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8일 화요일

외계 거대구조물의 다양한 유형

외계 거대구조물의 다양한 유형

SF관광가이드/외계의 거대구조물 (3)

 
SF 관광가이드 과학소설에는 링월드 타입 외에도 다양한 외계 거대구조물들이 나온다. 예를 들어 이언 M. 뱅크스의 <컬춰 The Culture 시리즈>에 속하는 장편 <비상사태 The Excession; 1996년>를 보자. 이 소설은 휴머노이드 종족의 은하문명권인 컬춰의 변경에 나타난, 우주보다 오래된 검은 구체를 둘러싸고 컬춰를 비롯한 지적 문명권들이 서로 차지하려 각축을 벌이는 이야기다.
▲ 이언 M. 뱅크스의 <비상사태; 1996년>에는 우주보다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검은 구체가 나온다. 은하 안의 지적 종족들은 이것을 차지하려 각축을 벌인다. ⓒOrbit Books

이 장편의 제목 <비상사태>는 컬춰 문명의 기준에서 볼 때 갑작스레 예기치 못할 만큼 강력하고 폭력적인 반응을 유발하는 (외계존재와의) 최초의 접촉을 일컫는 용어다. 컬춰를 비롯해 그와 동등한 기술력을 지닌 여러 항성 간 문명이 이 구체의 정체를 밝히려 하지만 실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컬춰와 늘 분쟁 상태인 호전적 외계 종족 하나가 이 구조물을 손아귀에 넣어 군사력에서 컬춰보다 우위에 서려 한다.

같은 시리즈에 속하는 또 다른 장편 <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봐 Look To Windward; 2000년>에는 행성 크기의 거품처럼 생긴 인공거주지(Airspheres)가 나온다. 이 안에는 중력이 없고 공기만 차 있을 뿐이며 기괴한 생명이 떠다닌다. 이곳의 건설자 역시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계 선주종족이란 점에서 예외가 아니다.

심지어 테리 프라쳇(Terry Pratchett) 같은 작가는 물리법칙에서 상당히 벗어난 구조물을 상상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데, 이러한 것을 만들어낸 장본인이 인류가 출현하기 훨씬 오래 전 우주의 역사를 수놓으며 찬란한 문명을 구가한 외계의 선주종족들이라고 둘러댐으로써 골치 아픈 과학적 입증(논리적 설명) 문제를 어영부영 넘어간다. 예컨대 그의 두 장편 <태양의 어두운 면에 있는 조커들 The Jokers in The Dark Side of the Sun; 1976년>과 <가짜 지층 Strata; 1981년>에 각기 등장하는 거대구조물의 건설자 조커들(The Jokers)과 축 왕들(Spindle Kings)은 공히 인류보다 까마득히 오래 전에 살았던 외계의 선주(先主) 종족들이다.

조커 종족은 작품 속에서 언급된 은하계에 살고 있는 52종의 지적 종족들이 생겨나기 훨씬 전에 존재했다가 종적을 감춘 까닭에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이 만든 거대구조물은 항성들을 하나의 체인으로 연결해놓는 사례에서 보듯 물리법칙을 깡그리 무시한 듯 보일 정도로 경이롭다.

<가짜 지층>에서 행성공학자인 주인공 일행은 회사의 지시에 따라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그대로 구현해놓은 듯한 평탄한 원반 모양의 지구에 도착한다. '축 왕들'(Axis Kings)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세계는 중세의 지구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하지만 이 인공 지구는 구(球)가 아니라 평평한 원반이며 그 주위를 천구(天球)가 에워싸고 있고 천구 안쪽 표면에는 별과 태양 그리고 행성들이 붙어 있다. <가짜 지층>은 배경 설정으로 보나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으로 보나 래리 니븐의 <링월드>에 대한 패러디로 읽힌다.

<가짜 지층>보다 한술 더 떠서 복수(複數)의 천구가 동일한 중심을 에워싸고 있는 세계를 그린 작품들도 나왔으니 이언 M. 뱅크스의 장편 <물질 Matter; 2008년>과 알라스테어 레이놀즈(Alastair Reynolds)의 중편 <트로이카 Troika; 2010년>가 그러한 예들에 속한다.

<물질 Matter; 2008년>의 주요 무대는 껍질세계(Shellworld)다. 이 세계는 중심이 동일하고 크기가 제각각이되 속은 비어 있는 구(球) 여러 개로 감싸인 인공행성이다. 각각의 구체마다 그 내부에는 다종다양한 거주시설이 꾸려져 있다. 소문에 따르면, 이러한 껍질세계는 수천 개가 있으며 오래 전 사라진 선주 외계종족이 뭔가 좋지 않은 목적을 위해 만들어두었다고 전해진다.
▲ 이언 M. 뱅크스의 <물질; 2008년>과 알라스테어 레이놀즈의 <트로이카 Troika; 2010년>는 공히 껍질세계(Shellworld)가 주요무대다. 이 세계는 동일한 중심을 에워싸고 있는 여러 개의 구(球)로 되어 있어 마치 러시아 인형 마트료쉬카를 닮았다. 위 일러스트는 <물질>의 껍질세계를 그린 것으로, 안쪽세계에서 뻗어나온 기둥이 바로 바깥 세계의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John Malcolm

<트로이카 Troika; 2010년>에서는 아예 거대한 구체가 태양계 안에 등장한다. 근미래의 태양계에 불쑥 나타난 이 구조물은 일정한 주기마다 지구에 다가온다. 이것은 껍질세계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중심을 구체들이 여러 겹으로 에워싼 구조라서 마치 껍질을 벗길 때마다 안에서 새로운 모습이 나오는 러시아 인형 마트료쉬카(Matryoshka)를 닮았다.

미지의 장력을 발생시켜 우주의 잔해들을 한데 끌어 모은 이 구체의 최외곽 층은 접근하는 것은 뭐든 갈갈이 찢어버릴 기세다. 지구에서 파견된 러시아의 탐사대원들은 설상가상으로 구체의 중심에 가까이 갈수록 플랑크 상수(Planck's Constant)1)가 커지는 등 기존 물리법칙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음을 깨닫는다. 심지어 이 구조 전체가 러시아 민요이자 춤곡인 ‘트로이카’의 운율에 맞춰 맥동하기 때문에 이 구체에 트로이카란 이름이 붙여진다. 이 탐사의 유일한 생존자가 정신병원에서 탈출하는 사건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서방세계가 몰락하고 러시아가 다시 반동적 소비에트 체제로 회귀한 근미래를 무대로 다양한 목소리의 공존 필요성에 대한 묵직한 울림을 전해준다.

로벗 리드(Robert Reed)의 <대우주선 시리즈 Great Ship universe; 1994~2004년>2)에는 최고 수준의 강화섬유로 만들어진 목성 크기의 우주선이 등장한다. 이것은 이제까지 과학소설에 등장한 초거대 구체 가운데 솔직히 그리 큰 편은 아니지만 판도라의 상자 같은 비밀을 담고 있어 한층 매력적이다.

항성 간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노화되지 않은 불사신의 몸을 갖게 된 미래 인류가 찾아낸 이 인공천체는 알 수 없는 기원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천만 개가 넘는 굴과 융합반응로들이 산재해 있어 어떤 종(種)의 생명체든 그 안에서 살아가는 데 무리가 없다. 이 목성형 우주선의 나이는 우주만큼 오래 되었을지 모른다는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심지어 이 인공천체가 우주를 만들어낸 동인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우주에서 중추적인 핵심기능을 하고 있다는 주장까지 제기된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우리 눈에 보이는 우주는 이 목성형 우주선의 또 다른 외피(外皮)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 로벗 리드의 <대우주선 시리즈; 1994~2004년>에는 목성 크기의 우주선이 등장한다. 이 거대 인공천체 안에는 지구만한 핵이 있고 그 안에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위협적인 외계존재들이 갇혀 있다. 거대 인공천체를 감옥으로 포지션한 케이스. ⓒTor Books

결코 파괴되지 않는 이 인공 거대천체를 순항 우주선으로 전용하려 마음먹은 인류는 다른 외계 종들을 초빙하여 이 어마어마한 공간 안에 흩어져 살게 한다. 그로부터 수천 년 후 이 초대형 우주선의 상층부에는 2천억의 개체가 살게 된다. 아울러 놀랍게도 한 무리의 탐사대가 우주선의 중심부까지 내려갔다가 거기에 숨겨놓은 행성 매로우를 발견한다.

그러나 대대적으로 분출된 이온입자들이 탐사대를 우주선의 나머지와 분리시키는 바람에 그들은 장비의 대부분을 잃어버린 채 행성 표면에 고립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행성 매로우는 서서히 팽창하고 있어 앞으로 5천년 있으면 새로운 다리를 놓아 우주선의 내부와 연결할 수 있으리라는 전망이 선다. 그때를 기다리며 불사신의 몸인 탐사대는 매로우 지표에서 잠정적이나마 문명을 재건한다.

한편 이 거대 우주선의 상층부에 살고 있는 탐사대의 후손들은 이 구조물 자체가 원래 ‘암울한 자들’(the Bleak)을 가두기 위해 지어졌다고 믿게 된다. ‘암울한 자들’은 벌레처럼 생긴 외계종족으로 거의 천하무적이다. 우주선을 장악한 후손들은 이것을 블랙홀로 몰고 가려 한다. 그렇게 하면 ‘암울한 자들’을 말살시킬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같은 시기 애초의 탐사대 중 한 명도 우주선의 건설자들이 ‘암울한 자들’과 싸웠던 과거의 환영을 본다. 이 괴물들을 매로우의 중심에 가둬놓았기에 이 행성을 에워싼 우주선의 구조 또한 감옥처럼 설계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블랙홀로 이 우주선을 몰고 가려는 후손들의 계획은 ‘암울한 자들’의 은밀한 충동질에 따른 조치다. 블랙홀의 강한 중력에 우주선이 파괴되면 괴물들이 달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막기 위해 탐사대는 우주선의 명령 및 제어시스템을 손봐 엔진의 분사방향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려 한다. 블랙홀을 멀찌감치 우회하기 위해서이다.

마지막에 가서 이 소설은 놀라운 결론에 차례로 도달한다. 매로우가 ‘암울한 자들’을 위한 감옥이고 목성 크기의 우주선 또한 궁극적으로 감옥의 확장판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작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우주 자체가 이 중층 감옥을 한 꺼풀 더 덧씌우기 위해 우주선의 건설자들이 만들어낸 외피라는 추론으로 끝을 맺는다.

우주에 등장하는 거대 초구조물의 생김새는 공 모양 이외에도 장방형 또는 정방형 입방체처럼 규칙적인 형태를 띠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인공적인 구조물이라면 외형에서부터 어떤 논리성을 띠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작가들의 생각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장방형 입방체로는 <2001년 우주 오디세이>의 모놀리쓰가 유명하며 정방형 입방체의 사례는 핀란드 작가 리스토 이소마키(Risto Isomaki)의 단편 <제나두 큐브 Xanadu-kuutio; 1991년>3)와 미국 작가 애드리언 마틴 반즈(Adrienne Martine-Barnes)의 환타지 스페이스 오페라 <용이 일어나다 The Dragon Rises; 1982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제나두 큐브>에서는 바깥에서 본 크기보다 안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큰 큐브 모양의 입방체가 등장한다. 사실 이 입방체 안에는 우주를 몇 개쯤 집어넣을 만한 여분의 공간이 있다. <용이 일어나다>에 등장하는 큐브는 각 면마다 점들이 새겨져 있어 흡사 주사위를 연상시킨다. 이 때문에 우주 곳곳에 이처럼 거대한 인공구조물들을 남겨 놓은, 이제는 자취를 찾아볼 수 없게 된 선주종족은 “노름꾼들”(Gamesters)이라 불린다. 물론 어떤 경우에나 초구조물들이 만들어진 이유는 선뜻 제시되지 않는다.
1) 물질입자의 입자성과 파동성을 보증하는 상수. 불연속성과 불확정성을 보이는 양자역학적 미시세계의 본질에 관계하는 중요 상수다.
2) 또는 <매로우 Marrow> 시리즈라고도 한다. 이 시리즈에는 장편 <매로우 Marrow; 2000년>와 <별들의 중력우물 The Well of Stars; 2004년> 그리고 단편 <장애물들 The Remoras; 1994년>과 <영겁의 아이들 Aeon's Child; 1995년>, <매로우 Marrow; 1997년>(장편과 동일한 제목)가 여기에 속한다.
3) 이 단편은 작가의 선집 <크리스털 장미 Kristalliruusu; 1991년>에 수록되었다.

고장원 SF칼럼니스트 | sfko@naver.com

저작권자 2013.01.0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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