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21일 일요일

한국 BEST SF작가 10인, 박민규(1)

한국 BEST SF작가 10인, 박민규(1)

탐구에 대한 갈망이 인간의 정체성

 
한국SF를 찾아서 <지구영웅전설>과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순문학계의 주목을 받았을 때부터 박민규는 인간 소외를 조장하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를 감각적이고 경쾌한 문장 구사로 야유하는 데 일가견을 보여줬다.

그의 도발적이면서도 맛깔스럽고 세속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문장은 독자가 주저 없이 몰입하게 만드는 촉매제지만, 마지막 쪽을 덮으면서 마음 속에 맺게 되는 총체적인 인상은 독자로 하여금 이미 묵직한 주제의식의 덫에 걸려든 나머지 마냥 경쾌할 수 없게 만든다.

이처럼 역설적인 ‘꿀&덫’을 놓기 위해 박민규는 순문학의 고유형식인 멜로드라마뿐 아니라 초자연현상과 무협소설, 하드보일드 그리고 과학소설(그것도 소프트와 하드를 포괄하는)처럼 독자의 눈길을 끌 수 있는 특징적인 요소들이라면 무엇이든 가져다 나름의 방식으로 반죽하길 거리끼지 않는다. 더욱이 문장과 단어의 구사도 해당 장르에 맞게 무협지면 무협지 톤으로, 과학소설이면 과학소설 톤으로 잘 갈무리돼 마치 그 분야의 전문작가 같은 인상마저 준다. ‘무규칙 이종격투기의 문장가’라는 별칭이 왜 생겨났는지 알 수 있는 이유다.
▲ 박민규의 과학소설 단편들이 다수 포함된 2권짜리 작가선집 <더블> ⓒ창비

대신 어떤 장르형식을 빌어다 쓰건 간에 그의 소설은 대개 사회 주류에서 소외된 이른바 ‘루저’들에 대한 애정과 이들의 소외를 야기한 현대사회에 대한 따가운 질타로 일관한다는 점에서 박민규의 주제의식은 언제나 또렷하다. 여기서는 지면 관계상 박민규의 작품세계 전반을 논하기 어렵거니와 이 글의 성격과도 맞지 않는다고 여겨 (예컨대 그에 관한 순문학계의 비평은 이미 남아돌 터이므로) 최근작 <더블>에 수록된 일부 단편들 가운데 눈길을 끄는 과학소설 몇 편에 관한 논의에 초점을 맞춘다.

과학소설이 추구하는 궁극에 다가서는 박민규식 하드SF, <깊>
솔직히 단편 <깊>1)을 읽고 박민규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됐다. 단지 순문학계냐 과학소설 팬덤 출신이냐를 떠나 이 정도의 내공을 지닌 작품을 쓰자면 과학소설 장르에서 플롯을 어떻게 짜야 하는지, 그 귀결은 어떻게 끌고 가야 하는지 그리고 작가가 창안한 유사과학지식은 어떻게 (자연스레) 짜 맞춰야 하는지 사전에 많은 고민이 선행돼야 할 터이므로.

결말부의 유체이탈에서 김이 다소 빠지지만 이 부분만 뺀다면 똑같이 심해를 무대로 한 피터 와츠(Peter Watts)의 단편 <틈새 A Niche>2)에 못지않은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준다. 둘 다 등장인물들의 내면 심리를 어루만지는 진지한 사변소설인 동시에 이들이 자신들을 에워싼 극한적인 외부환경을 극복해야 할 부담스런 대상에서 자연스런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린 하드SF다.

<깊>을 하드SF로 규정할 수 있는 까닭은 단지 인간이 심해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해주는 대체혈액 R-71과 심해 우주정 외피 제작에 쓰려고 금성에서 캐온 광물로 만든 티모 합금 그리고 수심 1만 미터 이하에서도 선내압을 유지할 수 있게 고안된, 화성에서 채취한 네레이드 오일 같은 유사과학적 용어와 개념들 때문만은 아니다. 이러한 말장난은 조금만 궁리하면 어떤 작가나 무궁무진하게 늘어놓을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작가들이 그런 짓을 한다.)

무엇보다 <깊>은 팬트로피(Pantropy)를 통해 인간의 자연지배의 한계를 실험하는 이야기다. 팬트로피란 유전공학을 통해 외계 환경에 맞도록 인체를 개조하는 기술에 바탕을 둔 이야기를 일컫는 용어다. <깊>에서는 해저지진으로 수심 1만9천251미터의 새로운 해구가 생겨나자 (기존의 마리아나 해구는 수심 1만1천34미터다.) 인류는 이 심해를 탐사하기 위해 로봇 탐사정 대신 직접 인간을 내려 보내기로 한다. (실제로는 로봇 탐사정을 내려 보내도 충분한데 무리하게 인간을 투입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왜 달에 인간을 보냈고 화성에도 보내려 수십 년 동안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중국 등이 준비하고 있느냐고 묻는 것과 진배 없으니 여기서는 추가 논의를 생략한다. 특히 과학소설은 과학논문이 아니라 감성적인 대중소설임을 잊지 마시라.)

일견 무모해 보이는 이 연구를 가능하게 한 결정적 계기는 수심 1만9천 미터 심해에 살고 있는 해삼의 체액을 걸러주는 돌기모양의 공생동물의 발견이었다. 이 동물의 체액을 연구하여 정제해낸 대체 체액 R-71을 인체에 주입해 체질을 바꾸면 높은 압력에서도 심장과 뇌가 버텨준다.

그러나 R-71의 체내 비중을 단계별로 높여갈 때마다 이 실험의 자원자들 중 일부가 부작용으로 사망한다. 사망자는 수면 위로 올라온 심해어처럼 처참하게 폭발하듯 최후를 맞이한다. 이 때문에 자원자들은 항상 인공적으로 압력을 높인 폐쇄격실에서 생활한다. 이 실험에 참가하기 전까지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이들은 이제 불과 다섯 명만 남은 고립된 방 안에서 살아간다. 이들의 몸은 이제 보통 인간들이 사는 평균기압의 환경에서는 살 수 없게 변해버렸다. 이들은 자문(自問)한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인간일까?
▲ 심해를 무대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존재론적 의문을 던지는 박민규의 하드SF <깊> ⓒefremov

최종 테스트까지 살아남은 세 명의 자원자들은 마침내 수심 1만9천251미터의 해저로 티모 합금제 탐사정을 타고 내려간다. 작가는 여기에서 세 등장인물들에게 추가로 얄궂은 미끼를 던진다. 당도해보니 그곳은 세계에서 가장 깊은 바닥이 아니었다. 근처에 또 다른 깊은 틈이 발견된 것이다.

이들은 망설인다. 더 내려갈까, 말까? 해상관제소에서는 돌아오라는 전문이 빗발친다. 셋의 눈길이 마주친다. 굳이 말은 필요 없었다. 이들은 잠수정을 움직여 새로 발견한 구멍으로 내려간다. 수심 2만5천187미터. 마침내 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깊은 해저에 도달한다. 하지만 돌아갈 추력을 잃은 이들은 그곳에서 꼼짝달싹 못한 채 압력에 짓눌려 전부가 작은 오렌지만해진다.

이들의 장렬한 최후를 통해 작가는 이들이 인간, 그것도 진정한 인간이었음을 시사한다. 다시는 정상적인 인간들과 맨살로 만날 수 없게 신체변형이 된 불과 세 명의 고독한 존재들. 이들은 때로 자신을 돌아보며 과연 지금의 존재양식을 인간이라 규정할 수 있을까 의문을 품지만 이들의 최후 결단은 그러한 의구심이 기우임을 증명한다. 중도에 만족하지 않고 미지의 극한을 찾아 끝까지 답을 얻어내려는 노력과 의지, 그것이 인간을 증명하는 징표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작가는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매 절차와 단계마다 납득할 수 있게 차근차근 발을 내딛는다. 그 결과 이 작품은 한국에서 보기 드문 하드SF가 되었다.3) 이는 유사과학적인 정보의 과잉으로는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성과다. 피터 와츠는 “우리는 합리주의의 전도사다. 허황된 이야기는 절대 거부한다.”4)고 말한 바 있다. <깊>에 관한 한 같은 평가가 내려질 수 있지 않을까.

<깊>에도 박민규의 전매특허인 인간의 소외가 어김없이 등장인물들에게 투영되지만 그 원인은 사회구조적인 악에 기인하지 않고 개인적인 차원으로 그려진다. 이 시대는 세계통합정부의 총통이 정치권력을 좌우하며 인류의 60%가 과학과 공학 그리고 30%가 철학을 전공하는 세상으로 설정된다. 스포츠가 사라지고 모든 노역을 기계가 대신하는 이 시대에 인간이 목숨을 걸고 뭔가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일은 많지 않다.

그래서 이 실험에 자원자들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드는 것일까? 어쨌거나 박민규의 작품치고는 분위기가 진지하고 비교적 어두운데 오히려 사회비판적 강도는 많이 희석됐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적어도 박민규의 <깊>은 하드SF 작품은 과학기술문명과 인간의 관계를 지나치게 과학기술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탓에 자칫 정치성이 거세되거나 보수 우파적 성향으로 치우칠 우려가 높다는 영미권 과학소설계의 통설5)이 반드시 통용되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 작가에 대한 간략한 이력
ⓒefremov

박민규는 1968년 울산 출생으로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해운회사와 광고회사, 잡지사 등 여러 직장을 전전한 끝에 전업 작가로 선회했다. 광고회사에서의 근무 경험은 단편 <아스피린>([아시아] 2006년 가을호)에 투영돼 있다.

미국 만화의 인기 캐릭터들인 수퍼 히어로들과 이들의 뒤치다꺼리를 해주기 바쁜 우리나라 바나나맨의 대비를 통해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패권 질서를 까발린 장편 <지구영웅전설>로 2003년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수상했으며, 같은 해 한국 프로야구 초기 최약체 구단 삼미 슈퍼스타즈를 소재로 경쟁지상주의의 허상을 폭로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제8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순문학계의 주목받는 작가로 자리 잡았다.

이후 장편을 계속 발표하고 있으며 단편집도 두 차례 내놓았다. 단편집 중 <카스테라>는 2005년, <더블>은 2010년 나왔는데 이 중 일부 단편들은 과학소설로 분류 가능하다.
1) 이 단편은 [문학동네] 2006년 겨울호에 처음 실렸다.

2) 이 단편은 행복한책읽기에서 펴낸 선집 <하드SF 르네상스 1; 2008년>에 수록되었다.

3) 그렇다고 해서 <깊>의 모든 설정이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아무리 우수한 대체혈액이 개발된다 해도 인간이 수심 1만 미터 이하의 심해에서 자유로이 활동하자면 혈액 뿐 아니라 혈관과 세포조직 그리고 골격까지 재구성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는 전혀 다른 형태의 동물이 되지 않는 한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하드SF라고는 해도 엄연히 소설이므로 100% 과학적 근거에만 기대 이야기를 전개하기는 쉽지 않다. 과학적 논리의 일관성과 합리성이 진지하게 전제된다면 상대적으로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중시하는 소프트 과학소설에 비해 하드SF라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4) 스티븐 백스터 외, 홍인수 옮김, 하드SF 르네상스, 행복한 책읽기, 2008년, 165쪽

5) 실제로 미국의 유명 하드SF 소설 작가들 가운데 상당수가 보수 우익 성향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로벗 앤슨 하인라인, 래리 니븐, 할 클레멘트 같은 이들이다.

고장원 SF칼럼니스트 | sfko@naver.com

저작권자 2012.10.1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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