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에 사로잡힌 과학자상의 출현
미치광이 과학자(1)
SF 관광가이드
| ■ 미치광이 과학자 또는 사악한 과학자 Mad Scientist or Evil Edisonade ☞ 간단정의: 개인적인 야망이나 이익을 위해 정도(正道)에서 현격하게 벗어난 실험과 연구로 세상에 큰 문제를 일으키는 과학자들을 다룬 이야기. |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고전으로 남아 있는 <마징가 Z>의 악당 두목 헬 박사나 최근 실사영화 제작이 잠정 연기된 <로봇 태권 V> 1편에 나온 악당 카프 박사처럼, 세계 정복을 위해 밤잠을 못 이루는 미치광이 과학자 상은 일찌감치 과학소설에서 그 원형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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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치광이 과학자의 세속적인 전형은 만화와 애니메이션에서 툭하면 세계정복을 꿈꾸는 악당으로 고착화되었다. 위 캐릭터는 나가이 고의 히트만화 <마징가Z>에 나오는 헬박사. ⓒ永井 豪(Nagai Go) |
특히 20세기 이전에 씌어진 소설에서 그려진 과학자들은 강박증세에 사로잡혀 반사회적인 태도를 보이기 일쑤였고 이러한 사회부적응 증상은 종종 광기로까지 치달았다. 독일 작가 E.T.A. 호프만(Hoffmann)의 중편 <샌드맨 Sandman; 1816년>에 나오는 연금술사 코펠리우스(Coppelius)와 영국 작가 메리 쉘리(Mary Shelley)의 장편 <프랑켄슈타인 또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 1818년>의 주인공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이러한 유형의 초기 원형(原形)이다.
‘미치광이 과학자’라는 과학소설 하위 장르의 싹을 틔운 위의 두 작품은 과학자 내지 발명가를 은연중에 악마의 하수인 또는 사악한 광기에 홀린 사람으로 몰고 간다. 호프만의 코펠리우스는 단지 화학원소를 변형시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올림피아처럼 겉으로 보아서는 젊은 미녀와 전혀 구분되지 않는 자동인형을 만들어 세인을 미혹함으로서 신의 권위를 훼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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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세기 초 E. T. A. 호프만의 <샌드맨>에 등장하는 과학자 코펠리우스는 로봇을 만들어내는 발명가인 동시에 연금술사의 분위기를 풍긴다. 이는 과학과 마법이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여긴 당대 일반대중의 인식이 암암리에 밴 결과일까. ⓒLaboccetta & Bakst |
이처럼 과학자들을 중세 연금술사의 정신적 계승자로 보는 시각은 오노레 드 발자크(Honore de Balzac)의 단편 <현자의 돌 La recherche de l'absolu; 1834년>1) 에서도 반복해서 변주된다. 후자의 작품에서 주인공은 아름다운 아내를 둔 부호지만 화학에 매료된 나머지 ‘현자의 돌’을 구하겠다는 꿈에 젖어 광기 어린 여생을 보낸다. 과학자에게 연금술사의 아우라를 덧씌우려는 경향은 찰스 L. 하니스(Charles L. Harness)의 작품들에서 보듯 20세기 과학소설에서도 계속해서 발견된다.2)
한편 쉘리의 빅터 프랑켄슈타인(Victor Frankenstein) 박사는 당대 과학자들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신의 영역(죽은 이의 부활)에 감히 도전한다. 그러나 인간이 넘볼 수 없는 불가지(不可知)의 세계를 함부로 열어젖히려 한 대가로 빅터는 자신의 소중한 이들을 모두 잃는 쓰디쓴 대가를 치른다. 과학자가 자신의 탐구욕에 노예가 되어 소중한 이를 잃는다는 설정은 대서양 건너 미국 작가 나다니엘 호손(Nathanial Hawthorn)의 단편 <라파치니의 딸 Rappaccini's Daughter; 1844년>에서도 재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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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다니엘 호손의 <라파치니의 딸>에서는 편집증적인 과학자 아버지의 이기적인 실험에 딸이 희생된다. 어려서부터 서서히 독극물에 길들여져온 딸은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된 나머지 그가 준 해독제를 먹고 죽게 된다. 이미 온몸이 독인 그녀에게 해독제야말로 치명적인 독이 되어버린 까닭이었다. ⓒAndagora(deviantART 소속) |
설사 연금술과 연관짓지 않는다 해도 과학자를 온통 강박증에 짓눌린 괴짜로 묘사하는 시각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사이 현대적 과학소설로 볼 수 있는 작품들이 다수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았다. 심지어 줄 베르느와 H. G. 웰즈(Wells)조차 이러한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예컨대 베르느는 네모 선장과 로부(Robur)를, 웰즈는 모로(Moreau) 박사와 투명인간 그리핀(Griffin) 그리고 카보라이트(반중력 발생물질)를 발견한 카보(Cavor) 박사 같은 괴팍한 캐릭터들을 창조했다. 아울러 로벗 루이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의 지킬 박사(Dr. Jekyll)와 모리스 르나르(Maurice Renard)의 렌 박사(<렌 박사, 하느님 다음가는 존재 Le Docteur Lerne - Sous-Dieu; 1908년>에 등장) 그리고 아서 코난 도일의 챌린저 교수(professor Challenger; <잃어버린 세계 The Lost World; 1912년>와 <안개의 땅 The Land of Mist; 1926년>에 등장) 역시 큰 틀에서 보건대 별반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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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명인간>은 인간이 과학의 힘을 과연 현명하게 이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원자폭탄과 과학기술의 아슬아슬한 동반관계에 대한 불안한 시각과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H. G. Wells |
특히 스티븐슨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 Jekyll and Hyde; 1886년>와 웰즈의 <투명인간The Invisible Man; 1933년>은 과학자가 진보된 과학의 힘을 통해 오히려 인간 이하로 추락할 수 있다는 경고를 잊지 않는다. 두 작품 다 통제할 수 없는 권능을 거머쥔 과학자의 불행한 결말을 보여줌으로써 설사 무소불위의 능력을 지녔다고 과연 인간이 행복해질 수 있는지 반문한다.
지킬 박사는 무례하다 못해 사악하기 짝이 없는 하이드라는 전혀 다른 인격으로 변신하는 약을 개발했고 그리핀(Griffin)은 빛의 굴절계수를 조절하여 인체를 보이지 않게 만드는 약을 실험실에서 만들었다. 하지만 신약을 직접 자기 몸에 실험한 결과 지킬과 그리핀은 극심한 부작용으로 인간성 자체가 점차 파괴되어 이기적으로 변해간다. 발달된 과학기술이 인간을 이롭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내재되어 있던 인간의 양면성을 들춰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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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자의 질투와 복수는 더욱 무시무시하다. 프로포즈를 거절한 여인에게 이미 애인이 있음을 알게 된 과학자는 그 애인의 머리에서 뇌수를 들어내고 그 자리에 자신의 뇌를 집어 넣는다. 이기적인 사랑에 과학이 개입하면 그 결과는 한층 끔찍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 ⓒ手塚 治虫 |
데즈카 오사무의 대하 장편 만화 <불새 Hi no Tori(Phoenix), 1956~1989년>의 “부활” 편에도 과학자의 이기적인 욕망이 부른 비극적인 사랑이 같은 맥락에서 그려진다. 한 과학자가 사모하던 여인에게 프러포즈를 거절당한다. 그녀에게는 이미 사랑하는 다른 남자가 있기 때문이다. 질투심에 눈이 먼 과학자는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의 몸에서 뇌를 꺼내고 대신 자신의 뇌를 이식한다.3)
위의 작품들에서 과학자들이 실제로 반(半)미치광이냐 아니냐는 당대 작가들의 진정한 관심사가 아니었다. 일반대중에게 과학자는 과학문명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인물로 비춰졌다. 따라서 미치광이 과학자 캐릭터는 인간이 과연 과학문명의 과실을 제대로 맛볼 자질이 되어 있는지 묻기 위한 안내자 역할을 맡았을 따름이다. 과학만능주의의 노예가 되어 오히려 인간이 인간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이것이 바로 20세기 전후 문학작품에 미치광이 과학자들이 초대받은 까닭이었다.
| 1) 이 단편은 동서문화사에서 2012년 5월 간행한 <고리오영감/절대의 탐구>에 수록되었다. <현자의 돌>의 국내 번역판 제목은 <절대의 탐구>다. 2) John Clute & Peter Nicholls, The Encyclopedia of Science Fiction, Orbit, London, 1999, p. 1076 3) 데즈카 오사무, <불새>, "부활"편, 1966~1986년, 8권 101쪽. |
저작권자 2012.12.06 ⓒ ScienceTim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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