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20일 일요일

하품, 영원한 미스터리인가?

하품, 영원한 미스터리인가?

뱃속 태아도 하품해, 그러나 이유 못 밝혀

 
하품에 대해서 국어대사전은 “고단하거나 심심하거나 배가 부르거나 졸리거나 할 때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호흡운동”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누구나 경험해 봐서 잘 아는 일이다. 일상생활 속의 평범한 행동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하품을 왜 하는지에 대한 그 이유를 밝혀내는 일은 결코 쉽고 평범하지가 않다. 어쩌면 이 평범한 행동은 풀리지 않는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을 지도 모른다. 이제까지 딱 부러지게 명확히 밝혀진 것이 없다.
▲ 하품은 물고기, 양서류를 비롯해 포유류의 공통된 행동양식이다. 그러나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위키피디아


기존 학설은 뇌에 산소를 공급하기 위한 것
하품의 이유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은 뇌에 산소를 공급하기 위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피곤하고, 또 지루할 때 뇌에 산소가 부족하기 때문에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대신 산소를 공급하기 위한 자연적인 신체의 대사과정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좁은 실내에서 산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때문에 한 사람이 하품을 하여 산소를 많이 흡수해 버리면, 다른 사람 역시 산소를 더 많이 흡수하기 위해 하품을 하기마련이다. 그래서 전염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럴듯한 이야기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그렇다면 맑은 공기가 가득 차있는 산이나 들에서는 사람들은 하품을 하지 않을까? 그리고 전염도 안 될까? 아니다. 어떤 곳에서든지 하품을 한다. 물론 그 정도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실내와는 다를지 모르지만 말이다.

딸꾹질, 웃음과 함께 불가사의한 행동양식
인간을 포함해 동물행동에 대한 연구는 유전, 생리, 진화, 신경 등 다각도의 접근을 통해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특정한 행동양식들은 여전히 불가사의한 영역으로 남아 있다. 인간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부 행동양식도 마찬가지다. 그 중 하나가 하품이다.

우리는 왜 하품을 하는지에 대해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품의 명백한 기능이나 효과, 또는 그 필요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더구나 최근 자궁 안의 태아가 입을 여는 행동이 단순히 입을 벌리는 것이 아니라 하품을 하는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하품의 미스터리는 더욱 깊어가고 있다.

태아도 하품한다는 것이 사실로 입증됨에 따라 그 동안 소멸되지 않고 끈질기게 버텨온 한 이론은 이제 관 속에 묻히게 되었다. 하품에 대해서 우리가 이제까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지식을 대변해 준 이론 말이다. 다시 말해서 하품은 폐에 산소를 채우고 이산화탄소를 제거하기 위한 신체대사의 한 과정이라는 오랜 주장이 이제 사장될 위기해 놓인 것이다.

하품이 횡경막, 가슴근육, 기도를 펴는 운동인 것은 사실이다. 기지개가 팔을 쭉 편다면 하품은 얼굴을 펴는 운동이다. 둘이 동시에 일어나는 이유도 예사롭지 않다. 이 과정에서 뇌에 공급되는 산소의 양이 많아져 기분이 좋아지는 효과도 있기는 있다.

실험결과, 산소공급과는 전혀 관계 없어
인체를 이용한 실험결과 기존의 상식이 잘못됐음이 밝혀진 지도 26년이 된다. 하품의 권위자라고 할 수 있는 미국 메릴랜드 대학 심리학자 로버트 프로빈(Robert R. Provine)은 대상자에게 이산화탄소와 산소를 흡입시켜 혈관 속의 농도를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실험을 했지만 하품 빈도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 실험에서 밝혀진 것은 무엇일까? 프로빈 박사는 특별한 장비 없이 집에서 누구나 시도할 수 있는 실험, 즉 그가 말하는 ‘보도신경과학(sidewalk neuroscience)’의 창시자다. 그는 하품과 관련한 세세한 정보들을 밝히는데 오랜 시간을 쏟았다. 그의 저서 ‘불가사의한 행동들: 하품, 웃음, 딸꾹질’에도 잘 나와 있다.

프로빈 박사는 실험에서 사람들에게 하품을 할 때 코를 꼬집거나 세게 비틀고, 또 이를 악물어 보라고 요구했다. 그가 알아낸 결론은 이렇다. “입으로 숨을 들이마시면서 턱을 넓게 벌리지 않는 한 하품을 멈출 수는 없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참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 하품연구의 권위자인 프로빈 박사. 그는 또한 웃음과 딸꾹질 연구의 권위자이기도 하다. ⓒ메릴랜드 대학
프린스턴 대학의 심리학자 앤드류 갤럽 교수는 그의 부친과 함께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하품이 억제되는 환경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연구했다. 이마에 차디찬 쿨 팩을 묶어두었을 때다. 또 체온보다 높은 여름 기온에 노출될 경우 등이다.

따라서 하품이란 외부공기를 들이마심으로써 뇌의 온도를 낮추려는 행동일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태아의 하품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리고 하품의 필요성은 채워지지 않는다. 사실 하품은 한번 하면 연거푸 나오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하품에 대한 글만 읽어도 하품이 나와
지루함, 나른함, 스트레칭, 타인의 하품 등이 하품의 원인이라는 속설도 맞는 말인 것 같다. 전염성이 얼마나 대단한지 하품에 대한 글만 읽어도 반사적으로 하품이 나온다. 하품의 전염은 무의식 중에 일어나는 것으로 누가 하라고 해서 쉽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또 하품의 전염은 인간에게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영장류인 개코원숭이와 침팬지에게서도 발견된다.

재미 있는 연구가 있다. 애틀란타 에모리 대학의 한 연구팀은 하품의 전염이 공감(共感)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라면 침팬지들이 동료들이 아니라 낯선 유인원 종(種)이 하는 하품은 전염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낯선 유인원들이 하품하는 모습을 담은 비디오를 보여주었을 때보다 같은 침팬지가 하품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을 때 침팬지들의 하품 빈도수가 더 많았다. 공감이 하품의 전염을 유도한다는 주장이 다소 맞아 떨어졌다.

우리 인간, 여전히 불가사의한 존재?
그러나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사랑의 묘약으로 일컫는 옥시토신 호르몬 역시 하품을 유발시킨다. 스킨십, 키스, 협력 등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행동을 할 때 뇌에서 분비되는 옥시토신은 기분을 좋게 만드는 신경화학물질인 도파민의 분비를 촉진시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칼리아리 대학 연구진은 실험용 쥐의 특정 뇌 부분에 옥시토신을 주입해 하품을 유도해 냈다. 또한 옥시토신 억제 화학물질을 쥐에 주입해 하품을 억제하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결과는 하품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더욱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하품의 전염성이 꼭 공감이라는 사회적 유대감에 비롯된다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 보다는 감정과 상관없이 그저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모방행동이라는 해석이 더 나을 것 같다. 공감이라는 주장도 하품의 생리적인 이유를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혼자 있을 때도 하품을 많이 하지 않는가?

진화론에 기반을 둔 한가지 설명이다. 가족단위 생활을 하던 초기 영장류가 함께 사냥을 떠난다거나 잠을 잘 때 하품은 집단행동을 위한 신호였다는 것이다. 전염성이 큰 하품은 웃음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유대를 다지는 수단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런 이론도 영장류뿐만 아니라 물고기, 새, 양서류 등 거의 모든 척추동물이 하품을 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하품은 더 먼 과거에 무언가 중요한 기능을 했다가 이제는 쓸모 없어진 진화의 흔적인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하품의 주목적은 우리 자신에게 조차도 인간은 여전히 신비에 싸인 불가사의한 존재로 앞으로 계속 연구할 대상이라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팔다리를 쭉 펴고 신나게 기지개를 펴고 하품을 하면서 미스터리인 하품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인간행동에 관심을 갖는 일 역시 과학의 시작이지 않는가? 어쨌든 큰 기지개를 펴고 하품을 하고 나면 시원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김형근 객원기자 | hgkim54@naver.com

저작권자 2013.01.1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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