자 에린 삭스는 정신질환 환자들은 일반인과 다르게 자신의 생각을 걸러내지 않고, 보통 사람들이 생각할 필요가 없는 사소한 것들 또는 현상에 대해 생각하고 거기서 즐거움을 찾는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창의력은 가장 좋지 않은 정신 상태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창의력은 불안전한 정신이 잉태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창의적인 사람은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사람인가? 그리고 다른 눈으로 봐야 할 대상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창의적인 사람과 정신질환과의 등식은 항상 성립하는 것도 아니고, 그 확률도 그렇게 많지는 않기 때문이다.


김형근 객원기자 | hgkim54@naver.com

저작권자 2012.12.1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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