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29일 화요일

“학생들, 묵묵히 실력 쌓아나갔으면”

“학생들, 묵묵히 실력 쌓아나갔으면”

[릴레이 인터뷰] 박수경 카이스트 기계항공시스템학부 교수

 
중학교 때까지는 줄곧 전교 수석을 놓쳐본 적 없는 수재였다. 부모님, 친구들은 물론, 그녀 스스로도 공부가 가장 자신 있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17살이 되던 해, 그녀는 더 깊은 공부를 하기 위해 과학고에 진학했다.

그런데 세상은 달라졌다. 늘 1등만을 달리던 그녀가 최하위 석차를 기록하며 성적이 바닥을 헤매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웃으며 이야기했다. “당시 그런 경험이 없었으면 아마 지금 저는 굉장히 재수 없는 사람이 됐을 걸요?”

기계공학 왜 하냐고? 재미있으니까!

박수경 교수는 한때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유는 젊은 나이에 카이스트 기계과의 첫 여성 교수라는 타이틀을 달았기 때문이다. 남자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기계공학에서 여성이, 그것도 30대 중반이 안 된 나이에 교수 직함을 가져 학교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시선을 끌기 충분했다.
▲ 박수경 카이스트 기계항공시스템학부 교수 ⓒ황정은

그녀의 소식이 한창 이슈가 됐을 때, 박 교수는 그러한 시선이 매우 부담스러웠다고 했다. 기계과에서 여성의 활동이 이례적이라는 것은 알지만 연구 성과가 아닌, 여성이라는 이유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 그다지 편치 않았다는 것이다.

이번 인터뷰 역시 그러했다. “제가 좀 더 좋은 연구를 진행하고 인터뷰를 하면 안 될까요”라고 조심스레 묻는 박 교수를 반 강제로 설득하여 인터뷰를 진행했다. 박 교수는 공학도의 흔한 분위기인 딱딱한 말투와 달리 환하고 밝은 미소로 웃으며, 과학의 길로 접어든 자신의 삶을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마치 마음씨 좋은 선생님처럼.

생체모사 연구를 진행하는 박 교수의 지금을 이야기하려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어느 누구나 결정적 사건으로 인생의 1막과 2막이 나뉜다면, 박 교수는 고등학교 진학 전과 후로 나뉜다고 볼 수 있다. 그것도 아주 극명한 대비를 보이는 1막과 2막이다. 중학교 때는 온통 ‘수석’과 ‘최고’의 수식어를 얻었다면, 고등학교에 와서는 ‘바닥’과 ‘낙담’이 그녀를 수식했다.

“중학교까지 내내 공부를 잘 하는 아이였기 때문에 좀 더 깊은 공부를 하겠다는 큰 야심(?)으로 과학고에 갔다. 자신감이 매우 충만했던 것이다. (웃음) 하지만 이게 웬걸. 과학고에 들어가고 나서 수업을 듣는데 이런 세계가 있나 싶더라. 선생님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런데 더 힘든 건 질문을 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는 점이다. 주위 친구들은 모두 끄덕거리며 다 알아듣는 것 같으니까. 그 분위기에서 내가 손을 번쩍 들고 질문을 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성적은 2년 내내 바닥을 헤맸다. 못 알아듣는 수업의 한 가운데 있는 경험을 처음 해봤다. 그 이후로 난 정말 겸손해졌다.”

그녀의 과학고 생활 중 가장 힘들게 했던 과목은 바로 물리였다. 아예 개념 자체가 머릿속에서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컴컴한 물리의 터널 속에 있던 그녀에게 전교에서 물리를 가장 잘하는 친구가 구원의 손길을 뻗어왔다. “내가 물리 과외 해줄게”라는 그 한마디에 고등학생 박수경은 냉큼 그 친구의 손을 잡았다. 공부만 잘한다고 생각했던 친구는 설명도 기가 막히게 잘했다. 선생님보다 더 귀에 쏙쏙 박히는 설명으로 물리의 신세계를 열어주자, 박 교수는 그때부터 물리 울렁증을 극복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그 친구가 그때 나를 불쌍하게 봤던 것 같다. 그러니까 직접 과외를 해준다고 하지. (웃음) 친구 덕분에 물리의 개념이 잡힐 수 있었고 과학 네 과목 중 물리가 그나마 풀 수 있는 과목이 됐다. 그리고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다. 지금도 그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이 매우 크다. 당시 나의 ‘물리 과외 선생님’은 현재 아주대대학교 정보통신대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신현준 교수다. 그 친구는 내 교직생활의 롤 모델이자 은인이다.”

물리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하면서 역학을 전공하게 되고, 기계공학과로 진학해 지금의 위치까지 오게 됐다. 박 교수는 “한 번의 극복이 있은 뒤 물리를 더욱 좋아하게 됐다. 카이스트 1학년 때에도 친구들에게 물리과에 들어갈 거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 배워왔던 역학법칙에 대한 공부를 상당부분 기계과에서 한다는 것을 1학년 11월쯤 알게 되면서 당황했다. 기계과는 기계를 만드는 곳이라고 생각해 진학에 대해서 생각도 안했으니까. 하지만 지도교수였던 김양한 교수님께서 ‘여자가 기계과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은 선입견’이라고 말씀하시며 많은 도움을 주셨다. 그리고 실제로 이곳에 와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뭔지 알게 됐다.”

기계과 선택, 후회한 적 없어요

박수경 교수가 현재 진행하는 연구는 생체역학, 보행모사기술이다. 사람이 걸을 때 어떻게 균형을 맞추는지 분석해 보행보조기구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역학은 보통 기계공학에서 다루는 원리인데, 힘이 가해졌을 때 물체에 어떤 변형이 발생하는지, 왜 일어나는지 등에 대해 답을 주는 연구인 셈이다. 그동안은 구조물이나 자동차, 로봇 등에 이러한 지식이 적용됐다면, 근래에는 살아 있는 생물체에 적용을 시작, 근육이 작동되는 원리를 통해 기존 의학과 생리학 이해의 범위를 더욱 넓힐 수 있다.

“사람의 걸음은 매우 안정적으로 이뤄진다. 누가 옆에서 툭 밀어도 금세 균형을 잡지 않나. 우리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지만 로봇에게 두발 보행이 가능케 하려면 매우 복잡한 구조가 있어야만 한다. 그동안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의 두발 보행은 신경으로 제어가 되는 아닌, 역학적으로 가능하게 돼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 결과 생각보다 간단한 방정식으로 걷기를 규명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이것을 연구해 사람에게 어떤 이득이 있는지 풀어내고 있다.”

이러한 생체역학은 최근 로봇산업과 코워크(co-work)를 이루며 그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추세다. 계속해서 사람과 비슷한 로봇 제작이 시도되는 만큼, 인간 신체에 대한 연구가 깊이 이뤄지는 게 로봇 산업 발전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람에 대한 연구가 많아지는 현대과학에서 생체역학은 그 중요성이 매우 커지고 있다.

“보행연구를 하다보면 사람이 걸을 때 에너지 소비를 최소한에 걸쳐 사용하는 걸 알 수 있다. 이건 매우 놀라운 결과다. 두 발 보행을 고작 이 정도의 에너지만으로 가능하게 한다는 것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부분이다. 분석한 과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이 생존을 위해 이렇게 걷는다는 의견이 있다. 그래서 아마 웬만큼 움직여서 살이 잘 안 빠지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웃음)”

지금에야 생체역학이 로봇과 코워크를 이루며 발전하고 있지만, 사실 그녀는 로봇에 전혀 관심이 없던 공대 여학생이었다. “아무래도 로봇에 관심이 덜하다 보니 다른 동기 남자친구들에 비해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기계과에 진학한 남자아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로봇과 자동차광이 많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 분야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라.”

그녀는 기계공학을 접한 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자신의 전공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후회는커녕 매우 즐겁게 연구에 임하고 있다. 부족한 분야에 대한 벽도 많이 느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계분야는 매우 흥미롭다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대부분 기계를 전공한 사람들은 눈에 결과가 보이는 학문이라 재미있다고들 한다. 나 역시 그렇다. 움직이는 원리가 눈에 모두 보이니까 모든 게 명확하고 때론 속이 뻥 뚫리는 느낌까지 들 때도 있다.”

박 교수는 여성스러운 외모와 달리 워낙 솔직하고 털털한 성격 탓에 인터뷰 도중에도 “연구 따라가기 버거워 죽겠다”는 우스갯소리를 섞었지만 학생들의 이야기가 나오자 자못 진지한 눈빛으로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대학에 진학한 이후 고등학교 때 나를 과외해주던 친구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는 것을 알았다. 전혀 모르던 내용을 이해한다는 기분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우리 학생들에게 난 그 친구와 같은 역할이 되고 싶다. 어차피 똑똑한 학생들은 내가 가르치나 그렇지 않으나 스스로 잘 터득하고 발전한다. 하지만 많은 잠재력을 가졌음에도, 잠시의 고비로 오르막길에서 계속 주춤하는 학생들에게 내 역할은 경우에 따라 매우 결정적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학생들에게 좋은 동기를 부여하고 싶다. 나 역시 선생님에 의존하는 학생이었으니, 우리 학생들 중에도 그런 아이에게는 마음껏 기댈 수 있는 선생님이 되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그녀의 진실성이 전달된 것인지, 학생들 사이에서 박 교수의 인기는 그야말로 ‘짱’이다. 교내 강의 평가에서 1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으며 학교 특성상 다양한 인재들이 모였음에도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학생들의 마음을 얻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그렇다면 이토록 박 교수가 학생들과 허물없이 지낼 수 있는 비결은 뭘까. 의외로 박 교수는 학생들에게 ‘쓴 맛 좀 봐라’라고 말한다. 카이스트에는 대부분 청소년 시절 교내에서 날고 긴다는 아이들이 진학하는데, 한번 충격을 먹는 사건을 거쳐야 성숙할 수 있기 때문에 그녀는 “좀 아파보는 게 낫다”고 주저 없이 말한다.

“카이스트에 입학한 학생들을 보면 모두 좋은 실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타성에 젖어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경우가 가장 안타깝다. 나 역시 줄곧 1등을 놓치지 않다가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내가 최고라는 생각을 버릴 수 있었다. 굉장히 힘들었지만 많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였다. 특목고에 간다는 학생이 있으면, 난 주저 없이 ‘해보라’고 말한다. 가서 쓴맛 좀 보라는 의미다. 가치관이 형성되는 시기에 자신이 한번 무너지는 경험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그것을 극복하면 분명 더 성숙해진 자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박 교수는 이렇게 성장한 인격을 갖고, 학생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꾸준히 쌓아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어릴 때는 어른들이 ‘너희가 우리나라의 미래’라고 말하면 정말 먼 나라 이야기 같았다. 그런데 나이를 들어보니 그 말이 정말 맞다. 더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나이가 먹으면 언젠가 리더의 역할이 원하든 원치 않든 주어진다. 특출난 사람만이 리더가 되는 게 아니라는 거다. 그때, 그 역할을 잘 수행하려면 자신의 분야에서 꾸준히 전문성을 쌓아나가는 게 중요하다. 난, 지금의 모든 학생들이 그렇게 자신을 만들어나갔으면 좋겠다.”

10년 후에는 국내 과학계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는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박수경 교수. 인터뷰 내내 그녀는 겸손하면서도 유머러스했고, 고개를 숙이면서도 매우 당당했다. 앞으로 박 교수와 그녀의 제자들이 국내 과학계의 중요한 축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황정은 객원기자 | hjuun@naver.com

저작권자 2013.01.2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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