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언제부터 살쪘을까?
비만의 시작은 항생제 등장시기와 같아
사람들은 언제부터 살쪘을까? 괴상한 질문인가? 비만, 그리고 다이어트 이야기가 하루도 빠짐 없이 매스컴에 등장하는 것을 보면 결코 괴상한 질문은 아닌 듯싶다. 50년, 100년 전의 이야기가 아니라 최근에 등장한 문제니 더욱더 그렇다. 식품광고의 90% 이상이 비만과 다이어트와 관련돼 있다. 미국인 4분의 3이 과도 비만이라는 통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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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법의 탄환 항생제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indianapublicmedia.org |
4년 전의 일이다. 미국의 한 유명 제약회사 연구원과 인터뷰를 나눈 뒤 식사를 하면서 필자는 가벼운 생각으로 이런 질문을 던졌다. “만약에 앞으로 새로운 신약을 개발한다면 어떤 것이 가장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요?” 그는 약물학(pharmacology)을 전공하고 있었다. 화학물질이 인체에 투입됐을 때, 특히 신경이 어떻게 반응하는 지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을 말한다.
“돈을 가장 많이 벌 수 있는 거요?” 그는 다소 머뭇거리다가는 웃으면서 “부작용이 전혀 없이 비만을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는 의약품만 개발되면 벼락부자가 될 수가 있습니다. 많은 제약회사들이 여기에 매달리고는 있지만 이렇다 할 기술이 개발되지 않았습니다. 암 정복보다 비만정복이 더 어려운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돈 벌 수 있는 신약은 비만 치료약
이 연구원은 이어 이렇게 이야기했다. “암을 비롯해 여타 질병들은 어떤 한 특정부위의 문제이거나, 아니면 세포의 활동이나 세균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연구가 진전되면 치료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많이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비만은 세포나 세균에 의한 문제라기보다 신체의 대사과정에서 일어나는 작용이기 때문에 아주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그렇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소화흡수하고, 배설하는, 다시 말해서 우리의 몸 안에서 일어나는 물질의 모든 물리적 변화와 화학적 변화라는 신진대사 과정에서 나타나는 비만을 어떤 의약품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노릇일 것이다.
필자는 유망한 신약으로 암 백신이나 치료약 개발을 우선으로 AIDS, 심혈관 예방 및 치료약 등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평범한 생각들이다. 그러나 이 연구원은 비만을 제1 순위로 꼽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이야기가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요에 따른 시장성(market)을 고려한다면 말이다. 어쨌든 비만이 커다란 관심사로 등장한 것은 사실이다.
물론 옛날에도 살찐 사람들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처럼 살찐 사람이 많았을까? 많이 먹어서 살찌는 거라면 당연히 옛날에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비만이 질병 수준의 문제로 등장한 것은 아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언제부터 무엇 때문에 살찌기 시작했을까?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 동탁(董卓)은 당시 아무런 힘이 없던 한나라(후한)의 황제를 좌지우지하는 최고 권력가로 조조, 유비, 원소를 괴롭힐 정도로 세력이 막강했다. 성격이 포악해서 백성들을 마구 죽여 공동전선을 편 3국 연합군의 맹공격을 자초했다. 도망 다니다가 결국 부하인 여포(呂布)에 의해 살해됐다.
얼마나 날렵하고 완력이 세었는지 두 개의 커다란 궁대(弓袋, 활을 넣는 화살집)를 몸에 차고 말을 몰면서 왼손, 오른손 가릴 것 없이 어느 손으로도 활을 맘대로 쏠 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나 뚱뚱했던지 삼국지에 따르면 한 병사가 호기심으로 죽은 그의 배꼽에 심지를 넣어 불을 붙였는데 무려 보름 동안이나 탔다고 한다.
뚱뚱하면서도 용맹한 장수로는 양귀비와의 애절한 사랑으로 유명한 당나라 현종 시대의 안록산(安祿山)이라는 인물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행운아였다. 현종과 양귀비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다. 그래서 이란계의 돌궐족인 그를 양자로 들였다. 당시 양자제도는 ‘자식’의 개념이 아니라 ‘주종(主從)’ 관계로 그는 양귀비보다 열여섯 살이나 더 많았다.
그는 고속 출세하여 변방 최고 책임자인 절도사가 되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전방 최고 사령관인 셈이다. 그는 워낙 뚱뚱한 데다 한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기도 했지만 넉살 좋은 성격과 입심, 그리고 바보짓도 마다하지 않는 거칠 것 없는 태도로 현종과 양귀비의 총애를 받았다. 나중에 반기를 들어 난(안록산의 난)을 일으켜 수도인 장안까지 점령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하루는 현종이 양귀비와 함께 그를 불러 술을 나누면서 이렇게 물었다. “난 이제껏 그대만큼 뚱뚱한 사람을 본적이 없소. 그대의 뱃속에는 과연 무엇이 들어있는지 궁금하오” 입심 좋은 안록산은 즉각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고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 “이 뱃속에는 오직 황제폐하에 대한 충성심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종합해 보면 옛날의 비만과 지금의 비만과는 성격이 다른 것으로 짐작된다. 뚱뚱한 장수가 전장을 누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장성(將星)이 되기 위한 첫째 조건은 비만이 아니어야 한다. 헤드헌터들이 추천하는 CEO의 첫째 조건 역시 비만이 아니어야 한다.
원래 가축이나 일반동물들은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많이 있다 해도 적당량 이상을 먹지 않는다. 그래서 특히 개나 늑대, 그리고 이리와 같은 개과의 동물들은 먹다 남은 음식을 나중에 먹기 위해 땅을 파서 묻어두는 버릇이 있다.
그리고는 다른 동물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고약한 냄새의 분뇨를 주위에 뿌린다. 그러나 요즘은 애완동물들도 과도비만에 시달려 병원을 찾는 경우가 허다하다. 뿐만이 아니다. 고혈압에 심장병까지도 치료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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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테리아 전문가 마틴 블에이저 교수. ⓒ위키피디아 |
장내 박테리아 균형 깨지면 비만 재촉
항생제가 인간 비만의 원인일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결과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고기나 유제품에 포함된 항생제가 인체의 장내 박테리아 균형을 변화시키고, 이것이 영양분의 소화흡수율을 늘려 비만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미국 뉴욕대학 메디컬센터의의 세균학자 마틴 블레이저(Martin Blaser) 교수는 “인류가 비만해지기 시작한 것은 항생제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고 지적하면서 “양자간에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고 말했다.
박테리아 전문가로 1998년 박테리아재단(Foundation for Bacteria)을 설립하기도 한 블레이저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젖을 막 뗀 생쥐에게 페니실린을 비롯한 일반적인 항생제를 투여하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항생제를 투여한 생쥐는 그렇지 않은 생쥐에 비해 체지방이 10~1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이 방법은 농부들이 가축을 살찌우기 위해 수십 년간 사용해 온 방법이다.
항생제로 인해 박테리아의 수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종류별 구성비가 바뀐다. 그래서 물질대사와 비만에 관계되는 호르몬을 생산하는 특정 아미노산, 그리고 인체에서 지질 생산을 늘리게 만드는 특정 지방산의 생산이 박테리아에 의해 늘어난다는 것이다.
아기 때 항생제 투여 받으면 비만 확률 높아
비슷한 내용으로 뉴욕대학 연구팀은 또 다른 연구를 진행했다. 항생제를 투여 받은 갓난아기는 커서 비만이 될 위험이 높다는 연구결과다. 이에 따르면 생후 6개월 이내에 항생제를 투여 받은 아기들은 3세가 됐을 때 비만일 위험이 22%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6개월 이후에 항생제가 투여됐을 때는 그 같은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같은 내용의 연구가 있다. 영국의 비만아 11,000명을 조사한 결과 생후 6개월 이전에 항생제 처방을 받았던 아이들이 비만이 될 확률이 높다는 사실이다. 아기에게 항생제를 처방해야 할 경우 비만의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수백 년 전만 해도 인간의 평균수명은 불과 20~30살에 불과했다. 만병통치약으로 인류를 질병으로부터 해방시킨 구세주 항생제. 그러나 20세기의 최고의 발명품인 이 ‘마법의 탄환(magic bullet)’이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비만은 과학, 그리고 풍요가 낳은 인간 최대의 질병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2013.01.25 ⓒ ScienceTim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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