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28일 월요일

해리포터의 두루마리 컴퓨터, 이제 가능?

해리포터의 두루마리 컴퓨터, 이제 가능?

[인터뷰] UNIST 이상영 친환경에너지공학부 교수

 
영화 '해리포터'에 나오는 두루마리 신문을 기억할 것이다. 영화 속에서 언뜻 보고 난 후 우리의 신문과 별 다를 것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신문 안에서 인물은 움직였고 사건은 보여졌다. 지금으로 치자면 자유자재로 휘어지는, 플렉서블 디스플레이(flexible display)였던 셈.

이렇게 자유롭게 말리고 구부러지는 디스플레이 시장이 점점 가까워 오고 있는 가운데, 미래 시장을 한 발짝 앞당긴 기술이 등장해 관심을 끌고 있다. 울산과학기술대(UNIST) 친환경에너지공학부 이상영 교수팀이 자유롭게 휘어지는 리튬이차전지 제조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특히 이번 기술은 인쇄공정으로 원천기술을 개발한 것이어서 이목이 더욱 집중된다.

조청 같은 전해질을 잼처럼 ‘슥슥’

리튬이차전지는 충전과 방전을 반복함으로써 계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이차전지로, 우리가 보통 말하는 충전식 전지를 의미한다. 일회용 전지와 대응되는 개념으로, 리튬이온이 양극과 음극 사이를 이동하면서 전기화학 반응을 유도해 기존전지에 비해 높은 에너지 밀도와 수명이 긴 장점을 갖고 있어 모바일 기기 전원은 물론, 태블릿 PC와 노트북 등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 이상영 UNIST 친환경에너지공학부 교수 ⓒUNIST

하지만 고체상태로 일정 형태를 갖추고 있기 전지의 특성은 디스한 단말기를 만드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곤 했다. 최근에는 휴대용 모바일 기기의 디자인이 강조되면서 유연한 디자인의 디스플레이가 시도되고 있지만, 고체상태의 전지는 유연디스플레이의 걸림돌이었다. 이에 많은 과학자들이 유연한 리튬이차전지를 개발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 교수팀의 연구는 매우 주목을 받는다. 간단한 인쇄공정을 통해 형태 변형이 자유로운 고성능·고안전 플렉서블 리튬이차전지 원천기술을 개발한 것. 제약을 받고 있던 휴대 디지털 기기의 디자인 폭을 확대했을 뿐 아니라 전지 제조공정까지 단순화해 경제성까지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전지 연구자들에게 인쇄가능한(printable) 전지는 기존 전지의 디자인 제약을 극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궁극적인 해결책으로 인식돼 왔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보고가 없던 만큼, 본 연구는 기술 도약을 한 걸음 진일보시켰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리튬전지개발 과정에서 인쇄공정을 거친다는 것은 얼핏 들으면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전해질을 전극 위해 직접 도포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이해가 쉬워진다. 이상영 교수는 본 기술에 사용된 ‘인쇄공정’에 대해 “기존의 액체 전해질(액상 형태로 전지 케이스에 주액) 및 고분자 전해질(필름 형태로 전지에 적용)과 달리, 인쇄 가능한 전해질 페이스트(paste, 일종의 조청과 같은 상태)를 전극 위에 직접 도포한다. 리튬 이온의 이동이 가능한 나노 물질들을 조청과 같은 흐름 특성을 갖도록 제조한 후 이를 마치 빵에 잼을 바르듯이 전극 위에 인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청과 같은 상태’라는 것은 조청처럼 점성이 있는 흐름 특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점성이 전혀 없을 경우 인쇄가능한 전지를 제조하는 것은 불가능해 진다. 이 교수는 “현재 리튬이차전지에서 사용하는 액체 전해질은, 말 그대로 액체 상태이므로 만약 전극 위에 바를 경우 점성이 없기 때문에 어떠한 형태도 유지하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흘러내려버리고 만다. 이렇게 되면 전극 위에 직접 발라서 만드는 인쇄가능한 전지 제조가 불가능하게 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인쇄 가능한 수준의 점도 특성을 갖는 전해질 제조가 필수적으로 요구된 것이다. 때문에 이번 연구에서는 리튬이온 이동이 가능한 여러 화학 물질(유기 전해질, 나노 입자 및 모노머 (monomer) 등)들을 적절히 혼합해 점도 특성을 확보하는 게 중요했다”고 언급했다.

이렇게 도포된 물질은 30초 이내의 짧은 시간동안 자외선에 노출시켜야 한다. 이는 전해질 내에 있는 모노머(고분자를 만드는 바탕이 되는 간단한 분자)를 중합(polymerization) 시키기 위한 것으로 자외선 노출 공정을 거쳐야 조청상태의 전해질이 궁극적으로 충분한 강도를 갖는 필름 형태의 고체 전해질로 바뀌게 된다.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과정

그렇다면 기존 리튬전지는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었기에 이번 연구 결과가 더욱 중요시 되는 것일까. 이미 언급했듯 기존 전지는 두루마리 디스플레이 같은 유연성을 구현하기 힘들다는 제약도 있지만 안전성에 있어서도 문제가 지적돼 왔다.

“현재 상용화된 리튬이차전지는 필름 형태의 양극, 음극 및 분리막을 서로 포개어 도시락 같은 케이스에 삽입한 후 액체상태의 전해질을 주액해 제조된다. 그러나 이런 방법으로 제조된 전지는 그 형태가 이미 고정되어 있는 관계로 두루마리 디스플레이처럼 다양한 디자인 유연성을 요구하는 미래 전자기기에는 적용되기가 적합하지 않다. 전지 연구자들에게 있어 인쇄가능한(printable) 전지는 기존 전지의 디자인 제약을 극복할 수 있는 궁극적인 해결책으로 인식돼 왔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결과가 보고되지 못한 상황이었다. 전극 구성 요소들 중 양극 및 음극은 이미 인쇄(도포) 공정을 통해 제조하고 있으므로 큰 문제는 안 됐지만 인쇄가능한 전지에서 가장 큰 기술적 장애물은 액체 전해질 및 분리막 부분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번 기술은 해당 난점을 해결한 기술이며 전지 개발에 있어서도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기존 리튬이차전지의 가장 큰 문제점은 안전성으로, 기존 리튬전지는 분리막이 열에 반응해 녹아 양극과 음극이 접촉해 폭발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최근 언론을 통해 보도된 휴대기기 폭발사고도 이러한 리튬전지의 문제점에 기인한 것이었다.

“기존의 리튬이차전지는 높은 에너지 밀도와 인화성 높은 소재들이 다량 포함돼 있다. 이로 인해 전지 동작 중 양극과 음극이 서로 맞닿는 현상(내부 단락; internal short-circuits)이 발생하면 순간적으로 열이 급격하게 발생하고 리튬, 액체 전해질 및 분리막과 같은 전지 내부 소재들이 발화돼 폭발하게 된다. 이러한 전지 폭발 사고는 대형 전지가 적용되는 전기자동차 및 대용량 에너지저장장치 응용 분야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로 고려되고 있다.”

개발된 기술의 장점은 기존의 액체 전해질 및 고분자 전해질과 달리, 3차원 구조 전극 등 다양한 모양을 갖는 지지체 위에 별도의 용매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간단한 인쇄 공정을 도입, 상업적으로 연속 생산이 가능한 롤투롤(roll-to-roll) 공정 적용이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전지의 모든 구성요소들을 순차적으로 직접 바름으로써 인쇄가능한 전지 제조의 기술적 토대를 확보한 것이다.

“인쇄가능한 전해질을 제조해 전극위에 직접 바름으로써 프린터블(printable) 전지 제조가 가능해 짐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갖는 전지개발이 용이해졌다. 한 가지 예로,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에 직접 전지 구성 요소를 발라 전지를 제조할 수 있는 웨어러블 배터리(wearable batteries)를 개발할 수 있는 기반 기술이 확보됐다. 그 동안 전지 형태에 의해 제약받았던 미래 유비쿼터스 전자 기기들의 개발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처럼 이 교수팀은 다양한 난점을 극복한 연구결과를 낼 수 있었지만, 유연디스플레이 시장의 한계를 극복한 기술이 나오기까지 소요된 시간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 교수는 연구 당시를 회고하며 “처음에는 어디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매우 막막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인쇄가능한 전해질 개발에 대한 의욕은 앞섰지만 구체적으로 이를 어떻게 실현해야 할지 너무나 막막했다. 기존에 발표된 자료들도 거의 없었고 아이디어 구상부터 실험까지 모든 것을 우리 실험실에서 처음부터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대학원생들과 함께 실험하고 토론하면서도 결과가 보이지도 않는 일을 시킨다고 학생들이 오해할까봐 고민도 많았다. 하지만 학생들이 나를 믿고 끝까지 따라와 줬고, 그 때문에 이런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마이크로 패턴 구현을 위해 무척 고민하던 중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 준 공주대 조국영 교수 및 미국 일리노이 대학의 로저스(Rogers) 교수의 도움이 문제 극복에 큰 역할을 했다.”

이번 기술의 의의는 무엇보다 그동안의 난제였던 프린터블 전해질의 원천기술을 확보한 데 있다. 이에 따라 프린팅 공정에 기반한 고성능․고안전성 전지 상업화를 앞당길 수 있는 기술적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 이 교수는 본 연구결과를 통해 향후 전고체 전지와 리튬-에어 및 리튬-설퍼 전지 등 차세대 전지에 폭 넓게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이번 연구에 대해 이야기하며 UNIST에 오기 전 재직했던 LG화학 배터리연구소의 생활을 회고했다. 당시 동료들과 세라믹 코팅 분리막(SRS, Safety-Reinforcing Separators)이라는 전지 소재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을 때의 기분을 다시 느끼는 듯 하다고 말했다. “기존에 없던 제품을 개발한다는 것이 개발 당시는 매우 힘들지만 관련 산업에 영향이 끼치는 것을 몸으로 체험할 때 비로소 뿌듯함을 느낀다. 이제는 학교에 몸담고 있는 교수로서, 이번에 개발한 인쇄가능한 전해질 및 전지 기술을 심층 연구해 제 2, 3의 세라믹 코팅 분리막을 개발, 전지 산업에 기여하고 싶다”고 이 교수는 덧붙였다.

연구결과 이상으로 함께하는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언급한 이 교수. 앞으로도 진정성 있는 연구로 국가 경쟁력 발전에 이바지하는 과학자로 활약하기를 기대해 본다.


황정은 객원기자 | hjuun@naver.com

저작권자 2013.01.2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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